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눈사람을 읽고
박경선
대구 기온이 30도를 오르내리는 이 한여름에 김종헌 교수가 『한여름 눈사람』을 보내왔다. 폭염을 쫓아보려고 함박눈 맞는 눈사람을 마중하는 발상부터 시원한 바람을 선물로 보내온 듯 잠시 더위를 잊게 한다. 하지만 ‘무더운 바람’ 같은 온난화로 지구의 생명들이 점점 지쳐가는 이 시국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숨어 있는 시다. <그때 4월 이후> 아직도 비밀번호/ 그대로 둔 철이 엄마//담장엔/개나리꽃이/ 그날처럼 피었어요
-글을 쓰는 작가라면 작가의 양심으로 무엇이든 도움이 되어줄 일을 찾아 나서야 하는 세월호 사건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 자신을 부끄럽게 하는 시였다.
<우리 캐슬아파트니까> 그냥, 나는 우리 놀이터에서 놀고 싶어요
- 아이가 단지 놀이터에서 자유롭게 놀고 싶은 마음 하나도 안아줄 수 없는 아량과 사회 환경이 아이들을 쓸쓸하게 한다.
<고양이가 호랑이를 잡는 법> 호랑이가 성가신 할머닌, 그냥 좀 큰 고양이인 줄 알고 콧잔등을 쳤다가 대갈통까지 갈기는데 그런 용기는 호랑이를 한 번도 못 본 덕에 생긴 용기였으리라. 아이들이 읽으면서 깔깔깔 신나게 웃을 재미있는 동화 이야기를 품고 있는 시였다. 10연까지 있는데 7연까지만 읽어도 깔끔한 맛이 난다. <돌배나무 이야기> 돌 같이 단단하고 테니스공보다 작은 돌배가 맛도 떫다. 고목이 되어도 여전히 단단하고 작고 떫은맛 그대로다. 무슨 옹골찬 신념을 키우느라 변하지 않을까? 우리 집 텃밭 가에도 그런 야생 돌배나무 한 그루 있다. 나는 경상도 사람이라서 돌배를 똘배라 한다.
<똘배나무>
7년 전에 구미 천생산 등산길에 발길에 차이는 똘배 한 개 주워 왔다.
과일째로 파묻었다./‘나무 자체가 환경에 따라 백 년 이상 자생한다는데.’ 하면서 파묻었다.
4년 전쯤 대추 알만한 똘배가 열리더니/ 작년에는 알감자만큼 커지고/올해는 탁구공만큼 커졌다.// 놀러 온 아이들이 심심풀이로 입에 넣고 깨물어 맛보다가/ ‘퇘 퇘’ 뱉아냈다./
“맛은 시고 떫고 작지만 이게 약이 된다는데/ 꿀에 절여뒀다가 기침 날 때, 가래 삭일 때 먹으면 약이 된다는데.”/ 내가 치켜세우든, 누가 얕보든/ 똘배는 똘배 그대로 제대로 자라고 있다.
<나도 저랬겠지>
개미가 제 몸뚱이보다/훨씬 큰 잠자리 머리통을 /비틀비틀 끌고 간다
힘에 부쳤는지/자꾸만 떨어뜨린다//번쩍 들어 옮겨주고 싶었다.
엄마가 보기엔 나도 저랬겠지.
-작가는 개미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아름답게만 보았다. 나는 말벌과 잠자리가 싸우던 현장을 보았다. 말벌이 잠자리 목을 물어 목이 댕강 끊어지니 몸통부터 뜯어 먹던 모습이 생생하다. 그래서 개미가 잠자리 머리통을 끌고 가도 개미의 힘듦보다 죽은 목숨으로 끌려가는 잠자리의 측은함에 마음이 먼저 간다.
<요양병원에서>
집에 가자, 집에 가‘/보채듯 되뇌던 그 말도 못 하고//이제 외할아버지는
낮달처럼 누워만 있다.
이 시를 읽으면 시어머님을 요양병원에 모셔놓고 토요일에 뵈러 갈 때마다
“야야, 집에 가자, 내 집에 가고 싶다!”
하시던 말씀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누구나 죽음을 앞두고 내가 편하게 지내던 내 집에서 죽기를 소원하지만, 혼자 몸 가눌 수 없을 때, 한 사람이라도 붙어서 돌볼 여유가 없을 때, 요양원으로 모실 수밖에 없었던 불효가 가슴을 친다. 나 또한 요양원에 들어갈 날이 머지 않았으니….
<유기견 백구>
버스가 설 때마다/버스가 떠나고//사람들도 다 떠나고 나면/백구는/주변을 새로 한 번 휘둘러본다.
-외로움을 견디는 좋은 친구로 반려견을 키우던 노인들이 더 이상 반려견을 돌볼 수 없는 상황이 오면, 이렇게 반려견들은 무방비로 외로움의 형별을 맞이하게 된다. 마음 예쁜 아이와 마음 여린 엄마가 사는 집으로 들어가기란 하늘의 별 따기일 테니, 이런 환경에 놓인 강아지를 봐도 나 역시 기약 없는 노인의 몸이라 고개 돌릴 수밖에.
이런 문제들을 가져와 보여주는 시인의 시는, 대체로 우리를 쓸쓸하게 하고 더러는 부끄럽게 한다. 한마디로 사회 문제나 자기 성찰에 울림을 주는 시들이라 공감이 크다. (1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