τέλειος- 칼럼 – 생태수도원 신현태 목사 (시인, 생태수도원장. 2023-11-30) 가스펠투데이 원고
한반도의 평화, 이스라엘의 평화
- 평화와 전쟁, 상생과 절멸의 모순적 신앙 행태
살인과 전쟁과 폭력과 증오와 배제는 명백히 하나님 나라 통치와 반대되는 개념이다.
유대인들은 죄의 원형을 가인이 아벨을 살해하는 역사 속에서 찾았다. 인간의 근원적인 죄의 본질은 죽음에 이르게 하는 폭력이라고 유대인들은 생각했다.(J. Moltmann. Der Weg Jesu Christi. pp. 148-153) 창세기 6장의 “혈육 있는 자의 광포가 땅에 가득하므로..”(창6;13) 라는 표현은 땅에 편만해 있는 폭력성과 살인, 그리고 국가적인 탐욕과 증오의 전쟁으로 나타난 죄의 원형이 아닐 수 없다.
팔레스타인 땅의 끔찍한 전쟁 상황은 무고한 민간인들을 포함한 무서운 살육의 현장으로 우리를 슬프게 만든다.
비록 유대교와 이슬람 간의 종교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같은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각자의 유일신(야훼와 알라)의 이름으로 상대방의 존재를 그 땅에서 추방하고 절멸시키려는 의도에서 출발하였다.
극단적 이스라엘 우익 시오니즘 주의자들은 그 땅에 유대인 외의 모든 팔레스틴 사람들은 쫓아내거나 절멸시키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역시 반대편에 서 있는 극우적 팔레스타인 계열의 하마스 추종자들에게는 유대인들은 그 땅에서 추방시키거나 절멸시켜야만 한다는 당위성적인 극단적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지난 역사속에서 받은 깊은 상처를 가슴에 품고, 시종 강대강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이로 인해 수를 셀 수 없는 어린이들과 부녀들과 민간인들이 목숨을 잃고 가족과 이웃들은 절망과 탄식 속에 미래를 알 수 없는 애타는 피난 행렬 속으로 떠밀려 가고 있다.
인류는 한 가족이다.
아담 이래 모든 나라 모든 백성들은 지역적 민족적 혈통적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형제자매요, 돌보고 섬기면서 함께 살아야 할 고귀한 이웃들이다. 특히 구약 성경을 배경으로 종교적 신심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이나, 신구약 성경을 삶의 원칙으로 믿고 살아가고 있는 한반도 땅의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이웃 사랑과 나그네와 약자 사랑과 나아가 원수 사랑의 진리는 성경을 일통(一統)하는 변할 수 없는 윤리적 가치이다.
이웃 사랑, 나그네 사랑, 약자 사랑, 원수 사랑은 먼저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는데서 부터 출발한다.
종교적 교리로서만 아니라 진리 말씀으로 온 삶으로 실천해야 할 사랑의 윤리가 빠진 종교적 행태는 위선이요, 독선이요, 맹신이며, 거짓일 수밖에 없다.
물론 팔레스타인 땅과 한반도 땅의 지난 역사의 흔적들은 단순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다단한 역사적 과정을 거쳐 왔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그리고 한반도의 남과 북 사이에는 서로 간의 아프고 저린 종교적, 이념적, 민족적 깊은 상처가 있음은 상호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나 뼈아픈 지난날의 상처에도 불구하고 먼저 상대방을 인정하고 대화하고 귀 기울이려는 노력을 끝까지 선행하지 않는다면 무섭고도 끔찍한 증오와 전쟁으로 치달을 수 밖에 없다. 이는 앞으로도 수를 셀 수 없는 무고한 생명들이 목숨을 잃고 떠돌이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도록 냉혹하게 내몰리게 되고 만다.
전쟁과 살인과 증오는 성서가 말하는 하나님 나라 통치와 정반대되는 무서운 죄악이다. 비평화, 반생명적 행위는 멈춰져여 한다. 생명을 존중하는 평화와 상생과 대화를 추구하기 위해 먼저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고 절멸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형제요, 이웃으로 존중하는 태도를 견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출애굽 당시 노예 생활하던 과거를 잊지 말라 하시며 나그네와 약자를 존중하고 돌보고 사랑하라는 명령은 이스라엘이 먼저 귀 기울여야 할 평화 노선의 기초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도 아픈 상처에도 불구하고 남과 북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상생과 대화의 길을 어떠한 경우에도 포기하지 말고 되찾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평화, 한반도의 평화를 지속적으로 유지해 가는 일이다.
평화와 정의, 사랑과 공존은 하나님 나라의 표지이다.
나만 옳다는 독선이나, 극단적인 종교적 도그마는 상대방을 배제하고 증오하고 멸절시키는 끔찍한 전쟁을 몰고 온다.
하마스의 테러적 행태의 뿌리에는 평화롭게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 땅에 UN의 결의를 무시하고 그들이 보기에 화려한 정착촌을 불법적으로 계속 확산하는 데 있다. 생존 위기의 끝벼랑으로 내몰린 이들은 테러를 비롯한 어떠한 행위도 불사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무기 무장과 극단적 비평화 공작 행위를 하는 뿌리에는 이념적, 국가적 존재 자체를 무시하고, 상대를 인정하지 않으며, 멸절시키려는 음모를 두려워하는 데 있다.
유대교나 기독교는 성서를 경전으로 이웃 사랑의 원리를 핵심 삶의 원칙으로 삼고 있다.
그렇다면 신앙과 행위의 상호 모순된 극우 민족적, 극단적 신앙 행태를 멈추고 하나님 나라 평화의 프로세스를 냉정하게 찾아서 찬찬히 열어 나가야 할 것이다.
유대교인들과 기독교인들은 이스라엘 땅의 극우적 행태와 한반도의 극우 이념적 행태는 하나님 나라 평화와 정의에 반하는 모순된 신앙임을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이다. 이스라엘의 네타나후 정권 그리고 한반도 이 땅의 윤석열 정권이 추구하는 극우적 강대강 대치는 상대방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고 존중하지 않는 한, 무섭고도 끔찍한 전쟁 상황을 계속 불러일으키는 시대착오적 행위임을 재삼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 상황이 주는 엄밀한 교훈을 깊이 성찰할 일이다.
"못된 일을 하지 말고 착한 일을 하여라.
평화를 이루기까지 있는 힘을 다하여라."
(시편34:14)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
(마태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