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歸去來辭
돌아가리로다. 인생이 南柯一夢인데 어찌 돌아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당나라 때 순우분(淳于棼)은 집 남쪽에 커다란 홰나무가 있었는데, 어느 날 친구들과 나무 아래에서 술을 마시고 처마 밑에서 잠이 들었다. 잠에서 괴안국(槐安國) 사신을 따라가서 국왕의 환대를 받고, 부마가 되어 남가군(南柯郡) 태수로 20년을 살았는데, 훗날 이웃 나라 단라국(檀羅國)이 침범하여 문득 잠을 깨니, 처마 밑에서 잠들었던 그대로였다. 남쪽 가지 아래 네모난 모양의 개미집이 있어 날이 어두워 다음날 보기로 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간밤에 비바람이 몰아쳐 개미집은 온데간데없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80 평생 살아보니 인생은 남가일몽이었다. 그동안 인심은 저속해지고, 미풍양속은 사라졌다. 나이 스물에 12 시간 통일호 타고 상경한 이래 학업과 직업을 위해 육신의 노예 되어 열심히 살아보았건만 남은 게 별로 없다. 젊어서 기자와 기업체 중역과 대학 교수를 했고, 학문과 의리를 중시한 편이다. 그러나 신시대 사람은 대부분 효도 개념 없고, 옛 풍조엔 관심이 없다. 이런 세태를 한탄해 봐야 무슨 소용 있겠는가. 여우는 죽을 때 머리를 옛 구릉을 향한다고 한다. 首丘初心 이제 고향으로 돌아감이 좋겠다.
언젠가부터 이런 생각을 해보곤 한다. 어느 날 남부터미널에 가서 고향 가는 고속버스를 타게 되리라. 차는 대전 함양 생초를 거쳐 시원히 달려가고, 하늘의 흰구름도 내 마음처럼 달려가리라. 기사에게 길을 물어보면, 생초 지나 진양호 나오고, 진양호 지나면 바로 진주라고 말하리라. 시내로 들어가 비봉산 지나 장재동에 도착하면 저 멀리 촉석루와 남강이 보이리라. 기쁜 마음으로 다리 건너 배건너로 달려가 해인고 지나가면 육거리가 나오리라. 육거리엔 문 앞에서 반겨줄 어머님도 보이지 않고, 동네에서 만날 친구도 없으리라. 길 건너 용환이네 약국도 없어졌고, 오래된 이발소와 구멍가게도 보이지 않는다. 그 크던 추씨네 방직공장도 변해버린 낮선 동네가 되었으니, 60년 세월이 흘러간 것이다. 길가엔 내가 중학생 때 세비리 강변에서 꺾어다 심었던 버드나무는 흔적도 없고, 집은 3층 건물로 바뀌었다. 입구엔 엉뚱한 노래방 간판만 보이니, '고향에 찾아와도 그립던 고향은 아니더라'는 유행가 가사가 되었다.
가눌길 없는 마음으로 육거리 근처를 배회하며 여러 가지 생각에 잠기리라. 이 몸이 세상에 남아있을 날 그 얼마일까. 인생이 끝나감 느끼면서 사람은 가고 산천만 의구함 느끼리라. 문득 어릴 때 오르던 망경산록에 있는 한보 아파트를 바라보면서 거기다 피곤한 몸을 누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리라. 한보 아파트 근처에는 절이 세 개 있다. 월경사, 정법사, 송림사다. 젊어서 불교신문 기자였던 나는 새벽에 일어나 아침예불 참석할 것이다. 매일 108배도 하고, 반야심경도 외울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날 맑으면 지팡이에 짚고 망경산 홀로 거닐 것이다. 강 너머 신안동은 지금 아파트 촌이지만, 옛날엔 넓고 넓은 들판이었다. 봄이면 종달새 울었고, 버들강에 은어가 헤엄쳤고, 나물 캐는 처녀들 노랠 불렀다. 소년은 망경산 정상의 바위에 시를 새겼다. 크리스티나 로젯티의 詩다. 'When I am dead, my dearest(내가 죽거들랑 사랑하는 이여), Sing no sad songs for me(나를 위해 슬픈 노래 부르지 마세요). 이 시는 진주시가 봉수대 만들 때 인부들이 없애버렸지만, 두 번째 절벽 아래 바위에도 詩를 새겼다. 노인이라 위태로워서 가볼 수 없지만, 그 위에다 벚나무 몇 그루 심을 것이다. 추억은 해마다 꽃처럼 피어날 것이다.
객지에 오래 살았으니 친구는 드물 것이다. 늦은 밤 호국사 종소리 친구 할 것이다. 밤 하늘 紫微星 친구하고, 서장대 달빛 친구할 것이다. 들국화와 아침 안개를 친구 할 것이다. 간혹 택시 불러 중앙시장에 가서 해장국 맛볼 것이다. 시장 어판의 민어조기 보면, 언젠가 그걸 맛있다고 이름 물어본 나에게 또 한 마리 구워준 어떤 부인을 생각할 것이다. 밤에 孔府家酒 마시면, 먼저 떠나간 친구들이 그리울 것이다. 사랑했던 사람 생각할 것이다. 三更에 혼자 시구 다듬노라면 달빛은 창 너머로 얼굴을 내밀 것이다. 그러다 세상 떠날 것이다. 인생이 一場春夢이라면, 詩처럼 아름다운 한 편의 꿈이었다고 생각하고 싶다.
첫댓글 일생이란 별것아닌것 아니가요?그저 살다 보면 가버리고 마는것을...일장춘몽이 아닌지요?
그러나 폭풍노도와 같은 이상에 대한 꿈을 꾸었고, 목슴을 걸만치 사랑하던 소녀도 있지않았던가? 그 모든게 남강 모래밭에 그려본 낙서였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