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 - 우리 민족의 영산 태백산 영원한 인간사랑 ・ 2023. 12. 13. 1:14 URL 복사 통계 본문 기타 기능 우리 산하 - 우리 민족의 영산 태백산 인기멤버 2023.12.07. 05:22조회 1 댓글 0URL 복사 우리 산하 우리 민족의 영산 태백산 대관령을 지난 백두대간은 강릉시 왕산면에서 정선군 임계면 목계리로 넘어가는 삽당령을 지나고 강릉과 임계를 연결하는 42번 국도가 지나는 백복령을 넘어 두타산에 접어든다. 백두대간은 다시 태백시에서 영월, 정선으로 넘어가는 38번 국도가 지나는 싸리재를 지나 태백산에 이르러 낙동정맥을 나눈다. 『택리지』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태백산과 소백산도 또한 흙산이지만 그 흙빛이 모두 수려하다. 태백산 기슭에는 황지라는 명승지가 있다. 산 위에 들이 펼쳐져 두메 백성들이 모여 제법 큰 마을을 이루었다. 화전을 일구어 살고 있으나 지세가 높고 기후가 차가워서 서리가 일찍 내리므로 주민들은 오직 조와 보리를 심는다. 황지 위쪽, 작약봉 아래에 금혈이 있다. 세상에 전해오기를 나라에서 묘 터를 잡았으나 장사를 지내지 못할 곳이라 한다. 산 아래 평지에 각화사와 홍제암이 있는데, 가끔 불법이 높은 고승과 이상한 무리들이 이곳에 와 살기도 한다. 예부터 삼재(三災, 사람에게 닥치는 세 가지 재해. 수재ㆍ화재ㆍ풍재)가 들지 않는 곳이라 하여 국가에서 이곳에 사고를 설치하였다. 『정감록』의 「감결」에 “곡식 종자는 삼풍(三豊)에서 구하고 자식을 낳으면 양백에다 숨겨”라는 대목이 있는데, 삼풍은 경상도 영주의 풍기와 전라도 무주의 무풍 그리고 충청도 괴산의 연풍이고, 양백은 태백산과 소백산이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의 영산이며 신령한 산으로 여겨져온 태백산(1567미터)이 삼척읍지(三陟邑誌)인 『삼척진주지(三陟眞珠誌)』 「척주부(陟州府)」에는 “푸르고 푸른데 어찌 태백이라 하였던가. 그 위에 당집을 짓고 천왕이라 이름 하였네. 신라ㆍ고려 때부터 숭상하여 믿었고, 모두 무당과 박수의 도회로세. 저 동쪽을 바라보니 팽나무도 많고 저 남쪽을 돌아보니 크고 높은 언덕도 많네”라고 하여 태백산이 신라ㆍ고려 때부터 토속 신앙의 중심지였음을 말하고 있다. 고려 때 사람 최선의 예안(禮安) 『용수사기』에는 “천하의 명산이 삼한에 많고 삼한의 명승은 동남쪽이 가장 뛰어나며, 동남쪽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이 태백”이라 하였다. 김시습은 「망태백산(望太白山)」이라는 시에서 “멀고 아득한 태백산을 서쪽에서 바라보니, 기암괴석이 구름 사이에 솟아 있네. 사람들은 신령님의 영험이라 말하는데 분명코 천지의 조화로세”라고 노래하였다. 어두운 시대를 살다 간 옛 시인은 “땅이 궁벽하니 누구인들 쉽사리 갈 수 있으랴, 개 어금니처럼 울퉁불퉁하여 고르지 않은 험한 길을 만났으니 가는 길이 멀고, 태백산은 계집의 눈썹처럼 공중에 떠서 가로질렀네. 토지는 메마르고 세금은 무거워서 유리해 도망간 백성이 많으니, 집집마다 벌꿀을 뽑아 바치는 것을 차마 제대로 바라보랴”라고 하면서 궁벽한 산골 사람들의 애달픈 삶을 노래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우리 민족의 영산 태백산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9 : 우리 산하, 2012. 10. 5., 신정일) hanjy9713님의 게시글 더보기
공감 1 이 글에 공감한 블로거 열고 닫기 댓글 쓰기 이 글에 댓글 단 블로거 열고 닫기 카페 보내기Keep 보내기메모 보내기기타 보내기 펼치기
수정 삭제 설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