교실에서 학생들의 퀭한 눈빛을 만날 때면 '이 방향이 정말 최선일까?', '대안은 없는 것일까?' 자문하게 된다. 어쩌면 교실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교사는 최대한 많은 지식을 효율적으로 쏟아낸다. 학생들은 그 내용 그대로 받아 암기한다. 자신의 생각을 드러낼 틈은 없다. 책이 귀하던 시절 교육에서 지식의 축적은 중요했고 기억력이 좋은 것은 큰 장점이었다. 초, 중, 고, 대학까지 남이 정리한 지식을 외우고 외우고 또 외우는 것이 공부인 줄 알았다. 그러다 박사 과정 즈음에 마침내, 드디어 그동안 외운 것들이 연결되며 자신의 관점이 만들어진다고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나 작은 휴대폰을 통해 필요한 지식을 바로 검색해서 이용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기본적인 개념을 이해한 후 널린 지식을 통합하고 재정렬하는 기능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내가 학생일 때는 선생님이 칠판 가득 그날 배울 내용을 적으시면 학생들은 그것을 받아적고 소리 높여 읽고 외웠다. 판서를 깔끔하게 잘 해주시는 선생님을 실력 있는 선생님이라고 생각했고, 판서 내용을 잘 외우는 학생이 시험에서 높은 성적을 얻어 우수한 학생으로 불리웠다. 요즘 달라진 교실 풍경이라면 교사는 판서 대신 요점을 정리한 유인물을 학생들에게 나눠준다. 학생들은 유인물 속 몇 개의 빈칸을 채우는 수고만 하고 중지에 굳은 살이 박히도록 지식을 받아적는 수고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몇 번의 클릭으로 학습 컨텐츠의 홍수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지식을 옮겨적는 수고가 줄어들며 획득한 시간에 학교에서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그 시간에 학생들에게 말을 건다.
"이런 현상을 본 적 있나요?",
"자세히 관찰하다 보면 공통점이 보일텐데..."
"이 지식을 발견하기 전과 발견 후 달라진 점은 무엇일까요?",
"이 현상을 이렇게 근사한 개념으로 정리해 낸 이는 참 멋있지 않나요?"
기대에 찬 나의 발문에 몇몇 학생들은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그건 교과서에 안 나오는데요."
"그거 시험에 나와요?"
라는 말로 수업의 맥을 끊는다.
“아, 시험을 잘 보고 싶구나. 성적을 우선 생각하고 있구나.”
라고 공감하면서 상황을 덮고 다음 말로 이어간다.
“여러분의 배움을 교과서나 시험에 한정하지 마세요. 우리는 지식을 다루는 법을 배워야 해요. 찬찬히 더 넓게, 또는 더 깊게 생각해봅시다.”
‘생각해보자’는 말이 나오는 순간 학생들의 눈빛은 붙잡을 수 없는 먼 곳으로 달려가버린다. ‘이것과 관련해서 너의 생각을 말해 보겠니?’하고 말하는 순간 몇 몇 학생은 아예 엎드려버린다. 하고 싶지 않음을 강력하지만 소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렇게 나의 말은 교실을 맴돌다 반향도 없이 사라져버린다.
참 많은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신체적으로 지적으로 많이 성장할 수 있는 10대 시절에 무표정과 무관심으로 갑옷을 입고 교실에 앉아 있다. 대한민국 학교는 어느 나라 못지 않게 오랜 시간 학생을 붙들고 있고, 학습량도 적지 않지만 학생들과 학부모는 그것도 부족하다며 과목별로 학원을 다닌다. 학교와 학원을 병행하느라 학생들은 만성 피로에 시달린다. 그리고 많은 학생들이 원하는 성적을 얻지 못해 주눅 들어 있다.
‘청소년 시절에는 잠을 7시간 이상 푹 자야 한다.’고 말하면 ‘학원 숙제할 시간도 부족한데, 잠을 어떻게 자냐’고 항변한다.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시험이나 잘 봤으면 좋겠다.’고 대답한다. ‘가슴이 떨리는 일이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중하는 일이 있’냐고 물으면 열에 일곱은 ‘게임’이나 ‘유튜브’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열에 한두 명은 ‘집중하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대답한다. 매사에 ‘의욕 없음, 관심 없음’을 선택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는 말이다.
학생이라고 불리기 시작하면서 삶의 주도권을 부모와 학교에 빼앗긴 학생들. 표준화된 교육의 틀 안에서 개별성은 무시되고 생각은 오지선다에 길들여진 학생들. 어릴 때부터 시험, 경쟁, 점수의 부담에 노출되어 충분히 놀지도 못하는 아이들. 결국 의미도 흥미도 없이 오랜 시간 교실에 앉아 있는 훈련을 받다 보면 에너지 사용을 최소화하여 주변 자극에 무관심해지는 전략을 본능적으로 배우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그 결과 배웠지만 모르고, 궁금하지도 않다는 학생들은 생겨났다. 배운 것을 기억하고, 연결해서 다음 개념을 배우려하고, 배운 내용을 새로운 문제에 적용하는 일은 일어나지 못한다.
'학생들이 집중하지 않아요.'
'교실에서 모노 드라마 찍듯 오바해서 수업을 해도, 재미난 유튜브 영상을 보여줘도 오래 집중하지 못해요.'
'그냥 지친 것 같아요.'
'배우는 것을 좋아해야 집중할 텐데, 학교 수업에는 좋아하는 것이 없고, 집중해 본 경험도 없어 염려가 됩니다.'
이런 현상은 부모님들도 알고 있지만 ‘K-교육’ 노선에서는 다른 해결책이 없다고 여기는 것 같다.
핀란드의 아이들은 만7세가 되기 전까지 아예 인지교육을 받지 않는다. 아이들은 그때까지 그냥 논다. 7세~16세 사이의 아이들은 오전 9시에 학교에 도착하고 오후 2시에 하교한다. 숙제는 거의 없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시험도 거의 없다고 한다. 이 아이들 삶의 고동치는 심장에는 자유로운 놀이가 있다. 법적으로 핀란드 수업은 45분 지도할 때마다 15분의 자유 놀이 시간을 줘야 한다. 그 결과, 핀란드 어린이의 겨우 0.1퍼센트만이 집중력 문제를 진단받으며, 핀란드인은 세계에서 읽고 쓰는 능력과 산술 능력이 가장 뛰어나고 행복한 사람들 중 하나다.
배움이 행복한 교육, 정녕 핀란드만 가능하고, 한국은 불가능한가?
지금 교실에 있는 아이들의 퀭한 눈빛을 보고도 우리는 어쩔 수 없다고만 할 텐가.
첫댓글 알고 있을텐데 바꿀 생각이 없는걸까...
쉽지는 않겠지요 ...그렇지만 우리 아이들의 미래, 아니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이 아닐까...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