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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의 기원 홍산문화(红山文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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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염송] 중에서.. (156편) 20240212
제목 : 염장(鹽醬)
[강서 마조에 대하여 회양선사가 말하기를 "도일이 강서지방에서 사람들께 설법을 하면서도 전혀 아무런 소식도 전해 보내지 않는구나" 하고는 중 하나를 마조에게 보내면서 당부하기를 "그가 상당하기를 기다렸다가 나서서 묻되 “어떻소" 하기만 하여 그가 무슨 말을 하거든 기억해 가지고 오라" 했다. 그 중이 분부 대로 가서 물으니, 선사가 대답호대 "오랑캐의 난리가 있은지 30년 동안 일찌기 염장이 없었던 일은 없었노라" 하였다.
주) 1. 염장 : 소금과 장이니, 평상시에 없을 수 없는 물건들, 예사로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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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 원본)
江西馬祖因讓師云道一 在江西 爲人說法 揔不見寄箇消息來 遂遺一僧 往馬祖處候見伊上堂 但出間云 作麼生 待渠有語 記取來 其僧 依教往問之 祖日 自從胡亂後三十年 不會小鹽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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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번역본)
【一五六】 강서 마조(*馬祖)가, 양사(*讓師)가 이르되 도일(道一)이 강서에 있으면서 사람을 위해 설법한다던데 모두 저(个) 소식을 기탁하여 옴을 보지 못했다 하고는 드디어 한 중을 파견하여 마조의 처소로 가서 그가 상당함을 살펴보다가 단지 나가 물어 이르되 어떻습니까 하여 그의 말 있음을 기다렸다가 기취(記取)하여 오너라 하매 그 중이 가르침에 의해 가서 그에게 물음으로 인해 마조가 가로되 호란(胡亂)한 후로부터 30년 동안 일찍이 염장(鹽醬)이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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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탐구)
★ 마조 도일(馬祖道一)
(馬祖道一, 709~788 / 79세 사망)
광동성 조주시에 있는 개원사(開元寺)라는 절에서 마조선사가 법을 펼쳤다 합니다.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한국자료>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07m0859a
<중국자료>
【马祖道一_百度百科】https://mbd.baidu.com/ma/s/7Jc7ttAw
[그는 한때 신라의 왕자 무상선사(683~762)에게 사사했다. 이 시기의 견학은 주로 선(禪) 사상의 토대를 마련한 5조 홍인(紅仁) 가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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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악회양(南岳懷讓)
(南岳懷讓, 677 ~ 744 / 67세 사망)
후난성 헝산현에 있는 남악 형산(南岳衡山)에 위치한 반야사(般若寺)라는 절에서 회양선사가 법을 펼쳤다 합니다.
<한국 자료>
https://m.terms.naver.com/entry.naver?docId=1075168&cid=40942&categoryId=40004
<중국 자료>
【怀让_百度百科】https://mbd.baidu.com/ma/s/BzOXAd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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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남악(南岳)이란 지난주 선문에서 중국에는 오악(五岳)이라 해서 다섯 곳의 험한 악산(惡山)이 있다고 했는데요?
그 중에 남쪽에 있는 형산(衡山)을 남악이라 한답니다.
그리고 이 형산(衡山)에는 반야사(般若寺)라는 절이 있는데 남악회양 선사가 이 절에서 법을 펼쳤다 합니다.
그리고 마조도일 선사와 남악회양선사와의 거리는 대략 서울에서 부산 정도의 거리로 보시면 되는데요.
이정도 거리는 중국 사람들은 옆동내로 생각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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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뭣고]의 곁가지 김태현입니다. 😄🙏
한 주일 잘 보내셨지요.. 😄
새해에도 복 많이 받으시고 모두들 꼭 성불하십시오.😄🙏🏻
제가 왜 곁가지냐고요?
단 한 번도 절 근처에도 안 가본 상태에서 가지가 하나 툭~!" 하고 튀어나왔다고 해서 곁가지라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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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이 저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어떻게 불교 공부도 안 했는데 그렇게 잘 알아요?"
그럼 이 사람은 이렇게 답변을 드린답니다.
"머리에 든 것이 없기 때문에 마음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거랍니다."
라고요..😄🙏
※ 이 글은 주로 수행을 처음 하시는 분들을 위주로 쓰이고 있기 때문에 쉽게 풀어서 설명하느라 글이 좀 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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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해설)
오늘 내용은 선문(禪門) 이라기 보다는 스승인 남악회양 선사가 강서 지방에서 법을 전하고 있는 제자인 마조도일에게 저(个) 즉 한 소식(깨달은)을 한 사람들이 있는지 궁금해서 중을 보내 알아보라는 장면이랍니다.
쉽게 말해 제자인 마조가 강서 지방으로 법을 전하러 떠났는데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궁금해서 중 하나를 마조에게 보내면서 “어떻소?" 하고 물어보고 오라는 내용이랍니다.
그랬더니 마조의 대답이 아주 걸작입니다. ^^
"오랑캐의 난리가 있은지 30년 동안 일찌기 염장이 없었던 일은 없었노라"
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이냐 하면
30년 동안 전쟁을 하는 동안에도 깨닫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나왔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자기가 잘하고 있었다는 뜻이지요. ^^
왜냐하면 여기서 말하는 염장(鹽醬)이란?
소금과 간장이라는 뜻인데요.
예나 지금이나 소금이 없으면 사람은 살 수가 없잖아요?
소금은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귀한 물건이니까요.
지금 마조는 소금과 간장을 비유해 귀하고 귀한 깨달은 사람들을 30년 전쟁통에도 끊이지 않게 많이 배출시켰다는 뜻으로 이런 말을 한 것이랍니다.
귀한 소금과 간장을 귀한 깨우친 사람들로 비유해 대답한 것이지요.
마조가 강서 지방으로 가서 법을 전했는데 30년 동안의 전쟁 통에도 깨달은 제자들이 끊이질 않고 나왔다는 뜻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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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이나 밀가루 같은 음식은 다른 것으로 대체를 할 수 있지만 소금은 대체를 할 수 없잖아요?
그만큼 귀한 깨달은 사람들을 많이 배출시켰다는 뜻입니다.
더군다나 당시에는 소금이 금값보다 비쌀 때가 더 많았으니까요.
오늘 내용은 이것이 다랍니다.^^
다른 것은 없답니다.
회양과 마조는 나이가 32세 차이인데요.
당시 나이로 비교하면 거의 할아버지와 손주뻘 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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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른 분들은 몰라도 저는 오늘 내용을 보면서 당시의 중국 스님들의 마음을 그대로 느낄 수가 있었는데요. ^^
왜냐하면 오늘 내용 안에는 당시 중국 스님들이 자신들의 우수성을 나타내고자 하는 숨은 의도가 있다는 점입니다.
그 이유는 당시의 중국 스님들은 서역(西域) 불교에 많은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나 지금이나 중국 사람들 마음에는 북 쪽과 서쪽 지방에 많은 피해의식과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불교 경전이 서역을 통해 중국으로 들여와 전파되다 보니까 자존심 강한 한족들은 은근히 글귀 안에 서역보다는 자신들의 불교가 더 우수하다는 마음이 글귀 안에 심어져 있었다는 것인데요.
특히 수행자들 쪽으로는 당시의 중국 수행자들은 티베트 불교 수행자들에게 은근히 기가 죽어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수행을 전문으로 하시는 분들은 잘 아시는 내용이지만 수행자들끼리 만나면 엄청 기싸움이 심하잖아요? ^^
당시의 티베트 불교 승려들과 중국 불교 승려들도 그랬답니다.
그래서 글귀 안에서도 이런 부분들이 많이 엿보이는 것이고요.
그래서 마조 같은 특출난 인물이 나오면 서방 쪽을 향해 한마디씩 하는 글귀들이 그동안 선문에서도 여럿 있었다는 것인데요.
"우리 중국도 이런 큰 도인이 있다." 이거지요.
수행 방법도 부처님이 하셨던 조견오온개공(照見五蘊皆空) 방법보다는 자신들이 만들어 낸 간화선(看話禪) 수행 방법이 더 우수하다고 가르치고 있었던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보시면 된답니다.
왜냐하면 예나 지금이나 중국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뭐든지 자기들이 중심이 되어야 하고 원조가 되어야 한다는 사상들 때문인데요.
김치도 자기네가 원조?
한문도 자기네가 원조?
수행도 자기네가 원조?
하는 식으로 말이지요.
오늘 내용 안에도 강서 지방을 일부러 운운한 것 또한 이러한 의도가 숨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료들을 찾아보면 서역과 강서 지방에는 이미 티베트나 장족들의 영향으로 인해 불교가 널리 퍼져 있었다는 사실인데요.
당시의 중국 불교 스님들 또한 서역 쪽 불교 스님들에게 속된 말로 기가 많이 죽어있었던 상태이기 때문에 마조와 같은 인물이 나올 때마다 중국 스님들은 서방 쪽을 가리키면서 자신들의 우수성을 내세우곤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 중국 불교가 서쪽 불교보다는 더 우세하다" 하는 심리가 글귀 안에 묻어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인도나 티베트나 남방 불교 승려들은 중국 불교를 쳐주지 않고 있는데요.
당나라 당시에 이 글이 쓰일 당시에는 훨씬 더했다는 것입니다.
당시에 중국 스님들의 글들을 보면 서쪽 지방의 불교에 대해 이런 심리가 많이 담겨 있다는 것이고요.
요새는 글로벌 시대이다 보니 지금은 인도나 태국 미얀마 티베트 등지의 스님들도 한국에 많이 들어와 있다는 것인데요.
이쪽 불교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누어 보면 예나 지금이나 서 쪽 사람들은 중국 불교를 한참 아래로 보고 있답니다.
왜냐하면 중국 불교는 부처님 가르침을 너무 화려하고 크게 포장들을 해 놓았다는 것이고,
무엇보다 자기들 마음대로 방편들을 만들어서 자기들 식으로 불교를 왜곡하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된 주장인데요.
특히 천도재나 명패 봉안 등 제사에 관계되는 일들이 그중에 하나이고
마음이 아닌 선문답 같은 것으로 깨닫는 것을 판명하려는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출가자들이 가장 크게 따라야 할 계율이 너무 엉망진창이라는 것이 이들의 주된 주장인데요.
물론 처음에는 이런 말들을 안 하지만 조금만 친해지면 서방 승려들 쪽에서는 이런 말들이 줄줄이 나온답니다.
저도 한국 불교의 한 사람으로서 이런 말들을 들으면 기분이 좋을 리는 없겠지만 사실이 그런데 어쩌겠습니까?
그래서 앞으로는 그러지 말자는 뜻에서 저도 계속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이고요.
무조건 이런 이야기를 기분 나쁘게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한 편으로 깊이 반성할 것은 반성하고 고쳐야 할 것은 고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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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江西) 지방 이야기가 나와서 잠깐 부연 설명을 더 드리자면..
많은 사람들이 강서(江西) 와 서역(西域)을 헷갈려 하시는 분들이 많으시더라고요?
여기서 말하는 강서(江西) 지방이란 중국 국경 안에서의 서쪽을 말하는 것이고요.
그리고 서역(西域)이란 국경 밖에 있는 서쪽의 여러 나라들을 총칭하는 말이랍니다.
그리고 옛날의 서역에는 [서역 36국]이라 해서 많은 국가들이 형성되어 있었고 이들 지역 대부분이 전쟁을 통해 통일이 되어가면서 지금에 이른 것인데요.
그리고 아주 먼 옛날에는 고조선 계통의 동이족들이 인도 지방으로 많이 들어가 살았다는 것인데요.
그들 중에 일부는 국가를 만들어 살기도 했고요.
기록에 의하면 치우천황 시대(BC 2500년 전)에 한족과의 전쟁에서 크게 패한 치우의 백성들이 중국 중앙에서 서쪽 고산지대와 인도로 대거 피신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답니다.
이 전쟁을 [탁록대전]이라고 불리고 있고요.
그리고 이들 동이족 후손들은 전쟁의 신이라 불릴 만큼 전쟁을 아주 잘 했다고 기록에는 남아 있었는데요.
그중에서도 지금의 티베트인 토번국(吐蕃國)은 아주 막강한 나라 중 하나로 이름나 있었답니다.
중국에서는 당나라 시기를 강장 부강하고 번성한 시기라고 정평이 나 있는데요.
중국이 가장 강했던 시기인 당나라 때에도 자신의 힘으로 단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국가가 둘이 있었는데요.
그 나라가 바로 고구려와 지금의 티베트인 토번국이랍니다.
고구려도 나당연합군이 아니었으면 이기지 못했을 것인데요.
아무튼 토번국 또한 우리와 같은 몽골피가 흐르고 있어서 그런지 전쟁을 아주 잘했다고 하는데요.
중국에서는 동이족들을 전쟁의 신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티베트인 토번국도 그중에 하나였고요.
그렇게 막강했던 토번국의 후예인 티베트가 지금은 저렇게 힘없이 나라를 빼앗기고 저러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인데요.
저는 개인적으로 제일 근심스러운 것은 티베트 국민들의 마음인데요.
우리가 중국이나 북한에게 나라를 빼앗겼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무엇보다 중국은 공산당 국가라 불교 교리를 따르거나 수행자들에게 보이지 않는 압력과 테러들을 지금도 엄청나게 가하고 있을 거라는 것인데요.
그런 티베트 국민들 마음이 어떨 것이라는 것은 눈으로 보지 않아도 뻔한 것이고요.
일반 불자들은 티베트가 나라를 빼앗겼다는 정도로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제 경우는 그들의 마음을 보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이 너무나 안타깝다는 것인데요?
제 경우는 중국에서 16년 가까이 있으면서 기독교 쪽에서 일을 한 사람들이라 누구보다도 중국 내 종교 탄압을 잘 알고 있는 사람 중 하나랍니다.
중국 정부가 얼마나 집요하고 끈질기고 치밀한 사람들인지 여러분들은 모르실 건데요?
아무튼 그래서 현재 티베트 국민들의 현실을 잘 알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많은 애통함을 느끼고 있는데요.
티베트의 가장 큰 고통은 앞으로 중국 정부에 의해서 티베트 불교는 뒤에서 서서히 소멸되어 갈 것이라는 것인데요.
이러한 고통들을 국민들에게 안겨준 책임을 누가 져야 할까요?
그래서 절대로 승려들은 정치에 개입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인데요.
왜냐하면 국가는 항상 전쟁을 수반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많은 학자들은 국가는 전쟁을 하기 위한 집단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는데요.
국가는 전쟁 없이는 유지를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강하면 강할수록 전쟁은 방지가 되는 것이고요.
전쟁을 하는데 어떻게 자비가 있을수 있을까요?
그래서 국가는 잘하든 못하든 정치인들이 관리를 해야 하는 것이랍니다.
그래서 수행자들은 절대로 정치인들과는 어울려 다녀서는 안 되는 것이고요.
왜냐하면 이 둘의 집단은 생각과 마음이 정 반대의 것들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중국 국민들은 토번국과 고구려에 많은 트라우마를 느끼고 있을 정도로 무서워하고 있다는 사실인데요.
특히 토번(티베트)국은 중국 사람들에게 어떻게 인식이 되어 있었느냐 하면요?
그 내용은 서유기에 아주 잘 표현이 되어 있답니다.
손오공 일행들도 서역으로 불교 경전을 구하러 가잖아요.
거기서 보면 티베트를 통과하는 도중에 수많은 요괴와 마귀들과 악마들을 쳐부수면서 가잖아요?
그만큼 중국 사람들은 토번국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손오공 일행은 당시에 북인도로 경전을 구하러 가는 길이었기 때문에 반드시 지금의 티베트를 통과해야만 갈 수가 있었는데요.
그만큼 중국 사람들에게는 서역 국가들을 두려워했고 가서는 안 되는 지역으로 여겨지고 있답니다.
얼마나 중국 사람들이 토번국과 고구려에 트라우마가 심하냐 하면요?
오죽하면 중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연극 중에 하나인 경극(京劇)을 보면 잘 알 수가 있는데요.
경극에 등장하는 괴물들 대부분이 고구려 장수 아니면 토번국 장수들인데요.
그중에서도 연개소문 장군이 가장 유명한 큰 장수로 묘사되고 있고요.
가끔은 강감찬 장군이나 양만춘 같은 장군들도 등장을 하는데요.
저도 여러 번 한족 친구들과 경극을 보러 가면 한족들이 저보고 항상 하는 말이 고려(고구려)는 전쟁을 잘하는 민족이라고 엄지 척을 해주곤 하는데요.
일반 사람들은 중국의 경극을 그냥 재미로만 보는 줄 알지만 경극 내용 안에는 많은 사상들이 들어 있답니다.
중국인들의 특징 중 하나는 이들은 이런 식으로 경극을 통해 절대로 몇천 년이 지나더라도 대를 물려가면서 그들의 목적과 원한을 잊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경극에 고구려 장수들과 토번국 장수들을 등장시키는 이유도 후대 사람들에게 이 두 나라는 언젠가는 반드시 굴복시켜서 중국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암시가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티베트도 결국은 잘 버텨오다가 통치자들을 잘 못 만나는 바람에 저렇게 된 것이고 북한 또한 중국인들은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다고 보시면 되는데요.
여러분들은 몰라서 그렇지 제 경우는 중국에서 석탄 업을 했었던 경우라 대부분이 군부 아니면 당 간부들이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 보니까 그들과 술자리를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요.
술에 취하면 은연중에 '한국과 우리는 한 가족'이라 하면서 언젠가는 우리도 진짜 가족이 될 거라는 이야기를 흘리곤 하는데요.
학교에서 그렇게 가르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중국 사람들 대부분은 '조선반도는 본래 우리와 한 가족'이라는 소리를 은연중에 많이 한답니다.
그 말속에는 한반도는 본래 자기들 거라는 암시가 숨겨져 있는 것이고요.
그렇게 국민들에게 인식을 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몇천 년을 말이지요.
여러분들이 몰라서 그렇지 중국 초등학교 교과서를 보면 어떻게 이런 내용들을 교과서에 넣지? 하는 내용들이 아주 많답니다.
우리는 "철수야 이리 와 나하고 놀자" 같은 것들이 교과서 실리지만 중국 아이들 교과서는 그런 내용의 것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족 간부들이 술자리에서 자기들끼리 북한을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혹시 아시나요?
중국 남자들도 정치 이야기를 무척 좋아하는 편이라 시끄럽게 떠들면서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인데요.
거기서 하는 말이
"북 조선은 가만히 놔두면 저절로 우리에게 오게 되어 있다."
는 거예요.
이 이야기는 한족들과의 술자리에서 여러 번 들었던 이야기이고요.
이런 늑대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국경을 맞대고 있었던 티베트 통치자들은 그동안 순진해도 너무 순진하게 있었던 거랍니다.
앞으로 티베트는 독립을 할 수 없을 거라고 저는 보고 있는데요.
왜냐하면 독립은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일본에 독립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였고요.
아시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우리 같은 경우는 중국의 장개석이 아니었으면 독립이 어려웠을 것인데요.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우리는 장개석에게만큼은 엄청나게 고마워해야 한답니다.
왜냐하면 카이로선언 때 장개석이 조선의 독립을 연합국들에게 강력하게 어필을 해 주었기 때문에 독립이 가능했던 거랍니다.
교과서에는 이런 내용들은 쏙 뺀 것이고요.
물론 임시정부의 부탁도 있었지만 당시만 해도 조선이라는 나라는 연합국에게는 있으나 없으나 관심 밖이었기 때문인데요.
티베트의 조건은 그 당시 조선보다 훨씬 더 안 좋은 조건이라는 것인데요.
왜냐하면 티베트가 앞으로 독립을 하려면 외부에서 누군가 도움을 주어야 하는데 그럴 나라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국가로서 외교적으로 해 놓은 것도 없고 지금의 우크라이나와 대만처럼 또는 필리핀처럼 싸우려는 의지가 있어도 도와줄까 말까 하는데 누가 싸울 의지도 없는 지금의 티베트를 보고 도와주려고 할까요?
더군다나 가장 큰 결점은 기독교 국가도 아니고 불교 국가를 어느 서방국가가 도우려 하겠느냐 이겁니다?
독립을 도울 나라는 힘 있는 서방국가들 뿐인데요?
티베트 자체적으로의 독립은 더욱 불가능한 것이고요.
힘이 있어야 독립을 하지요.
그동안 국민들을 완전히 바보로 만들어 놓았는데요.
불교의 가르침이 잘못 전파되면 티베트처럼 되는 거랍니다.
불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까워서 드리는 말씀이고요.
여러분들이 몰라서 그렇지 중국 사람들 참으로 무서운 사람들이랍니다.
뭐가 무서우냐 하면 한 가지 목표를 세우면 서두르는 것도 없이 꾸준히 이번 세대가 안 되면 다음 세대에 다음 세대에도 안 되면 그다음 세대에 이렇게 이어져 오는 집념이 몇 천년을 넘어도 변함이 없다는 것인데요.
중국 사람들은 지금도 꾸준히 기회만 있으면 영토 확장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탐내고 있는 나라가 한반도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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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극 : 참고자료>
여기서도 보면 연개소문 장군이 나온답니다. ^^
경극에서 보면 연개소문은 항상 까만 옷을 입고 등 뒤에는 큰 칼 두 자루를 엇갈려 매고 무서운 얼굴로 등장하기 때문에 금방 알아볼 수 있답니다. ^^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namu.wiki/w/%EA%B2%BD%EA%B7%B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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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법에 대한 내용, 질문이 있는 경우 질문 내용
이 란은 우리들의 란인데요.
질문이나 세상살이 이야기 등을 자유롭게 나누는 란이랍니다.
그리고 내용 끝에 (진실)이라는 표시는 제가 체험한 내용들과 마음에 느끼고 있는 것들에 대한 [동의] 표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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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댓글로 주셨던 질문 내용 중 하나인데요.
마침 오늘 본문 내용과 잘 어울릴 것 같은 내용이 있어서 재미로 올려보겠습니다.^^
(질문)
안녕하세요.
매번 좋은 법문을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일전에 홍산문화에 대해 글을 올려주셨는데 잘 보았습니다.
그 후로 저도 많은 관심이 생겨서 자료들을 찾아보고 있는데요.
거사님이 홍산문화를 바라보는 시각은 어떤지 고견을 듣고 싶어서 문자를 남겨봅니다.^^
(답변)
아, 네 그러셨군요. ^^
질문을 주셔서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홍산문화는 어차피 머나먼 과거에 있었던 일들이라 우리 같은 수행자들에게는 그다지 중요하지는 않은데요.
그래도 질문을 주셨으니 소신껏 답변을 드려보겠습니다.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제 자신이 역사학자도 아니고 고고학자는 더더욱 아니기 때문에 기존에 나와 있는 자료들을 토대로 유추해 볼 수 박에 없는데요.
그리고 기원전의 일들은 아무리 역사학자나 고고학자라 해도 그들도 또한 짐작으로만 당시를 추측해 볼 수 박에 없을 건데요.
그래서 역사학자나 고고학자들도 그 당시의 유물이나 글자 등으로 당시의 생활상 등을 짐작해 볼 수 박에 없는 것인데요.
이런 점에서 홍산문화는 그 당시(고조선 이전) 무덤에서 나오는 유물들 중에는 수행에 관한 유물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역사는 얼마든지 왜곡할 수는 있어도 당시의 유물들은 도저히 왜곡을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유물들 만큼 확실한 증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홍산문화의 사실적 가치가 있는 것이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과거에 잊혀진 홍산문화를 자주 꺼내는 이유는 우리 민족이 수행에 있어서 만큼은 허접한 민족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수행에 자신감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역사학자들도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인구 이동에 따른 역사적 사건과 사고 등을 토대로 당시의 시대적 흐름을 짐작해 보는 것인데요.
이런 점에서 홍산문화의 유물들은 너무나 분명한 사실들을 증명해 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딩시의 유물들을 근거로 우리의 옛 조상들은 지금과는 달리 수행 생활을 일상화했었다는 사실을 유추해 볼 수 있다는 것이고요.
그리고 아무리 역사 학자라 해도 고대사 연구는 결정적인 자료가 없는 한 짐작만 할 수 박에 없다는 것이 한계인데요.
그러나 홍산문화는 너무나 많은 물증들이 대거 출토되었다는 점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어느 나라나 역사는 왜곡할 수 있어도 무덤에서 나오는 그 당시 유물들은 왜곡할 수가 없다는 사실인데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개인적으로 수행은 고조선 이전부터 동이족들에 의해 인도나 그 밖의 나라들로 퍼져 나갔다고 보고 있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기별로 잘 맞아떨어지고 있고요.
그리고 또 분명한 사실은 고조선 당시의 역사 자료들이 고구려가 망하면서 완전히 불태워지는 바람에 우리에게는 그 당시 자료가 남아있지 않지만 당시에 역사를 같이 한 중국은 북경대학교 내 도서관에는 그 당시의 역사 자료들이 남아 있다고 하는데요.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다른 것은 다 몰라도 그 당시 무덤에서 출토되는 토기들과 유물들이 이를 증명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수행의 역사는 고조선 이전으로 보고 있는 것이고요.
그리고 시기별로 보더라도
인도로 수행이 전파된 시기를 저는 BC 2500년 전에 있었던 탁록대전으로 보고 있답니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당시에 수많은 동이족들이 인도로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후로 1000년 동안 인도에서도 몇몇 사람들로 인해 수행이 행해졌고 1000년이 되던 시기에 드디어 인도에서도 성인이 탄생되면서 BC 1500~1200년 경에 힌두교와 브라만교의 모태인 [베다 성전]이 지어졌다고 저는 보고 있답니다.
그리고 그 후로는 인도에서 수행문화가 급상승했고요.
왜냐하면 BC 2500년 전에 있었던 탁록대전에서 치우천황이 한족에게 패하면서 무수히 많은 치우 백성들이 지금의 서쪽 지방으로 이동을 했다는 역사 자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치우 백성들이 가장 많이 이동을 한 지역이 지금의 인도와 티베트, 베트남, 태국, 미얀마 등지였다는 사실하고요.
중국 인근에는 오늘 본문 내용에서도 나온 강서 지방의 고산지대로 동이족들이 많이 이동을 했고 이들을 티베트족, 장족, 묘족, 요족, 동족 등으로 지금은 불리고 있는데 이들 모두는 우리 핏줄이라는 것입니다.
이들 모두가 치우천황 당시에 탁록대전과 그 외의 전투에서 전쟁을 피해 서쪽으로 이동한 민족들이라는 것이고요.
수행 문화도 이때같이 이동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북쪽보다는 서쪽이 훨씬 더 안전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고요.
왜냐하면 이쪽 지역들은 모두가 해발 2000m 이상인 고산지역이기 때문입니다.
티베트는 해발 4000m 정도이고요.
당시에는 전쟁을 피하기에는 딱 좋은 장소였던 거지요.
이렇게 BC 2500년 전에 치우천황과 한족 간에 전쟁에서 치우가 크게 패하면서 상당한 사람들이 지금의 중국 서쪽 고산지대와 인도로 피신을 했다는 사실인데요.
얼마나 많은 인구가 이동을 했느냐 하면 몇 개의 나라를 세울 수 있을 만큼의 인구가 이동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고요.
아무튼 이 당시 수행문화가 인도나 서쪽 지방으로 많이 전파되었을 공산이 크다고 저는 보고 있답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당시나 지금이나 수행 같은 기록들을 후대에 남기기 위해서 자료들을 남기기 어려웠을 거라는 것인데요.
그러나 당시 무덤에서만큼은 기존에 행해지는 것들을 같이 묻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자료가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것이고요.
아무튼 (BC 2500년 전)에 (탁록대전) 이라는 치우천황과 한족 간에 전쟁에서 치우가 크게 패하면서 수많은 치우 백성들이 인도로도 수없이 이동을 했다는 것인데요.
이때 인도로 수행 문화가 유입되었고 그 후로 (BC 1500~1200년 전) 경에 인도에서도 크게 깨달은 사람이 나와서 [베다 성전]이 처음으로 쓰여졌고 그 후로 힌두교와 브라만교가 처음으로 탄생하게 되었고 그 후에 (BC 560년 전)에 싯타르타가 나오면서 불교가 탄생되었고 이것이 티베트를 거쳐서 중국으로 불교가 유입되었다고 저는 보고 있답니다.
그리고 달마대사는 이보다 1000년 후쯤인 서기 527년 경에 중국으로 들어와 선종(禪宗)의 시조가 되었는데요.
그러나 이 당시에는 이미 인도에서는 수행문화가 가장 번성하고 있었고 티베트에도 많은 도인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 그리고 불교가 중국으로 들어 오기 훨씬 이전 부터도 중국에도 고조선의 영향을 받은 여러 도인들이 있었다는 사실인데요.
사기나 역사 자료들에도 이런 분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답니다.
대표적인 인물을 들라면 중국은 아주 많은 편인데요.
유방과 함께한 장량도 당시에는 큰 도인이었고요.
장량은 나중에 홀로 산으로 들어가 자신이 했던 수행에만 정진을 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고요.
항우와 함께한 범증도 큰 도인 중에 한 분이랍니다.
삼국지에는 제가 좋아하는 방통도 큰 도인이었답니다.
제갈량도 수행을 많이 한 사람이었고요.
제자백가 시대에는 더 많았는데요.
그중에서도 가장 높았던 도인은 저도 중국에서 대학을 다닐 때 3년간 열심히 수련했던 귀곡자도 큰 도인 중 하나랍니다.
중국뿐만이 아니라 우리 쪽 기록에도 여럿 있답니다.
대신 우리 민족들은 이상하게 이런 기록들을 자세히 남기지 않았다는 것인데요?
연개소문도 젊었을 때 산에 올라가 수행을 하는 도중에 큰 깨달음을 얻고 장군이 되었다는 가록도 있고요.
김유신 장군도 한 도인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산에 올라가 큰 깨달음을 얻고 그 뒤부터는 정신 차리고 큰 장군이 되었다는 기록이 있답니다.
지금 나열한 분들만 해도 불교를 통해 수행을 하신 분들이 아니랍니다.
불교 이전부터 이 땅에는 극소수이기는 하지만 수행자들이 많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홍산문화 때부터 쭉 이어져 온 수행 문화랍니다.
아무튼 홍산문화도 우리로서는 역사적인 자료와 그 당시 유물들을 기반으로 짐작할 수 박에 없다는 것이 우리들의 한계라 할 수 있는데요.
이상하게 예나 지금이나 우리 민족들은 역사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었다는 것인데요?
그래서 그 당시의 귀중한 자료들도 잘 보관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고요.
그러나 중국이나 유럽처럼 역사 자료들을 잘 보관하고 관리하는 수준에서 보면 우리로서는 할 말이 없다는 것인데요.
뭔가는 분명한 증거 자료들이 남아 있어야 당당하게 이것은 우리 것이다 할 것인데 우리 민족들은 이런 점이 매우 취약했답니다.
지금도 보면 우리들은 옛 자료들을 무시하는 경향들이 많이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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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그래도 다행히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수행에 관한 자료들이 홍산문화(红山文化) 무덤 유물에 그대로 남겨져 있었다는 사실인데요.
그 시기는 동이족의 조상을 12000년 전으로 학계에서는 보고 있기 때문에 수행 문화 또한 이와 같이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증거 자료들은 그 당시의 유물들을 측정한 연도 수이고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수행 문화를 10000년 전으로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학자들은 수행에 관심이 없다 보니까 수행 같은 곳에는 별로 초점이 없는 것이고요.
그러나 우리 같은 수행자들은 관심을 가지고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1970년대 당시 지금의 동북삼성 지역에서 너무나 많은 홍산문화유물들이 쏟아져 나오자 중국 정부는 바로 스톱을 시키고 지금까지 발굴을 금지시키고 있다는 것인데요.
그럴 만도 한 것이 왕의 무덤도 아닌 일반 무덤에서도 수행에 관한 토기들뿐만이 아니라 그 당시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수많은 자료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다 보니 황하문명을 중국 역사의 시작으로 보고 있는 중국으로는 더 이상 우리의 역사자료들을 발굴해 내지 못하게 한 것인데요.
그리고 지금도 그대로 그 자리에 묻혀 있다는 것이고요.
저는 이것을 정부 차원에서 움직여도 발굴이 될까 말까 하다고 본답니다.
제 말은 지금도 우리 민족의 특징 중 하나는?
조상들이 칠칠맞지 못해서 역사 자료들도 제대로 못 남겼으면 지금 사람들이라도 나서서 관리를 해야 하는데
이상하게 우리 민족들은 역사에 대한 인식도가 땅에 묻혀있는 자료들조차도 관심이 없어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동북공정(東北工程)을 추진하는 중국 정부에도 할 말이 없는 것이고요.
아무튼 지금 우리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수행인데요.
우리의 머나먼 조상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의 수행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자료들을 나름대로 몇 가지 올려보는 자료들인데요.
여러분들도 당시의 자료들과 유물들을 보시면서 스스로 판단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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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1) 동이족의 기원 (BC12000~8000년)
https://m.blog.naver.com/tbyn7182/223006892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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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반가부좌를 틀고 있는 유물
https://blog.naver.com/dongeundp/220352762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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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6000년전 홍산문화속 수행(좌선) 문화 !
이것은 십자가를 앞에 들고 있는 모습인데요?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http://ynculture.kr/m/content/view.html?§ion=107&no=2279&category=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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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홍산문화 나한상
이 유물은 지금 하고 똑같지 않은가요?
https://m.search.naver.com/search.naver?mode=&nso=so%3Ar%2Cp%3Aall%2Ca%3Aall&query=%ED%99%8D%EC%82%B0%EB%AC%B8%ED%99%94+%EC%97%AC%EC%8B%A0%EC%83%81&sm=mtb_nmr&where=m_image#imgId=image_sas%3Aweb_5a0f68ede27fa945ee1e842d0bc321e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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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이것은 진품을 본떠서 만들어 놓은 것이지만 목탁까지 치고 있네요?
지금의 불교하고 뭐가 다를까요?
참고로 중국 정부는 진품들을 모두 가져 갔다고 하는데요?
지금 사진들은 발굴 당시의 사진들이라고 하더라고요?
https://m.blog.naver.com/antiques777/222866567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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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당시의 기공 수행 모습 (하단)
https://blog.naver.com/defc823/221713415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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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형성 시기)
* 기원전 8000년 ~ 기원전 7000년 신석기시대(新石器時代) 신낙 문화 유적 랴오닝성 선양 시 북부 지역
* 기원전 7000년 ~ 기원전 6500년 신석기시대 소하서 문화 유적 내몽골 츠펑 시 아오한 기 지역
* 기원전 6200년 ~ 기원전 5200년 신석기시대 흥륭강 문화 유적 내몽골 츠펑 시 아오한 기 지역
* 기원전 6000년 ~ 기원전 5200년 신석기시대 사해 문화 유적 내몽골 접경 사해 유역
* 기원전 5200년 ~ 기원전 5000년 신석기시대 부하 문화 유적 내몽골 츠펑 시 아오한 기 부하 유역
* 기원전 5000년 ~ 기원전 4400년 신석기시대 자오바오거우 문화 유적 내몽골 난하 계곡과 허베이 성 북부
* 기원전 4500년 ~ 기원전 3000년 신석기시대 훙산 문화 유적 내몽골 요동 하북 지방
* 기원전 3000년 ~ 기원전 2000년 동석병용시대(銅石倂用時代) 소하연 문화 유적 내몽골 츠펑 시 아오한 기 소하연 유역
* 기원전 2000년 ~ 기원전 1500년 초기 청동기시대 하가점 하층 문화 유적 내몽골 츠펑 시 아오한 기 맹극하(孟克河) 유역
(이런 것들을 우리들은 그냥 방관만 하고 있다는 것인데요. 다른 것은 몰라도 수행 문화만큼은 우리가 챙겨야 하지 않을까요?)
(출처)
https://blog.naver.com/tuna4u/223160474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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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주요 연도 표
★ 치우천황과 한족 황제와의 탁록대전(BC 2500년 전) 이후 중앙에 거주하던 수많은 치우의 백성들이 인도는 물론이고 서쪽으로 대거 이동..
★ 고조선 (BC 2333~180년 전)
★ 베다 (BC 1500~1200년 전) 이때부터 인도는 힌두교와 브라만교에서 수행 문화가 본격적으로 퍼쳐나가기 시작
★ 싯타르타 (BC 560년 전)는 이때 하늘의 신이 아닌 우리들 모두에게는 불성이 따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불교가 퍼져나가기 시작함
★ 예수님은 이 당시 (기원전 4년 ~ 서기 33년경) 동방박사들의 예언 때문에 로마 황제로부터 죽음을 피해 부모들과 인도로 피신했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로마제국은 손이 안 뻗치는 곳이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 가족들이 피신할 때라곤 인도 박에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가족들이 인도에 도착할 무렵에는 불교가 가장 부흥한 시기였고요.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부처님 교리와 예수님 교리가 표현만 다를 뿐 너무나 일치하는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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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동영상 : 동이족 이동 경로의 한 예
https://youtu.be/ToG8c40QI58?si=rkJRVh8VHfoXfu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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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끝으로 고조선 설화에는 곰과 호랑이가 마늘과 쑥 만 가지고 토굴에 들어가 곰은 사람이 되고 호랑이는 그곳을 못 견디고 뛰쳐나왔다는 이야기가 있잖아요?
이 내용이 바로 수행 과정을 비유로 만들어진 설화랍니다.
곰은 진득하게 수행 과정을 잘 견뎌서 사람이 되었다는 이야기이고 호랑이는 성질을 못 이겨서 토굴을 뛰쳐나왔다는 것이고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러한 자료들은 어디까지나 역사 자료들이기는 하지만 이 안에는 우리들이 어떻게 수행을 해야 하는지 등이 잘 묘사되어 있다는 것인데요.
역사 학자들은 수행 역사 자료에는 관심이 별로 없기 때문에 종파를 떠나서 수행 자료들은 수행자들이 챙겨야 한답니다.
그리고 우리들도 곰처럼 진득하게 꾸준히 정진을 해야만 참된 사람(본성/불성/성령)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뜻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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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수행자 내용
이 글은 연꽃이 활짝 피신 다섯 분을 위해 신설된 유마경(維摩經) 내용이랍니다. ♡
[유마경]은 [법화경]과 아울러 보살들을 가르치는 경전이랍니다.
이 말의 뜻은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은 유마경을 통해 자신의 마음과 비교를 해 보면서 부족한 점들을 보충해 나가 보라는 뜻이 담겨 있답니다.
(아래의 사이트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youtu.be/vtL4VwXhp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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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달다의 바른 보시 (2)
(화면 왼쪽 하단 숫자)
1:37:46 ~
또한 적정과 조련(調練)을 통하여 보시바라밀을 곧바로 이루고, 파계한 이를 바르게 함으로써 지계바라밀을 곧바로 이루며, 제법이 무아(無我)라는 사실을 알아 인욕바라밀을 곧바로 이루고, 깨달음을 향한 노력에 의해 정진바라밀을 곧바로 이루며, 몸과 마음을 모두 벗어남으로써 선정바라밀을 곧바로 이루고, 일체지자이신 부처님을 앎으로써 지혜바라밀을 곧바로 이루는 일입니다.
법을 보시하는 모임이란 곧 모든 중생을 성숙케 함으로써 공성(空性)이 무엇인지 곧바로 깨우쳐주고 유위법을 정화함으로써 무상(無相)이 무엇인지 곧바로 깨우쳐주고 생각대로 생을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무원(無願)이 무엇인지 곧바로 깨우쳐주는 일입니다.
(이어서..)
~ 1:3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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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 지면이 부족해서 오늘 하루 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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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선문답(禪問答)
중국 글은 뜻글자랍니다.
선문답에서는 본성(마음)을 뜻하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키포인트랍니다.
모든 선문답은 그동안 공부한 내용들을 알아보는 것이랍니다.
깨닫고 증득한 것과는 크게 상관은 없답니다.
왜냐하면 우주보다 크고 넓은 불성(마음)의 세계를 몇 글자의 글과 말로서 가늠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깨닫고 증득한 기준점은 글이나 언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불성의 마음에서 오는 언행(言行)이 그 기준점이랍니다.
아무리 선문답을 잘 풀고 경전에 막힘이 없다 하더라도 불성의 마음이 드러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선문답 같은 곳에 너무 집착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에게 중요한 것은 선문답을 통해 자신의 마음과 비교를 해보는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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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선문(禪問)입니다.
[월지국왕이 계빈국에 기야다라는 존자가 있어 덕망이 높다는 소문을 듣고 여러 신하들을 거느리고 그 나라에 가서 뵙고 법을 물으리라 하였다. 왕이 존자에게 나아가 예를 마치고 존자에게 청호대 "저에게 법을 일러 주십시오” 하였다. 이에 존자가 대답호대 "대왕이여, 오실 때에 길이 좋았으니 가실 때에도 오실 때 같으리이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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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답)
오늘 선문(禪門)은 생(生)과 사(死)를 이야기하는 내용이랍니다.
만약 기야다 존자가 저에게도
"오실 때에 길이 좋았으니 가실 때에도 오실 때 같으리이다"
라고 말씀을 하신다면 저는 바로 옷을 단정히 하고 합장을 한 후 큰 절을 세 번 올리면서 이렇게 대답해 올릴 것입니다.
"참으로 옳은 말씀이고 감사합니다."
라고요.
왜냐하면 수행자에게 있어서 이보다 더 큰 찬사는 없기 때문입니다.
~♡~
다음 주 선문(禪問)입니다.
[소승 비바사론에 이르기를 "어떤 부락에 독한 용이 살았는데 五백 존자가 항복 시키려 갔다가 뜻을 이루지 못했다. 나중에 어떤 존자가 손가락을 한번 튕기니 용 이 곧 항복하였느니라" 하였다.]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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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용도 아주 재미있는 선문(禪門)이네요. ^^
이번에도 이 내용에 맞는 합당한 답변을 해주시면 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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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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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다음 주 선문염송
[선문염송] 중에서.. (157편) 20240304
제목 : 완월(翫月)
[마조가 달구경을 하다가 곁에 있는 제자 세사람에게 말호대 "이럴 때에 어떻게 하면 좋을까?” 지장이 대답호대 "공양을 하는 것이 매우 좋겠습니다" 회해가 대답호대 "수행을 하는 것이 가장 좋겠습니다" 하였는데, 보원은 소매를 저으면서 가버렸다. 이에 선사가 말호대 "경은 장으로 들어갔고 선은 해로 돌아 갔는데 보원만이 홀로 사물 밖으로 뛰어났구나"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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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 원본)
馬祖翫月次 謂二三子日 正當恁麼時如何 智藏曰正好供養 懷海日 正好修行 普願 拂袖而去 師日 經入藏 禪歸海 唯有普願 獨超物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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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자신의 마음자리를 비추어보시고 답을 주시면 되겠습니다.
혹시 개인별로 답을 주시거나 질문이 있으시면 메일로 주셔도 됩니다.
그리고 지난 글들이 필요하신 분들은 메일 주소를 주시면 보내드리겠습니다. ^^~
e-mail : 119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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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법문 동영상
제목: 서암스님 설법_마음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youtu.be/cpH81xBi7_U?si=hkl3B9nPinz3qjts
예전에 올렸던 동영상 내용인데요.
좋은 내용이 많으니 천천히 다시 한번 잘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
~♡~
(7)《음악과 함게 수행을.. 》
연세가 있으신 분들을 위해서 그동안 우리들끼리만 공유하고 있었던 [추억의 음악 캠프]인데요.
건달바(乾達婆)처럼 얼마든지 음악을 통해서도 수행을 할 수가 있답니다.
방법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중에서 귀에 의식을 집중하면서..
"지금 듣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
하면서 안으로 의식을 돌려보는 것인데요.
★ 음악을 들으면서 수행하기
음악에만 끌려들어 가면 내가 지는 것이고요.^^
듣고 있는 [나]에게 집중해야 한답니다.^^
이것이 조견오온(照見五蘊) 법이랍니다.
같이 귀로 들어보시면서 듣고 나는 누구인가? 하면서 참구해 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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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IL CUORE È UNO ZINGARO - Nada 1971 (Letra Español, English Lyrics, Testo italiano) Winner Sanremo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youtu.be/FwF7S0qQSV0?si=RtpkPk74k1Kip0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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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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