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한 선
어느 유튜브 채널에 장애인에 관한 영상이 올라온다. 내용은 우리나라의 사람들이 장애인들을 대하는 태도, 우리나라의 사회가 장애인들의 편의를 구축하는 제도와 자세가 마련이 안되어 있다는 이야기로 채워진다. 그럼 이제 영상의 댓글에는 연민과 분노와 장애인 대우가 부족한 사회에 제고하라는 목소리를 높인다. 그 목소리가 크고 강렬할수록 댓글 밑에 달린 좋아요 표시는 수도 없이 클릭되어 간다. 그 댓글 속 답글들은 이에 동조하며 어쩌면 보다 실질적인 개선 방안들은 글로 적어 낸다. “지하철 장애인 전용 엘리베이터가 너무 소리도 이상하고 커! 사람 눈치 보이게.” “애초에 인식이 문제에요… 어릴 때부터 교육과정을 바꿔서 사람들 사회인식을 바꿔야죠…” 그렇게 수백개의 댓글들이 쌓인다. 조회수도, 좋아요도. 이 영상은 여기서 저기로 펴져 날라지며 언젠가 뉴스에까지 등장하게 된다. 시간이 흘러 난 자연스레 지하철에 타고 저 아래로 뻗은 개단 끝에서 귀가 아플 정도에 큰 소리와 함께 휠체어를 탄 한 젊은 사람이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눈은 땅바닥을 향하고 있다. 어느 유튜브 채널은 벌써 구독자가 10만이 넘고 이번 영상은 외국에서의 장애인 대우이다. 선진국 빨기를 좋아하는 이들은 거머리처럼 들러 붙어 지내 나라를 까내리면서 철저한 선을 긋는다.
그 선은 결코 넘지 않는다. 멀리서 엘리베이터 올라가는 그 청량한 소리 들으며 그 안, 휠체어탄 젊은 남자 보고는 혀 “쯧” 하고 찬다.
어떤 사실 확인도 되지 않은 1분 안되는 숏폼 영상. 거기에는 지적 장애인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회성이 아예 결여 되어 있는 한 남자아이에서 이제는 어엿한 성인이 된 장애인의 이야기를 말한다. 가족이었고 어릴 때부터 성적 충동으로 이슈가 많았었다. 나이를 먹으며 힘이 생기자 장애인은 부모는 돌봄이든 가리지 않고 들이댔고 아무도 힘쌘 남성 성인을 제지할 수 없었다. 따라서 돌봄 선생은 지속적으로 바뀌고 가족도 지쳤다는 것이었다. 그 장애인이 죽고 나서야 암묵적으로 집안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고 분위기가 풀렸다는. 댓글을 열어보면 이제 사회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가 적혀야 할까? 혹은 이런 부류의 장애인을 잘 교육할 수 있는 단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사회 개선을 요구할까? “이성이랑 사회성이 결여되어서 그냥 본능에만 의지하는 게 있다고 하면 그건 그냥 짐승임.” 그 답글에는 “안락사가 허용되어야 하는 이유.” 수많은 댓글 속 사실을 확인 할 수 없는 공감과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며 그렇게 댓글은 수천개를 넘는다. “그래도 사람인데 같이 살아가야 할 부분이지 않을까?” 대단하다. 이런 분위기 속에 작은 공을 쏘아 올려보는 것이 근데… 답글 창을 열어보니. “지가 안 겪어 보니까 입이 트지” 이 답글과 함께 저 밑에 묻힌다. 모르겠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모르겠다.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모르겠다. 이 사람들이 어느 정도의 생각과 진실성과 객관성을 가지고 댓글을 썼는지. 모르겠다. 이 영상을 올린 사람은 무엇이 목적이었는지. 모르겠다. 갑작스럽게 이 영상을 만나고, 댓글을 본 사람이 그저 군중심리에 의해 이상한 고정관념이 생기지 않을지. 모르겠다. 내가 어느 의견을 부정하고, 긍정할 수 있는지. 그냥, 모르겠다. 무슨 생각을 더하고 그 생각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그래서 그냥 선들 긋는다. 혹은 당장의 감정을 글로 배설한다. 그후 엄지 손가락으로 아주 가볍게 위로 스크롤 하여 바로 귀여운 고양이 영상을 본다. 댓글창을 열어보니. “이 애기들 너무 귀엽다~” 모르겠다.
그럼 이 글은 문제를 짚었으니 실행으로 옮겨야 한다는 이야기로 흘러간다. 여러가지 입장을 취할 수 있다. 내 위치에서 열심히 하자. 차근차근 주변의 일부터 하나씩 이루어 가자. 학생인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으니 일단 장애인에 대한 인식부터 바꾸자. “정말 심한 장애인은?” 음, 기독교 세계관으로 봤을 때 분명 도와주고 포용해야 한다. 혹 그 장애인이 어떤 가정과 상황에 찾아온 것은 우리가 모르는 뜻이 있을 거야. . 그렇게 마침표를 찍고 하면 난 워드창을 닫고 ‘끝났다’하며 누워 버릴 것이다. 이런 반복적인 역겨움에 토를 달아 봤자 어차피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이러며 나는 다시 철저히 선을 긋는다. 근데 맞는 말이지 않는가. 내가 뭘 할 수 있는데. 엘리베이터의 시끄러운 소리가 울리면 더 큰 목소리로 함성을 지를까? 장애인 교육 시설과 장애인에 대한 시선 개선 교육 시간을 전국적으로 늘려달라고 영상을 만들고 청원을 올릴까? 참 우스운 것은 언젠가 어머니가 장애인 교육 시설 늘리자는 청원을 하려고 여러 사람들의 사인 받아 갔고 다녔다. 별 지랄을 다했다. 뭐 힘들다 거나 그런 건 모르겠고 그냥 수십 명 혹은 백명이 넘어가는 사인을 받아 가서는 단 하나의 효력도 주지 못했다. 그냥 뻘 짓이었다. 삽질, 그래 삽질을 한 것이다.
탈북자는 본인이 무슨 직업을 가지던 탈북자에 대한 관심을 많이들 가지며 서로 동질감을 느끼고, 탈북자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 소리를 높인다. 학교폭력 피해자의 부모들은 학교폭력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가정이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려 학교폭력에 대한 지식을 넓힌다. 장애인은 자신이 어느 위치에 서있던 그 자리에서 다른 장애인들에 모습을 은현 중에 주목하게 되고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끼리 도우며 산다. 공통된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여러 미디어 매체에서 소개되는 장애인 관련 이슈에 여러 다양한 생각들을 하고 자신의 모습에 대입해 볼 것이다. 고3, 수능을 준비하는 학생도 마찬가지다. 주방장에서 요리하는 셰프도 마찬가지다. 집에서 빨래 개고 있는 가정주부도 마찬가지다. 지루하게 키보드를 두드리는 회사원도 마찬가지다. 뽀로로를 좋아하는 어린이도 마찬가지다. 각자의 위치에서 비슷한 처지에 사람들과 교루하고 관심을 가지고 “우리”가 같이 겪는 불편함이나, 보다 좋아질 수 있는 부분에 목소리를 높인다. 그 뿐이다. 그리고 그 영역에 밖에는 철저히 선을 긋는다. 그 선은 미디어로만, 말로만, 글로만, 마음으로만, 생각으로만 가끔 넘고 금방 제자리에서 “우리”사람들과 교제한다.
장애인이던, 탈북민이던, 학교폭력 피해자이던 꽤나 관련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 여러 문제들과 고칠 점들을 하나 둘씩 해결해 나가며 본인 무리들이 보다 좋은 삶을 살 수 있는 사회를 이륙해 나간다. 그럼 된 거 아닌가. 근데 모르겠다. 장애인이 됐던, 탈북민이 됐던, 노동 조합이 됐던. 어느 정도의 공감과 관심을 원한다. 더욱 모르겠는 점은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은 이런 부분에 대개 흥미를 가지고, 특히 이들이 겪는 불의함을 알면 아주 같이 고치고 싶은 심한 충동을 가진다. 실제로 소수의 공동체만 이뤄 내기에는 힘이 없고 혹은 속도가 더딘 문제들이 있다. 그러니 관심을 가지고 어느정도 나와 상관 없는 부분에 대하여 정말 내 몸과 시간이 가서 고생해야 한다. 그러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아, 정말 모르겠다. 하지만 결코 그러지 못한다. 나는 그냥 내 위치에서 “우리”사람들과 함께 누워있다. “우리”에게는 이 철저한 선이 있고 내 몸과 시간이 그 선을 나가려 하면 몸의 모든 기관들이 발작을 한다. 사실 발작하지 않을 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이 선을 잘 지켜낸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내 위치에서 먹은 쓰레기나 잘 치우자. 젠장할 이 따위 짓도 잘 못하는데, 뭘 더 대단한 걸 하겠다고.
철저한 선에 이 글을 덧칠한다. 더 굵게, 더 선명하게. 넘을 수 없는 선으로 인식되도록. 지우개를 들고 지워야 한다. 그렇게 나의 무엇이 말한다. 사소한 것부터. 진부하다는 인식은 악마들이 제일 잘 써먹는 무기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그렇게 나의 무엇이 말한다. 진부한, 너무 바른 말이 사신 모든 문제의 열쇠라는 것.
내 주변부터 둘러보자. 장애인? 많다. 아주. 가끔 주말마다 엄마의 일을 도운다. 몸에 근육이 마비되어 잘 씻지 못하는 장애인 분을 씻겨 드리러 간다. 나조차 밀어본 기억이 없는 때를 타인에게 밀어준다. “너 때 밀어본 적 없니?” 처음에는 많이 미숙한 것이 그대로 들어 났나 보다. 난 아직도 내 때를 밀지 않지만 그래도 이제는 때 미는 요령을 터득했다. 겉으로 보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나와 꽤 잘 맞는 아주 좋으신 분이다. 때를 미는 와중에도 수많은 이야기 거리가 흘러간다. 해외 축구 이야기, 옛날 가수들 이야기와 노래 이야기, 해외 시트콤이나 먹거리 이야기, 최근에 개봉한 영화이야기, 나는 아예 모르는 그림과 관련된 이야기. 최근에는 아주 큰 아이패드 프로를 사셨다. 그림 그리는 사람들 한테는 아주 좋다고 하시며 난 앞으로 만질 일이 있을까 하는 그 값비싼 화면을 내미신다.
오는 길에 먹고 싶으면 버거킹을 사오라 하신다. 최근 햄버거에 대한 기준이 바뀐 이유는 아마 선생님과 함께 버거킹을 좀 먹었기 때문일 것이다. 롯데, 맥날, KFC는 좀 뒤로 빠져야 한다. 와퍼의 맛은 비교가 불가하다. 후식으로는 나초를 먹으며 무언가 아메리카, 혹 맥시칸 스타일 같다는, 좀 외국물을 마신 사람인 것 같은 감정을 느낀다. 미국 유학 갔을 때 이야기를 해주시면 가만히 앉아 듣는다. 교회에는 죄다 사기꾼 밖에 없으시다며, 미국 교회를 갔을 때 예배 시작 전후로 죄다 장사꾼들이 자기 상품을 팔고 있었다고 하신다. 별다른 대꾸를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선생님이 그린 그림을 실물로 보고 있자면 어쩜 조금은 현대 미술이 이해되는 것 같기도 하다. 힘없는 손가락 사이에 붓을 끼워 드리면 다른 한 손으로 붓 끼운 손가락을 바치시고 캔버스 위에 꾸덕한 물감 묻은 붓을 휘갈기신다. 붓을 내려 놓이실 때 마나 짧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깊게 내뱉으신다. 그렇게 완성된 작품은 내 키보다 커서 그 앞에 서면 약간의 압도감을 느낀다.
어느 날은 영화를 보고 싶으시다 하셨다. “오펜하이며” 꼭 보고 싶으시다고. 다만 말씀하시길. 한국 영화관은 모든 장애인 좌석이 맨 앞에 있고 올라가는 길은 전부 계단이어서 올라 가실 수가 없다. 앞에서 보면 목이 아픈데… 미국은 전부 경사로 되어 있고 위 쪽에도 장애인 좌석이 마련되어 있다. 선진국을 높이거나 이런 것이 아니라 그저 사실에 기반한 아쉬움에 토로였다. “제가 들어 드리면 되죠.” 다음주쯤 되어서 같이 영화관에 갔다. 차에서 내릴 때 제대로 주차하지 못하고 휠체어를 내리고 있었다. 뒷차는 경적을 계속 울렸고 이를 본 직원이 와서 장애인분이 내리신다고 기다리라는 말을 하였다. 그 뒤로 차가 계속 경적을 울리었는지는 기억이 없다. 역시 영화관에는 계단이 한가득이었고 난 공주님 안기로 선생님을 들어 좌석에 앉혀드리고 그 옆에 앉아 같이 영화를 보았다. 영화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놀런은 정말 천제야 그 배우도.” 그렇게 말씀하시는 눈에 어린아이 같은 행복감이 비춰져서 다음에도 같이 가야 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저번 주, 선생님이 물으셨다. “너 이번에 에일리언 나온거 봤니?” 얼마전에 봤다고 말씀 드렸다. 그때의 눈빛이 떠올랐다. “그거 꼭 보고 싶은데… 내가 에일리언 광팬이거든. 소리가 중요하다는데…” 우리 아빠와 똑 같은 말씀을 하셨다. “저희 아빠도 소리가 중요하다고 특별관 가서 같이 봤어요. 거기 가서 같이 봐요.” “근데 거기도 또 계단 있는 거 아니니?” “제가 한번 알아볼게요.” “그래.” 기대하시는 눈빛인지, 혹은 무엇인지. 난 선생님 댁을 나서며 5만원을 용돈으로 받았다. 그리고 감사하다며 꼭 찾아보겠다고… 그 뒤로 1주일이 흘렀다. 영화는 상영한지 꽤 되어서 점점 상영관이 줄어드는데 난 한 번도 찾아보지 않았다. 딱히 잊은 것도 아니었다. 그냥 잠시 잠시 미루다 보니 이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내 주변의 일부터 차근차근히 하다보면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다짐이 누가 진부하다 하였는가. 진부라는 말장난에 속에 제일 쉬우면서도 정확한 하나의 일을 미룬다. 철저히 선을 긋고 나의 영역에서만 재밌으면 됐다. 이런 생각을 이제부터, 아니 딱 지금만이라도 지워본다. 시간이 늦고 피곤하지만 영화관은 찾아보려 핸드폰을 킨다. 그렇게 나에게 주어진 뭐든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