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창기의 우키요에는 에도에(江戸絵)라고 불리었다. 각 지방에서 에도에 온 사람들은 기념품으로 우키요에를 사가면서, 곧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우키요에는 에도의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었으므로 ‘에도’ 하면 우키요에를 선뜻 생각해 낼 수 있는 것이었다. 에도는 오사카와 교토와 함께 일본의 3대 도시였고 에도는 특히 이 둘과는 달리 짧은 역사를 가진 도시이어서 전통에 얽매이지 않았다. 그래서 자유로운 미술 장르인 우키요에가 발전을 할 수 있었을 듯하다. 또한 다색으로 찍어내는 판화 기술의 발달로 강렬하고 화려한 분위기를 주는 우키요에의 인기가 더욱 드높아 질 수 있었다.
에도 시대는 ‘사공농상’ 의 엄한 신분 제도가 있었고 상업이 번창하여 유통 경제가 발달하였는데, 상공인 들이 힘을 갖게 되고 그 들은 三都나 城下町에 모여 살았다. 이 때의 지배 계급인 무사의 문화와 전혀 다른 특징을 지닌 도시 상공인 들을 쵸닌(町人)이라 하는데, 그들만의 문화인 쵸닌의 문화가 발달하였다. 쵸닌 들은 이 세상이 ‘덧 없는 곳’이라 생각하였다. 그래서 쵸닌 문화에는 소설, 하이카이, 가부키, 우키요에 등 사람들의 마음을 밝게 표현하는 것이 생겨났다. 특히 우키요에시, 즉 우키요에를 그린 화가 들은 주로 민간의 화가 들이었으며, 당시의 첨단을 걷는 풍속이나 화재에 왕성한 호기심을 갖고있었다. 새롭고 신선하며 기발한 표현 방법을 연구하고 전개했다. 에도 시대에는 기녀 들이 모여 있는 곳과 가부키 극장이 밀집된 지역인 ‘악소(惡所)’ 라는 거리가 있었다. 그 곳에서 사람들은 높고 낮은 신분관계에 상관하지않고 현실에서 벗어나 마음대로 미의식을 추구하고 행동 할 수 있었다.
(2) 우키요에 용어에 대한 설명
17세기 후반, 에도 시대에 ‘이하라 사이카쿠’라는 작가가 새로운 스타일의 소설 ‘우키요조시(浮世草子)’ 를 발표해 큰 인기를 누렸다. 우키요에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유행을 하였다. ‘우키요’ 라는 말은 근세 이전에는 ‘憂世’라 표시하였다. 그 시절의 염세주의 적인 불교적 인간관에 입각하여 ‘이 세상은 근심 걱정이 가득 차 있는 허무한 세상이다’ 는 뜻으로 파악하였다. 그러나 근세에 들어서자 보통 사람 들은 ‘성불하기도 어렵고 어차피 세상은 뜬 세상이니까 짧은 인생을 들뜬 기분(浮き)으로 신명 나게 세상(世)을 즐기며 살아가자’ 라는 밝은 느낌의 분위기로 바뀌었다. 뿐만 아니라, 지금 현재의 풍속이나 사고 방식 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당시의 시대적 기운에 편승하여, 우키요란 당대의 좋은 것, 앞서가는 생각이라는 의미를 포함하는 말이 되었다.
(3)우키요에의 용도와 주제
다색으로 찍어내는 판화 기술의 발달로 강렬하고 화려한 우키요에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대게 유곽의 기녀 들과 가부키 배우들, 스모 선수들, 미인과 미남의 초상, 그 밖의 인물들이다. 또한 인물 말고도 풍경, 새 , 풍속을 담은 우키요에도 있다. 배우들과 기녀들, 특히 미인화에는 주로 기녀 들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 주를 이루었다. 또, 가부키 배우 그림은 야쿠샤에라 하였다. 가부키 배우 들이 무대에서 연기를 하는 모습을 초상화로 그리거나, 제일 감동적인 장면을 그림으로 표현하였다. 시간이 지나 에도 시대의 중기에는 인물 이외에도 유곽의 풍속이나, 초닌과 무사의 일상의 풍속화 등등이 늘어난다. 또한 남녀의 뜨거운 사랑 장면 (일본의 기념품 중 그릇이나 컵 등에 많이 그려지는 그림 들), 춘화, 특정한 장소, 명소, 역의 풍경, 산의 풍경 등이 많이 등장하였다. 이로 인해 우키요에가 단순히 회화를 감상하는 기쁨 뿐만이 아니라 시사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기능도 하였다. 특히 사진이나 비디오 등의 영상 매체가 없던 시절에, 명소의 특색과 현실을 잘 반영하여 제작한 우키요에는 그 지방 특색을 잘 알려주는 뉴스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였다. 또 한 유명인이 죽은 직후 초상을 그려 , 생전의 업적이나 임종 때 지어서 남긴 와카나 하이쿠를 기재하여 추도의 뜻을 표현하는 우키요에도 제작하였다. 그리고 일본의 역사적 영웅을 소재로 하는 우키요에도 제작되었다.
(4)우키요에의 제작 과정
에도는 18세기 중엽 천연색 목판화의 등장과 시기를 같이하여 괄목할 만한 문화의 자율성을 갖추게 된다. 판화가 에도에서 생산되던 유일한 미술 형태는 아니었지만 가장 보편적인 것이 판화였다. 우키요에는 판화 형식으로 제작되는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대량생산 과정을 거친다. 우키요에는 우스개 이야기 집인 게사쿠 (에作)나 그림 책인 에혼(絵本) 등의 오락 서적으로 출판된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출판물로 기획되므로 총 기획을 담당하는 발행인과 판화를 제작하는 에시(絵師), 호리시(彫し), 스리시(摺師) 등이 참여한다. 에시는 화가로서 판화의 그림을 담당하고, 호리시는 그림을 목판에 붙이고 칼로 목판을 파는 일을 담당하고, 스리시는 목판에 먹과 물감을 칠하여 종이를 덮어 그림을 찍어내는 일을 담당한다. 판화의 작업 중에 에시는 밑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끝나고 그 이상은 간섭하지 않는다. 우키요에 판화 작품에 발행인과 에시의 이름은 명기되어 있지만 호리시나 스리시의 이름은 거의 명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의 판화를 완성하는 데 분담하는 역할에는 큰 차이가 없이 모두가 중요한 것이다.
(일본 전통 문화론-박전열, 이영 p 233~234)
(일본 전통 문화론-박전열, 이영 p 225, 230~232)
(에도 시대의 일본 미술 – 크리스틴 구스 p 124~125)
(일본의 문화와 예술- p 198 구정호)
(일본 전통 문화론-박전열, 이영 p 224)
(알기 쉬운 일본사-경성 대학교 출판부 p 69, 72, 76~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