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행 22:1-11절이고, 제목은 “행동하는 지성” 입니다. 바울이 유대인들 앞에서 변명합니다. 먼저 길리기아 다소 출신으로 가말리엘 문하에서 율법의 엄한 교육을 받아 하나님께 열심 있는 자로 자신을 소개합니다. 그리스도인을 박해하고 결박해 오기 위해 공문을 받아 다메섹으로 가던 중, 큰 빛과 함께 자신이 핍박하던 나사렛 예수로부터 음성을 들었는데, 그 빛의 광채로 인해 볼 수 없게 되어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손에 끌려서 다메섹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묵상
오늘은 변명을 빙자하여 간증을 하고 있는 바울을 묵상합니다. 오늘 본문은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치 말고, 무엇이든지 그 시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막 13:11) 라고 말씀해 주신 주님의 가르침이 그대로 성취되고 현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반대자들로부터 심한 구타를 당하여 죽을 위기에 처했으나, 극적으로 살아남은 것을 계기로 로마 천부장의 심문을 받기에 앞서 자신을 변호할 기회를 허락 받습니다. 그리고 이 순간을 자신의 복음 사역에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본문 1절에서 ‘변명’(defense)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여성명사 ‘아폴로기아’(ἀπολογία-apologia)인데, “장소, 시간, 관계 따위에서 분리된, 따로 떨어진”이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전치사 ‘아포’(ἀπό-apó)와 “말씀, 연설, 가르침, 말(word)”을 뜻하는 남성명사 ‘로고스’(λόγος-logos)의 합성어로 “방어하다, 변명하다, 변호하다.”라는 뜻의 동사인’ 아폴로게오마이’(ἀπολογέομαι apologéomai)에서 유래한 단어입니다. 여기서 ‘변명’을 뜻하는 영어 “apology”가 생겨난 것입니다.
사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자신에 대한 오해를 해소하기 위한 변명이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바울 자신이 직접 경험한 나사렛 예수에 대한 ‘간증’에 더 가까운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간증’(干證, testimony)이란, “자신의 종교적 체험을 고백함으로써 하나님의 존재를 증언하는 일”이라고 일반 사전적인으로 정의됩니다. 특히, ‘간증’이 복음 전도와 관련되어 사용될 때에는 일반적으로 다음의 3가지 원칙으로 진행되는 것을 말합니다. 첫째, 예수를 알지 못했던 과거의 삶, 둘째,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된 과정에 대한 설명, 셋째, 예수를 만나서 변화된 현재의 상태를 적절하게 배분하여 증거하는 것을 말합니다.
본문은 그 중에서도 예수를 알기 이전 과거 자신의 상태와 함께 예수를 만나게 된 경위에 대해서 설명하는 장면의 기록입니다. 앞으로도 바울이 여러 차례 자신을 변증하는 비슷한 내용이 전개되는 관계로 오늘은 과거의 자신을 소개하는 부분(3-5절)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다루겠습니다.
첫째, 바울은 길리기아의 다소라는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디아스포라 유대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길리기아’(Κιλικία-Kilikia)는 소아시아(지금의 터어키) 동남쪽 지역으로 “돌을 굴린다, 돌리다.”라는 뜻과 함께, 그 지역에서 나는 염소털로 제작된 옷감을 말하는 ‘씰리씨엄’(CiliCiam)에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바울이 아버지로부터 전수 받은 가업인 ‘천막 만드는 일’(tentmaker)도 이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평평한 바구니”라는 뜻의 ‘다소’(Ταρσός-Tarsós)는 이 지역의 수도로써 바울이 태어난 고향이기도 합니다.
둘째, 과거에 산헤드린 공회원으로 가장 존경받는 대표적인 랍비 중 하나인 가말리엘을 스승으로 모시고, 율법의 엄한 교육을 사사 받은 제자였음을 말합니다. ‘가말리엘’(Γαμαλιήλ-Gamaliḗl)이라는 이름은 “하나님은 나의 상급, 하나님의 보상”이라는 뜻으로, 본래 히브리 이름인 ‘가말리엘’(גַּמְלִיאֵל- Gamlîyʼêl)을 헬라식으로 표기 한 것입니다. 그는 신, 구약 중간기에 활약했던 저명한 진보적 유대교 랍비인 힐렐(Hillel)의 손자요, 그의 문하생으로 당시 유대인들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로서, 랍비들 중에서 최초로 “우리의 주, 우리의 선생”이라는 뜻의 ‘라반’(רבן-rabban)이라는 칭호로 불리었던 인물입니다. 자기가 그의 제자임을 밝히는 것은 한 마디로 자신도 율법에 정통한 학자요, 랍비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에 대하여 누구보다도 열심이 있는 자로 당시 ‘나사렛의 이단’(행 24:5)이라고 불리던 초대 교회를 박해하여 이를 믿는 자들을 죽이고, 옥에 넘기기도 했는데, 당시의 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증인들이라고 합니다. 그 열심이 지나쳐서 심지어 이방 지역까지 쫓아가서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 오기 위해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의 공문을 받아서 다메섹으로 갔다고 말합니다. 마치, 구약 시대에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 특심하여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거짓 선지자 850명을 기손 시내에서 한꺼번에 죽였던 ‘엘리야’(왕상 18:19, 40)를 연상하게 할 정도였습니다.
이를 종합해 볼 때, 바울은 자신이 누구보다도 율법을 잘 알고 믿으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서 알고 있는 지식들을 실제적인 삶에 그대로 적용하기를 힘썼던 ‘행동하는 지성’임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저에게 들려주시는 ‘레마’의 음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회심하기 전에 사울이 유감없이 발휘했던 학자적인 지성과 적극적이고 과감한 기질을 통해 그는 ‘행동하는 지성’의 모범이 되었다. 나는 그가 가지고 있는 이러한 장점들을 그대로 살려서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불러 세웠고, 나의 기대에 부응하여 최고의 도구로 사용되었다. 변명의 자리를 간증 집회로 전환시키는 그의 복음을 위한 열정은 나에게도 진한 감동을 안겨 주었다. 물론, 바울과 똑같지는 않겠지만, 너에게만 주어진 독특한 기질과 지금까지 연마해 온 학업을 통한 학자적인 지성을 통해 시대적인 복음적 사명을 멋지게 감당할 것을 기대하며, 너를 힘껏 응원하겠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회심 전, ‘행동하는 지성’의 모범이었던 바울을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부르시고, 그 사명을 완수하기까지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함께 하시며 도우셨던 당신의 신실하심에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성령이여 도우사, 저에게 주신 독특한 기질을 바로 알게 하시고, 지금까지 연마해 오고 있는 학문적 지성을 복음 사역에 적극 활용할 수 있는 지혜로운 마음을 주옵소서. 그리하여 맡겨진 선교적 사명을 성실히 수행하게 하시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의미 있는 하루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