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13살에 공장으로 간 소년, 왜 "그저 사람답게 살고 싶었다"고 말했을까
이재명의 인생에서 가장 한국 드라마 같은 대목은 훗날 그가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다는 사실이 아니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그에게는 '평범하게 성장할'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1963년, 그는 경상북도 안동의 한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형제는 많았고 아버지는 도박에 빠져 가세는 갈수록 기울었다. 어린 시절 그는 매일 산길을 걸어 학교에 갔고, 해진 옷과 부족한 학용품 탓에 교실에 앉아 있는 것조차 열등감으로 다가왔다. 공개된 보도에 따르면, 그는 초등학교 졸업 후 진학하지 못하고 가족과 함께 성남으로 이주해 여러 공장을 전전하며 일하기 시작했다.
남들의 13살이 교복을 입는 나이였다면.
그의 13살은 작업복을 입는 나이였다.
처음에는 영세한 가내수공업장에서 일했고, 이후 고무 공장, 장갑 공장, 시계 공장 등을 거쳤다. 한 소년이 여러 가명을 써가며 어른들의 일터에 섞여 들어간 것이다. 법정 근로 연령에 미치지 못해 감히 본명을 댈 수 없었고, 당장 가족의 밥줄이 달려 있었기에 그만두겠다는 말조차 할 자격이 없었다. 언론 보도를 종합해 보면, 그는 수년간 소년공으로 일했으며 공장 사고로 인해 왼팔에 영구적인 장애를 입기도 했다.
가장 뼈아팠던 순간은 대양실업에서였다.
그곳은 야구 글러브와 스키 장갑을 만드는 공장이었다. 당시 프레스 기계를 다루던 중 기계에 손목이 끼이는 사고를 당해 관절이 망가졌다. 돈이 없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 탓에 부상은 결국 평생의 장애로 남았고, 이로 인해 훗날 병역마저 면제받게 되었다.
흔히들 고난이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고 한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고난은 사람을 짓누르고, 체념하게 만들며, '내 인생은 평생 이럴 것'이라며 운명에 순응하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재명은 달랐다.
공장에 서서 교복을 입고 밖을 지나가는 또래 아이들을 바라보며, 그의 마음속에는 처음으로 아주 선명한 생각 하나가 피어올랐다. '평생 이곳에 있을 수는 없다.'
그는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며 검정고시로 중학교와 고등학교 학력을 채워나갔다. 1978년 중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1981년에는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통과했다. 그리고 1982년, 장학금을 받으며 중앙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했다.
이 한 걸음은 실로 지독한 것이었다.
정상적으로 중고등학교를 다니지 못한 소년공이, 컨베이어 벨트 옆에서 기어이 스스로를 법학 강의실로 밀어 넣은 것이다.
훗날 그가 왜 법학을 공부하려 했는지 회고하는 대목은 무척이나 직설적이다.
"그때는 그저 사람답게 살고 싶었을 뿐입니다."
이 말에는 그 어떤 화려한 포장도 없지만, 세상의 어떤 자기계발서 격언보다 무겁게 다가온다. 성공한 자가 여유롭게 뒤를 돌아보며 늘어놓는 훈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밑바닥 소년의 가장 원초적인 갈망이었다. 더 이상 맞지 않기를, 더 이상 괴롭힘 당하지 않기를, 가난하다는 이유로 선택권을 박탈당하지 않기를, 기계와 사장에게 도구처럼 지배당하지 않기를 바랐던 것이다.
1986년, 이재명은 대학을 졸업한 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본래 그 역시 판사나 검사처럼 좀 더 번듯한 길을 걷고자 했으나, 노무현 등 인권 변호사들의 영향을 받아 성남으로 돌아가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고 노동, 인권, 시민운동에 뛰어들었다.
이는 그의 정치적 언어에 왜 늘 그토록 뼈저린 반골 기질과 밑바닥의 정서가 묻어나는지를 설명해 준다.
그는 서재에 고상하게 앉아 빈자를 상상한 사람이 아니다.
실제로 소년공이었고, 실제로 기계에 팔이 짓눌렸으며, 아무런 배경 없는 아이가 사회의 밑바닥에서 얼마나 무력한지를 뼛속 깊이 아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그의 성장 서사에서 가장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것은 극적인 '역전승'이 아니다.
애초에 그가 좇았던 것은 번지르르하고 화려한 삶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는 단지 진흙탕 속에서 자신을 건져내고 싶었을 뿐이다.
안동의 험한 산길에서 성남의 공단으로.
소년공에서 법대생으로.
장애를 입은 소년에서 인권 변호사로.
다시 성남시장, 경기도지사를 거쳐, 마침내 대한민국 제21대 대통령이 되기까지.
물론, 이재명이 아무런 논란이 없는 인물은 아니다.
그의 정치 여정에는 항상 극렬한 지지와 반대가 뒤따랐고, 여러 차례 사법적, 정치적 풍파에 직면해 왔다.
하지만 그 소년 시절의 이재명만을 떼어놓고 본다면, 이야기는 사실 아주 단순해진다.
운명이 그를 공장으로 떠밀었지만.
그는 기어코 대학으로 걸어 들어갔다.
세상이 그에게 고개 숙여 일만 하라 했지만.
그는 기어코 법을 배워 자신을 위해, 그리고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위해 목소리를 냈다.
어떤 이들의 인생은 출발선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그들은 먼저 깊은 구덩이 속에서 기어 나와야만, 비로소 달릴 트랙을 볼 수 있다.
이재명, 그는 바로 그렇게 공장의 뽀얀 먼지 구덩이 속에서 기어 나온 사람이다.
(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