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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물이 흘러내리는 계곡을 품고 있는 산 '청계산'이 오색으로 물들었습니다.
일기예보는 비가 내린다고 했지만 하늘도 가을이 성큼 달아나는 것이 아쉬었는지
지난 토요일은 초여름같은 포근한 날씨를 선물했습니다.
가을은 일년을 넷으로 쪼갠 시간의 한 단위이지만 때로 그것은 공간의 단위이기도 합니다.
산에 들에 공원에 마당에 서 있던 푸른 나무들이 온통 붉고 노란 단풍으로 옷을 갈아입을 때
우리는 가을이라는 단어를 떠 올립니다.
강은교 시인은 그래서 자신들이 가야할 때를 알아서 스스로 가는 이 나무들에게
아끼없는 찬사를 보냅니다.
" 때를 아는 저 산의 나무들은 얼마나 지혜롭고 지혜로움으로써 또 다시 아름다운지요?
언제 제 몸의 색깔을 전부 내어 물들어야 할지와, 언제 그 물든 잎을 버려야 하는지와,
언제 빈 가지로 서 있어야 하는지를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잘 아는 그것들,
떠나가야 함과 돌아와야 함을 스스로 아는 그것들.
사는 일이 실로 버리는 일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늙어 간다는 것이, 실은 저 나무처럼 하나씩 잎사귀를 버려 가는 것임을,
저 초겨울 하늘의 철새들처럼 낯익은 지상과 낯익은 하늘을 훌훌 떠나가는 것임을,
사라지는 것들이 아름다운 때입니다."
사라지는 것들이 아름다운 늦가을,
하늘이 빚은 것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산과, 인간이 빚은 것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음악이 만나는 황홀한 향연이 펼쳐졌습니다.
이병욱 교수님이 지난 8월 세계 각국의 예술가들과 함께 다녀오신 차마고도를
선율에 담아 발표하는 '시와 음악으로 노래하는 차마고도' 연주회였습니다.
세상 가장 풍요로운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렸던 그 나무들이 우수수 열매와 잎새를
모두 떨구는 가을, 차마고도의 아름답고 장엄하고,
더러는 절대 고독의 처연한 풍광이 노래에 실려, 시에 얹혀, 사진에 담겨
쓸쓸하고 텅 빈 마음에 강렬하게 찾아왔습니다.
청계산 푸른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라푸마 매장 2층 카페는 발디딜 틈 없이 들어찬
관객을 태우고 어둠이 깔릴 무렵 차마고도로 날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3주에 가까운 차마고도 예술기행에 함께 하셨던 양승국 변호사님께서
여행 도중 바리바리 찍으신 사진으로 차마고도의 아름다운 풍광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참여하신 예술가들의 퍼포먼스까지 자세하게 안내해주셨습니다.
우리는 사진을 통해 천인단애의 험한 벼랑길을 마방들과 함께 걸어가는 체험을 했고,
울부짖는 거센 협곡을 가슴 졸이며 건넜고, 고원에 나부끼는 룽다와 타르쵸를 만져 보았고
부처님을 향해 온 몸을 날려 기도하는 티벳사람들과 함께 오체투지를 했습니다.
비록 차마고도를 가지 못했지만 사진을 통해 우리는 오히려 차마고도의 속살을
들여다 볼 수 있었습니다.
왜냐구요?
우리가 그냥 두 발로 차마고도를 걸어갔더라면 지나쳤을 그들의 삶과 차마고도의 역사와
문화가 아로새겨진 상징적 장소와 유적들을 양 변호사님께서 예리하게 찍어내셨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사진은 단순히 피사체를 복사하는 기계적 행위의 결과물이 아닙니다.
찍는 이의 시선과 생각과 철학이 담겨 있는 선택적 행위입니다.
20세기 가장 뛰어난 문명비평가이자 사진가였던 미국의 수잔손탁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바로 순간순간을 쪼개내어 그것을 정착시키는 것이다.
사진은 허구화한 현재이며 부재의 증거이다."
우리는 가만히 앉아서 단 20분 만에 3주에 걸친 차마고도 여정을 어떤 여행자보다도
실감나게 그리고 일목요연하게 다녀왔습니다.
허구화한 현재로서의 차마고도이지만 눈에 비쳐지는 현실보다 더욱 현실적인 세계를
포착해오신 의미있는 허구화의 사진을 본 것이지요.
이어서 함께 여행하신 행위예술가 방효성 선생님께서 '경계를 넘어'라는 주제의
퍼포먼스를 보여주셨습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무수한 경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와 너, 내 가족과 남의 가족, 우리 학교와 남의 학교, 우리 동네와 남의 동네,
우리 도시와 남의 도시, 우리나라와 남의 나라, 여성과 남성, 기독교와 불교,
잘사는 이와 못사는이.....
평화와 공존을 지향하는 모든 형태의 진보적 시민운동과 문화운동은 이런 경계와 벽을
허물어 하나로 어우러지는 '대동사회'를 꿈꿉니다.
어울림의 음악도 그런 것이겠지요.
그러나 방효성 선생님은 이같은 경계 허물기에 동의하면서도 자칫 이 경계 허물기가
타자에 대한 정복이나 강제적 동일화로 이어지는 부작용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립스틱은 입술에 발라야 하는 것이고 눈썹은 눈 위에 그려야 하는 것이지.
눈썹을 턱에 붙이고 립스틱을 눈썹에 칠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이지요.
사진과 행위예술로 풀어 본 차마고도에 이어 본격적으로 시와 음악으로 노래하는
차마고도 향연이 시작됐습니다.
이번 발표회를 기꺼이 협찬해 준 라푸마의 청계산 점장이면서 무용가이고
뮤지컬 배우이기도 한 나성아 님이 유려한 음색으로 '룽다'를 낭송했습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담은 천 조각인 룽다는 험한 길, 외로운 길, 춥고 고달픈 길, 때로는 생명을
잃기도 하는 거친 마방의 길을 가던 사람들의 간절한 소망이 담긴 것입니다.
고원에 나부끼는 룽다는 그래서 그 자체가 가장 절절한 믿음을 담은 경전입니다.
이번에 발표된 룽다를 포함해 차마고도, 티나객잔, 호도협, 얄롱장보강, 아! 티벳등
11개의 노래는 함께 가셨던 임솔내 시인께서 시를 쓰셨고, 이병욱 선생님이 곡을 붙이신 것입니다.
여정을 따라가면서 임 시인께서 느끼신 차마고도를 활자에 담으신 것이고, 다시 이병욱
선생님은 선율에 옮기신 것이지요.
한 곡 한 곡이 연주될 때마다 관객들은 때로 그 아름다운 고원의 풍광을 떠 올리면서
감탄하기도 하고, 고원에 부는 황량한 바람과 눈보라, 마방들이 지새워야 했을 공포의
밤을 생각하면서 숙연해지기도 했습니다.
차와 소금 등을 잔뜩 실은 야크의 목에 걸린 말방울 소리와 나부끼는 룽다를 떠 올리면서
먼 길 떠나는 순례자의 마음을 헤아려 보기도 했습니다.
세상 모두를 삼킬 듯이 울부짖는 호도협과, 토막난 채 물고기 밥으로 수장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노래할 때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묵상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공연은 특히 이병욱 선생님과 함께 차마고도를 다녀오지 않았으면서도 작시자와
작곡자의 느낌을 충분히 몸으로, 소리로 익혀 완벽하게 표현해 낸 가수와 연주자들이 있어
가능했습니다.
소프라노 임수영 님과 이윤순 님, 창을 하시는 황세희님, 재즈싱어 송귀민님
그리고 클라리넷의 김인철 교수님, 첼리스트 오금실 님 모두 초연의 까다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셔서 환상의 연주와 노래를 들려주셨습니다.
이 분들은 곡의 느낌을 온 몸으로 느끼기 위해 온갖 차마고도 관련 서적과 비디오도
보셨다니, 한 곡을 부르고 또 연주하기 위해 예술가들이 기울이는 노력에 머리가 숙여집니다.
또 청주에서 달려 온 이병욱 선생님의 청주 서원대학교 제자들도 청아한 코러스로
연주의 매력을 더했습니다.
차마고도 여정따라 임 솔내 선생님과 이병욱 선생님이 온 영혼으로 토해내신 시와
노래가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가는 순간이었습니다.
관객으로 이번 공연을 보셨던 한 분은 ' 시인이 뼈대를 세우고, 작곡자가 살을 붙였고
연주자가 피를 돌게 했다'는 멋진 평을 해 주시기도 했습니다.
특히 강물과 호수에 시신을 집어넣어 물고기 밥으로 준다는 '얄롱장보강' 노래에서는
황세희 님의 구성진 창에 우리의 상여소리가 어우러져 비장함을 더했습니다.
아주 어릴 적 어슴프레한 기억 속에만 남아있는 상여 나가는 풍광,
만장이 나부끼고 요령이 흔들리고 상여꾼들의 매김소리가 저승길을 가는 망자의
원혼을 달랬습니다. 세상 가장 구슬프면서도 알 수 없는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던 소리,
그것은 우리 민족 특유의 정서라는 '한(恨)'의 극치이면서 '슬픔의 미학'의 정점이었을 듯 싶습니다.
가곡풍과 민요풍 재즈풍, 어떤 장르와도 절묘하게 어루어지는 차마고도 노래는
장장 두시간에 걸쳐 이어졌고 장내는 흥분과 감동이 넘쳐 흘렀습니다.
새삼 예술이 얼마나 위대한가 절실히 느끼고 또 감사했던 시간이었습니다.
니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 음악이 없다면 세계는 하나의 오류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우리는 음악이 없다면 상상력을 발동할 수 없고 그저 눈에 보이는 것이 다 인줄만 알고
살아갑니다.
우리가 그냥 차마고도 여정을 터벅터벅 간다면 우리는 나부끼는 룽다와 타르쵸에 얼룩져있는
마방들의 눈물을 읽어낼 수 있을까요?
호랑이처럼 포효하는 호도협에 빠져 생을 마감한 마방과 야크의 가슴 아픈 운명을 떠 올릴 수 있을까요?
마치 바위 속을 파고들어가 사라질 것같이 험준한 구절양장 구비구비 새겨진 인간의 끈질긴
모험정신과 식솔들을 먹여 살리기 위한 가장의 숭고한 책임과 희생을 기억할 수 있을까요?
수백킬로미터를 오체투지라는 초인적인 방법으로 순례하여 마침내 달라이라마가 살고 있는
포탈라 궁에 다다른 불교도들의 그 절절한 불심을 헤아릴 수 있을까요?
음악이 아니라면 우리가 어떻게 차마고도 그 처연하면서도 아름다운 풍광이
지구촌 곳곳에 존재하는 오지의 풍광과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까요?
음악은 존재 이면에 존재하는 진실에 눈을 뜨게 해 줍니다.
우리의 잠자는 상상력과 퇴화하는 창조력을 일깨워, 두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삶과 역사의
진실의 문을 열어 젖히는 알리바바의 주문과 같은 것입니다.
하여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오르페우스의 송가' 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 노래는 욕망이 아니라는 것을 곧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은 급기야 손에 넣을 수 있는
사물에 대한 애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노래하는 것은 실존하는 것이다.
젊은이들이여,
노래는 뜨거운 사랑을 하면서
그대의 다문 입에
정열적인 목소리가 복받쳐오를 때 나오는 것이 아니다.
배워라 그대의 격한 노래를 잊어버리는 방법을.
그것은 아무짝에도 소용 없는 것이다.
진리 안에서 노래하는 것은 다른 숨결이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숨결,
신의 속안에 불고 있는 것, 바람 "
이 날 우리의 마음을 울린 차마고도 노래는 바로 신의 속안에 불고 있는 것!
'바람'이었습니다.
그저 초원에 푸른 호수가 펼쳐지고 야크가 방울을 울리며 그림처럼 나아가는
멋진 풍광을 읊은 로맨스가 아니라 엄숙하게 실존하는 것에 대한
경건과 경의를 표하는 인사, 진리 안에서 노래하는 숨결!이었습니다.
이번 공연에도 물론 너무도 많은 분들이 아무런 댓가 없이 기꺼이 재능과
수고를 보태주셨습니다.
함께 예술기행을 다녀오셨고 멋진 무대를 꾸며주신 감연희 작가님,
언제나 그렇듯이 멋진 삽화로 감동을 더해주신 이무성 화백님,
팜플렛과 플래카드 포스터를 준비해시고 또 걸어주신 황경애 선생님과
이석환 소장님,
공연에 어울리지 않는 열악한 무대임에도 최적의 음향을 마련해주신 분들,
방송을 위해 이리저리 땀을 뻘뻘 흘리시면서 촬영해 주신 감독님.....
여기에 흥겨운 뒤풀이를 위해 거액을 쾌척해주신 많은 분들이 계셔
신명으로 달궈진 밤이었습니다.
이 아름답고 감동적인 선생님의 작품들이 반드시 CD로도 제작되어 더 많은
분들이 감상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또 제대로 된 무대와 오케스트라, 춤까지 어우러진 정식 공연도 추진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청계산의 가을도 깊었고 밤도 깊었고 우리들 마음도 차마고도의 감동으로
한없이 깊어간 날이었습니다.
아! 당분간 제 영혼은 차마고도의 어디쯤인가를 마냥 떠돌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차마고도를 가야겠습니다.
언젠가는
이병욱 선생님의 차마고도 노래를 배낭에 집어넣고!
- goforest 合掌 -
(* 박상문 국장님, 공연 사진도 올려주세요!, 그리고 노래와 연주 가능하면 다 올려주시면
좋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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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실존하는것에 대한 경의, 경건, 그리고 인사하는것이라는 말씀이 콱 가슴에 박힙니다, 선생님 차마고도를 헤메실때 저도 그곳에 있고 싶네요, 모든분들의 뜨거운 마음, 사랑이 하나되는 거대한 퍼포먼스 ------------
흥겨운 뒤풀이를 위해 거액을 쾌척해주신 분들입니다~^^
김대웅님 50만원, 가재욱님 30만원, 김종규님 30만원, 양승희님 10만원
정말 감사드립니다~`^^
정말 많은 분들이 그렇게 환호 해 주시고 ,, 너무 즐거 웠습니다 !!
좋은 후기 잘 읽고 갑니다 ~ (째즈 송 ^^)
역시~~~ 위원장님의 후기는 늘 감동적입니다. 글로 인해 그날의 느낌은 오롯이 다시금 살아납니다. 저도 사진이란 시간 속에 끊임없이 흐르는 영상의 한 순간을 건져내어 영원으로 고착시킨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수잔 손탁의 말에 공감을 느낍니다.
황세희님이 노래 부를 때 부딪치던 타악기는 무엇인가요? 그 악기의 소리와 어울려나오는 황세희님의 노래를 다시 듣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