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동쪽 끝 산동반도는 새벽녘 닭 울음소리가 들린다는 곳이다.
서해를 사이에 두고 지척에 있어 중국이 가깝다는 뜻으로 그렇게 말한다.
쌀쌀하지만 잔잔한 날씨속에 우리는 배 여행을 위해 평택항에 도착했다.
평택항 대합실이 이미 꽉 찼다. 오후 7시 출항을 앞두고 3시간 전부터 이미 사람들로 만원을 이루고,
여행객의 90% 이상이 장사목적으로 중국을 오가는 사람들로 붐빈다.
중국에 가져갈 물건은 미리 컨테이너에 실어놓은 뒤 그들의 등에는 배낭 가득 따로 물건을 담아
배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이 마치 명절맞이 고향을 가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일명 보따리상이라 부르는 이들이다.
보따리상은 일주일에 1회 또는 2-3회 중국을 오간다.
일터가 배인 셈이다. 하선하면 마땅히 갈 곳이 없어 아예 배에서 먹고 자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마침 한 아주머니와 함께 출항장의 버스를 동승했다.
“중국에는 자주 왕래하시나요?”
“예, 이걸로 용돈벌이 정도 한답니다.”
“물건은 떼다가 직접 파는 겁니까?”
“중간 도매상에게 넘기지요, 일일이 어떻게 하겠어요.”
객선 내 면세점에서 한 남자가 담배를 많이 사는걸 보았다.
알고보니 구입한 담배는 한국으로 되팔아 이윤을 남기고 넘긴다고 한다.
어느 정도가 용돈벌이인지 모르지만 예전보다 벌이가 신통치는 않다고 했다.
대부분이 남녀 5,60대에서 70대 할아버지들로 나이든 분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평택과 중국 영성을 오가는 2만5천톤급 대룡훼리의 선체는 예상외로 크다.
길이 120m 폭 25m로 여객과 화물을 동시에 실어 나르는 화객선이라 부르는 배이다.
마침 우리 일행을 인솔하는 분이 이 배의 회사 책임자와 잘 아는 사이인지 우리를 불러 조타실을 구경시켜 주었다.
특별대우를 한다며 금지구역인 이곳을 부선장이 직접 각종 장비와 내부 시설을 소개하고
전혀 모르는 전문용어를 알려주며 설명까지 곁들여 준다.
옛날 영화 포경선의 선장이 붙잡고 있는 키를 보면 지름이 1m 가량 되는 커다란 키를
좌우로 돌리는 걸 보았는데 웬걸 이 큰 배의 키가 고작 자동차핸들의 절반크기 밖에 안 될 정도로 작다.
다가가서 핸들을 돌려보니 미끄러지듯 가볍게 돌아간다.
20평가량 되는 넓은 조타실에는 전자지도 레이더 전파탐지기등 주요장비가 있는데
정작 사무용 의자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물어보니 까닭을 알 수 있었다. 모든 일은 서서 한다.
한 밤중 운항 중 앉아있으면 졸음으로 항해에 지장을 주어 규정으로 둘 수 없도록 했다 한다.
실제로 선장이 의자에 앉았다가 잠이 들어 충돌사고를 일으켜서 해난사고를 낸 경우가 있었다고 귀뜸해 주었다.
14시간의 항해 끝에 영성 용안에 도착했다. 잠에서 깨어보니 아침이다.
용안항은 중국에서는 가장 동쪽 끝이다. 이곳에 해남의 땅끝처럼 동쪽의 땅끝이 있다. 바로 성산두라는 곳이다.
용안항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다.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이 직접 군사를 이끌고 방문한 기념으로 재단을 만들어 놓았다.
그는 이곳에서 동해바다를 바라보며 동쪽 대륙의 끝이 아닌 바다건너
개척의 새로운 시작점이라고 하며 기념비를 세웠다는 가이드의 설명이다.
용안항에서 약 1시간을 달렸다.
장보고 유적지를 보기위해 남쪽 해안을 따라 가면 새로운 것이 눈에 들어온다.
바닷가에 수많은 풍력발전기가 일렬로 서있다.
나중에 북쪽해안을 버스로 이동할 때는 더 많은 백 여 기 이상이 밀집 된 풍력발전단지가 나타나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해안가에 일렬로 세워진 발전기가 끝없이 설치되어 바닷바람에 돌아가고 있는
모습이 마치 이곳이 하나의 발전소라는 생각이 든다.
산동성 용성시 석도항 북부에 위치한 적산법화원에 도착했다.
서기 823년 신라 해상왕 장보고가 당나라에 머물던 시절에 거액을 들여 세운 불교사찰이다.
당시 신라 사람들이 살던 마을인 신라방 동포들의 단합과 신앙의 힘으로 이국땅에서 지내는데 큰 힘이 되었다고 한다.
법화원은 한때 소실된 상태로 있다가 1988년 양국의 우정을 기념하기 위해
복원공사를 시작해 1990년 개관했는데 대웅보전은 이곳의 중요한 건축물이다.
장보고 기념관은 2004년에 건립되었으나 아직까지 중국내에 외국인 기념관이 없다는
중국측 입장에 따라 미뤄오다가 2008년에야 정식 승인을 받고 개관된 최초의 외국인 기념관이다.
5개의 전시관으로 나뉘어 장보고에 관련된 유물과
생애에 관한 모든 것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꾸며놓았다.
적산법화원에서 바다쪽을 향해 바라보면 산 정상에 거대한 뒷 모습의 적산 명신이 보인다.
일명 바다의 신으로 많은 사람들이 바다에 나가기 전에 안전을 기원하며 불공을 드리던 신이다.
명신은 바다를 향해 앉아 굽어보면서 뱃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품어주면서 풍어를 기약했을성 싶다.
산이 붉은 색을 띠고 있어 적산이라 했다. 높이 50미터 크기의 거대한 동상이다.
동상을 이리도 크게 만들었는지 그들은 대륙적 기질을 살려 무얼 만들어도 무조건 크게 만들고 본다.
절의 부처님 조각상도 엄청 크게 만들어 올려다 보도록 규모를 자랑한게 특징이다.
산동성에 200여 주요 관광지가 있다.
그중 적산 법화원을 중심으로 한 이곳 석도는 동쪽 끝에 위치한 지역이라서
특별한 자랑거리가 아니면 관광객이 일부러 찾아올 수 없는 곳이라 한다.
마침 당나라시대 장보고의 유적지가 있어 중국에서 의욕적으로 개발하여 만들었으니
장보고 장군의 위상이 어떠한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또한 우리나라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에 한국에서 많은 관광객이 찾아들고 있어 중국인들의 발상이 맞아 떨어졌다 할 수 있다.
뱃길로 한국과 중국 간 가장 가까운 곳인
산동성에는 어느지역보다 많은 한국인이 거주하고 있다.
인구 850만을 자랑하는 청도시에 우리 기업이 많이 상주하고 있으며 중국에 진출하는 전진기지와 같다.
현대자동차와 IT 기업 삼성이 자리하고 있어 뿌듯한 마음이다.
산동성 특히 청도시는 한국인이 제일 많이 거주하는데 거리를 다녀보면 한글로 된 간판이 여기저기 눈에 띠었다.
그 유명한 청도맥주(칭다오맥주)를 이곳에서 본다. 맥주공장에 들렀다.
공장에 가는 길목 대로변이 온통 맥주 간판으로 뒤덮인 거리이다.
금년에도 이곳에서 세계 맥주 시음회를 갖는다고 한다. 각국의 내로라하는 맥주를 한자리에서 맛볼 수있다.
현지에서 1캔에 600원 가량하는 맥주가 서울에서 6,000원을 받는다며
일행 중에 청도맥주를 사려고 벼르는 사람이 있어 웃음을 자아냈다.
공장을 견학하는데 입장료가 2만원이다.
이렇게 비싼 입장료를 외국인을 상대로 받는 그들이다. 현지인에게도 똑같이 받는다지만 확인해 보진 않았다.
본전을 뽑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시음 맥주를 주는대로 받아 마셨다.
기껏해야 두 세 잔인데, 톡쏘는 맛이 아리하며 도수가 높은 것이 우리 맥주와 다른 것 같다.
술 이야기가 나왔으니, 중국의 고량주는 지역마다 고유의 술이 있다.
예전 중국을 여행할 때에는 식당에서 맛본 술은 거의 40도 이상의 고량주가 주류였는데
지금은 낮은 도수가 출시되어 29도 32도 등 고유의 향을 살리면서 마시기 좋도록 만들고 있었다.
둘째날이던가, 지방 명주라며 고량주 영성장군주가 저녁식사에 함께 올랐다.
중국 고량주의 독한 술 이미지와 달리 우리의 소주처럼 맛이 순하고 향이 좋아서 모두가 홀짝 홀짝 잘 마셔댔다.
그런데 다음날 모두 힘이 들어 보여 알고보니 32도 짜리 술이었다. 물처럼 마셨으니 과음할 수 밖에 ...
이곳에서 몇몇 지역을 다니는 동안 각각 다른 술을 마셔보았지만
향과 도수가 제각각이어 다른 맛과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마지막 날 연태시를 지나오면서 우리나라에서도 널리 알려진 연태주가 있기에 이걸 기념으로 구입하였다.
반가운 대룡훼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여전히 보따리 상인들이 영성항 대합실에 가득하다. 대부분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우리나라 상인들이다.
선상의 저녁식사는 따로 별실을 마련해주었다. 회사측에서 특별요리를 내놓았다.
그런데 여기에 중국측 대룡훼리호 합자회사 부사장이 참석하였는데
사회주의의 독특한 체제하에 부사장이 배에 올랐으니 아랫사람들이 안절부절이다.
공무시간임에도 대낮부터 마시기 시작한 술이 저녁까지 이어졌다한다.
이배의 간부들 모두가 부사장과 함께 마신 술에 나가 떨어지고 , 대취한 그가
우리 일행에게까지 술을 권하여 별수없이 받아 마셨야 했다. 권하면 마시는게 끈끈함의 표시란다.
일체감을 원칙으로 하는 이들과 술자리를 거부하면 안될 분위기이다.
출항시간이 다 되가는데도 부사장이 배에서 뭍으로 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자 승무원들이
좌불안석 결국 붙들고 사정하여 자리에서 일어나 헤어졌다.
선실 휴게실에서 장기를 두는 사람들과
삼삼오오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한담을 나누는 사람들로 평화로워 보인다.
대룡훼리호는 밤물결속에
서해바다를 순항하며 평택항으로 향하고 있다.
갑판에 나서니 깊어가는 밤하늘의 별자리는 한층 빛을 발하고, 쌀쌀한 바람은 귓전을 때리고 있다. - j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