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전 항복조인식에 목발 짚고 참석한 그 외교관
영화 ‘암살’(감독 최동훈)은 일제강점기 상하이를 배경으로 친일파를 처단하는 독립투사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1945년 9월 2일, 일본 도쿄만에 정박 중이던 미국 전함 미주리호에서 일본의 항복조인식이 열렸다. 당시 일본 정부를 대표해 외무상 시게미쓰 마모루(重光葵: 1887~1957년)가 목발을 짚고 다리를 절며 조인식에 참석했다. 영화에서는 “윤봉길 의사의 의거(1932년 4월 29일)에 의해 (시게미쓰 마모루가) 다리를 절게 됐다”는 대사가 나온다.
항복 문서 조인식.
“목발 외교관 걸음걸이에서 불구가 된 일본 이미지”
이와 관련해 미국의 일본사 연구 권위자인 존 다우어 MIT 명예교수는 일본의 패전 이후를 묘사한 명저 ‘패배를 껴안고’(2009년)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항복 문서에 조인한 일본 관리는 두 명이었다. 한 명은 제국 육군을 대표하는 우메즈 요시지로(梅津美治郞) 장군이었고, 다른 한명은 제국 정부를 대표하는 외교관 시게미쓰 마모루였다. 한 조선인(윤봉길)이 일본의 식민 통치에 항의하여 감행한 1932년의 폭탄 공격에서 한쪽 다리를 잃은 시게미쓰가 파도에 흔들리는 미국 전함의 갑판 위를 불편한 걸음걸이로 나아가는 모습은 불구가 된 연악한 일본이란 이미지를 생생하게 전했다.>
존 다우어 교수는 지난 5월, 전세계 역사학자 187명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역사관을 비판하는 집단성명서에 이름을 올린 저명한 학자다.
시게미쓰(重光)라는 성을 쓰는 롯데 집안
영화와 책에 등장하는 시게미쓰 마모루라는 인물은 최근 2세 경영권 승계를 두고 ‘형제의 난’에 휘말린 롯데그룹과 관련이 있다. 롯데그룹 오너 집안의 일본 성이 ‘시게미쓰(重光)’이기 때문이다.
일본롯데 경영에서 밀려난 신격호 총괄회장의 장남 신동주 전 부회장의 일본 이름은 시게미쓰 히로유키(重光宏之). 한국롯데를 책임지는 차남 신동빈 회장은 시게미쓰 아키오(重光昭夫)다. 신격호 총괄회장의 일본명은 시게미쓰 다케오(重光武雄)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7월 29일 롯데창업주 2세들의 경영권 쟁탈전을 두고 ‘시게미쓰 일족의 난(亂)’이라고 표현했다.
신동주, 신동빈 두 사람의 어머니는 다케모리 하츠코(竹森初子)라는 일본 여성이다. 하츠코씨는 신격호 총괄회장(시게미쓰 다케오, 重光武雄)과 결혼 후 남편 성을 따르는 일본의 제도에 따라 시게미쓰 하츠코가 됐다.
시게미쓰 마모루.
윤봉길 의사 의거로 다리 잃은 시게미쓰가 신격호 회장 아내의 외삼촌
그런데 이 하츠코씨의 외삼촌이 바로 윤봉길 의사의 의거로 다리 한쪽을 잃은 시게미쓰 마모루(重光葵)다.
이 사실은 17년 전 한 언론인이 쓴 책을 통해서 처음 알려졌다. 1998년 ‘신격호의 비밀’이라는 책이 출간됐다. ‘최초 공개-롯데의 대전략과 벌거벗은 인생 전부’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의 저자는 정순태씨다. 정씨는 부산 국제신문 기자를 거쳐 경향신문, 중앙일보, 월간조선 편집위원을 지낸 원로 언론인이다.
신격호 총괄회장은 1922년 10월 4일 경상남도 울산군 상남면 둔기리 377번지에서 아버지 신진수와 어머니 김순필씨의 5남 5녀 가운데 맏이로 태어났다. 신격호 회장은 1933년 4년제이던 삼동공립보통학교(현재의 삼동초등학교)를 졸업(5회)했다.
신격호 회장, 시게미쓰 다케오(重光武雄)로 창씨개명
책 출간과 관련해 삼동초등학교를 방문했던 저자 정순태씨는 “5회 졸업생의 경우 졸업생 명부만 보존되어 있을 뿐 성적표 같은 것은 남아 있지 않았다”며 “졸업생 명부에는 신격호의 이름이 시게미쓰 다케오(重光武雄)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썼다.
일제는 1931년 만주사변을 도발한 이후 조선인에게 일본식 이름을 쓰게 하는 이른바 ‘창씨개명’을 강요했다. 신격호 회장도 그렇게 이름을 고쳤다. 신격호 회장은 18세 때 노순화라는 처녀와 결혼했다. 노순화씨는 롯데복지재단 이사장인 신영자씨의 어머니다. 그런데 신격호 회장은 아내를 혼자 남겨놓은 채 1941년 돌연 일본으로 떠났다.
신격호 회장이 일본에서 다시 결혼한 것은 9년 뒤인 1950년이었다. 와세대 고등공업학교(지금의 와세대 대학 이학부) 야간부 화학과를 졸업하고 막 사업을 시작했던 신격호 회장은 그해 9월 3일, 일본 여성 다케모리 하츠코(竹森初子)와 결혼했다. 한국에 배우자를 둔 사람이 중혼(重婚)을 한 것이다. 당시 신격호 회장은 도쿄의 어느 큰 저택 2층 방 하나에 세들어 살고 있었다고 한다. 아내로 맞은 하츠코는 바로 집 주인의 딸이었다. (신 회장의 한국 아내 노씨는 20대의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저자 정순태씨는 ‘신격호의 비밀’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신격호 회장의 측근에 따르면 하츠코의 아버지는 일본 육군 대좌(대령)로서, 1944년 사이판 전투에서 전사했다고 한다. 하츠코의 어머니는 너무 큰 집이라 적적했기 때문에 든든한 세입자를 찾던 끝에 청년 사업가 신격호에게 방을 빌려준 것으로 보인다. 신 회장의 한 측근은 “하츠코 여사의 어머니는 중국 상하이 홍코우(虹口) 공원에서 윤봉길 의사의 폭탄 투척으로 중상을 입은 주중 일본 공사 시게미쓰 마모루의 여동생이다”라고 말했다.>
신동빈 롯데 회장. photo=롯데 블로그
“신격호는 아내의 집안 내력에 대해 언급한 바 없다”
이는 신격호 회장의 아내인 하츠코씨의 외삼촌이 영화 ‘암살’에 잠깐 등장하는 절름발이 외교관 시게미쓰 마모루라는 것을 뜻한다. 정순태씨는 “신격호는 하츠코의 집안 내력에 대해 언급한 바 없다”며 “그러나 신격호의 한 측근은 ‘신 회장이 일본에서 성공한 데는 하츠코 여사의 친정 다케모리(竹森) 가문의 도움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고 적었다.
“신격호 회장과 시게미쓰 마모루의 성이 묘하게 같다”
팩트올은 7월 29일 저자 정순태씨와 통화를 통해 17년 전 ‘신격호의 비밀’ 출간 당시의 상황을 물었다. 정씨는 “신격호 회장과 시게미쓰 마모루의 관계에 대한 대목은 당시 책에서 아마도 처음 공개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신격호 회장(시게미쓰 다케오)과 아내의 외삼촌인 시게미쓰 마모루의 성이 같은 것이 우연치곤 참 묘하다”고 말했다.
두 아들 일본 국적 포기하고 한국으로 귀화 한국 국적 취득
신격호 회장은 일본 국적을 취득한 적이 없다. 창씨개명 당시 쓰던 일본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을 뿐이다. 롯데맨(롯데 손해보험 지점장) 출신의 전업작가 김태훈씨는 ‘신격호는 어떻게 거인 롯데가 되었나’(2014년)라는 책에서 “신격호 회장은 일본으로 귀화한 적이 없다”며 “장남 신동주와 차남 신동빈은 일본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귀화한 후,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고 썼다. 김태훈씨는 롯데그룹의 분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롯데그룹은 튀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무리 개성이 중시되고 창의력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일단 롯데에서는 지나치게 튀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롯데에서는 맡은 일을 성실하고 깔끔하게 하는 사람이 인정받는다. 일을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하는 사람을 최고로 평가한다. 너무 튀지 않으면서 사람들과 어울려서 조용하게 일을 하는 인재가 인정받는 곳이 롯데그룹이다.>
“빠르게 조용하게 일처리 하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말처럼, 롯데는 이번 ‘왕자의 난’도 신속하고 조용하게 처리하려 했다. 이같은 의도와 달리, 사건은 한일 양국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고 있다. 그런데 기존의 국내 언론은 ‘신격호 총괄회장의 비밀’에 대해서는 약속이나 한 듯, 하나같이 침묵을 지키고 있다. 정말 몰라서 그러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