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然必於大定後方見(필경어대정후방견) 並無採法(병무채법) 言採者大謬矣(언채자대류의) 見之既久(견지기구) 心地光明(심지광명) 自然心空漏盡(자연심공루진) 解脫塵海(해탈진해) 若今日龍虎(약금일용호) 明日水火(명일수화) 終成妄想(종성망상) 去吾昔受火龍眞人口訣如是(거오착수화룡진인구결여시) 不知丹書所說更何如也(부지단서소설경하여야)
1. 번역 : 하지만 반드시 크게 머물러야 두루 볼 수 있을 뿐이지 캐어 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캐어내는 방법을 말하는 사람은 큰 잘못을 범하고 있다. 그것을 이미 오래도록 보면 마음자리가 빛나며 밝아지고 절로 마음이 비게 되고 새어나감이 다하게 되어(漏盡) 티끌로 이루어진 바다(塵海)에서 벗어나게 된다. 만약 오늘 용과 범을 찾고 내일 물과 불을 찾는다면 결국 헛된 생각을 이루고 만다. 나는 예전에 화룡진인을 만나 이와 같은 가르침을 받았다. 단을 말하는 글(丹書)에서는 어떻게 말하는 지는 모르겠다.
* 으뜸가는 신과 영혼이 합쳐지는 현상을 여동빈은 감리교구(坎離交媾)로 설명했고 종리권은 용호교구로 설명했다.
不聞超脫(불문초탈), 蓋以不能交媾於龍虎(개이불능교구어용호) 採黃芽而成丹藥(채황아이성단약)
(참조 : 종려전도집(鍾呂傳道集), 종리권·여동빈, 이봉호·최재호·이대승·신진식 역, 세창출판사, 2013년, p85)
* 종리권과 함께 여동빈의 스승으로 알려져 있는데 여동빈에게 천둔검법을 전수했다고 알려진 이이다.
2. 참뜻 : 넋의 작용을 그치고 얼의 작용을 일으켜 으뜸가는 신의 마음에 거듭나야 비로소 얼을 모을 수 있는데 인위적으로 얼을 얻어 불릴 수 있는 방법 같은 것은 없다. 장기간 얼을 접하면 으뜸가는 신의 마음이 드러나고 사물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며 얼은 절로 모여 엉기게 되어 집착으로 생겨난 거짓된 마음을 초탈하게 된다. 만약 오늘 용과 범을 찾고 내일 물과 불을 찾겠노라고 나서면 끝내 헛된 생각을 하며 그릇된 견해를 이루게 된다. 지난날 화룡진인으로부터 이와 같은 가르침을 받았는데 으뜸가는 신의 마음을 다루는 다른 책들에서는 어떻게 말하는지 모르겠다.
一日有一周天(일일유일주천) 一刻有一周天(일각유일주천) 坎離交處便是一周(감리교처편시일주) 我之交(아지교) 即天之回轉也(즉천지회전야) 未能當下休歇(미능당하휴헐) 所以有交之時(소이유교지시) 即有不交之時(즉유불교지시) 然天之迴旋也(연천지회선야) 未嘗少息(미상소식) 果能陰陽交泰(과능음양교태) 大地陽和(대지양화) 我之中宮正位(아지중궁정위) 萬物一時暢遂(만물일시창수) 即丹經沐浴法也(즉단경목욕법야)
1. 번역 : 하루에 한 번 하늘을 도는 일이 있고 일각(一刻)에 한 번 하늘을 도는 일이 있다. 감괘와 이괘가 서로 교접하는 것이 곧 한 번 도는 일이다. 나의 교접이 곧 하늘에서 빙빙 도는 일인데 바로 그 순간에는 쉼이 없다. 이른바 합쳐지는 때가 있는가 하면 분리된 때가 있지만 하늘이 돌고 돌아 조금의 휴식도 맛볼 수 없다. 마침내 음과 양이 서로 교접하는 태괘가 이루어지고 큰 땅에는 볕이 들고 내가 사는 궁궐은 바른 위치에 놓이게 되고 모든 사물이 한 번에 번성하며 순응한다. 즉 단(丹)을 언급하는 경전에서 말하는 머리 감고 몸 씻는 비결인 것이다.
* 15분, 또는 짧은 순간을 가리킨다.
2. 참뜻 : 으뜸가는 신과 결합되었다가 분리되는 일을 하늘을 도는 일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하늘을 도는 일은 장기에 걸쳐 이루어지기도 하고 순간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으뜸가는 신과 혼백, 그리고 으뜸가는 신의 마음과 혼백의 마음이 완전히 합쳐져 하나가 되는 현상을 감리교구(坎離交媾)라고 말하는데 감리교구가 곧 하늘을 도는 일이다. 감리교구는 으뜸가는 신과 혼백이 하나로 합쳐지는 용호교구(龍虎交媾)에서 시작한다. 하늘을 도는 일이 이루어지면 멈추는 일이 없고 끝없이 결합되었다가 분리되는 일을 반복하는데 결국 으뜸가는 신이 의식에 완전히 강림하게 되고 으뜸가는 신의 마음이 드러나 마치 하늘이 땅 속에 들어온 형국이 된다. 즉 으뜸가는 신의 마음을 다루는 경전에서 머리 감고 몸 씻는 일이란 것은 바로 이러한 일을 가리킨다.
非大周天而何(비대주천이하) 此中火候(차중화후) 實實有大小不同(실실유대소부동) 究竟無大小可別(구경무대소가별) 到得功夫自然(도득공부자연) 不知坎離爲何物(부지감리위하물) 天地爲何等(천지위하등) 孰爲交(숙위교) 孰爲一周兩周(숙위일주양주) 何處覓大小之分別耶(하처멱대소지분별야) 總之一身旋運(총지일신선운) 雖見得極大亦小(수견득극대역소) 若一迴旋(약일회선) 天地萬物(천지만물) 悉與之迴旋(실여지회선) 即在方寸處(즉재방촌처) 亦爲極大(역위극대) 金丹火候(금단화후) 要歸自然(요귀자연) 不自然(부자연) 天地自還天地(천지자환천지) 萬物各歸萬物(만물각귀만물) 欲強之使合(욕강지사합) 終不能合(종부능합) 即如天時亢旱(즉여천시항한) 陰陽不合(음양불합) 乾坤未嘗一日不周(건곤미상일일부주) 然終見得有多少不自然處(연종견득유다소부자연처)
1. 번역 : 이것이 크게 하늘을 도는 일(大周天)이 아니겠는가? 이 중에서 불의 상태를 보면 하나하나에는 크고 작음이 있어 동일하지 않지만 궁극적으로 크고 작음의 구별을 할 수 없다. 익히는 일이 절로 이루어지는 경지에 이르면 감괘나 이괘가 어떤 사물인지, 하늘이나 땅이 무엇과 같은 것인지, 합침(交)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한 번 도는 일과 두 번 도는 일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지 못하게 된다. 어느 곳에서 크거나 작거나와 같은 분별을 찾을 수 있겠는가? 통틀어서 한 몸이 돌면서 움직이는 일은 비록 지극히 큰 것을 보아 얻더라도 또한 그것은 작은 것이다. 만약 한 번 돌면 하늘과 땅과 만물 모두가 그와 더불어 돈다. 즉 사방 한 촌에 있을지라도 또한 지극히 커질 수 있는 것이다. 황금으로 이루어진 단(金丹)에서의 불의 상태는 저절로 이루어지는 단계로 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절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하늘과 땅은 각각 하늘과 땅으로 돌아갈 뿐이고 만물은 각각 만물로 되돌아갈 따름이다. 억지로 합치려 해도 결국 합칠 수 없다. 즉 하늘의 시간(天時)이 무척 가물어서 음과 양(陰陽)이 합쳐지지 않는 것과 같아서 하늘과 땅이 하루에 돌지 않는 경우가 없지만 결국 크고 작음이 생겨나 절로 이루어지지 않은 곳을 보게 된다.
2. 참뜻 : 그대들이 넋의 작용을 그치고 얼의 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단계에 이르면 능히 으뜸가는 신과 합쳐질 수 있고 으뜸가는 신의 마음에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완전하지 않기에 결국 다시 으뜸가는 신과 분리되어 집착으로 가득찬 인간의 마음으로 되돌아가게 될 것이다. 하여간 분리되더라도 으뜸가는 신과 합쳐지고 으뜸가는 신의 마음에 거듭난 일은 사실이기에 이를 가리켜 ‘작게 하늘을 돌았다.(小周天)’라고 말할 수 있다. 그대가 넋의 작용을 그치고 얼의 작용을 일으키는 일을 장기간 하다보면 어느 순간 항상 얼의 작용이 일어나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그리되면 더이상 으뜸가는 신과 분리되는 경우란 없다. 항상 으뜸가는 신의 마음에서 으뜸가는 신이 강림하여 으뜸가는 신과 같은 상태가 된다. 이를 가리켜 ‘크게 하늘을 돌았다.(大周天)’라고 말할 수 있다. 하늘을 도는 과정에서 얼이 커지고 작아지는 변화를 감지할 수 있겠지만 이는 아직 완전하지 못한 상태이기에 감지되는 현상이고 크게 하늘을 돌게 되면 더이상 그러한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게 된다. ‘크게 하늘은 돈다.’는 말은 항상 으뜸가는 신과 하나가 되어 있다는 말이고 으뜸가는 신은 얼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으뜸가는 신의 뜻에 따라 모든 세상은 이루어지기에 모든 세상은 으뜸가는 신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하기에 크게 하늘을 돌아 으뜸가는 신과 같아지면 하늘과 땅과 모든 사물이 그와 함께 돌아간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처럼 크게 하늘을 도는 일은 억지로 하려고 해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대가 만일 그렇게 되고자 하는 의지를 일으켜 억지로 그리 되고자 한다면 작게 하늘을 도는 일(小周天)조차 이루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집착으로 인해 생겨난 헤아릴 수 없는 인간의 마음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我能轉運陰陽(아능전운음양) 調適自然(조적자연) 一時雲蒸雨降(일시운증우강) 草木酣適(초목감적) 山河流暢(산하류창) 縱有乖戾(종유괴러) 亦覺頓釋(역각돈석) 此極大周天也(차극대주천야) 問活子時甚妙(문활자시심묘) 然必認定正子時似著相(연필인정자시사착상) 不著相(불착상) 不指明正子時(부지명정자시) 何從而識活子時(하종이식활자시) 既識得活子時(기식득활자시) 確然又有正子時(확연우유정자시) 是一是二(시일시이) 非正非活(비정비활) 總要人看得眞(총요인간득진) 一眞則無不正(일진즉무부정) 無不活矣(무불활의) 見得不眞(견득부진) 何者爲正(하자위정) 何者爲活耶(하자위활야) 即如活子時(즉여활자시) 是時時見得的(시시시견득적) 畢竟到正子時(필경도정자시) 志氣清明(지기청명) 活子時愈覺發現(활자시유각발현) 人未識得活的明了(인미식득활적명료) 只向正的時候驗取(지향정적시후험취) 則正者現前(즉정자현전) 活者無不神妙矣(활자무불신묘의)
1. 번역 : 내가 능히 음양을 돌리며 움직일 수 있어서 절로 알맞게 적응하면 때에 따라 구름이 뭉쳐져 비가 내리고 풀과 나무는 번성하고 산은 울창하고 강은 콸콸 흘러 비록 꼬임이 있더라도 또한 갑자기 풀어짐을 깨닫게 된다. 이것이 크게 하늘을 도는 일에 이른 것이다. 살아나기 시작하는 때를 물으면 지극히 묘해 답하기 곤란한데 반드시 바르게 시작하는 때를 인정해야 하고 드러나는 모습에 집착하는 것 같지만 드러나는 모습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다. 바르게 시작하는 때를 가리지 못한다면 어떻게 살아나기 시작하는 때를 찾아 알 수 있겠는가? 이미 살아나기 시작하는 때를 알고 얻었다면 확실히 바르게 살아나기 시작하는 때가 또한 있는데 이는 하나이면서 둘이고 바르게 되는 때와 살아나는 때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닌데 결국 수련하는 참된 것을 간파하고 겪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가 참된 것이라면 바르지 않음이 없고 살아나지 않음이 없다. 참되지 않은 것을 보고 겪노라면 무엇이 바르게 될 것이며 무엇이 살아나겠는가? 곧 살아나기 시작하는 때라는 것은 때때로 보면서 겪을 수 있기에 마침내 바르게 시작하는 때에 도달하는 것이다. 뜻과 기(氣)가 맑고 밝으면 살아나기 시작하는 때가 강하게 느껴지며 나타난다. 살아나는 것에 대한 깨달음을 알지 못하는 이는 다만 바르게 되는 때를 겪어 얻을 수 있을 따름이다. 즉 바른 것이 앞에 드러나 있긴 하지만 살아나는 것은 참으로 신비하기 그지 없다.
2. 참뜻 : 으뜸가는 신과 완전히 합일하여 으뜸가는 신의 마음이 드러나면 더이상 고통이나 쾌락에 연연하지 않게 되고 참된 뜻을 받아들여 참되게 살아가게 된다. 이는 꼬인 매듭이 탁 풀리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진리와 진실을 있게 하는 존재는 생명을 있게 하는 존재요 영원히 사는 존재이기에 으뜸가는 신과 합일하는 일은 살아나는 일에 비유할 수 있다. 넋의 작용이 그치고 얼의 작용이 일어난다는 말은 으뜸가는 신의 뜻이 드러나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지만 영원한 생명을 얻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하여간 이러한 때는 둘이 아니고 하나이기에 따로 익힐 수 있는 방법같은 것은 없으며 실제로 겪어 알지 못하면 이해할 수는 있어도 믿을 수는 없다. 그대가 섭리로 세상을 이루어지게 하는 으뜸가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더라도 섭리를 긍정하면 그대의 마음에 섭리가 나타나 바르게 살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원한 생명을 지닌 존재를 부정하였기에 으뜸가는 신을 접촉하여 또다른 생명을 얻는 일은 불가능할 것이다. 하여간 으뜸가는 신의 뜻도 참으로 신비하지만 영원한 생명은 그보다 훨씬 신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