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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 노고단과 차일봉을 배경으로 복사꽃과 벚꽃이 만났다. 노고단과 차일봉 정상에 아직 눈이 그대로 보인다. 이런 풍광은 5년에 한 번쯤 단 하루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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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곡길 세 곳을 꼽으라면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하나는 ‘하늘 아래 첫 동네’로 불리는 구례군 심원마을에서 남원시 달궁마을까지 이어진 심원계곡 옛길, 또 하나는 남원시 주천면 구룡폭포에서 육모정까지 이어진 계곡길, 그리고 지난해 말에 지리산국립공원 하동분소가 복원한 ‘지리산 옛길’인 하동군 화개면 신흥리에서 의신까지 이어진 계곡길이다.
심원 옛길은 861번 지방도가 뚫리기 전에 심원마을 사람들이 달궁으로 가던 길이다. 쟁기소 등 반야봉 계곡은 천하의 절경이 아닐 수 없다. 수해로 유실된 곳도 더러 있지만 계곡 옆의 옛길을 따라 펼쳐진 원시림을 걸어볼 만하다. 심원마을에서는 제일 아래쪽 정수처리장에서 시작된다. 달궁 쪽에서는 도로를 따라 성삼재 방향으로 조금 오르다 보면 왼쪽 계곡 옆에 얼음골농원이라는 달궁의 마지막 민가가 있다. 그곳의 밭을 끼고 돌아가는 길을 따라가면 된다. 그러나 반야봉 등산로가 폐쇄되면서 861번 성삼재 도로에서 쟁기소 등으로 바로 들어가는 길들은 막혀 있다.
남원의 구룡폭포 계곡길은 이미 널리 알려진 코스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걷고 있다. 지리산 계곡 중에서 독특한 협곡의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다. 지리산국립공원 북부지소와 육모정이 있는 주천면 호경리에서부터 구룡폭포가 있는 주천면 덕치리까지 수려한 산세와 깎아지른 듯한 기암절벽이 3km 정도 이어진 심산유곡이다. 근처의 지리산둘레길 구간도 좋지만 여름이라면 단연코 이곳을 추천하고 싶다. 주천이나 운봉에서 시작해 지리산둘레길을 하루 정도 걸을 예정이라면 둘레길과 이 구룡폭포 계곡길을 순환하는 코스가 훨씬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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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파른 계곡 위로 절묘한 벼랑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하루 종일 계곡물 소리에 귀를 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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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복원된 하동군 화개면의 ‘지리산 옛길’ 신흥~의신 구간 4.2km는 말 그대로 환상적이다. 일찍이 청학동 전설이나 무릉도원의 대명사로 불리는 화개동천(花開洞天)의 본류로서 섬진강 청류의 기본이 되는 계곡을 따라 이어져 있다. 난이도가 그리 높지 않은 산길과 계곡, 옛 고개 등으로 벼랑길과 푹신푹신한 흙길로만 이어진 거의 완벽한 옛길이다.
쌍계사 벚꽃 십리길의 벚꽃들이 화르르 지던 날, 지리산행복학교에서 ‘지리산 대장’으로 불리는 김선주(55)씨와 단 둘이 걸었다. 이미 김선주 대장은 화개골 토박이로서 전국의 거의 모든 산을 오르고, 지리산 곳곳을 훤하게 꿰뚫고 있는 전문가다. 지난 겨울부터 지인들이 찾아올 때마다 지리산 옛길을 안내하며 걷는 바람에 이 길을 가장 많이 걸은 사람이다. 그는 젊어서 잠시 고향을 떠난 것을 빼고는 줄곧 화개골에서 살아왔고, 지금도 화개버스터미널 바로 앞 화개장터 기념비가 서 있는 곳에서 아내 홍영화씨와 함께 ‘화개일번지 미향맛집’을 운영하고 있다. 개인사업을 하던 그가 불경기 때문에 잠시 쉬면서 먼 곳의 산행도 자제하며 고생하는 아내를 도와주고 있다. 참게탕이나 재첩국 등 그 맛이 일품이어서 전국에서 온 지리산행복학교 학생들이나 선생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화개골 토박이 김선주씨와 함께 걸어
김선주 대장과 함께한 지리산 옛길에는 때마침 온갖 야생화들이 만화방창이었다. 분홍과 흰 철쭉꽃, 산벚꽃과 산복사꽃과 배꽃이 흐드러지고, 그 아래에는 금낭화와 현호색, 제비꽃과 산괴불주머니 등도 화답을 했다. 산비탈 녹차밭에서 우전 새싹들이 연푸른 새의 혓바닥을 내밀고, 두릅과 엄나무도 순을 내밀고 있었다. 다람쥐들이 나무와 벼랑을 타며 어슬렁거리고, 어느새 단풍나무과의 고로쇠나무도 생기를 되찾아 푸른 계곡물과 경쟁을 하고 있었다. 화개동천, 무릉도원, 청학동 그 모든 말들이 엇비슷하게 한꺼번에 다가온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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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개 토박이인 지리산 대장 김선주씨와 지리산옛길을 걸었다. 푸른 녹차밭과 고로쇠나무가 계곡 벼랑길에 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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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옛길 신흥~의신 구간은 ‘서산대사가 걸었던 옛길’로도 불린다. 이 길은 서산대사가 지리산에 머무르는 동안 오가던 길로서 그의 발자취와 흔적이 남아 있다. 옛날 신흥사(왕성초등학교)가 있었던 신흥마을에서 의신사가 있었던 의신마을까지 이어진 4.2km는 지금의 계곡 오른쪽의 도로가 개설되기 전까지 주민들이 학교를 가거나 장에 가던 주요 통로였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서산대사(1520~1604)는 조선 중기의 고승이자 임진왜란 때의 승장이다. 1540년 의신마을의 원통암으로 출가해 ‘휴정(休靜)’이라는 법명을 얻었으며, ‘유불도(儒彿道)는 궁극적으로 일치한다’는 삼교통합론을 주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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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운 최치원 선생의 글씨가 희미하게 남아 있는 세이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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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길의 출발점인 신흥마을 바로 앞 계곡에는 신라시대 최치원 선생의 글씨가 희미하게 남아 있는 세이암(洗耳岩)이 있다. 고운(孤雲) 선생이 입산하면서 저자거리에서 온갖 잡얘기를 들은 귀를 씻었다는 곳이다. 그 외에도 신흥마을에는 큰 바위에 고운 선생의 삼신동(三神洞) 각자가 있다. 삼신동은 신(神)자가 들어간 3개의 절 신흥사·영신사·의신사가 있어 붙은 이름이다. 왕성초교 입구에는 그가 지팡이로 꽂은 나무가 되살아났다는 전설이 있는 거대한 푸조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돼 있다.
그리하여 ‘서산대사 옛길’로 불리던 이 길이 공식명칭에서 물러서고, ‘지리산 옛길’이라는 통칭으로 불리며 그중에서 ‘신흥~의신 옛길’로 구분된다. 왕복 4시간 정도 걸리는 이 옛길은 신흥마을 길목산장과 신흥교 사이에 왼쪽 벼랑길이 시작점이다. 오른쪽 벼랑 아래 계곡과 왼쪽 녹차밭 사이로 이어지는데, 얼마 안 가서 높이 26m나 되는 감감바위가 나온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면 아찔할 정도로 ‘감감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멀리서 보면 해골처럼 보인다고 해서 해골바위라고도 불린다.
깊숙한 선유동계곡은 한때 누드계곡
계곡 건너편 도로 너머 깊숙한 계곡이 그 유명한 선유동계곡이다. 지금은 입산금지 구역이지만 내가 처음 지리산에 왔을 때 허허당 스님과 더불어 ‘옷을 걸친 자는 못 들어오게 하는 누드계곡’으로 선포하고 여름 한철 잘 놀던 곳이다.
벼랑길로 아슬아슬 이어진 길을 따라가다 보면 철쭉과 배꽃, 금낭화 등이 무수히 피어 있다. 농가 하나를 지나 1.4km쯤 가면 쇠점재가 나온다. 옛날 이 고개 아래쪽에 말발굽·호미·칼 등과 범종을 만들던 쇠점 터가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400m 정도 더 가면 가파른 벼랑길인 사지넘이고개가 나오는데 나무계단으로 안전한 길을 만들어 놓았다. 가파른 벼랑길을 넘어갈 때 마치 사지를 넘어가듯이 험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벼랑길을 내려서면 아담한 농가가 하나 나오는데 이곳이 바로 주막 터다. 예전에 이곳에 주막들이 들어서 있었는데, 이 길을 오가는 주민들과 소금장수 등 길손들의 휴식처였다.
조금 더 가면 의자바위가 나오는데 ‘임진왜란 때 왜병들이 의신사를 불태우고 범종을 훔쳐가려 하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서산대사가 도술을 부려 범종을 의자로 바꾸자 이를 본 왜병들이 혼비백산 도망을 갔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걷다 보면 험한 산악지형에서 농사를 짓기 위해 높게 쌓은 돌담도 볼 수 있다. 그리고 개를 훑어간다는 고양이과의 맹수를 뜻하는 개흘치바위도 있고, 숯가마 터 등도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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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신마을 출렁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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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람쥐와 꿩을 만나며 걷다 보니 마침내 의신계곡을 건너는 출렁다리가 나온다. 이 길은 토벌대와 빨치산들이 다니던 길이자 화개장터의 소금장수와 방물장수가 벽소령과 화개재를 넘기 위해 다니던 길이다. 의신마을의 토박이인 ‘운해산장’의 조복문씨 팔형제와 ‘화개깊은골’의 정대연씨 등이 어릴 적 왕성국민학교를 다니던 배고픈 길이기도 하다.
지리산 옛길에서 만난 이들은 하나같이 화색이 돌며 최고의 길이라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하루 종일 고운 최치원 선생처럼 계곡 물소리에 귀를 씻고 싶다면 바로 이 지리산 옛길이 적격이 아닐 수 없다. 말 그대로 ‘명품길’이기 때문이다.
특히 지리산둘레길의 구례 토지면과 하동 화개면~악양면~적량면으로 이어지는 구간이 너무나 아쉬웠기 때문이다. 이 구간을 걸어본 이들은 하나같이 “차라리 지리산 종주를 하는 게 낫겠다. 너무 힘들다”며 볼멘소리를 한다. 사실이 그렇다. 하동~구례 구간은 절반의 성공이자 절반의 실패가 아닐 수 없다. 섬진강으로 내려오는 가파른 목아재·황장산·형제봉·구재봉 등을 가로질러 타고 넘어야 하니 너무나 힘들다. 지리산과 섬진강은 암수한몸인데, 섬진강을 걷지 못하는 아쉬움이 너무 큰 것이다. 그리하여 이 지리산 옛길이 더더욱 소중하지 않을 수 없다.
다행히도 화개장터에서 악양면의 최참판댁으로 이어지는 섬진강변 ‘토지길’이 이어지고, 그 길의 연장선상으로 하동읍과 섬진강 하구까지 이어지는 섬진강길이 개통되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세상의 모든 길은 한 사람이 가고 또 가야 길이 된다. 길은 누군가 만드는 것으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걷고 또 걷는 사람들의 발자국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쌍계사나 국사암에서 불일폭포로 오르는 길이 그러하고, 벽소령이나 대성골로 들어가는 길이 그러하다. 바로 이런 화개동천에 ‘지리산 옛길 신흥~의신 4.2km’가 개통된 것은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모처럼 의신마을의 최도사에게 안부전화를 했더니 ‘화개깊은골’에 있으니 빨리 오란다. 때마침 이 집의 정연대·박숙희씨 부부가 산나물을 뜯어와 만찬을 벌이고 있었다.
화개깊은골서 지리산녹차 무료 제공
공지영의 산문집 <지리산행복학교>로 유명해진 최도사(최현), 바로 아랫집인 연우펜션의 주인장과 더불어 산부추며 야생 표고버섯·고수나물 등을 삶은 돼지고기에 쌈을 싸서 먹었다. 입안에 봄 향기가 가득했다. 의신마을의 큰 일꾼인 정연대·박숙희씨 부부는 ‘화개깊은골’을 운영하며 길손들에게 무료로 지리산 녹차를 대접한다. 차실 입구에는 ‘이곳은 당신의 고향집입니다. 집에서 만든 차 한 잔 하세요. 나그네는 무료입니다’라는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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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지리산옛길에서 만난 야생화 산복사꽃. 2 야생화 철쭉꽃. 3 야생화 금창초. 4 야생화 금낭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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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대장’ 김선주씨와 옛길을 왕복하고 쌍계사 앞 찻집 오신옥씨의 ‘녹향’에 들렀다. 때마침 차를 마시는 주성근 지리산국립공원 하동분소장을 만났다.
“이 옛길을 만드는 데 6개월 정도 걸렸지요. 의신마을 사람들에게 부탁해 정말 정성 들여 복원했습니다. 지리산 높은 곳으로만 가지 말고 이런 유서 깊은 길을 걸으며 지리산의 참맛을 알고 가면 좋겠지요. 그러나 아무런 흔적 없이 왔다가 그대로 갔으면 합니다. 제발 산나물이나 야생화, 농작물에 흑심을 품지 말구요. 국립공원 구역이니 과태료를 무는 등 서로 민망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 명품길이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오늘도 벽소령 쪽에서 한 등산객이 산나물을 채취해 먹다가 ‘박새’라는 독초를 먹는 바람에 죽을 뻔 했습니다. 국립공원직원들과 119구급대원들이 긴급히 출동했었지요. 다행히 병원으로 후송해 목숨은 건졌지만 참으로 아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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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생화 애기똥풀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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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국립공원지역에서 산나물을 채취하는 것은 그 자체가 불법이지만, 그 이전에 전문가가 아니라면 산나물과 독초를 구별하기가 쉽지 않아 목숨이 위험하다. 지난 몇 년간 부춘마을 등에서 독초로 인한 인명사고가 일어났었다. 부산에서 세진공구를 운영하며 의신마을에 집을 마련한 ‘산꾼’ 김길봉씨도 치밭목산장에서 직접 목격했다고 한다. 지리강활을 뜯어 먹은 등산객이 단 20분 만에 즉사했다는 것이다.
독버섯뿐만이 아니라 각종 산나물과 혼동하기 쉬운 박새·초우(투구꽃)·지리강활·동의나물 등은 치명적이다. 특히 초우 등은 옛날에 사약으로 쓰이던 것들이다. 약의 뒷면은 독이요, 독의 앞면은 약이니 잘 알고, 잘 데치고, 잘 처방해서 먹어야 한다.
모처럼 ‘신사와빈대떡’을 지나 화개장터로 내려와 ‘산녹차’의 조연옥 선생이 문을 연 ‘풍경소리’에 들렀다. 저물녘에 바로 앞 ‘미향맛집’에 가니 지리산행복학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삼천포에서 온 ‘회천사’ 최영민씨와 우리마을 ‘선녀와 나무꾼’ 신도웅·박경애씨 부부, 그리고 ‘고알피엠여사’인 신희지씨 등이었다. 조만간 딸기농장에서 열릴 공연에 대해 상의 중이었다. 때마침 막걸리를 한 잔 마신 나무꾼님이 아코디언을 켜기 시작했다.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였다. 어느새 선녀님과 고알피엠여사가 노란 유채꽃 가지를 꺾어와 지리산 대장 김선주씨에게 들려줬다. 즉석 이벤트가 벌어진 것이다.
김선주씨가 머쓱해 하면서도 아내 홍영화씨를 주방에서 불러냈다. 식당 중앙에서 손님들이 보는 앞에서 화사한 꽃을 건네주며 아내의 두 손을 잡았다. 벚꽃철 내내 주방에서 하루 종일 일해 온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가 이어졌다.
“젖은 손이 애처로워 살며시 잡아본 순간 거칠어진 손마디가 너무나도 안타까웠소….”
금세 눈가가 촉촉해진 홍영화씨에게 처음 온 손님들도 환호와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이렇게 또 하루 화개동천의 봄날은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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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개깊은골의 정대영, 박숙희씨 부부가 산마늘과 고수나물, 그리고 야생표고버섯을 채취해 저녁 만찬을 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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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시>
지리산 옛길
-화개동천 신흥~의신 십리 길
살다 지쳐 자주 팍팍한 날이면
세상사 낡은 외투 훌훌 벗어던지고
화개동천 지리산 옛길로 가자
세이암 맑은 물에 두 귀를 씻고
연초록 산바람에 백태 낀 눈동자를 헹구자
저마다 외로운 구름처럼
한 마리 보리은어의 첫 마음으로 거슬러 오르자
아직 어린 새색시 첩첩 울며 시집오고
의신마을 코흘리개들 가갸거겨 배고픈 쇠점재
저 홀로 버림받은 사람도
아랫도리 후덜덜 화개장터 소금장수도
어금니 꽉 깨물고 넘던 사지넘이고개
날마다 서산대사는 입산출가의 자세로 오가고
비운의 혁명가 화산 선생은 빗점골로 들어가
마침내 죽어서야 돌아왔다
살다 지쳐 자주 침침한 날이면
저잣거리 빛바랜 안경을 벗어던지자
감감바위 아래 그 무거운 봇짐일랑 내려놓고
금낭화 피면 그 옆에 쪼그려 앉아 그냥 금낭화가 되자
산나물 조금 안다고 뜯지도 캐지도 말고
박새 초오 지리강활 동의나물
여차하면 독이 되는 오욕의 풀일랑 키우지 말고
그저 가만가만 보리은어의 눈빛으로
착한 다람쥐꼬리처럼 따숩게 두 손을 잡자
그래도 못다 한 속울음이 남았다면
벽소령 희푸른 달빛을 보며
대성폭포처럼 그예 대성통곡을 하자
그리고 돌이끼처럼 다시는 울지 말자
그 누구라도 외로운 산신령, 서러운 신선
온종일 의신동천 물소리로 내장을 헹구러 가자
모세혈관마다 연초록 바람이 이는 지리산 옛길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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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산대사옛길 옆에 귀여운 다람쥐가 밤을 물고 있다.
첫댓글 등장인물들이 다아시는 분들이라 새롭네요.
이리 자랑해놓으셨으니 울 학우님들도 걸어볼수있는 기회를....
걸어 보고 글을 읽고
마지막에 덧붙인 시마저 읽으니
참 좋습니다.
걸어 보셔야 그 맛을 알거 같으니
더 이상 무어라 말 하겠습니까?
걸었다고 말하리라~~ 나! 저 길을 걸었다고 ㅍㅎㅎㅎ
모두들 다녀 오이소~~
늘 챙기려는 한 줄 한 줄 시인의 맘이 짠합니다.
마음이 붕~~~ 뜨는 듯,
즐거움이 큽니다.
눈에 선한 그 길...참 아름다웠습니다!
조만간 ~ 지리산 옛길을 걸어야겠습니다....^^
지리산에 있어도 지리산이 그립다~^ ^!
지난 월요일 산행반 팀들이 한번 걸었고요... 아주 행복했습니다.
우리 지행교 교주님들 모두 한번씩, 아니 자주 걸어보자구요.
새로운 인연이라 생각하고 따듯한 마음으로 호젓하게 그 길을 걸었습니다. 그 길 위에서 쓰여졌을 이시인님의 글이나 아름다운 그 길이나 그저 그지없다는 말 밖에...
꽃 처럼 웃을줄 아는 사람들과 이 길을 걸어 보구싶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