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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견양(順手牽羊)
손에 잡히는 대로 양을 끌고 간다는 뜻으로, 한 가지 일에만 열중하지 말고 널리 눈을 돌려 이용할 수 있는 이익을 모두 이용하라는 말이다.
順:순할 순(頁/3)
手:손 수(手/0)
牽:끌 견(牛/7)
羊:양 양(羊/0)
이 성어는 손에 잡히는 대로 양을 끌고 간다라는 말로, 병법에서 작은 틈과 작은 이익이라도 놓치지 않고 이용하는 책략이다. 고대 중국의 대표적 병법인 36계 가운데 12번째 계책이다.
원문에 보면 조그마한 틈이라고 생기면 놓치지 말고 이용해야 하고 보잘 것없는 이익이라도 생기면 있는 힘을 다해 손에 넣어라.
적의 조그마한 실수가 아군에게는 승리의 발판이 된다. 대군이 움직일 때는 작은 헛점과 실수가 생기게 마련이다.
이런 기회를 잘 이용하면 전쟁을 치루지 않고도 상대로부터 승리를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전법은 승자도 활용할 수 있다고 적혀 있다.
순수견양(順手牽羊)은 손에 잡히는 대로 양(羊)을 끌고 간다는 뜻인데, 한 가지 일에만 열중하지 말고 널리 눈을 돌려 이용할 수 있는 이익을 모두 이용하라는 말이다.
아무리 작은 이익이라도 무시할 수 없다. 티끌모아 태산이 된다는 말이다. 명심할 만한 충고이지만 이 계략에는 위험이 따른다.
그것은 사소한 이익에 눈이 어두워 본래의 목적에 소홀해지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어리석음을 경계하는 말이다.
작은 허점이라도 시기적절하게 이용해야 하고, 작은 이익이라도 적극 쟁취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적의 작은 손실이 아군의 작은 승리로 탈바꿈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풍괘(豐卦)와 정괘(鼎卦)의 원리를 응용한 것이다. 이 전술은 길을 걷다가 우연히 길 잃은 양을 발견하면 그대로 집으로 끌고가 자신의 것으로 삼는다.
즉, 뜻밖에 얻어지는 이익을 놓치지 말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잘 활용하라는 뜻이다. 복(福)이 저절로 들어온다는 말도 있다.
순수견양(順手牽羊)을 조금 주의 깊게 살펴보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이익을 차지하기 보다는 주도면밀하게 이익을 계획하고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감나무 아래 누어 감이 입 속으로 떨어지기를 기다리기보다 눈을 크게 뜨고 길 잃은 양이 없는지 찾아내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협상에서 활용되는 순수견양(順手牽羊)의 계책은 서구에서도 Nibbling이라는 전략으로 알려져 있다. 굳이 해석한다면 덤 얻어내기 전략인데, 협상에서 이슈가 되는 가격에만 너무 집착하지 말고 보이지 않는 서비스나 다른 부대 물품을 덤으로 얻어내는데 관심을 가지라는 것이다.
원래는 기회를 틈타 남의 양을 훔쳐 끌고 간다는 뜻이다. 36계에서는 이것을 응용하여 적전계(敵戰計), 곧 아군과 적의 세력이 대등한 경우에 사용하는 계책 가운데 하나로 삼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적이 드러낸 허점이 아주 작은 것일지라도 반드시 이용하고, 아군에게 유리한 점은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반드시 때를 놓치지 않고 쟁취한다는 것이다.
微隙在所必乘, 微利在所必得.
이는 육도(六韜)에서 "잘 싸우는 사람은 아군에게 유리하다고 생각될 때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적절한 때가 되면 의심을 품지 않고 단행한다"고 말한 것과 통한다.
善戰者, 牽利不失, 遇時不疑.
적의 허점을 놓치지 않고 공격하여 작은 승리를 거두고, 이러한 작은 승리가 쌓이면 큰 승리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순수견양(順手牽羊)은 적이 이동하는 중에 발생한 틈을 정확히 보고, 취약한 부분을 파악해 허점을 이용해 행동을 취함으로써 승리를 거두는 작전이다.
옛 사람들이 말하기를 "전쟁에 능한 자는, 이익을 보고 놓치지 않고, 때가 왔을 때 주저하지 않는다"고 했다. 즉, 싸움의 기회를 포착하면 상대의 허점을 이용해서 승리를 쟁취해야 한다.
微隙在所必乘(미극재소필승)
微利在所必得(미리재소필득)
조금의 빈 틈이라도 있으면 그를 이용하고, 조금의 이익이라도 있으면 가서 획득해야 한다. 상대의 조그만 소홀함을 나의 조그만 승리로 만들어서 조그만 승리가 모여 큰 승리가 되게 한다.
微隙在所必乘 微利在所必得 少陰少陽.
적에게 조금의 허점이라도 있으면 반드시 기회를 포착해서 이용해야 하고, 적은 이익이라도 있으면 역시 노력해서 획득해야 한다. 적의 조그만 허점이 나의 조그만 승리가 되도록 해야 한다.
이 계(計)의 이름은 고금잡극(古今雜劇) 관한경(關漢卿)의 선편탈료(蟬鞭奪料)에 나온다.
我也不聽他說 被我把右手帶住 他馬 左手着他眼札毛 順手牽羊一般拈了過來了.
나도 그의 말을 듣지 않은 체, 내 오른 손은 그의 말(馬)을 데리고, 왼 손은 그의 눈썹을 끌어 당기니, 가는 길에 양을 끌고 가듯이 그도 꼬집혀 끌려 왔다.
순수견양(順手牽羊)은 적이 이동하는 중에 발생한 틈을 정확히 보고, 취약한 부분을 파악해 허점을 이용해 행동을 취함으로써 승리를 거두는 작전이다.
옛 사람들이 말하기를 "전쟁에 능한 자는, 이익을 보고 놓치지 않고, 때가 왔을 때 주저하지 않는다"고 했다.
즉, 싸움의 기회를 포착하면 상대의 허점을 이용해서 승리를 쟁취해야 한다. 물론, 작은 이익을 취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는 전체 국면을 고려해서 결정하여야 하며, 어느 경우에라도 작은 것 때문에 크게 손해를 봐서는 안된다. 작은 승리도 그냥 보내서는 안 된다.
초려경략(草廬經略) 유병(遊兵) 중에 '적의 틈을 엿보아 그 틈을 이용 이익을 취한다'고 되어 있고, 귀곡자(鬼谷子) 모편(謀篇)에 '그 정황을 살피고 그 빈 틈을 엿본다'는 내용이 나오며, 이위공문대(李衛公問對) 권중(卷中)에는 '틈을 엿보아 허를 찌른다'로 되어 있다.
위의 병법 중에는 순수견양(順手牽羊)의 표현은 안 나오지만 실지로는 순수견양에 대한 최상의 설명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옛말이 있다.
善戰者 見利不失 遇時不疑.
옛말에 "싸움을 잘하는 사람은 유리한 것을 보면 놓치지 않고 때를 만나면 의심하지 않는다." 이 말은 전투에 유리한 시기를 포착하여, 빈틈을 노려 승리를 쟁취하여야 한다는 뜻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작은 이익을 취할것인지, 혹은 취하지 않을 것인지는 전체적인 전쟁의 국면을 고려하여야 된다. 즉 작은 이익에 집착하여 큰 손실을 입는 것은 피해야 하지만, 작은 승리의 기회를 방치하여서도 물론 안된다.
순수견양(順手牽羊), 이 계책은 승리자도, 실패자도, 강자는 물론 약자도 운용할 수 있다. 쉬운 예로 전쟁에서 흔히 작은 규모의 유격대를 이용하여 적의 심장부로 침투하여 신출귀몰하게 적을 공격하거나, 적군의 약점을 찾아서 공격하는 등이 그 좋은 예이다.
4세기 때 전진(前秦)의 황제 부견(符堅)은 동진(東晉)을 정복하기 위하여 90만 대군을 징집하였다. 부견은 동생인 부융을 선봉대로 보내어 수양을 점령하였다.
부융은 동진의 병력이 적고 군량도 부족한 사실을 파악하고, 부견에게 빨리 공격할 것을 건의하였다. 부견은 90만 대군이 모두 집결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수천명의 기병(騎兵)만 이끌고 수양에 당도하였다.
동진의 장군 사석(謝石)은 전진의 대군이 모두 집결하지 않은 틈을 타서 적의 선봉을 공격하여 격퇴시킴으로써 적의 예봉을 꺾었다.
이후 동진과 전진은 비수(淝水)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게 되었는데, 사석(謝石)은 중과부적이므로 속전속결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였다.
사석은 교만한 부견을 자극하여, 물을 사이에 두고 싸우기 불편하니 조금만 병력을 후퇴시키면 물을 건너가 싸우겠노라는 뜻을 전하였다.
부견은 동진의 군대가 물을 건널 때 기습하여 섬멸할 요량으로 군대를 후퇴시켰는데, 전진의 병사들은 그 이유를 모르고 동진에 패하여 후퇴하는 줄로만 알고 서로 먼저 도망치려 하는 바람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동진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비수를 건너 공격하였고, 부견은 그 와중에 화살에 맞아 부상하여 겨우 10만 병사만 이끌고 장안(長安)으로 돌아갔다.
이 전투를 비수전투(淝水戰鬪)라고 하는데, 고대 전쟁사에서 열세인 병력으로 강대한 적을 상대하여 승리한 전례의 하나로 꼽힌다. 이 전투에서 동진이 사용한 병법이 순수견양(順手牽羊)의 예로 인용된다.
당(唐)나라 중기(中期)에 이르러 각 진(鎭; 중국의 지방 행정구획의 하나로 한국의 읍에 해당)의 절도사(節度使; 당나라 때 설치 한 지방 군정의 최고장관)들이 군사, 경제의 대권을 쥐고 있어, 근본적으로 중앙의 조정도 무시할 정도로 그 세력들이 막강하였다.
채주(蔡州) 절도사의 아들 오원제(吳元濟)는 부친이 사망한 후, 군대를 이르켜 반란을 한다. 이에 헌종(憲宗)은 대장군 이소(李愬)에게 중앙의 절도사로 임명하고 오원제를 토벌하라고 명령한다.
이소는 현장에 부임하자 오원제를 마비시키는 작전을 세운다. 그래서 소문을 내기를, "나는 일개 무능하고 겁이 많은 사람이다. 조정에서 나를 파견한 것은 지방의 질서를 잡아 평안하게 하라는 것 뿐이다. 내가 오원제를 공격하는 것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라고 떠들고 다녔다.
오원제는 이러한 이소의 동정을 살펴 본 뒤, 그가 조금도 공격해 올 의사가 없는 것을 알고는 이소에 대하여는 아예 신경을 쓰지 않았다. 사실은 이소는 끊임없이 오원제의 근거가 되는 채주를 공격할 책략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고민을 하던 중, 우연한 기회에 오원제 수하에 있는 장군 이우(李佑)를 붙잡았다. 그리고 그에게 포로이지만 최상의 예우를 해 주어 그를 감동시켰다.
이에 답하여 이우는 이소에게 "오원제의 주력 부대는 모두 회곡(洄曲) 일대에 배치하여 관군이 진격을 방지하고 있고, 채주성(蔡州城)을 지키는 것은 작은 규모의 노약한 잔병들 뿐입니다."라고 일러 주었다.
이 정보를 입수한 이소는 지금 채주는 오원제에게는 최대의 약점으로 만약 상대방이 전혀 생각 못 한 승리를 얻기 위해서는, 당연히 신속하게 채주를 직접 공격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를 산 채로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소는 어느 눈이 내리는 밤, 정예병을 데리고 좁은 길을 이용하여, 귀신처럼 채주성 아래에 도착하여 성을 지키는 병사들이 쿨쿨 잠을 자고 있는 사이에 성벽을 기어 올라가 수비 군사들을 죽이고 성문을 열고 난 뒤, 조용히 성안으로 들어가 공격해 들어 갔다.
오원제는 잠에서 놀라 깨어나 보니 자기의 저택은 이미 포위가 되었음을 알고, 험준한 지형을 이용하여 완강하게 저항을 해 보았지만 마침내 붙잡히고 말았다.
이소는 그를 죄수 호송차에 태우고 장안(長安)으로 압송하였다. 회곡(洄曲)에 주둔하고 있던 오원제의 장군 동중질(董重質)은 대세가 이미 기운 것을 보고는 이소에게 투항하였다.
최후의 승리를 위해서는 상대 부대의 허점을 최대한 찾아야 한다. 대부대가 이동하는 과정 중에는 빈틈은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대군이 급하게 이동하다 보면 각 예하부대와의 진군 속도가 틀릴 것이고, 군수물자의 보급도 원활하지 못할 것이다. 상호간의 의사소통도 안되고 전선도 길어지는 상황속에서는 반드시 약점이 노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럴 때 적의 빈틈을 정확히 파악하여 일격을 가하면 큰 승리는 아니더라도 조그만 이익과 승리는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조그만 승리가 쌓이면 결국 큰 승리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오직 결전의 그 날만을 기다리며 한 판의 승리로 모든 것을 결정하려고 한다면 그 만큼 패배의 위험도 상존하는 것이다.
때와 기회에는 스스로 선택할 눈이나 귀가 없고 이런 때와 기회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 갈 능력이 있는 사람이 성공의 반열에 오르는 것 같다.
작은 기회도 놓치지 않고 때를 보았다가, 주왕조(周王祖)를 찬위(簒位; 봉건사회에서 다른 성을 가진 자가 왕위를 빼앗는 것)하여 송(宋)나라를 연 조광윤(趙匡胤)은 순수견양의 방법으로 왕권을 찬탈한 인물이다.
주왕조에서 정복 전쟁을 목적으로 출병하였으나, 주왕조가 어린 황제가 권력을 이양받아 안정되지 않고 있는 틈을 타서 휘하의 장군들이 스스로 격동하여 안정적인 왕권을 갈구하는 모양을 만들었다.
조광윤(趙匡胤)은 침착하게 자신이 왕권을 거머질 때 반대할 만한 세력가들에게 촉수(觸手)를 들이대며 사전에 관리하고 있었고, 자신이 황제가 되는 데 힘을 보태줄 자들을 미리 미리 규합한다.
권력을 잡은 후에는 모든 병권을 자신에게 집중시키기 위해 배주석병권(杯酒釋兵權)의 기계(奇計)를 부린다.
연회를 베출어 의사형제(意思兄弟)로서 개국공신들이고 조광윤(趙匡胤)에게 충성을 한 권신들에게 술을 돌리고 스스로 병권의 자리를 내려놓고 부귀만을 누리도록 은연중에 협박하는 배주석병권의 기계를 부린다.
이러한 조광윤이 송왕조(宋王朝)를 열고 만대의 권력을 누리려 했지만 정작 자신의 친동생이며 의혹을 갖고 경계했던 조광의(趙匡義) 역시 순수견양의 경영을 하고 있었다.
조광윤의 갑작스런 죽음과 동시에 조광의는 날름 왕권을 집어 삼킨다. 조광의 역시 기회를 보며 작은 이익도 놓치지 않은 순수견양의 고수였던 것이다.
이 가운데 크고 작은 망국의 왕후들이 복수를 위해 펼치는 음모와 이 음모를 통해 작은 틈이라도 열어 나가며 기회를 만들어 가는 모습이 가히 염증이 나면서도 이런것이 세상사이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이 계략은 문제의 소지가 꽤 많은 계략이다. 적의 작은 헛점도 놓치지 말고 공략하여, 아군은 작은 이익이라도 꼭 챙겨야 한다고 되어 있는데, 이는 상당한 위험부담의 문제가 있다. 상대방의 속임수에 넘어갈 위험이 있는 것이다.
같은 삼십육계(三十六計) 내에서만 봐도 제6계 성동격서(聲東擊西; 동쪽에 소리내고 서쪽을 친다), 제8계 암도진창(暗渡陳倉;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진창으로 건너가다), 제11계 이대도강(李代桃僵; 오얏나무가 복숭아나무 대신 쓰러지다), 제13계 타초경사(打草驚蛇; 풀을 쳐 뱀을 나오게 하다), 제16계 욕금고종(欲擒故縱; 큰 것을 얻기 위해 작은 것을 풀어주다), 제17계 포전인옥(抛轉引玉; 돌을 던져서 구슬을 얻다) 등등 작은 이익으로 상대방을 꾀어내는 계략들이 부지기수이다.
그럼에도 원문의 해설에서 조차 '작은 헛점도 놓치지 말고, 작은 이익도 꼭 챙겨야 한다'고 하고 있는 것은 명백한 오류라 하겠다.
이런 점도 삼십육계가 뚜렷한 체계 하에 쓰여진 글이 아니라 단순히 성어를 긁어모아 만든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실제 이 순수견양은 현대 중국에서 그 유용성에 있어 권장되지 않고 있다. 중국의 성어학자(成語學者)들은 명백히 이 표현을 부정적인 것으로 분류한다.
예를 살펴본다고 해도 작은 헛점을 공격해서 성공한 예를 봐야 할지, 작은 헛점을 공격했다가 적의 계략에 말려든 예를 봐야 할지도 고민스럽다.
적의 헛점을 공략하여 이익을 얻은 순수견양의 예를 살펴보자.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 등장하는 유명한 일화이다.
적벽대전(赤壁大戰) 이후 형주(荊州)에 눌러앉은 유비(劉備)는 형주를 반환하라는 오(吳)나라의 요청을 완전히 묵살하고 있었다.
이에 오나라의 주유(周瑜)와 손권(孫權)이 이를 갈고 있었는데, 사자로 보냈던 노숙(魯肅)에게서 '병사들이 모두 상복을 입고 있었고, 상(喪)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주유가 누가 죽었는지 묻자 유비의 부인인 감부인(甘夫人)이 죽었다고 했다. 이에 주유는 계책을 내놓으며 형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자신한다.
유비는 부인들이 모두 죽었으니 당연히 새장가를 들어야 할 것이다. 이에 주유는 손권의 여동생을 미끼로 유비를 꾀어 죽일 계책을 세운다. 그리고는 유비에게 사자를 보내 양가가 인척을 맺고 힘을 합쳐 조조(曹操)를 무찌르자는 뜻을 전하게 한다.
이에 형주에서는 제갈량(諸葛亮)이 이를 눈치채고 조운(趙雲)을 동행하여 유비를 동오(東吳)로 보낸다. 의심을 품고 감히 가지 못하는 유비였으나 제갈량이 이미 계책을 세워두었다고 하자 길을 떠난다. 그리고 제갈량은 조운을 불러 금낭(錦囊; 비단주머니) 세개를 주며 순서대로 행하라 이른다.
유비 일행이 남서(南西)에 도착하자 조운이 첫번째 금낭을 열었다. 거기에 쓰여진 계책에 따라 병사들에게 지시한다. 그리고는 유비에게 교국로(橋國老)를 찾아가 만나라고 여쭈었다. 교국로는 강동(江東)의 이교(李嶠; 손책의 부인 대교와 주유의 부인 소교)의 아버지였다.
유비는 교국로를 만나 이번에 동오로 장가를 들러 왔다는 얘기를 했다. 그리고 병사들은 떠들썩하게 혼례용품을 구입하며 유비가 동오로 장가들러 왔다는 소문을 계속 퍼뜨렸다.
한편 교국로는 유비를 만난 후 오국태(吳國太; 손권의 이모)를 만나 경사(慶事)를 축하했다. 이에 오국태는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몰라 하고, 교국로가 유비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 불같이 화를 내며 손권을 만났다.
"너는 이렇게 나를 무시할 셈이냐? 나의 언니가 돌아가실 때 너에게 뭐라고 분부하시더냐?"
"어머니 하실 말씀이 계시면 분명히 하소서. 무엇 때문에 이리 서러워 하시옵니까?"
"사내가 장가들고 계집이 시집가는 것은 고금의 이치이다. 그러나 내가 너의 어미가 되었으니 그런 일은 당연히 나에게 묻고 명을 받아야 할 터인데, 너는 유현덕(劉玄德)을 매제로 삼으려 하면서 어찌 나를 속이느냐?"
손권이 깜짝 놀라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아니옵니다. 이는 주유의 계략이옵니다. 형주를 빼앗기 위해 구실을 내세운 것 뿐입니다. 유비를 속여 이곳에 잡아 가두고 그와 형주를 바꿀 생각이었습니다. 이는 계략이지 진실로 혼사를 맺고자 함이 아니옵니다."
이에 오국태가 크게 노해 손권을 꾸짖는다. "주유는 6군 81현의 대도독(大都督)으로 있으면서 형주 하나 빼앗을 계책이 없어서 나의 딸을 구실로 유비를 죽이겠다고 하더냐? 그러면 나의 딸은 바로 까막과부가 될터인데 앞으로 어떻게 다시 시집을 가라고 말하겠느냐? 내 딸의 평생을 그르쳐 놓게 생겼으니 너희들은 참 잘도 했구나"
이에 교국로가 "일이 이렇게 되었고 유황숙(劉皇叔)은 황실의 종친이니 그를 정말로 사위로 맞아들여 망신을 면하는게 낫겠다"며 옆에서 거든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난다고 손권이 말하자, 유황숙은 세상의 호걸이니 이는 영매(令妹)에게도 욕되지 않을 것이라 한다. 이에 오국태는 자신이 유비를 만나보고 마음에 들면 사위로 삼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주유의 마음대로 하라고 말했다.
이에 손권은 연회를 준비시키는 한편 병사들을 매복시켜 놓으라 지시한다. 그리고 유비를 불렀는데 유비는 조운이 이끄는 5백 병사의 보호를 받으며 감로사(甘露寺)에 왔다.
손권은 현덕(玄德)의 풍채가 비범한 것을 보고 두려움을 느꼈다. 오국태는 현덕을 보자 크게 기뻐하며 자신의 사위라 말했다.
갑자기 유비가 울며 말한다. "만일 유비를 죽이시려거든 이 자리에서 즉시 죽여주소서" "어째서 그런 말을 하는가?" "도처에 도부수(刀斧手)들을 숨겨 놓으셨으니 유비를 죽이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옵니까?"
이에 오국태는 크게 노해 손권을 꾸짖었다. 그리고는 이래저래해서 유비와 손부인의 혼례가 치러졌다. 주유는 크게 놀랐다. 그리고는 다른 계책을 손권에게 전했다.
그 계책은 유비는 가난하게 자라서 풍요로운 생활을 한 적이 없으니 그에게 온갖 사치를 시켜주어 형주로 돌아갈 생각이 들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이 계략은 제대로 먹혀서 유비는 사치와 향락에 빠져 형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에 조운은 두번째 금낭을 열고 계책을 실행한다. 유비를 만나서 형주가 조조의 침입을 받고 있으니 빨리 돌아가야 한다고 유비에게 말한 것이다.
유비는 돌아가려 하나 동오에서 순순히 보내줄까 염려했다. 이에 손부인이 꾀를 내어 설날에 동오를 빠져 나간다. 하지만 이윽고 손권의 부하들이 추격해 오자 조운이 세번째 금낭을 열었다.
이에 유비가 손부인에게 울면서 지금의 사정을 설명했다. 그러자 손부인은 직접 나서서 자신들을 추격해 온 손권의 부하 장수들을 오히려 꾸짖어서 돌려보낸다. 이에 손권은 크게 화가 나서 손부인의 목도 유비의 목과 함께 가져오라고 명령한다.
유비는 강 기슭에 도착하였으나 배가 한 척도 없었다. 그리고 동오의 군사들은 바로 지척까지 와 있었다. 유비가 이제 죽었구나 탄식하는데 갑자기 강 기슭에 돛단배 20여척이 일렬로 늘어선다.
유비와 손부인이 황급히 배에 오르고, 조운도 병사들과 배에 오르자 한 사람이 나와 웃으며 말했다. "주공(周公) 우선 축하드리옵니다. 제갈량이 여기서 기다린지 이미 오래이옵니다."
배 안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형주의 수군이었다. 제갈량이 동오의 병사들을 보고 말했다. "나는 이미 오래 전에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 너희들은 돌아가 주랑에게 다시는 미인계(美人計) 같은 수단을 쓰지 말라고 전하여라."
그리고 돌아가는데 동오의 병사들이 추격해 왔다. 또한 소식을 들은 주유도 직접 병사들을 이끌고 나왔다. 그리고 배가 형주에 이르자 배에서 내려 추격해갔다. 하지만 이미 형주에는 관우(關羽), 황충(黃忠), 위연(魏延)등이 모두 대기하고 있어서 동오의 군사는 크게 패하였다.
허둥지둥 달아나는 동오의 병사들을 보며 병사들이 소리쳐 놀려댔다. "천하를 안정시키겠다던 주유의 묘책이, 부인만 얻어 주고 군사마저 잃었구나"
이는 주유의 계책을 간파하고 그 헛점을 노려서 양(손부인)을 끌고와 버린 틀림없는 순수견양(順手牽羊)이라 할 것이다.
위 사례에서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는 위와 같이 묘사하고 있지만, 실제와는 다르다.
실제로 손권이 혼인을 청한 것은 나날이 늘어가는 유비의 인기에 편승해 보고자 했을 따름이며, 따라서 유비를 죽일 생각 같은 것은 전혀 없었고, 동오행이 위험하다고 말린 것은 소심한 제갈량이었으며, 그 만류를 뿌리치고 동오로 간 것이 유비였다.
위의 이야기는 나관중(羅貫中)이 지어낸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손부인의 이름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 없다. 흔히 불리우는 손상향(孫尙香)이란 이름은 후대의 희극에서 붙혀진 이름이라 한다. 또한 용랑전(龍狼戰)에서는 손인(孫仁)이라는 이름을 붙혀 놓았는데, 손인은 손견(孫堅)의 넷째 아들의 이름이다.
비즈니스 활동 중 기업 경영자가 순수견양(順手牽羊)의 계를 운용하는 핵심은, 시장에 아무리 작은 기회가 나타나거나 작은 이익이 있더라도 적극적으로 이를 노력해서 쟁취하고, 경쟁 상대가 작은 허점이라도 있으면 바로 상대의 작은 소홀을 자신의 조그만 성공으로 변화시키는데 있다. 작은 것도 오랫동안 쌓이면 그 이윤이 상당해 질 수 있다.
오늘 날 사람들이 늘 먹는 라면은 어느 일본인이 보통 늘 보는 현상 중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생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안도(安藤)라는 일본인은 오사카에서 가공식품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안도는 매일 전차를 타고 이케다 시에 있는 집으로 퇴근했다. 그는 역에서 매일 사람들이 금방 솥에서 나온 뜨거운 국수를 먹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을 보았다.
그는 처음에는 늘 보는 것에 대해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지만, 시간이 가면서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모두들 국수를 먹기 좋아 하는데, 나도 국수 장사를 하면 돈을 잘 벌 수 있지 않을까?'
뜨거운 국수를 먹기 위해서는 식당에서 오랫동안 기다려야 하니 시간도 들고 힘도 들어 아주 불편했고, 마른 국수를 먹는 것도 시간과 힘이 드는 것은 마찬가지 인데다가 조미료가 없어서 맛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안도는 계속해서 궁리하기 시작했다. 만약에 뜨거운 물을 붓기만 하면 먹을 수 있고 조미료가 포함되어 있는 라면이 있다면 틀림없이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을 텐데.
그래서 그는 국수 만드는 기계를 한 대 사서 새로운 국수를 만들기 시작했다. 여러 차례의 실패 후에도 그는 기가 죽지 않았고 매 번 실패의 경험을 분석했다. 3년 동안의 각고의 노력 끝에 안도는 마침내 성공했다.
그가 연구해서 만들어 낸 라면은 확실히 사람들의 생활에 편리함을 더 해 주었고 그래서 고객들로부터 환영을 받았다. 이렇게 해서, 봉지에 담긴 라면이 상품 진열대에서 내려와, 맛있는 냄새에 뜨거운 열기를 뿜어 내는 한 그릇 라면이 되어 고객들의 식탁에 오르게 되었다.
안도의 라면은 일본 소비자의 사랑을 받아 시장에 출하된지 8개월만에 1,300만 봉지 이상이 팔렸다. 안도 본인도 조그만 회사의 책임자에서 일약 거액의 자산을 가진 거부로 변신하였던 것이다.
현실 생활 중의 순수견양은, 권세를 이용해서 작은 이익을 취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고, 또 적의 계책을 역이용하여 갑자기 닥친 곤란한 경우를 벗어 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당연히 우리는 현실생활 중 권세나 재물에 빌붙는 소인을 조심해야 한다. 그들은 왕왕 자신의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의 이익에 손해를 끼치는 사람들이다.
샤보나는 전세계에서 유명한 극작가였는데 그는 인격수양이 아주 높은 사람이었다. 무기와 인간은 샤보나의 유명한 극작이었는데 샤보나는 이 극작을 완성한 후 어느 극장에서 일차 공연을 하게 되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고 관중들의 박수 소리가 우뢰와 같았고 끝날 줄을 몰랐다. 감동을 받은 관중들은 그에게 무대로 나와 인사를 하도록 요청했다.
바로 그 때, 한 사람이 일어 나더니만 샤보나에게 고함을 질렀다. "이게 무슨 작품이냐. 그저 엉망진창일 뿐이다."
이러한 비난에 대해, 샤보나는 화도 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차가운 말투로 대꾸하지도 않고 완전히 그 반대로 미소를 지으면서 그에게 인사를 한 후 아주 예의바르게 말하는 것이었다. "저의 친구님, 저는 친구님의 의견에 완전히 동의합니다."
이어서 그는 한 번 어깨를 으쓱하고 나서 다시 열렬히 갈채하는 관중들을 가르키면서, "그러나, 우리 두 사람만이 저렇게 많은 관중들에게 반대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자, 관중석에서는 또 다시 더욱 더 열렬한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사람들은 샤보나의 그 높은 문학적 수양에 대해 박수를 보낼 뿐 아니라, 그것보다도, 그의 그 고결한 인격적 수양에 더 많은 박수를 보냈던 것이다.
중국 고서(古書)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 현령(縣令)이 한 소도둑을 취조하게 되었다. 왜 소를 훔쳤느냐 하는 물음에 그 소도둑은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소를 훔치지 않았나이다. 그저 길에서 바 오래기를 하나 주웠을 뿐이옵니다."
그러자 현령은 그게 무슨 소리냐, 그러면 소는 어디서 났느냐고 호통을 쳤다. 그러자 그 소도적은 이렇게 말을 했다. "제가 길가에서 바 오래기를 주워 집으로 가져왔는데 그 끝에 매여 있던 소가 따라 왔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바 오래기를 줏는 김에 소까지 한 마리 주워 집으로 가져 왔다는 말이 되겠다. 이는 좀 너무 어처구니없는 변명이지만 순수견양(順手牽羊)이라는 말과 아주 비슷한 뜻을 가지고 있다.
중국 춘추시대(春秋時代)에 이런 일이 있었다. 채(蔡)나라와 식(息)나라가 있었는데 두 나라 왕은 동서간이었다.
한 번은 절세의 미인으로 세상에 알려진 식나라 왕의 부인 식위(息媁)가 친정 집으로 가면서 채나라에 들게 되었는데 처제의 미모에 반한 채나라 왕이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접대를 한다는 이름을 걸고 식부인(息夫人)을 집적거리게 되었다.
이에 기겁을 한 식부인은 급히 채나라를 떠났는데 집에 돌아가 이를 남편인 식나라 왕에게 일러바쳤다. 대노한 식나라 왕은 당시 자기의 종주국인 초(楚)나라 임금을 찾아가 채나라 왕이 제(齊)나라를 등에 업고 안하무인이라고 고자질했다.
그러면서 초나라에서 채나라를 먹어버리는 것은 아무 일도 아니라고 했다. 초나라 왕이 무슨 방법이 있느냐 물으니 초나라에서 식나라를 치는 것처럼 하면 자기들이 채나라에 구원을 청한다.
그러면 채나라 왕이 꼭 구하러 오게 될 것인데 그때 자기들이 성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채나라는 끝장이라고 했다. 초나라 왕은 그렇게 하자고 했다.
초나라에서 식나라를 치는 것처럼 하고 식나라에서 구원을 청하자 채나라 왕은 아닌게 아니라 구원병을 이끌고 왔다. 그러나 식나라에서 성문을 열어 주지 않자 채나라 왕은 별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강대한 초나라 군사들에게 포로가 되고 말았다.
항복을 받고 채나라 왕을 풀어 놓으며 음식을 차린 석상에서 초나라 왕은 아래서 춤을 추고 있는 무녀들을 가리키며 채나라 왕보고 이렇게 아름다운 무녀를 보았는가 물었다.
그러자 원래 자기가 식나라 왕에게 속아 나라를 망쳐먹게 된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된 채나라 왕은 콧방귀를 뀌였다. "식나라 왕의 부인에게 비하면 여자도 아니지요. 세상 미인들 가운데 식부인 보다 더 아름다운 여인은 없을 거외다."
그때로부터 식부인을 보지 못해 속을 앓게 된 초나라 왕은 어느 날 수렵을 빙자하고 식나라로 갔다. "내가 군사를 풀어 채나라 왕을 사로잡아 당신의 소원을 풀어 주었는데 오늘 이렇게 어쩌다 왔는데도 왜 부인은 술 한잔도 따르지 않는 거요?"
초나라 왕의 말에 식나라 왕은 그 뜻을 모를 바 아니었지만 하는 수 없이 부인을 불러 술을 따르게 했다. 식나라 왕의 부인을 본 초나라 왕은 그만 홀딱 반하고 말았다.
이튿날 초나라 왕은 답사연(答謝宴)이라는 핑계로 식나라 왕을 불렀다. 그리고는 구실을 만들어 채나라 임금을 사로잡은 다음 목숨을 살려 준다는 조건으로 식부인을 손에 넣었다. 초나라 왕은 바로 순수견양의 수단으로 채나라와 식나라를 손아귀에 넣고 식부인까지 채갔던 것이다. 순수견양은 고정된 격식이 없다. 보는 대로 챙기는 것이다.
중국 진출에서 순수견양에 성공한 사례는 신라면을 들 수 있다. 신라면이 중국에 들어올 적에는 벌써 중국의 라면시장이 거의 포화 상태였다.
타이완의 통일그룹이 캉스푸(康師付) 라면으로 중국 소비자들의 사랑을 한 몸에 안다시피 한 다음이었다. 수많은 중국 국내의 라면업체들도 분분히 라면시장에서 철수를 할 즈음에 신라면은 중국시장으로 진출을 했다.
사실 신라면은 자기가 지나가는 길에 양을 끌고 간 것이 아니라 소비자들과 중간상들이 라면을 사고 라면장사를 하는 김에 신라면까지 팔게 했던 것이다.
당시 중국의 라면 시장을 보면 대부분이 대중 소비로 가격이 아주 낮았다. 4위앤(元, 0.5달러 정도) 초과하는 것이 없었다. 이런 시장 상황으로 중간 소득층의 사람들은 라면을 먹고는 싶으나 먹을 수 없는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다.
하나에 1~3위앤 정도 하는 라면은 막벌이나 하는 사람들이 먹든가 아니면 어린이들이 군입질을 하면서 먹는 정도의 식품이다. 그러니 사먹고 싶어도 체면을 가리는 사람은 이런 것을 사 먹을 수 없었던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음식점에 가서 역시 마찬가지이다. 원래 술상에서 채소를 많이 먹는 중국 사람들은 술을 마신 다음에 국수를 먹기 좋아하나 보통 국수는 집에서도 그냥 먹는지라.
식당에서 손님을 청해놓고 그냥 집에서도 먹는 국수를 먹을 수도 없고, 또 다른 한 면으로 보면 라면은 독특한 맛도 있고 금방 끓여 먹을 수도 있어서 그랬던지 지금까지도 중국의 적지 않은 곳에서는 술을 마신 다음 라면을 먹는 것이 유행으로 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그러나 술 한잔 잘 내고 1~3원 짜리 라면을 사내면 체면이 서지 않는 것이다. 소비자들과 중간상들은 바로 고품질과 가격이 조금 높은, 그러면서도 일반 백성들이 접수할 수 있는 라면을 수요했다.
바로 이때 신라면이 중국 라면시장의 견고한 바자를 뚫고 들어왔던 것이다. 중국의 시장에 들어왔을 뿐이 아니라 독특한 맛, 고품질, 그리고 외국제라는 이름으로 소비자들과 도/소매상들을 끌게 되었던 것이다.
한국 사장들이 먹는(중국 진출한 한국 사람들은 사업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라 한국 사람 하면 대개 사장으로 여긴다.) 신라면을 먹는 것도 체면이 서는 일인 것이다. 오늘도 술집에 가서 술상이 끝날 무렵이면 보이들이 "신라면 드시지 않을래요?"하고 묻군한다.
신라면은 결국 중국에서 라면이 편이 주식 소비의 주류를 이룰 적에 상위의 제품으로 중국 시장에 진출을 하여 소비자들과 도,소매상들이 순수견양(順手牽羊)을 하게 함으로 성공한 것이다.
잘 팔리는 라면을 파는 바에 상위 제품도 팖으로 수입을 올릴 수 있으니 말이다. 전형적인 반 순수견양(順手牽羊)이라 하겠다.
⏹ 순수견양(順手牽羊)
모르는 척 양을 끌고 가라
順手牽羊, 微隙在所必乘, 微利在所必得. 少陰, 少陽.
가는 길에 슬쩍 양을 끌고 간다는 뜻으로 적의 허점을 노려 승리를 거두는 계책이다. 적이 조그마한 틈이라도 보이면 놓치지 않고 적극 올라타 승기(勝氣)를 만들어낸다.
적이 가벼이 여기는 작은 이익이라도 놓치지 않고 적극 취해 승기를 만들어낸다. 소음(少陰)은 작은 실수나 허점을 말하고, 소양(少陽)은 작은 승리를 뜻한다. 그러나 모든 것이 작은 것에서 시작한다.
미극(微隙)은 간극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울 정도의 극미한 간극을 말한다. 이를 승리의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미리(微利) 역시 이익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하찮은 승리를 뜻한다. 이를 승리의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
순수견양(順手牽羊) 계책은 바로 이런 극미한 간극과 승리를 확대해 궁극적인 승리를 거두는 계책이다.
순수견양은 고금잡극(古今雜劇)에 수록되어 있는 원나라 작가 관한경(關漢卿)의 울지공단편탈삭(尉遲公單鞭奪槊)의 다음 대목에서 나왔다.
나도 그의 말을 듣지 않은 체했다. 내 오른손은 그의 말을 잡고, 왼손은 그의 눈썹을 끌어당겼다. 마치 가는 길에 양을 끌고 가듯이 그도 나에게 붙잡혀 끌려 나왔다.
명대에 나온 '수호지' 제99회와 '서유기' 제16회에도 순수견양 표현이 나온다. 순수견양을 전술개념으로 사용한 것은 '초려경략(草廬經略)' 유병(遊兵)이다. 여기에 "적의 틈을 엿보아 그 틈으로 이용해 이익을 취한다"는 구절이 나온다.
'귀곡자' 모려(謀慮)는 "벽은 틈이 생겨 무너지고, 나무는 마디로 인해 훼손된다"고 했다. 순수견양의 취지를 언급한 것이다.
'당리문대' 권중은 "적의 실을 피하고 허를 찌른다”는 뜻의 배실격허(背實擊虛)를 언급했다. '손자병법' 허실에 나오는 피실격허(避實擊虛)를 달리 표현한 것이다.
21세기는 경제전쟁의 시대다. 글로벌 시장은 정글을 방불케 한다. 패하면 거대한 기업도 이내 패망하고 만다. 영원한 1등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다.
그만큼 치열하다. 이는 역설적으로 본인이 노력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글로벌 기업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세계시장을 석권하겠다는 포부와 자세가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무리 작은 기회나 작은 이익일지라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박리다매가 관건이다. 티끌을 모아 태산을 이루는 격이다. 작은 것도 오랫동안 쌓이면 그 이윤이 상당해진다.
▶️ 順(순할 순)은 ❶형성문자이나 회의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顺(순)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머리 혈(頁; 머리)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川(천, 순)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川(천, 순)은 시내, 시내의 흐름을, 頁(혈)은 머리나 얼굴의 뜻으로 쓰인다. 따라서 물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순리에 따라 흐른다는 데서 '순하다'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順자는 '순하다'나 '유순하다', '따르다'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順자는 川(내 천)자와 頁(머리 혈)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유순하다'는 것은 순응하며 잘 따른다는 뜻이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 당연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이치이다. 그렇기에 順자에 쓰인 川자는 사람이 까다롭지 않고 물 흐르듯이 순응하며 잘 따른다는 뜻을 전달하고 있다. 그래서 順(순)은 (1)선후 따위 관계로 정(定)해지니 배열(配列), 차례(次例). 순서(順序), 순번(順番) (2)성(性)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순(順)하다, 유순(柔順)하다 ②좇다 ③(도리에)따르다, 순응(順應)하다 ④가르치다, 교도(敎導)하다 ⑤잇다, 이어받다 ⑥제멋대로 하다 ⑦편안(便安)하다, 안락(安樂)하다 ⑧화(和)하다, 화순(和順)하다(온화하고 양순하다) ⑨물러나다, 피(避)하다 ⑩바르다, 옳다 ⑪귀여워하다 ⑫차례(次例), 순서(順序) ⑬도리(道理) ⑭도리(道理)에 따르는 사람 ⑮실마리, 단서(端緖) ⑯아름다운 눈,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순할 완(婉),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거스릴 역(逆)이다. 용례로는 정해진 차례를 순서(順序), 차례로의 위치나 차례 순서를 순위(順位), 성질이 온순하여 까다롭지 않고 화평함을 순탄(順坦), 도리에 순종함을 순리(順理), 고분고분 따름을 순종(順從), 아무 탈없이 일이 잘 되어 가는 상태를 순조(順調), 순하게 부는 바람을 순풍(順風), 부드럽게 대응함을 순응(順應), 바르게 돌아오는 차례를 순차(順次), 하늘의 뜻을 따름을 순천(順天), 차례로 연기함을 순연(順延), 순조로운 항행을 순항(順航), 글자 획의 순서를 획순(劃順), 거꾸로 된 차례를 역순(逆順), 순서나 과정을 수순(手順), 몸가짐이나 마음가짐이 고분고분하지 않고 거침을 불순(不順), 온화하고 순함을 화순(和順), 적이 굴복하고 순종함을 귀순(歸順), 성질이 부드럽고 온순함을 유순(柔順), 효행이 있고 유순함을 효순(孝順), 고분고분하고 양순함을 온순(溫順), 천리에 따르는 자는 오래 번성한다는 말을 순천자존(順天者存), 아무 일 없이 잘 되어 간다는 말을 순차무사(順次無事), 천명에 순종하고 인심에 응한다는 말을 순천응인(順天應人),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소리 지른다는 뜻으로 좋은 기회를 터서 일을 시행하면 이루기가 쉽다는 말을 순풍이호(順風而呼), 돛이 뒤에서 부는 바람을 받아 배가 잘 달리는 모양이라는 말을 순풍만범(順風滿帆), 바람 불고 비오는 것이 때와 분량이 알맞다는 말을 우순풍조(雨順風調), 도리에 어긋나는 행위로 빼앗고 도리에 순종하여 지킨다는 말을 역취순수(逆取順守), 명분이 정당하고 말이 사리에 맞다는 말을 명정언순(名正言順), 위와 아래가 서로 뜻이 맞아 온화하다는 말을 상하화순(上下和順), 어떤 일이든지 그때와 형편에 따라서 맞추어 한다는 말을 수시순응(隨時順應) 등에 쓰인다.
▶️ 手(손 수)는 ❶상형문자로 다섯 손가락을 편 모양을 본뜬 글자이다. 마찬가지로 손의 모양에서 생긴 글자는 又(우; 또), 寸(촌; 치) 따위가 있다. 手(수)는 投(투; 던지다), 招(초; 부르다) 따위 다른 글자의 부분이 되면 재방변(扌=手; 손)部로 쓰는 일이 많다. ❷상형문자로 手자는 '손'이나 '재주', '수단', '방법'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手자는 사람의 손을 그린 것이다. 본래 '손'을 뜻하는 글자로는 又(또 우)자가 있었지만, 후에 뜻이 바뀌면서 금문에서는 手자가 '손'과 관련된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手자는 사람의 손을 그린 것이기 때문에 손의 기능이나 역할과 관련된 의미를 전달하게 된다. 하지만 때로는 재주나 솜씨, 수단 등과 같이 손과 관련된 기술을 표현하기도 한다. 그래서 手자는 운전수(運轉手)나 가수(歌手)와 같이 특별한 능력을 지닌 전문가들을 뜻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手(수)는 바둑이나 장기 등에서 두는 기술의 뜻으로 ①손 ②재주, 솜씨 ③수단(手段), 방법(方法), 계략(計略) ④사람 ⑤힘, 도움이 될 힘이나 행위 ⑥필적(筆跡) ⑦권한(權限), 권능(權能) ⑧가락, 곡조(曲調) ⑨바둑돌이나 장기 말을 한 번씩 두는 번수 ⑩손수, 스스로 ⑪쥐다, 손으로 잡다 ⑫속박하다, 묶어 두다 ⑬손바닥으로 치다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발 족(足)이다. 용례로는 죄인의 손목에 걸쳐 채우는 수갑(手匣), 손으로 움직이는 것을 수동(手動),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행동 방도를 수단(手段), 늘 가지고 다니면서 기억해 두어야 할 내용을 적을 수 있도록 만든 조그마한 공책을 수첩(手帖), 의료 기계를 써서 환자의 병을 고치는 일을 수술(手術), 정해진 급료 이외에 경우에 따라 덧붙여 주는 보수를 수당(手當), 손과 발 또는 손발과 같이 마음대로 부리는 사람을 수족(手足), 범인을 잡으려고 수사망을 폄을 수배(手配), 순서나 과정을 수순(手順), 손아래나 부하를 수하(手下), 일을 꾸미고 치러 나가는 재간을 수완(手腕), 자기의 생활이나 체험을 적은 기록을 수기(手記), 어떤 일에 손을 대어 시작함을 착수(着手), 잘못하여 그르침 또는 그 짓을 실수(失手), 기쁨과 찬성과 환영을 나타내거나 장단을 맞추거나 할 때 두 손뼉을 마주 두드림을 박수(拍手), 노래 부르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을 가수(歌手), 운동이나 기술에서 대표로 뽑힌 사람을 선수(選手), 얼굴을 씻음을 세수(洗手), 손을 위로 들어 올림을 거수(擧手), 손에 들어옴 또는 손에 넣음을 입수(入手), 북을 치는 사람을 고수(鼓手), 왼손을 오른손 위에 놓고 두 손을 마주 잡아 공경의 뜻을 나타내는 예를 공수(拱手), 손에 땀을 쥔다는 뜻으로 위험한 광경이나 사건의 추이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몹시 긴장됨을 이르는 말을 수악한(手握汗),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는 뜻으로 늘 책을 가까이하여 학문을 열심히 함을 이르는 말을 수불석권(手不釋卷), 형제간의 우애를 일컫는 말을 수족지애(手足之愛), 자기에게 직접 딸린 병사 또는 자기의 수족과 같이 쓰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수하친병(手下親兵),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모르고 날뜀을 일컫는 말을 수무족도(手舞足蹈), 팔짱을 끼고 보고만 있다는 뜻으로 어떤 일을 당하여 옆에서 보고만 있는 것을 이르는 말을 수수방관(袖手傍觀), 손을 묶인 듯이 어찌 할 방책이 없어 꼼짝 못하게 된다는 뜻으로 뻔히 보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꼼짝 못한다는 뜻을 이르는 말을 속수무책(束手無策), 물려받은 재산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일가를 이룸으로 스스로의 힘으로 사업을 이룩하거나 큰 일을 이룸을 일컫는 말을 자수성가(自手成家), 양손에 떡을 쥐었다는 뜻으로 가지기도 어렵고 버리기도 어려운 경우를 이르는 말을 양수집병(兩手執餠), 사슴이 누구의 손에 죽는가라는 뜻으로 승패를 결정하지 못하는 것을 이르는 말을 녹사수수(鹿死誰手), 쉽게 승부를 낼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타수가결(唾手可決) 등에 쓰인다.
▶️ 牽(이끌 견/끌 견)은 형성문자이나 회의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牵(견)은 간자(簡字), 摼(견)은 고자(古字), 撁(견)은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소 우(牛=牜; 소)部와 쇠코뚜레를 본뜬 冖(멱; 덮개, 덮다) 및 음(音)을 나타내며 동시에 끌다(引)의 뜻을 나타내기 위한 玄(현, 견)으로 이루어졌다. 쇠코뚜레를 끌어 앞으로 나아가게 함을 뜻한다. 그래서 牽(견)은 ①이끌다 ②끌다 ③강제(強制)하다 ④거리끼다, 구애(拘礙)되다 ⑤매이다 ⑥관련되다, 연계되다 ⑦거느리다, 통솔하다 ⑧끌려가는 동물(動物), 희생(犧牲) ⑨줄(무엇을 묶거나 동이는 데에 쓸 수 있는 가늘고 긴 물건) ⑩별의 이름,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끌 인(引), 당길 만(挽), 끌 예(曳)이다. 용례로는 서로 얽히어 관계를 가진다는 견련(牽聯), 끌어서 당긴다는 견인(牽引), 상대편이 지나치게 세력을 펴거나 자유롭게 행동하지 못하게 억누른다는 견제(牽制), 억지로 끌어 감을 견강(牽强), 손을 잡아 이끎을 견만(牽挽), 자신의 물건을 버리거나 남을 주기가 아까워 주지 못함을 견린(牽吝), 개인적인 사사로운 일에 이끌림을 견사(牽私), 배를 뒤에 달아 매고 끄는 배를 견선(牽船), 거리끼어 장애가 됨을 견애(牽礙), 얽매이고 이끌림을 견야(牽惹), 끌어 당김을 인견(引牽),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억지로 끌어 붙여 자기 주장의 조건에 맞도록 함을 견강부회(牽强附會), 마음은 서로 끌리면서도 몸은 멀리 떨어져 있음을 이르는 견련괴격(牽攣乖隔) 등에 쓰인다.
▶️ 羊(양 양)은 ❶상형문자로 양의 머리를 본뜬 글자이다. 양의 머리 모양을 도형화한 것이며 牛(우; 소)자와 비슷하다. 아주 옛날에 양은 신에게 바치는 희생의 짐승 중에서도 특히 존중된 것이었다. ❷상형문자로 羊자는 ‘양’이나 ‘상서롭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羊자는 양의 머리를 정면에서 바라본 모습을 그린 것으로 구부러진 뿔이 특징되어 있다. 양과 소는 인간이 가축으로 기른 가장 최초의 동물이었다. 특히 양은 뛰어난 고기 맛과 유용한 털로 인해 상서로운 짐승으로 인식되어 제사에 쓰이는 희생양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고대의 권력자들은 양의 뿔을 상서로움이나 권력의 상징으로 삼았다. 羊자가 부수로 쓰이는 글자들이 ‘양’이나 ‘양고기’, ‘상서로움’, ‘권력’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주의해야 할 것은 羊자가 다른 글자와 결합할 때는 하단의 획이 생략된 형태로 결합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羊(양)은 (1)면양(綿羊) (2)의지(依支)가 없이 약하다는 뜻에서 신자(信者)를 비유하는 말 (3)성질(性質)이 퍽 온순(溫純)한 사람의 비유 (4)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양(羊: 솟과의 동물) ②상서(祥瑞)롭다 ③배회(徘徊)하다 ④바라보다 ⑤자세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양의 털을 양모(羊毛), 양의 젖을 양유(羊乳), 양의 가죽을 양피(羊皮), 양털로 촉을 만든 붓을 양호(羊毫), 양의 무리를 양군(羊群), 양고기를 양육(羊肉), 양 뿔을 양각(羊角), 양가죽으로 만든 옷을 양구(羊裘), 양의 머리를 양두(羊頭), 양을 가두어 기르는 우리를 양사(羊舍), 털빛이 흰 양을 백양(白羊), 털빛이 검은 양을 흑양(黑羊), 소와 양을 우양(牛羊), 개와 양을 견양(犬羊), 양을 기름을 목양(牧羊), 양의 수컷을 저양(羝羊), 양의 암컷을 빈양(牝羊), 우리 안에 갇힌 양이란 뜻으로 자유롭지 못함을 함양(檻羊), 양 머리를 걸어놓고 개고기를 판다는 뜻으로 겉은 훌륭해 보이나 속은 그렇지 못한 것을 양두구육(羊頭狗肉), 양의 창자처럼 구불구불 휘고 좁은 길이라는 뜻으로 대학 입시나 입사 시험 등의 합격의 어려움을 양장소경(羊腸小徑), 속은 양이고 거죽은 호랑이라는 뜻으로 거죽은 훌륭하나 실속이 없음을 양질호피(羊質虎皮), 양을 잃고서 그 우리를 고친다는 뜻으로 실패한 후에 일을 대비함을 망양보뢰(亡羊補牢), 달아난 양을 찾다가 여러 갈래 길에 이르러 길을 잃었다는 뜻으로 학문의 길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있어 진리를 찾기 어려움을 다기망양(多岐亡羊)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