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가 되면 일도 좋지만 일은 적당히 하고 친구도 만나고 여행도 가고 취미생활도 즐기면서 사는 게 멋진 인생이다. 그런데 간혹 주변을 보면 집안에만 있는 사람들이 있다. 배우자의 눈치 보느라 자신이 하고 싶은 활동을 못하는 시니어들이다.
건강이 허락된다면 낮 시간에는 밖에서 활동을 하면서 보람이나 만족 또는 즐거움을 만끽하면 참 좋을 텐데, 배우자가 싫어하니까 그래서 자칫하면 싸움으로 이어지니까, 집이나 동네에서만 있다는 것이다. 행복하고 즐거운 노년생활은 뭐니 뭐니 해도 사람을 만나서 함께 움직이고 소통하면서 보내는 게 최고인데,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못하고 산다면 가정생활이 그야말로 ‘창살 없는 감옥’이라는 말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자식들 다 결혼했고 집안에 달랑 두 사람뿐인데, 하루 종일 서로 얼굴 쳐다보면서 지내는 것도 그리 즐거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노년기로 접어들면서 남편이나 아내 둘 다 시간적 여유가 많아지다 보니 스스로 즐거운 일을 찾아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자기 일이 없는 사람들의 경우 사실 산책이나 운동하고 식사해결과 집안 청소하는 것 외에는 특별히 할 것이 없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갑갑한 생활이다.
나이 들어서 집안에만 갇혀 사는 생활은 아무래도 남성들보다는 여성들에게 불만이 더 크게 나타난다. 그래서 요즘 ‘은퇴 남편 증후군’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젊은 시절에는 직장생활을 해도 자녀들과 집안일 챙기느라 자기만의 여유와 자유시간이 없었던 여성들은 보통 50대가 되면 ‘누구네 엄마’나 ‘누구의 아내’가 아닌 자기 자신을 찾고 싶어하는 욕구가 강해진다. 자신이 배우고 싶었던 것을 배우거나 취미생활을 즐기거나 또 여유롭게 친구들 만나서 수다를 떨고 여행도 다니고 싶어 한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한다. 바로 은퇴 후 집에서만 맴도는 남편이다.
“여보 어디가?”, “누구 만나는데?”, “밥은?”, “몇 시에 오는데?”
이쯤 되면 부부 사이에 트러블이 생기기 마련이다. 물론 은퇴한 남편들이 다 이렇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의외로 많다는 거다. 그래서 생겨난 우스갯소리도 있다. 은퇴 후 여성에게 필요한 다섯 가지는 돈, 건강, 딸, 친구, 강아지란다. 반대로 은퇴한 남편에게 필요한 다섯 가지는 아내, 와이프, 처, 마누라, 안사람이란다. 그래서일까. 어떤 남편들은 아침 눈 뜨고 나서 잘 때까지 마누라만 졸졸 따라다닌다고 한다. 산책 갈 때, 공과금 내러 은행 갈 때, 시장 갈 때, 자식들 집 반찬 갖다 주러 갈 때 등등. 오죽하면 ‘삼식이’를 넘어 ‘종간나세끼’라는 유머까지 있을까. 하루 종일 집안에 있으면서 밥 세 끼 챙겨먹은 것은 물론이고 간식까지 챙겨먹는 남편을 지칭하는 말이란다. 아내들 입장에서는 얼마나 스트레스 받으면 또 이런 말까지 생겨났을까?
남편 때문에 스트레스 받고 외부활동 하고 싶은 대로 못하는 아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은퇴한 남편들 중에도 아내의 잔소리와 간섭 때문에 짜증이 나고, 스트레스가 쌓인다는 이들도 있다. 이를테면 아내의 지나친 간섭 내지는 남편에 대한 타박을 하는 경우다.
“나가면 돈 쓰지. 한 푼이라도 아껴야 사는데.”
“늙어서도 밖으로만 돌아? 그러려면 아예 나가 살아.”
“그놈의 술 담배는 왜 못 끊어?”
“지금 몇 시인데 아직도 거기야.”
이렇게 되면 남편도 자기 취미생활이나 외부활동을 하기 힘들다. 결국엔 가정에서의 갈등 원인이 된다.
노년기의 부부가 서로 돕고 이해하는 파트너십을 유지하면서 서로의 자유를 허락하려면 남성만이 아니라, 여성도 상대에 대한 배려나 이해가 필요하다. 서로의 지나친 간섭과 구속 때문에 심각한 일로 확대되는 경우도 많다. 매스컴을 통해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황혼이혼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 어렵고 힘든 시절도 함께 잘 극복하고 살아왔는데, 나이 들어서 상대에게 미움 받는 존재가 되어서 등 돌리는 것은 서로에게 안타까운 일이다. 또 이혼이 아니더라도 노년기에 부부 간 갈등이 깊어져 싸움을 자주 하게 되면 치명적인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부부싸움을 하면 기분을 상하게 할 뿐만 아니라, 건강에도 해롭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의 배우자가 때때로 비우호적이라고 생각하여 싸움을 자주 하는 이들일수록 심장질환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한다. 조기사망의 위험도 증대시킨다고 하니 노년기 부부갈등은 가능한 한 없어야 되고, 서로에게 자유를 허락하는 일이 아주 중요하다.
그렇다면 노년기에 서로 구속하지 않고 싸우지 않으면서 서로 이해하고 도와주며, 또 각자의 자유를 허락하면서 오래된 친구처럼 그렇게 다정한 부부의 관계를 유지하는 좋은 방법이 없을까? 부부라고 해서 서로의 모든 것을 소유하려 하거나 간섭하려고 하면 한쪽은 반드시 힘들어진다. ‘내 남편’, ‘내 아내’라는 끈끈한 정과 사랑도 소중하지만 배우자를 ‘한 사람’, ‘인격체’로 인정하고 대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미국의 정치가이자 작가였던 벤저민 프랭클린은 ‘사랑받고 싶다면 사랑하라. 그리고 사랑스럽게 행동해라’고 했다. 진정한 사랑은 내가 먼저 표현하되, 사랑받을 수 있게 행동하는 것이다. 소유와 구속이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면서 상대의 단점까지도 먼저 끌어안을 수 있는 힘이 사랑인 것이다. < ‘살아있는 동안에 한 번은 꼭 해야 할 것들(박창수, 새론북스, 2017)’에서 옮겨 적음. (2019.05.05. 화룡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