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중일기<병신년 (1596년 9월)>「 "世祖의 祭祀 새벽에 조반에 고기를 놓았다. 나는 먹지도 않고 도로 내놓았다."」
병신년 9월 (159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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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9
9월 초1일 (갑오) 비가 뿌렸다. [양력 10월 21일]
1080
새벽에 망궐례를 행했다.
1081
일찍 떠나 석제원(강진군 성전면 성전리)에 이르렀다. 점심을 먹은 뒤에 영암에 이르러 향사당(鄕舍堂)에서 잤다.
1082
정랑 조팽년(趙彭年)이 와서 봤다. 최숙남(崔淑男)도 와서 봤다.
1083
9월 초2일 (을미) 맑다. [양력 10월 22일]
1084
영암에서 머물렀다.
1085
9월 3일 (병신) 맑다. [양력 10월 23일]
1086
아침에 떠나 나주의 신원에 이르렀다. 점심을 먹고 나서 나주판관을 불러다가 고을의 일들을 물었다.
1087
저물 무렵에 나주에 이르렀다. 별관의 종 억만(億萬)이 와서 신원(新院)에서 알현했다.
1088
9월 4일 (정유) 맑다. [양력 10월 24일]
1089
나주에서 머물렀다. 어두울 무렵 목사(李福男)가 술을 가지고 와서 권했다. 일추(一秋)도 술잔을 가져 왔다.
1090
이 날 아침에 체찰사와 함께 문묘에 절했다.
1091
9월 5일 (무술) 맑다. [양력 10월 25일]
1092
나주에서 머물렀다.
1093
9월 6일 (기해) 맑다. [양력 10월 26일]
1094
먼저 무안의 일로 가겠다고 체찰사에게 보고하고 일을 떠났다. 고막원(古莫院: 나주시 다시면 고막리)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1095
나주감목관 나덕준(羅德駿)이 뒤쫓아와서 서로 만났다. 이야기 하는 중에 강개한 일이 많았다. 그래서 그와 함께 오랬동안 이야기하다가 저물어서 무안에 이르러 잤다.
1096
9월 7일 (경자) 맑다. [양력 10월 27일]
1097
감목관 나덕준(羅駿) 및 무안현감(남언상) 함께 민폐에 관한 이야기했다. 한참 있다가 정대청(鄭大淸)이 들어왔다고 했다. 그래서 그를 청하여 앉아 이야기했다.
1098
저녁나절에 떠나 다경포(무안군 운남면 성내리)에 이르러, 영광군수와 함께 밤 열 시쯤이나 되게 이야기했다.
1099
9월 8일 (신축) 맑다. [양력 10월 28일]
1100
나라제삿날(世祖의 祭祀)인데도 오늘 새벽에 조반(早飯)에 고기를 올려 놓았다. 그래서 나는 먹지도 않고 도로 내놓았다.
1101
아침밥을 먹은 뒤에 길을 나서서 감목관에 이르니 감목관과 영광군수는 같이 있었다. 국화 떨기 가운데로 들어가서 술 두어 잔을 마셨다.
1102
저물어서 동산원(東山院: 무안군 현경면 옹산원;瓮山院)에 이르러 말을 먹였다. 말을 재촉하여 임치진(해제면 임수리)에 이르니, 이공헌(李公獻)의 딸 여덟 살짜리 아이와 그 사촌의 계집종 수경(水卿)이 같이 와서 알현했다. 이공헌(李公獻)을 곰곰히 생각하니 참혹한 마음을 이길 수가 없었다.
1103
수경(水卿)은 곧 이염(李琰)의 집에서 내다 버렸는데, (이공헌이) 얻어다가 기른 아이이다.
1104
9월 9일 (임인) 맑다. [양력 10월 29일]
1105
일찍 일어나서 임치첨사 홍견(洪堅)을 불러 방비책을 물었다.
1106
아침 식사를 한 뒤에 뒷성(後城)으로 올라가 형세를 살펴보고 동산원으로 돌아왔다. 점심을 먹은 뒤에 함평현에 이르렀다.
1107
도중에 한여경(韓汝璟)을 만났으나, 말위에서는 만나 보기가 어려우므로 타일러서 함평으로 들어갔다.
1108
함평현감은 경차관을 마중하러 나갔다고 했다. 김억창(金億昌)도 같이 함평에 왔다.
1109
9월 10일 (계묘) 맑다. [양력 10월 30일]
1110
몸도 노곤하고 말도 힘들 것 같아서 함평에 머물러 잤다.
1111
아침 식사를 하기 전에 무안의 정대청이 와서 함께 이야기했다. 고을 유생도 많이 들어와 폐단된 일을 진술했다.
1112
저녁에 도사(都事)가 들어와서 같이 이야기했다. 밤 열 시쯤에 헤어져 나갔다.
1113
9월 11일 (갑진) 맑다. [양력 10월 31일]
1114
아침식사를 하고나서 영광으로 갔다. 도중에 신경덕(辛慶德)을 만나 잠깐 이야기하고 영광에 이르니, 영광군수가 교서에 숙배한 뒤에 들어와 같이 이야기했다. 이 때 산월(山月)도 와서 보고 술마시며 이야기하다가 밤이 깊어서야 헤어졌다. 누명을 벗길 수 없었다.
1115
9월 12일 (을사) 바람불고 비가 많이 내렸다. [양력 11월 1일]
1116
저녁나절에 길을 떠나 십리쯤 되는 냇가에 이르니, 이광보(李光輔)와 한여경(韓汝璟)이 술을 가지고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말에서 내려서 같이 이야기하는데 비바람이 그치지 않았다. 안세희(安世熙)도 왔다.
1117
저물 무렵에 무장(茂長)에 이르렀다. 여진(女眞)과 잤다.
1118
9월 13일 (병오) 맑다. [양력 11월 2일]
1119
이중익(李仲翼) 및 이광축(李光軸)도 와서 같이 이야기했다. 이중익(李仲翼)이 말을 많이 하다가 막히어서 급하게 되니 옷을 벗고서 그에게 관여하며 종일 이야기했다.
1120
9월 14일 (정미) 맑다. [양력 11월 3일]
1121
하루 더 묵었다. 여진(女眞)과 두번 관계했다.
1122
9월 15일 (무신) 맑다. [양력 11월 4일]
1123
체찰사가 현(무장현)에 이르렀다고 하므로 들러가 절하고 대책을 의논했다.
1124
여진(女眞)과 세번 관계했다.
1125
9월 16일 (기유) 맑다. [양력 11월 5일]
1126
체찰사 일행이 고창에 이르러 점심을 먹은 뒤에 장성에 이르러서야 잤다.
1127
9월 17일 (경술) 맑다. [양력 11월 6일]
1128
체찰사와 부찰사는 입암산성(立巖山城: 정주시 입암면 임암산 해발 655m)으로 가고, 나는 혼자 진원현(장성군 진원면 석전리 진원)에 이르러 진원현감과 같이 이야기했다. 종사관도 왔다.
1129
저물어서 관청 안으로 들어가니 두 조카딸이 나와 앉아 있었다. 오랫동안 못보았던 감회를 풀고 도로 작은 정자로 나가 진원현감 및 여러 조카들과 밤들도록 같이 이야기했다.
1130
9월 18일 (신해) 비가 조금 내렸다. [양력 11월 7일]
1131
식사를 한 뒤에 광주에 이르러 광주목사(최철견)와 이야기했다.
1132
비가 많이 오더니, 한밤에는 달빛이 대낮 같았다. 밤 두 시쯤에 비바람이 세게 일었다. 영의정
1133
9월 19일 (임자) 바람이 세게 불고 비가 많이 내렸다. [양력 11월 8일]
1134
아침에 행적(行迪)이 와서 봤다. 진원(珍原)에 있는 종사관의 편지와 윤간(尹侃) ∙ 봉(菶) ∙ 해(荄)의 문안 편지도 왔다.
1135
이 날 아침 광주목사(최철견)가 와서 같이 아침 식사를 했다. 이어서 술이 나와 밥을 먹지 않아서 취해버렸다. 광주목사의 별실에 들어가 종일 몹시 취했다.
1136
오후에 능성현령(李繼令)이 들어와서 곳 간을 봉하고 광주목사를 체찰사가 파면시켰다고 했다.
1137
최철견의 딸 최귀지(崔貴之)가 와서 잤다.
1138
9월 20일 (계축) 비가 많이 내렸다. [양력 11월 9일]
1139
아침에 각가지 사무보는 색리들의 죄를 논란했다.
1140
저녁나절에 광주목사를 보고 길을 떠나려 할 즈음에 명나라 사람 두 명이 이야기 하자고 청하므로 술을 먹였다.
1141
길을 떠났으나 종일 비가 내려 멀리 갈 수가 없어 화순에 이르러 잤다.
1142
9월 21일 (갑인) 개다가 비오다가 했다. [양력 11월 10일]
1143
일찍 능성(화순군 능주면)에 이르러 최경루(最景樓)에 올라가 연주산(連珠山)을 바라보았다. 이 고을 원이 술을 청했다. 그래서 잠깐 취하고서 헤어졌다.
1144
9월 22일 (을묘) 맑다. [양력 11월 11일]
1145
아침에 각가지의 죄를 논란했다. 저녁나절에 나가 이양원(화순군 이양면 이양리)에 이르니, 해운판관(海運判官)이 먼저 와 있었다. 내가 가는 것을 보고 이야기하고자 청하므로 그와 함께 이야기했다.
1146
저물어서 보성군에 이르니 몸이 몹시 고단하여 잤다.
1147
9월 23일 (병진) 맑다. [양력 11월 12일]
1148
머물렀다. 나라제삿날(太祖의 神懿王后 韓氏 祭祀)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1149
9월 24일 (정사) 맑다. [양력 11월 13일]
1150
일찍 떠나 병사 선거이(宣居怡)의 집에 이르니, 선거이의 병이 매우 중태였다. 염려된다. 저물어서 낙안에 이르러 잤다.
1151
9월 25일 (무오) 맑다. [양력 11월 14일]
1152
색리 및 선중립(宣仲立)의 죄를 논란했다. 순천에 이르러 순천 부사와 함께 같이 이야기했다.
1153
9월 26일 (기미) 맑다. [양력 11월 15일]
1154
일이 있어 더 머물렀다. 저녁에 순천부의 사람들이 소고기와 술을 차려 놓고 나오기를 청했다. 굳이 사양했으나 부사(府使)의 간청으로 잠깐 나가 마시고서 헤어졌다.
1155
9월 27일 (경신) 맑다. [양력 11월 16일]
1156
일찍 떠나 가서 어머니를 뵈었다.
1157
9월 28일 (신유) 맑다. [양력 11월 17일]
1158
남양 아저씨의 생신이라 본영으로 왔다.
1159
9월 29일 (임술) 맑다. [양력 11월 18일]
1160
아침밥을 먹은 뒤에 동헌으로 나가 공문에 관인을 찍었다. 종일 앉아서 사무를 봤다.
1161
9월 30일 (계해) 맑다. [양력 11월 19일]
1162
옷 담아 둔 농을 꺼내어 둘은 곰내로 보내고, 하나만 본영(여수)에 남겨 두었다.
1163
저녁에 선유사(宣諭使)의 군관 신탁(申省)이 와서 군사들을 위하여 위로연을 베풀 날짜를 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