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4.주님 공현 대축일 후 화요일>
<마르6,34-44>그때에 예수님께서는 34 많은 군중을 보시고가엾은 마음이 드셨다.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35 어느덧 늦은 시간이 되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여기는 외딴곳이고 시간도 이미 늦었습니다.36 그러니 저들을 돌려보내시어,주변 촌락이나 마을로 가서 스스로 먹을 것을 사게 하십시오.”37 예수님께서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하고 이르시니,제자들은 “그러면 저희가 가서 빵을 이백 데나리온어치나 사다가그들을 먹이라는 말씀입니까?” 하고 물었다.3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 가서 보아라.” 하고 이르셨다.그들이 알아보고서,“빵 다섯 개, 그리고 물고기 두 마리가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39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명령하시어,모두 푸른 풀밭에 한 무리씩 어울려 자리 잡게 하셨다.40 그래서 사람들은 백 명씩 또는 쉰 명씩 떼를 지어 자리를 잡았다.41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하셨다.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셨다.42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43 그리고 남은 빵 조각과 물고기를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44 빵을 먹은 사람은 장정만도 오천 명이었다.
오늘 복음은 5,000명을 먹이신 예수님의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입니다.
이것은 육신적인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한 기적이 아니라 성체로 오시는 그리스도 몸의 기적을 위한 구약의 만나의 재현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당장의 배고픔을 위해 빵을 많게 한 행위도 대단하지만, 먹어도 먹어도 배고프고 영적으로 죽어가는 가련한 백성에 대한 예수님의 마음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합니다.
육신적인 빵의 기적에 머문 사람들은 예수님을 떠날 것이고,
빵의 기적을 통해서 영적인 빵인 예수님을 믿음으로 받아 들이는 사람들은 남을 것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제1독서의 말씀이지요.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사랑으로 영적인 밥으로 당신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것을 믿는 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신앙이라고 한다면 인간으로서 자신의 아들을 하느님께 바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그를 불러 장차 그의 몫으로 물려주실 땅을 향하여 떠나라고 하실 때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사실 그는 자기가 가는 곳이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떠났던 것이지요”(히브11,8; 창세12,1-4 참조) 신앙으로, 아브라함은 약속된 땅에서 이방인으로 또 순례자로 살아야했습니다.(창세23,4 참조). 그리고 그 땅을 차지한 것은 그 후손들의 일이지요. 여호수아를 통해서 가나안 땅을 나중에 차지하게 됩니다. 신앙으로, 사라도 약속된 아들을 잉태하게 되었고, 신앙으로, 마침내 아브라함은 죽어 없어질지도 모르는 자신의 외아들을 제물로 바쳐야 했습니다.(히브11,17 참조)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을 보증해주고 볼 수 없는 것들을 확증해 줍니다”(히브11,1). 그것을 당장 우리 눈앞에서 우리가 보려고 할 때 문제가 될 수 있지요.
아브라함은 하느님을 믿었고, 그 약속이 당장 눈앞에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방인으로 살아야되고 순례자로 살아야 했던 그러한 삶인데도 불구하고 믿었기 때문에 의로움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을 믿었던 것이지요.
“그분은 나쁜 것은 없애주시고, 좋은 것은 반드시 더 좋게 돌려주신다” 라는 믿음이 있어야 우리도 예수성심께 봉헌하는 삶을 살 수가 있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은 말씀하시지요.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우리가 얼마나 믿느냐에 따라서 그 기적은 일어나는 것이지요.
아브라함의 믿음 처럼 우리도 하느님이 원하시는 때와 원하시는 방법으로 이루시는 일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하느님의 섭리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을 믿었고 그것이 그의 의로움으로 인정되었습니다”(로마4,3; 창세15,6 참조) “굳게 믿음”(로마4,20)으로 아브라함은 “모든 믿는 이의 아버지”(로마4,11.18; 창세15,5 참조)가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차마 아들 이사악을 바치지 못하게 하신 하느님께서는 대신에 가시 덤불에 걸린 산양을 바치게 하십니다. “야훼이레” 이지요. 야훼께서 대신 마련해 주시지요. 그러한 하느님께서는 우리 죄의 대속을 위해서 하느님의 어린양, 파스카의 제물로 당신 아들을 내어주십니다. 그 이유는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더 좋은 것을 마련”(히브11,40)해 주시기 위해서이지요. 그것은 바로 “우리 믿음의 근원이시며 완성자이신”(히브12,2) 당신의 아들 예수님을 믿는 은총”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믿는 다는 것은 “아! 내가 믿었다. 나 대단한 사람이다!” 이게 아니라,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요한15,16) 라는 말씀처럼, 이러한 믿음도 은총으로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은총으로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의로워져서 그분의 대속을 받을 수 있고,
하늘의 만나인 성체를 영할 수 있으며,
구원을 누리게 됩니다.
방법은?
1.말씀을 아침에 3번 외치고 간단한 실천사항을 합니다.
2.성모성심께 봉헌.
성모성심께 우리 자신을 봉헌하고,
성모성심 안에서,
미사에 참여하여 성체를 영하면
내 머리가 예수님의 머리,
내 심장이 예수님의 심장,
내 손이 예수님의 손,
내 발이 예수님의 발이 되어 성모님 안에서 그리스도로 다시 태어남을 감사하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Mark6,34-44>
34 When he disembarked and saw the vast crowd, his heart was moved with pity for them, for they were like sheep without a shepherd; and he began to teach them many things.
35 By now it was already late and his disciples approached him and said, "This is a deserted place and it is already very late.
36 Dismiss them so that they can go to the surrounding farms and villages and buy themselves something to eat."
7 He said to them in reply, "Give them some food yourselves." But they said to him, "Are we to buy two hundred days' wages worth of food and give it to them to eat?"
38 He asked them, "How many loaves do you have? Go and see." And when they had found out they said, "Five loaves and two fish."
39 So he gave orders to have them sit down in groups on the green grass.
40 The people took their places in rows by hundreds and by fifties.
41 Then, taking the five loaves and the two fish and looking up to heaven, he said the blessing, broke the loaves, and gave them to his disciples to set before the people; he also divided the two fish among them all.
42 They all ate and were satisfied.
43 And they picked up twelve wicker baskets full of fragments and what was left of the fish.
44 Those who ate were five thousand 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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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1장
정신건강의 의미
나는 지난 45년 동안 신경정신과 의사로 일해 오면서 소아 정신과 영역만을 제외하고 여러 영역에서 일해 왔다(어린아이들에 대해 자문을 요청 받으면 나는 주로 부모들을 담당하였다). 이 과정에서 나는 심리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는 청소년이나 성인들을 내가 상담하는 방식을 통하여 그들 자신의 정신건강을 향상시키고 또한 과거 보다는 훨씬 더 행복해 질 수 있도록 가르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몸을 담고 있는 직업(여기에서는 기존 정신과 치료라 칭하겠다)에서 일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재 증상을 보이고 있는 사람을 정신적으로 병들어 있다고 진단하고 그들에게 정신치료약을 처방해 주고 있다. 이들 정신과 의사들은 자신들을 생물학적 정신과 의사(biological psychiatrists)라고 칭하고 있으며, 두뇌용 약 만을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심리 약학자(psycho’pharmaco logists)라고 칭하고 있다.
만약 당신이 DSM-IV에서 자세히 기술되고 있는 정신과적 증상을 보이고 있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면 의사-환자의 관계 확립을 위한 혹은 당신의 마음에 관한 상담을 위한 어떠한 적절한 개입도 그 치료과정에서 받고 있지 못할 것이다./ 정신병이 당신 뇌의 화학적 불균형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어서 약으로만 치료가 가능하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생각이 너무 팽배해 있기 때문에 나는 이 책의 제목 즉 ‘경고: 정신과치료는 당신의 정신건강에 피해를 줄 수 있다’가 오히려 약하게 표현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상담을 하는 소수의 정신과 의사들도 거의 항상 약을 사용하고 있으면서 약이 가장 중요한 치료라는 것을 믿고 있다.
현재 의 거의 모든 건강전문가들은 바로 이 같은 신경 화학적 그물망에 잡혀 있으며, 두뇌용 약이 정신건강의 전 영역을 장악하고 있다.
이러한 지배적 분위기의 한 예로, 2001년 일억 천백만 장의 처방지가 한 가지 유형의 약, 즉 팩실, 프로작, 졸로프트와 같은 선택적인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물(selective serotonin reuptake inhibitorsç SSRI’s)이 의사들에 의해 작성된 것을 들 수 있다. 이것은 2000년과 비교해 보면 14% 증가한 것이며 그 율은 계속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로스앤젤레스 타임스 2002년 7월 건강 관련 나에 보고된 내용임).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이 부류의 약은 우울증과 관련하여 ‘가짜 약 효과(placebo effect) 이상의 효과를 보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일반 의사들도 신경정신과 의사들 못지않게 정신질환을 진단하여 프로작이나 기타 유사한 두뇌용 약을 처방하고 있다. 소아과 의사들은 아이들에게 주의력 결핍장애(attention deficit disorder: ADD)나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ttention deficit hyperactive disorder: ADHD) 진단을 내리고 리탈린(어린아이의 뇌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아직 알려지지 않은 혹은 영원히 알려지지 않을 수도 있는 강력 합성 코카인)을 처방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약들은 안전하다고 할 수 없다. 과학적인 정신과/ 분야의 많은 연구들은 이런 약들이 당신의 정신건강이나 당신의 두뇌에 미칠 수 있는 피해에 대하여 상헤시 기술하고 있다. 동시에 이런 약은 그 약을 제조한 제약회사가 주장하는 만큼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니라고 지적하고 있다. 생물학적 정신과 치료에는 당신이 전혀 들어보지 못한 맹점들이 있다. 당신은 이 책을 통해서 이러한 맹점들을 접하게 될 것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두뇌용 약을 상용하지 않고 빠른 효과를 보이는 상담활동이 25년 전보다는 훨씬 더 발전되어 있다. 문제는 건강보험은 두뇌용 약에 대해서는 지불해주지만 상담에대해서는 지불해주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대중매체도 당신이 정신질환에 걸렸다고 진단을 받으면 당신은 당신자신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반대로 이 책은 당신이 당신이나 그 가족원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아주 많이 있다는 것이다.
존 포브스 나쉬 주니어가 정신분열증(최고의 정신과 치료를 하더라도 환자를 현실로부터 격리시키는 불치의 정신질환)에서 회복되었을 때 대중매체는 열광적이었다. 그러나 나를 포함하여 많은 정신과 의사들은 정신분열증이 정신질환이라는 것을 믿고 있지 않다. 그 치료라는 것은 병이 아니라 불행한 사람이 그들의 불행에 대처하는 수 천가지의 방법 중 하나인 것이다. /
정신과 의사는 존 나쉬에게 많은 것을 해 주지 못하였다. 그가 회복하게 된 것은 그의 아내의 도움과 수년 동안 건물 내를 방황할 수 있도록 해 준 프린스턴 수학과의 인내심이었던 것이다. 그 결과 그는 점차 자신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기 시작했다. 불행히도 그의 생애에 관한 영화의 끝 부분에 그와 같은 예기치 않은 회복은 최신 두뇌용 약을 사용하였기 때문이었다는 정말 말도 되지 않은 거짓말이 삽입되어 있다.
그 반증으로, 그의 자서전 ‘아름다운 마음(Beautiful Minds)’의 내용(그리고 그 영황에서도 약간 볼 수 있지만)에 의하면 그는 1970년 이전에도 규칙적으로 약을 복용하지 않았으며 그 후에는 전혀 복용하지 않았다.
그가 나중에 병으로부터 회복된 것은 1994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게 되어 행복감을 가질 수 있었고, 또한 그의 아내가 그에 대해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보다 정확하다.
나는 이 책에서 정신건강이라는 개념을 보다 심층적으로 검토하고, 정신건강도 신체건강과 같이 병은 없지만 그 모양새가 일그러진 수많은 불행한 사람들에게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
이것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나는 1950년대 후반 내가 상담을 시작할 때부터 가졌었다.
나는 비행 청소년을 위한 상담자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에 관여하게 되었다. 어떤 사람도 그들을 정신적으로 병든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들이 불행과 싸우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그 직후 나는 학교 교사들이 이같은 불행한 학생들을 돕는데 이 같은 생각을 사용하도록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 두 경우 모두 과거 성공경험이 없는 청소년들에게 성공 감을 경험하도록 하는데 나의 견해가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이들 상담자나 교사들은 나의 견해가 얼마만큼 효과가 있는가에/ 대해 알게 되면서 그들의 가정에도 적용하게 되었다. 이들은 지속적으로 자신들이 아내와 남편 그리고 아이들과 얼마만큼 더 잘 지내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또 글을 보내왔다. 모두가 더 행복해졌다는 것이다. 1960년 초부터 나는 이러한 생각들을 모아 1965년에 현실치료상담(Reality Therapy)이라는 책을 발간하게 되었으며, 이 책으로 말미암아 내 이름이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현실치료상담은 그 이후 꾸준히 성장하여 현재는 전 세계적으로 수 백 명의 윌리엄 글라써 연구소 소속의 강사들에 의해 보급되고 있다.
1998년 기본서인 ‘선택이론’이라는 책을 출간한 이후, 나는 그 책을 ‘자신을 돕는 책’이라고 한 적이 ]없지만, 훨씬 더 많은 사람들로부터 그리고 전문가들이나 준전문가들로부터 선택이론이 그들 자신의 삶이나 가족들의 살멩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가에 대해 듣게 되었다./
행복 혹은 정신적 건강이란 당신 주변의 중요한 사람들과 잘 지내면서 그리고 당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면서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읖 하지 않으면서 당신이 선택한 삶을 즐기는 것이다. /
이 책은 이렇게 불행한 사람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는 가를 설명해 주고 동시에 그러한 과정에서 당신 자신의 정신건강을 증진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뒤 부분에서 선택이론에 관하여 설명할 때, 이 책을 이미 읽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떻게 선택이론을 실생활에 적용시켜 보다 행복하게 될 수 있는지에 대해 토의해 보고자 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집단을 내가 운영해 갈 것이다. 그들은 이 집단에서 자신과 타인을 돕기 위해 배울 것이다. 그러한 집단이 시작하는 초기에는 선택이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 필요할 것이다. 몇 회기 후에는 집단이 자체적으로 지속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 집단은 심리치료집단이 아닌 선택이론중심 집단이라 칭한다. 왜냐하면 그 집단의 참여자들은 그들의 정신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해 선택이론을 배우고 사용하는 것에 초점을 두기 때문이다.
이 집단을 시작하는 것이나 종결하는 것을 사전에 특별히 설정할 필요도 없으며, 집단원의 참여 또한 완전히 자발적으로 하면 된다. 단주집단(Alcoholic Anonymous)에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처럼 이 집단도 사람들이 수시로 들어오고 나갈 수 있다. 이 집단의 구성은 약 10-15명 정도가 좋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어떤 사람이라도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집단에 참여할 수 있거나 혹은 집단을 구성하여 시작해 볼 수 있다.
차후 제시할 집단에 참여하는 구성원에 대한 간략한 소개.
베브: 44세 여자로 혼자 딸과 함께 살고 있다. 그녀는 전혀 통제할 수 없는 17살 난 딸 브란디와 잘 지낼 능력이 없어 우울해 하고 있다.
질: 40세인 여 의사로서 편두통으로 고생하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편두통이/ 아무런 신체적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몰리: 32세의 기혼 여자로서 섬유근육통으로 고생하고 있다. 모든 근육이 아픈 증세를 보이지만 원인불명이다. 어떤 밝혀지지 않은 신체적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에이미: 28세의 미혼 여자로서 발작증세로 고생하고 있다. 약물 복용이나 의사의 도움도 원하지 않는다. 자기 스스로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닐: 34세이며 에이미의 오빠이다. 에이미를 이 집단에 참여하도록 설득한 사람이다.
제프: 30세 된 남자로서 청소년시기 때부터 류머티즘으로 고생하고 있다. 정신건강이 관절염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듣고 이 집단에 참여하고 있다.
배리: 분노심이 많고 남을 통제하려는 38세인 남자로 결혼생활에서 불행해하고 있다.
조안: 배리의 아내로서 34세이고 역시 결혼생활이 행복하지 못하다.
셀마: 54세인 이혼 여자이며 34세인 정신분열증 증세를 보이는 아들 짐의 어머니이다. 아들과 함께 살고 있으며, 아들을 위해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 지에 대해 알고 싶어 이 집단에 참여하였다.
로저: 조안의 아버질 현재 61세이다.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으며, 오랫동안 나의 견해를 활용하여 가족상담을 해 온 사람이다. 조안에 의해 이/ 집단에 참여하도록 초대되었다. 로저는 정신건강을 중시하는 견해를 좋아하고 있으며 어떤 형태로든 기꺼이 도움을 주고자 하고 있다.
로저와 같은 전문가들이 집단에 참여하는 것은 좋으나 그들은 자신들의 참여에 대한 금전적인 대가를 청구할 수 없다는 원칙을 수용해야 한다.
그러나 집단원 중에는 그 전문가의 자문을 개인적으로 원할 수도 있는데 이런 경우에는 상담료를 지불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이 책에서 가르치고자 하는 것은 ‘당신이 불행하기는 하지만 당신 스스로를 도울 수 있고 혹은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이 책은 바로 당신을 위한 책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현재 정신과 약을 복용하고 있거나 혹은 정신질환자라는 진단을 받고서 상담을 받고 있다면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질문을 갖게 될지 모른다. 즉, ‘이 책이 나에게 도움이 될까?’, ‘내가 앞에서 언급된 선택이론중심 집단에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이 두 질문에 대한 나으 답은 ‘그렇다’이다.
당신의 어려움이 어떻든지 그리고 당신이 약을 복용하고 있든지 아니면 상담을 받고 있든지 관계없이 당신은 배울 수 있으며 또 배운 것을 삶에 적용할 수 있다.
집단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당신의 과거사나 현재의 불행(예: 배우자, 부모, 아이 혹은 상사와 얼마나 어렵게 지내고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큰 고통을 받고 있는지, 혹은 얼마나 삶이 당신에게 공평하지 못한지 등)에 대해서 듣기 위해서 참여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당신이 얼마나 이 책에서 소개되는 선택이론의 내용을 현재의 삶에 적용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집단이 진행되어 가면서 당신이 보다 효율적으로 그러한 내용을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그들의 관심사이다.
신경정신과 의사들로 구성된 특별위원회가 공중위생국장에게 제출한 1999년 보고서에 의하면, 미국 성인중 28%가 DSM-IV에 있는 신경정신병을 가지고 있거나 혹은 중독진단을 받고 있다. 그러니까 약 7천ㅅ백만의 불행한 사람이 있다는 말이다. 이 숫자에 어린이들, 베브와 셀마 같은 부모, 질이나 몰리 같은 고질적 통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포함시키게 되면 그 수는 훨씬 더 많은 숫자가 될 것이다.
그리고 교도소에 있는 불행한 사람을 더하고,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아이들(이들 중 많은 아이들이 주의력결핍장애나 주의력결핍 및 과잉행동장애 진단을 받고 있다), 그리고 배리나 조안과 같은 불행한 기혼자들(이들은 신경정신과의 진단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다)을 포함시켜 보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의 수가 1억에 달할 수 있다는 것을 쉽게 헤아려 볼 수 있다.
선택이론중심 집단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현실적으로 주어지지 않으면 이들 대부분이 현재 그대로 살아가는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현재의 불행과 더불어 살아야 할 것이며 부작용이 많은 정신과 약의 ‘가짜 약 효과성(placebo effect)’에만 의존하여 살아가야 할 것이다.
불행한 사람으로서 이 책을 읽은 사람은 누구든 자신을 도울 수 있을 것이며,
또한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정신건강을 위해 그것도 아무 비용을 들이/지 않고 도울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약으로 치료하는 정신질환으로부터 정신건강을 떼어내기 위한 시도이며, 모든 사람에게 정신건강을 선물하기 위한 시도이다.
(경고: 정신과 치료가 당신의 정신건강에 피해를 줄 수 있다, 생활심리 시리즈 31, William Glasser, M.D. 저, 박재황 역, 도서출판 계림, 2015,p31-41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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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제4계명
부모에게 효도하라
374 하느님이 가정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인간은 관계를 맺지 않고는 살 수 없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관계는 하느님과 맺은 관계이며, 이는 가족 관계를 비롯한 모든 인간관계보다 앞섭니다.[2232-2233]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며, 부모 또한 자녀의(YOUCAT 가톨릭 청년 교리서, 오스트리아 주교회의, 최용호,2012,p.298)/
소유물이 아닙니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나 전적으로 하느님의 것입니다. 인간은 오직 하느님에게만 절대적으로 영원히 구속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부르심을 받은 이에게 하신 예수님의 다음 말씀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마태10,37). 그러므로 주님이 만약 자녀를 수도자나 사제라는 봉헌의 삶으로 부르신다면 부모는 오롯이 신뢰하는 마음으로 자녀를 그분의 손에 맡겨야 합니다.->145
(YOUCAT 가톨릭 청년 교리서, 오스트리아 주교회의, 최용호,2012,p.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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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가정과 하느님 나라
->2232 가족의 유대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어린이가 인간적이고 영적인 성숙과 인간의 자율성을 향해 성장하면 할수록, 하느님에게서 오는 그의 독특한 소명도 더 분명하고 강하게 드러나게 된다. 부모는 이 소명을 존중하고, 자녀들이 그 부르심에 따르는 응답을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첫 번째 소명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임을(마태16,25 참조) 확신해야 한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내 사람이 될 자격이 없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내 사람이 될 자격이 없다”(마태10,37)
->2233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하느님 가족의 일원이 되고 예수님의 생활 방식에 따라 살라는 초대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며 누구나 다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다”(마태12,50).(가톨릭 교회 교리서 CATECHISMUS CATHOLICAE ECCLESIAE,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4,p804)/
부모는 자기 자녀가 하늘 나라를 위한 동정 생활, 곧 봉헌 생활 또는 사제직 안에서 당신을 따르도록 하시는 주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면, 기쁨과 감사로 받아들이고 존중하여야 한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CATECHISMUS CATHOLICAE ECCLESIAE,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4,p805)/
아브라함-“모든 믿는 이의 조상”
->145 히브리서는 조상들의 믿음을 찬양하면서 특히 아브라함의 신앙을 강조한다. “아브라함도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그를 불러 장차 그의 몫으로 물려주실 땅을 향하여 떠나라고 하실 때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사실 그는 자기가 가는 곳이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떠났던 것입니다”(히브11,8)(창세12,1-4 참조) 신앙으로, 아브라함은 약속된 땅에서 이방인으로 또 순례자로 살았다.(창세23,4 참조) 신앙으로, 사라도 약속된 아들을 잉태하게 되었다. 신앙으로, 마침내 아브라함은 자신의 외아들을 희생 제물로 바친다.(히브11,17 참조)
(가톨릭 교회 교리서 CATECHISMUS CATHOLICAE ECCLESIAE,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4,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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