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해운동 ‘월영대(月影臺)‘ 한시(漢詩)편 8.> 총10편 中 고영화
월영대(月影臺)는 경상남도 기념물 제125호인데 높이 약 2m의 자연석에 ‘月影臺’ 석자가 해서체로 새겨져 있다. 글자 한자의 크기는 약 24㎝이다. 신라 말 최치원(崔致遠)이 소요하던 곳이며, 최치원이 친히 각석하였다 전하나 고증할 수가 없다. 현재는 해안에서 얼마간 떨어져 있으나 옛날에는 그 아래가 바로 백사장이어서 합포만의 승경을 즐길만한 곳이었다. 『삼국사기』 열전에 최치원이 “합포현 별서(別墅 한적한 곳에 지은 집)에 머물렀다”는 기록이 있는데, 합포현 별서가 바로 이 월영대 근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1932년 최씨 문중에서 정자각을 지어 월영대를 보호하면서 그의 유허비도 같은 장소로 옮겼다.
● 쌍매당(雙梅堂) 이첨(李詹 1345~1405)은 여말선초의 문신이다. 1375년(우왕1) 우헌납에 올라 권신 이인임을 탄핵했다가 하동에 유배된 적이 있었고 1394년(태조3) 3월 장님 이흥무(李興茂)의 진술에 관련되어 마산(馬山) 합포(合浦)로 귀양 갔다가 그해 10월달에 7개월 만에 풀려났으나 1396년이 되어서야 서울로 돌아갔다. 합포 유배 時에 월영대에 들러 시편을 남겼는데 이후 이 시를 보고 많은 이들이 차운하여 시를 지었다.
37) 쌍매당(李詹)이 월영대 시에 차운[次雙梅堂月影臺詩] / 이육(李陸 1438~1498)
書生過此尙含羞 서생이 여기 오면 여전히 부끄러운데
將士腐心知幾秋 장사가 애태운 것 몇 년인지 알겠네
直欲張帆仍制梃 곧바로 돛 펼치고 방망이 만들어서
奉天問罪海東頭 왕명 받아 동해에서 죄를 묻고 싶어라.
38) 월영대 및 헌에 차운[次月影臺及軒韻] 昌原 / 황준량(黃俊良 1517∼1563)
快馭長風海上來 해상에서 먼 바람이 상쾌하게 불어와
仙臺愁霧到頭開 신선의 누대에 근심스런 안개를 활짝 걷어 낸다.
孤雲飛去還無日 고운이 날아갔으나 머지않아 돌아올 것이고
明月虧來滿幾回 이지러진 밝은 달도 보름달로 얼마나 돌아왔더냐.
故國煙荒空寄恨 고향의 연기 황폐하니 부질없이 한탄하는데
殘碑字缺孰剜苔 남은 비석에 새긴 글자 위 이끼 누가 깎아냈나?
英雄登眺無今古 올라 바라본 영웅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어
繼作淸遊莫放杯 고상한 유람 계속 이어지니 술잔을 놓지 말라.
壠麥抽胎杏子酸 보리밭에서 아이가 따온 살구열매는 맛이 시큰한데
天涯春盡客憑欄 변경에 봄이 다 가도록 나그네는 난간에 의지했다.
根封氷雪年午冷 얼음과 눈은 뿌리에 쌓이고 신년의 한낮에도 쌀쌀하니
影落雲天一鑑寒 하늘 구름이 차가운 수면에 그림자 드리우네.
謝眺好遊山屐遍 사조(謝眺)는 산에 나막신을 신고도 두루 노닐며 즐기었고
休文多病帶圍寬 심약(沈約)은 병이 많고 여위어 항상 허리띠가 헐렁하였다.
鳴琴幸會神交客 거문고 울리는 행복한 모임에서 나그네와 정신적으로 교감하니
十載風期話未闌 십년 동안의 깊은 우정으로 대화에 막힘이 없었네.
[주1] 사조(謝眺 464~499) : 육조(六朝) 시대의 시인, 자는 현휘(玄暉)이며, 특히 오언시(五言詩)를 잘 지었다. 선성태수(宣城太守)로 북루(北樓)를 세웠다. 사조루(謝眺樓), 사공루(謝公樓)라고도 한다. 사공루는 사조가 선성 태수(宣城太守)로 있을 때 지었다. 이백의 〈기최시어(寄崔侍御)〉에 “고인은 누차 진번의 걸상을 풀고, 과객은 사조의 누각에 오르기 어려워라.〔高人屢解陳蕃榻 過客難登謝眺樓〕”하였다.
[주2] 심약(沈約) : 자(字)가 휴문(休文)이고 양(梁)의 문장가인 심약은 몸이 약하여 늘 앓았는데, 그의 친구인 서면(徐勉)에게 준 편지에 “요즘 병이 더욱 심하여 백여 일 동안에 몸이 야위어 허리띠 구멍이 넓어지고 한 달 동안에 팔목이 반 푼이나 줄었다.” 하였다.
39) 월영대[月影臺] / 정지상(鄭知常 ?~1135)
碧波浩渺石崔嵬 아득히 푸른 물결 위에 우뚝 솟은 바위
中有蓬萊學士臺 그 중에 봉래 학사님 노닐던 누대 있네
松老壇邊荒草合 단 옆에 소나무 늙어 가고 잡초만 무성한데
雲低天末片帆來 하늘 끝 구름 나직하니 조각배 떠오는 듯
百年文雅新詩句 백년의 문아 뒤에 나온 새로운 시구요
萬里江山一酒桮 만 리의 강산 위에 한 잔의 술이로세
回首雞林人不見 돌아보면 계림에 사람은 보이지 않고
月華空照海門廻 달빛만 공연히 해문을 비치며 배회하네
40) 주포(珠浦) 월영대(月影臺) / 주세붕(周世鵬 1495∼1554)
海上層臺景最奇 바닷가 층대는 경치 가장 기이한 곳
照波明月幾盈虧 물결에 비치는 달은 몇 번이나 차고 이지러졌을까
不須更詠孤雲句 꼭 최고운의 시 다시 읊을 것이 없으니
今古賢才各一時 고금 훌륭한 인재 각기 한 때인 것을
[주] 주포(珠浦) : 지금의 경남 마산시 합포(合浦)구이다.
41) 창원 벽상에 차운[次昌原壁上韻] 최고운을 생각하며 / 박선장(朴善長 1555∼1616)
仙遊無迹不知年 언제인지 알 수 없는 때, 노닐다 간 신선의 자취 없고
碧海呑天月半邊 하늘이 삼킬 듯한 푸른 바다에 보름달이 떠오르네.
欲遣睡魔成一夢 심한 졸음을 견디지 못해 한바탕 꿈을 꾸었는데
羽衣中夜儻蹁躚 한밤중에 날개옷 입고 갑자기 너울너울 춤을 추구나.
● <월영대기[月影臺記]> 허목(許穆 1595~1682)
월영대는 창원부(昌原府) 관아에서 서쪽으로 30리 지점 합포(合浦)의 옛 보루(堡壘) 옆에 있는데, 망망대해를 마주하여 서쪽 언덕은 바다에 막혀 있고 동쪽으로는 웅산(熊山. 진해 불모산 옆에 있는산)을 바라보고 있다. 매월 기망(旣望. 음력16일)의 초저녁에 밀물이 들어올 때 월영대에 올라 달그림자를 구경하니, 달이 바다에서 떠올라 산에 가려 그림자를 이룬다. 달그림자는 바다에 있다가 달이 97억 3만 8천 척(尺) 남짓 올라가 극에 달하여 달이 산을 벗어나면 바다에 비친 그림자가 없어진다. 내가 일찍이 동해 밖 수평선에서 달이 떠오르는 것을 바라본 적이 있는데, 달이 뜰 때에 그림자가 없었고 바다 물결이 모두 밝아 이곳의 경치와 달랐으며 형상도 모두 기이하였다.
신라의 역사를 보니 진성여왕(眞聖女王) 때 최치원(崔致遠)이 처음에 당 희종(唐僖宗)을 섬기다가 천하가 혼란해질 것을 알고 당나라를 떠나 본국으로 돌아왔는데, 신라 역시 정국이 나빠져 마침내 세상을 버리고 은둔하였다. 이에 닭을 잡고 오리를 친다(先操鷄後搏鴨. 왕건이 먼저 신라를 정복하고 뒤에 압록강을 취하게 됨을 예언)는 말이 있었고, 삼국사기 최치원전(崔致遠傳)에 최치원이 월영대에서 노닐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현재 창원 지방에 전해지는 최학사(崔學士)의 고사를 말한 야담이 있는데, 모두 괴이하고 황당하여 믿을 것이 못 된다. 또 창원의 풍속은 음사(淫祀)를 숭상하여 월영대 위에서 무당들이 날마다 북을 치고 종잇조각을 걸어 놓고서 기도드리고 제사하는데, 때때로 신령한 효험을 얻는다고 한다. 하지만 바다 귀퉁이라서 입증할 만한 문헌이 없다. 그 옆 바닷가에는 고운대(孤雲臺)가 있는데 후세의 호사가(好事家)들이 이렇게 이름 붙였을 것이다.
[주註] : 미수는 47세 때에 월영대를 찾았다.
[月影臺 在昌原府治西三十里合浦古壘傍 當大海西畔隔海 東望熊山 每月旣望初昏 海潮方滿 登臺觀月影 月出海 萆山成影 月影在海中 積九十七億三萬八千尺有奇而極 月離山則影散 余嘗於東海外極天垠 望月出 月出無影 海波皆明 與此景相殊 狀皆爲異 觀新羅史 眞聖時 有崔致遠 初事唐僖宗 知天下亂 去歸國 又新羅政衰 遂遺世逃隱 於是有操鷄搏鴨之語 其傳稱致遠遊月影臺云 今昌原有俚語相傳言崔學士古事 皆怪誕不足信 又其俗尙淫祀 於臺上 巫覡日擊鼓掛紙牋以禱祀 往往得靈異云 海隅無文獻可徵 其傍海上 有孤雲臺 蓋後世有好事者名之也]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해운동 ‘월영대(月影臺)‘ 한시(漢詩)편 7.> 총10편 中 고영화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해운동 밤밭고개로 442 위치한 월영대(月影臺)는 신라 말기 문창후(文昌候) 해운(海運) 최치원(崔致遠)선생이 대(臺)를 쌓고 해변을 소요(逍遙)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친 곳이다. 조선초 초기 학자 이첨(李籤)의 시에 『숲 끝에 집 짖고 월영대를 거닐었네』하였다. 이는 최치원이 산사(山寺)를 두루 다니다가 마지막 정착지로 이곳을 택하여 가족과 더불어 살다가 신라 멸망을 예견하고 합천 해인사(海印寺)로 들어가셨다. 최치원 선생이 돌아가시고 그의 학문과 인격을 흠모한 고려, 조선조때 많은 선비들이 이곳을 찾게 되니 이곳은 우리나라 선비의 순례지가 되었다. ● 고려 문신 정지상, 명종때 학자 김극기(金克己), 고려 충선, 충숙왕때 채홍철(蔡洪哲), 고려후기 학자 안축(安軸), 조선 초기의 대학자 이첨, 태종때 문신 정이오(鄭以吾), 세조때 문신 박원경, 조선 중기의 대학자 퇴계(退溪) 이황(李滉), 선조때의 의사(義士) 정문부, 조선조 후기의 박사해(朴師海), 손기양(孫起陽), 이민구(李敏求), 신지혜 등이 이곳을 순례하고 남겨 놓은 시문이 『동문선』(東文選), 『여지승람』(與地勝覽)에 남아 있다. 해서체(楷書體)로 월영대라 새겨진 입석이 있는데 최치원의 친필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월영대의 입석이 있는데 세자(細字)는 판독이 불가능하다고 하였다. 조선조 숙종 17년에 최위(催瑋)가 창원도호부사로 부임하여 이『대(臺)』를 정화하고 『천세만세에 유린되지 말라』고 한 유허비(遺墟碑)를 동편 중앙에 세웠고, 서편에는 1930년경에 최씨 문중에서 추모비를 세워 팔작지붕 비각 안에 안치하였다. 『삼국사기』『보한집』(補閑集)『역옹패설』(轢翁稗說)『신증동국여지승람』 (新增東國輿地勝覽)『동문선』(東文選)『읍지』(邑誌) 등 많은 기록을 상고해 보면 그 경관이 아름답고 고려 조선조에 이르는 천여년 동안 많은 선비, 시문학에 대가들이 최고운의 학덕을 흠모하여 끊임없이 찾아준 아름다운 바닷가의 대(臺)였던 것이다.
31) 월영대(月影臺) / 김극성(金克成 1474∼1540)
孤雲千載我登臺 천 년 전 고운이 놀던 대에 올랐는데
何處江山酹一杯 강산 어느 곳에서 한잔 술을 따를까
世事看來今又甚 보아하니 세상일은 이제 또 심해지니
一區風月不須哀 한 구역의 바람과 달이 슬퍼할 리 없네
32) 월영대(月影臺) / 이황(李滉 1501~1570)
老樹奇巖碧海堧 늙은 나무 기이한 바위 푸른 바닷가
孤雲遊跡總成烟 고운이 노닌 자취 모두 연기 되고 말아
只今唯有高臺月 이제 다만 높은 대에 달만이 머물러서
留得精神向我傳 그 정신 담아내어 내게 전해 주누나.
33) 월영대를 지나가며[過月影臺] / 조형도(趙亨道 1567∼1637)
金柱涵波影亘臺 금빛 기둥이 물결에 젖고 그림자는 누대까지 뻗히는데
千秋名勝說今來 오랜 세월 명승지로써 지금까지 언급된다.
崔仙去日桑應種 지난날에 최고운 신선이 뽕나무를 심었다하나
不識昆明幾劫灰 곤명을 살펴보니 몇 번이나 큰 화재를 겪었는지 모르겠네.
34) 월영대(月影臺) 창원(昌原) 남쪽 해항(海港)의 언덕 위에 있는데, 최치원(崔致遠)이 노닐었던 곳이라 한다. / 이식(李植 1584∼1647)
峽拆輸溟漲 협곡의 물 쏟아져 곧장 대해(大海)로
千峯鏡裏來 거울 같은 물속에 천 산의 봉우리 담겨 있네
孤雲無處所 고운이 머물던 곳 찾을 길 없고
明月只亭臺 누대의 밝은 달만 예전처럼 비춰 주네
劫盡神仙死 멀고 먼 그 옛날 신선은 가셨지만
名垂宇宙開 온 천하에 전해지는 그분의 명성
平生慕遺響 평소 남기신 글 사모하여 왔는지라
撫跡一徘徊 자취 어루만지며 서성이노라
35) 월영대(月影臺) / 채홍철(蔡洪哲 1262∼1340)
文章習氣轉崔嵬 문장의 지닌 벼슬이 갈수록 으쓱해서
忽憶崔侯一上臺 문득 최후를 회상하여 한 번 대에 올랐네
風月不隨黃鶴去 풍월은 황학 따라 가지 않았구나
煙波相逐白鷗來 연파는 길이 백구를 보내 오네
雨晴山色濃低檻 비 개자 산 빛이 난간에 나직이 짙고
春盡松花亂入杯 봄 늦어 송화가 술잔에 날려드네
更有琴心隔塵土 진세를 등진 거문고의 뜻이 있으니
他時好與雨雲迴 일후에 비ㆍ구름과 함께 좋이 다시 찾으리
36) 월영대(月影臺) / 서거정(徐居正 1420∼1488)
月影臺前月長在 월영대 앞에 달은 길게 있건만
月影臺上人已去 월영대 위에 사람은 이미 갔네
孤雲騎鯨飛上天 고운이 고래를 타고 하늘로 올라간 뒤
白雲渺渺尋無處 흰 구름만 아득하여 찾을 곳이 없구나
孤雲孤雲眞儒仙 고운이여, 고운이여, 당신은 진정 유선
天下四海聲名傳 천하 사해에 명성을 전하였네
高駢幕下客如織 고변 막하에 손들이 많건마는
才氣穎脫黃巢檄 토황소격으로 재기를 뽐내었고
孤雲學士詩告別 고운 학사가 송별시에 일렀으되
文章感動中華國 문장이 중화국을 감동하였다고
東還時運何崎嶇 본국에 돌아오니 시운이 기구하여
雞林黃葉寒颼颼 계림의 황엽이 차게 우수수 했것다
英雄失志知何爲 영웅이 실의하니 이를 어찌하리
永與綺皓相追隨 여생을 길이 상산사호와 짝하여
伽倻山中藏鳴湍 가야산 중의 여울 속에 숨으락
海雲臺上騎笙鸞 해운대 위에 피리불며 난새를 타락
江南山水牢寵畢 강남의 산수를 다 제것으로 만드니
江南風月無閑日 강남의 풍월이 한가한 날 없었네
一自孤雲去不還 고운이 한 번 가고 아니 돌아온 뒤
萬古自如唯江山 만고에 그대로 있는 건 오직 강산뿐
今人空自說孤雲 지금 사람 부질없이 고운을 말하나
幾人得見孤雲墳 몇 사람이 고운의 무덤을 보았는가
飛昇已作上界眞 날아 올라가 상계의 신선이 된 뒤
桑田滄海今千春 상전이 벽해되어 지금에 천년
我來擧酒酹西風 내가 와 술을 들어 서풍에 제하며
欲喚孤雲一笑同 고운을 불러다 함께 한 번 웃고자
摩挲短碣立斜陽 짧은 비석을 어루만지며 석양에 섰노라니
孤雲不來空斷腸 고운은 오지 않고 부질없이 애만 끊이네
[주] 계림(鷄林)의 황엽(黃葉) : 최고운이 신라의 말기에 고려 태조에게 보낸 글에, “계림의 누른 잎, 곡령의 푸른 솔[鷄林黃葉, 鵠嶺靑松].”이란 문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