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메르스 사건, 정부가 정직하지 않았다
나도 세종 토박이, 명품도시 되길 늘 기도해
아름다운 도시 만들려면, 조금 손해보며 살라”
“아름다운 고장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지난해 대전과 세종 등 충청지역을 방문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역을 떠나면서 남긴 인사말이다. 교황의 뇌리에 각인된 ‘좋은 사람들’. 그 중엔 천주교 대전교구장인 유흥식 주교도 분명 포함돼 있을 것이다. 성공적인 교황의 한국 방문을 두고 천주교 내·외부에서는 교황과 한국인 사이에 ‘영적’ 통역사 역할을 했던 유흥식 주교의 역할이 컸다고 평가하고 있다.
세월호 사건 이후 온 국민이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힘들어하고 있을 때, 우리는 교황에게서 큰 위안과 위로를 받았다. 그러나 채 1년이 지나지 않아 그 위안의 끝자락마저 희미해져가고 있다. 지금 교황의 잔영을 긁어모아 또 다시 위로받고자 한다는 것 자체가 욕심일까. <디트뉴스>가 유흥식 주교에게 물었다. 1년 전, 큰 손님의 방문에 들떠 혹시 우리가 놓치고 지나간 사실, 교황의 다른 메시지는 없느냐고.
세월호 사건 이후 교황님의 방한이 한국사회에 큰 위안과 희망을 준 바 있다. 그러나 교황님이 다녀가시고 난 뒤, 정작 우리 스스로 해결해야 할 일도 제대로 해내지 못한 것 아닌가 반성하게 된다.
“불행한 일은 언제든 닥쳐올 수 있다. 교통사고나 항공기 사고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세월호 사건은 조금 다르다. 즉시 손을 썼더라면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었다. 그리고 부모들은 수장돼 가는 내 아이들을 두 눈 뜨고 지켜봐야 했다. 국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해 아이를 잃어야 했던 부모의 눈이 어떻게 뒤집히지 않을 수 있겠나. 그렇지 않은 부모가 있다면 오히려 그게 비정상일 게다.
정부가 책임 있는 대답을 꺼내 놨어야 했다. 그런데 어떤가. 세월호 선장과 선원 몇 명만 처벌 받았을 뿐, 정치가 개입하고 문제가 복잡해지면서 정부가 슬쩍 뒤로 물러섰다. 정직하지 못한 처사다. 정직한 게 최선이다. 최근 벌어진 메르스 사태도 마찬가지다. 초기에 정직하게 정보를 공개했으면 이렇게 확산되지 않았을 것이다.”
바티칸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교황은 “세월호 추모행동이 정치적으로 이용된 것 아니냐”는 한 기자의 우둔(?)한 질문에 “유족의 고통 앞에 중립을 지킬 수 없었다”고 답했다. 이런 저런 정치적 입장을 고려해 에둘러 질문을 회피하지 않은 셈이다. 교황과 유 주교에게서 공통적으로 묻어나는 ‘정직함’이다.
교황님 방한으로 누군가는 위로를 받았고, 누군가는 들떠서 환호하기도 했다. 그것이 위로이든 환호이든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이 퇴색되고 메시지가 흐려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생긴다.
“그렇지 않다. 며칠 전 한 신혼부부의 집에 방문한 적이 있다. 교황님 방한 당시 자원봉사자로 일하면서 서로 눈이 맞아 결혼에 이른 부부다. 이들은 교황님께 감사편지도 드리고 답장도 받았다. 집들이에서 이 부부가 나에게 ‘주교님, 우리는 교황님께 이제 코가 뀄어요’라고 말하더라. 교황님의 말씀대로, 복음의 가르침대로 살아야겠다는 다짐인 셈이다. 이들이 앞으로 얼마나 선한 삶을 살아갈지 눈에 훤히 보인다.
교황님 방한으로 이런 일이 수도 없이 벌어졌다. 이게 바로 기적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천주교 대전교구도 교황님의 메시지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행에 옮길 것이냐를 고민하고 있다. 교황님이 오셨던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진행형이라는 의미다.”
그때 그분, 프란치스코 교황이 우리에게 무슨 이야기를 했었지? 몇 마디 말을 기억하기 위해 애쓰는 일보다 우리 사회에 교황이 던져 준 씨앗을, 잘 심고 키우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로 들렸다.
화제를 슬쩍 ‘세종시’로 돌렸다. 유 주교는 세종시 전의면에 있는 대전카톨릭대학 총장을 지냈다. 그 스스로 “세종시 전신인 연기군에 10년이나 거주했던 토박이 세종시 사람”이라고 칭할 정도다.
교황님이 지난해 세종시에도 방문하셨다. 이 지역 시민들을 위해 따로 남기신 말씀은 없나?
“교황님은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출발해 국도 1호선을 타고 세종시 조치원읍을 거쳐 전의면 카톨릭대학까지 세종시를 두루 살펴보셨다. 신도시 지역을 지나가면서 교황님께 ‘이곳이 대한민국 행정의 심장부인 행정도시로 개발되고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아주 중요한 곳’이라며 ‘어느 나라에서나 공직자들이 국민에게 정직하게 봉사해야 좋은 나라가 된다’고 이야기하셨다.
전의면에 도착해서는 이춘희 세종시장 부부도 소개시켜 드렸다. 반가움을 표시하며 ‘아주 중요한 임무를 맡으셨다’고 시장 부부에게 덕담을 건네셨다.”
유 주교 자신도 세종시에 대한 관심과 애착이 상당히 큰 것으로 전해 들었다.
“물론이다. 관심이 많은 정도가 아니라 사랑하는 곳이다. 세종시는 대전교구의 관할 지역이기도 하다. 당연히 세종시 신자들은 내가 돌봐야 할 분들이다. 교구 일을 보기위해 돌아다니다 보면, 세종시를 거쳐 지나갈 때가 많다.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는 되는 것 같다. 그때마다 ‘이곳이 꼭 명품도시로 발전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린다.”
세종시는 여러 우여곡절을 겪고 탄생한 도시다. 외형이 점차 갖춰져 가고 있지만, 아직도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좀 더 좋은 도시로 발전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에 대해 물었다. 유 주교는 세종시를 사랑하는 사람답게 권력에 대한 쓴 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다 보니 느낀 점이 많다.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우리나라처럼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 등 각 분야가 수도권에 집중된 경우를 찾아보기 어렵다. 한 나라의 국민이 어디에 살든 관계없이 편안하고 사람답게 살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왜 모든 것이 서울 중심이어야 하나. 공동체의 균형발전을 위해서 세종시가 제대로 건설돼야 한다는 점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박정희 대통령 때부터 그런 시도가 있었다는 것은 국민들도 다 아는 사실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약속을 지키는 일이다. 약속을 지키기 어렵다면 솔직하게 시인하고 국민의 의사를 물어야 하는데, 국무총리며 이사람 저사람 내세워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대통령이 하실 일이 아니다. 위헌판결이 났을 때에도 다른 종교인들과 모여 이 점을 명확하게 이야기 했었다.”
인구가 급격하게 늘어나는 세종시 신도시 지역에 천주교 신자들이 불편하지 않게 종교생활을 할 수 있는 ‘성당’도 늘어나야 할 것 같은데. 설립계획은 구체적으로 서 있나.
“인간이 종교 활동을 보장 받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권리에 속한다. 누구나 종교에 관계없이 편안하게 신앙생활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이 또한 국가의 중요한 책무다. 그런데 국가가 종교를 다른 민간분야와 동일하게 다루다보니 여러 어려움이 뒤따른다. 부지를 마련하려고 해도 입찰경쟁에 뛰어들어야 된다. 낙찰되지 않으면 웃돈을 주고 땅을 매입해야 하는 처지다. 실제로 성당 부지 마련을 위해 웃돈을 붙여 땅을 매입하기도 했다. 제도적으로 맹점이 있는 것 같다.”
약속된 인터뷰 시간이 끝났다. 취재진이 노트북이며 카메라를 주섬주섬 챙기며 미적거리자 “커피 한 잔 마시고 가겠느냐”고 뜻밖의 제안을 해 온다. 일종의 배려였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유 주교는 마지막까지 프란치스코 교황의 가르침을 되새겼다.
“교황님이 한국에서 오셔서 모든 이에게 주목받은 것은 그가 지닌 인간에 대한 무한한 관심과 애정 때문이었다. 이틀 동안 교황님을 곁에서 세심하게 지켜봤다. 그분은 그 누구와 만나도 반드시 눈높이를 맞추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기쁜 이야기를 들으면 함박웃음을 짓고, 심각한 이야기를 들으면 이내 표정이 굳어졌다. 공감하는 이야기엔 반드시 공감의 표현을 하셨다. 사람에 대한 존중이 철저한 분이었다.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좋은 일은 사람이 사람을 존중할 때 시작된다. 반대로 모든 고약한 것은 사람을 깔보는데서 비롯된다. 세종시민들은 다른 지역 사람들에 비해 배움도 높고, 사회적 지위나 재산도 많은 편에 속한다. 조금 손해 보는 삶을 사시길 조언 드린다. 그게 더 아름다운 도시를 만드는 길이다.”
물질이 정신을 압도하는 도시민의 팍팍한 삶에서 ‘조금 손해 보는 삶’이란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 천주교 대전교구청이 있는 대전 용전동 언덕길 아래서 기자는 멀어져 가는 십자가를 돌아보고 또 돌아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