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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식, 여자 밝히는 건 여전하네." 윤장미의 말투가 비틀거렸다. "젊고 혈기 왕성한 여자가 벌레 소리조차 안 나는 이런 곳에서 숙직하려면 얼마나 쓸쓸한 줄 아니?" 윤장미가 고개를 바짝 처 들었다. '나를 유혹하겠다는 건가?' 변강호는 여전히 헷갈렸다. 신입 시절 변강호를 우습게 생각했던 윤장미였기 때문이었다. 지금 윤장미의 모습은 치마만 입으면 모두 여자라는 심정으로 달려드는 남자 같은 태도였다. "쓸쓸하겠지." "그럼, 동기가 그런 쓸쓸함 좀 달래주면 안될까?" 윤장미가 머리를 묶고 있던 끈을 풀었다. 숱 많은 머리카락이 그녀의 어깨 위로 흘러내렸다. 변강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어, 어떻게?" 변강호는 주눅이 들었다. 윤장미가 덥석 변강호의 손을 잡았다. "건너가지 말고 여기서 같이 자자." "응?" "그러니까 나랑 여기서 손만 잡고 자자고." 윤장미가 변강호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지금 변강호는 왠지 모르게 윤장미에게 당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뭐, 하성애랑도 자는데….' 윤장미는 변강호의 손을 잡고 침실로 들어갔다. 그녀는 걸어가는 동안 이미 바지를 벗어버렸다. 적당한 살집의 둔부가 변강호의 눈앞에 나타났다. 꽉 끼는 바지를 즐겨 입는 터라 그런지 그녀는 'T'자 형 팬티를 입고 있었다. 그녀의 엉덩이가 반들반들 윤이 났다. 윤장미는 서슴지 않고 변강호의 손을 잡은 채 침대 위에 누웠다. "사람이랑 같이 누워보는 거 정말 오랜만이다." 윤장미가 몸을 옆으로 틀며 변강호의 얼굴을 쳐다봤다. 눌린 그녀의 가슴골이 변강호의 눈을 자극했다. '이거 너무 쉬운데.' "강호야, 고마워!" "뭐가?" 변강호가 묻는 사이 윤장미의 다리 하나가 변강호의 아랫도리 위로 올라왔다. 변강호는 잠깐 긴장해서 눈을 감았다 떴다. 그녀에게 입을 맞추기 위해 몸을 틀던 변강호는 그만 어이없어 웃고 말았다. 그녀는 가볍게 코까지 골며 벌써 잠에 빠져버린 것이었다. '내가 아무리 궁해도 잠든 여자와 할 수는 없지.' 변강호는 풍만하고 야성적인 윤장미의 몸 위에 이불을 덮어주고 숙직실을 빠져나왔다. 그 시각, 변장수는 대양 컨설팅의 양동탁 사장을 만나고 있었다. "…그러니까 변 전무님이 우리 대양의 후원인이 되어 주시겠다는 겁니까?" 양동탁은 액션배우처럼 잘 빠진 몸에 야성미 물씬 풍기는 얼굴을 지니고 있었다. 평창동의 긴자. 늦은 밤. 양동탁은 소리 없이 술잔을 들었다. 변장수는 느긋하게 그를 지켜보았다. 건실하고 매너 좋은 기업가 흉내를 내지만 변장수가 파악한 바에 의하면 양동탁은 그저 건달이었다. 나름대로 깔끔하지만 어쨌든 양동탁은 건달이었다. 그런 건달은 도처에 널려 있었다. 다만 양동탁은 센스가 있고 눈치가 빨랐다. 무엇보다도 행동이 빠른 것이 변장수의 마음에 들었다. "안되겠소?" "제가 꼭 필요하겠습니까?" 차갑게 빛나는 양동탁의 눈빛. 변장수를 저울질 하고 있는 폼이었다. "아시겠지만 저는 가능한 불법적인 일은 하지 않습니다. 변 전무님이 이 바닥을 잘 몰라서 그러시겠지만 이젠 주먹으로 해결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그런 건 양아치나 하는 짓이죠." '건달이나 양아치나….' 변장수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근엄한 척 구는 양동탁의 얼굴을 살폈다. "제가 해야 할 일이 뭐죠?" "나도 이 나라 경제 일부분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으로 불법적인 일은 시키지 않소. 나는 다만 대일의 부도로 국가 경제에 엉뚱한 피해를 입히지 않아야 한다는 충심에서 양 사장을 보자고 한 거요." 양동탁의 표정엔 변화가 없었다. "대일이 쓰러진단 말입니까?" "꼭 그렇다는 게 아니라 누군가 미연에 방지를 해야 한다는 말이오." "제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면 좋겠는데요." 변장수는 양동탁 앞에 서류뭉치를 내밀었다. "우리 대일 임원들의 신상명세서요. 일단 그들의 약점을 찾아내는 게 일이요. 약점이 없으면 만들어야겠지. 정보가 곧 생명인 세상이니까." 양동탁의 이마가 잠깐 일그러졌다. "전무님, 기업이든 사회든 국가든 가장 힘든 비즈니스가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가 양 사장을 찾은 게 아니오." "제가 알기로 변 전무님도 따로 정보 라인이 있는 걸로 아는데요?" "그 놈들은 주체성이 없어요. 빨리 판단해서 결정을 해야 하는데 일일이 내가 지시를 해야 하니 일이 제대로 돌아가겠습니까." "저는 대일에서 이미 오 상무님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양동탁은 다시 침착하게 굴었다. "그 신상명세서에 오탁번 상무도 들어 있을 거요."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양동탁의 눈 검은자가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느리게 오갔다. "좀 전에도 말씀 드렸듯이 사람 비즈니스가 가장 어려운 일 아니겠습니까?" 변장수가 테이블 아래 놓여 있던 봉투 하나를 양동탁 앞으로 내밀었다. 화재 전 대일 전자 재고량을 조작해 비축한 비자금 중 일부였다. 봉투 안엔 새로 만들어진 10만원 권 현찰로 1억원이 들어 있었다. 돈을 확인한 양동탁이 조용히 다시 돈 봉투를 변장수에게 돌려주었다. '1억이 작아?' 변장수는 오탁번의 말 중 가슴에 새기고 있는 말이 있었다. '검사든 건달이든 그들을 이용하려면 반드시 칼자루를 쥐고 있어야 해. 발아래에서 벌벌 떨게 만들란 말이야, 돈으로든 약점으로든.' "전무님, 저도 돈은 좀 있습니다." 한낱 건달에게 무시당했다는 생각이 들자 변장수의 눈에서 불길이 솟았다. '네 놈이 언제까지 빳빳하게 구는가 보자.' 변장수는 슬쩍 미소를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양 사장, 혹시 대검 형사부장인데 장기찬이라고 알지? 내 둘도 없는 고향 친군데 그 친구가 안부 좀 전해주라고 하던데. 에 또 누가 안부를 묻던데…." 장기찬이라는 이름이 나오는 순간 양동탁의 얼굴이 미세하게 일그러졌다. "맞아, 국세청에 김동현이. 그 왜 탈세 기동 징수팀에 있는 김동현 부장이라고 알지? 양 사장 잘 알 거야. 무자료 거래를 많이 하니까. 지난번 술자리에서 내가 예전에 대양에 신세를 졌다고 하니까 양 사장 소식을 묻던데." 양동탁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참, 내가 그 놈들 이름 거들먹거릴 필요가 없지. 우리 양 사장님은 불법적인 일을 안 하신다니까." 변장수가 주머니에서 열쇠 하나를 꺼냈다. 열쇠가 불빛 아래 반짝 빛났다. 그때까지도 양동탁의 얼굴에는 그다지 큰 변화가 일지 않았다. "밀월이라고 들어봤지?" "밀월…." "얼마 전일 거야. 거기서 누가 죽었다지. 그런데 살인한 이 양반이 똘마니한테 칼을 없애라고 줬는데 이 멍청한 똘마니가 글쎄 그걸 빌미로 제 보스를 협박 했다나 어쨌다나. 그래서 그 놈도 죽었을 걸. 칼은 못 찾았고." 양동탁의 얼굴이 서서히 파랗게 변하기 시작했다. "이봐, 양 사장. 이 열쇠가 맞는 금고 안에 그 칼이 들어 있어. 우리나라 대검의 특수부 검사들을 호락호락하게 보지 마. 증거를 수집해 놓고도 왜 양 사장을 가만히 내버려 뒀을까? 이상하지? 내가 그 칼을 어마어마한 돈을 주고 샀거든." 반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던 양동탁이 재빠르게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는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 못했다. "이제 누가 위고 누가 아랜지 알겠지?" 변장수는 소리 내서 웃고 싶은 걸 참았다. 그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서렸다. "죄송합니다." "이 열쇠는 자네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주인이 결정돼." 변장수는 돈 봉투를 다시 양동탁에게 내밀었다. "내 일 시키면서 양 사장 돈을 쓰게 할 수 없지. 안 그런가? 내 요구는 어려운 것도 아냐. 그 명단에 있는 사람들 약점을 잡아줄 것. 약점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양 사장에겐 쉬운 일 아닌가?" "죽기를 각오하고 따르겠습니다." "한 가지 더. 강승혜와 변강호라는 놈이 있어. 그 년 놈들에 대해서는 각별히 감시 좀 해주고." 새벽 5시, 변장수는 지난 밤 호출을 받고 자신의 아버지인 변승우의 집으로 향했다. '노인네가 오늘은 또 무슨 잔소리를 늘어놓을까'. 변장수는 투덜대며 청담동에서 평창동으로 향했다. 대일 그룹 회장 변승우의 저택은 북한산 자락 아래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의 저택은 계단을 오르고 정원을 지나 현관에 이르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이 10분 남짓 될 정도로 컸다. 정원에는 없는 나무가 없고 사철 꽃이 피는 온실도 갖추어져 있었다. 평창동에 도착해보니 회사 중역들이 모두 운동복 차림이었다. 변장수만 정장차림이었다. 변장수의 옷차림을 보고 변승우가 눈을 흘겼다. "오늘 운동 미팅이란 거 몰랐어? 뭣 하는 거야!" 변승우는 변장수에게 일갈한 후 앞장을 섰다. 그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다른 중역들은 숨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 그의 뒤를 따랐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변장수는 그들의 꽁무니에 따라붙었다. 변승우 나이 아흔 네 살이었다. 하지만 그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60대 후반이나 기껏해야 70대 초반으로 볼 정도로 깨끗한 피부와 근력과 눈매, 그리고 새로 돋기 시작한 검은 머리를 지니고 있었다. "요즘 원단 시장 어렵나?" 대일 원단의 사장인 변일수를 쳐다보며 변승우가 물었다. 변승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변승우의 비서와 변일수의 비서가 수첩을 들고 가까이 다가들었다. "우리나라 섬유산업이 전체적으로 어려운 상황입니다." "한미 FTA 체결로 제조업 분야는 앞으로 나아지는 게 아닌가?" "물론입니다. 하지만 기존의 원단으로는 별로 나아질 게 없습니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차별화된 원단의 고급화에 연구를 집중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올해 말이면 고어텍스와 같은 기능성 원단을 모든 의류에 적용할 수 있는 제품이 나올 전망입니다." 변승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산에 오르는 그라 그의 산행 속도는 빨랐다. 간이 휴게소가 나온 후에야 걸음을 멈추었다. 중역들은 대부분 헉헉거렸다. "회장님, 안녕하세요." 몸에 착 달라붙는 분홍색 운동복을 입은 여자가 활기 찬 목소리로 변승우를 알은 체했다. 변승우의 눈이 빛났다. 깔끔한 피부, 한 손에 다 채워지지 않을 만큼 큰 젖가슴, 두툼해 보이는 불두덩뼈가 한 눈에 들어왔다. 강하고 굵은 허벅지와 엉덩이 선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그녀는 서슴지 않고 변승우 옆에 와서 앉으며 팔짱을 꼈다. 변승우 역시 싫지 않은 눈치였다. 변일수를 비롯한 중역들이 그에게서 멀리 떨어진 채 서성거렸다. 중역들 대부분은 변승우를 쳐다보지 않았지만 양복을 입고 뒤쫓아 온 변장수는 힐금 힐금 두 사람을 훔쳐봤다. 변승우의 손이 자연스럽게 여자의 어깨 위로 올라갔고 여자의 손도 스스럼없이 변승우의 허벅지를 쓰다듬었다. '도대체 저 년은 누구야? 60살은 차이가 나 보이는데…. 설마 애를 또 하나 만드시는 건 아니겠지'. 변장수가 그런 생각을 하거나 말거나 변승우는 새벽부터 여자를 보듬고 껄껄거렸다. 여자도 간드러지게 웃었다. 여자에게선 교태가 흘러 넘쳤다. "짜식, 여자 밝히는 건 여전하네." 윤장미의 말투가 비틀거렸다. "젊고 혈기 왕성한 여자가 벌레 소리조차 안 나는 이런 곳에서 숙직하려면 얼마나 쓸쓸한 줄 아니?" 윤장미가 고개를 바짝 처 들었다. '나를 유혹하겠다는 건가?' 변강호는 여전히 헷갈렸다. 신입 시절 변강호를 우습게 생각했던 윤장미였기 때문이었다. 지금 윤장미의 모습은 치마만 입으면 모두 여자라는 심정으로 달려드는 남자 같은 태도였다. "쓸쓸하겠지." "그럼, 동기가 그런 쓸쓸함 좀 달래주면 안될까?" 윤장미가 머리를 묶고 있던 끈을 풀었다. 숱 많은 머리카락이 그녀의 어깨 위로 흘러내렸다. 변강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어, 어떻게?" 변강호는 주눅이 들었다. 윤장미가 덥석 변강호의 손을 잡았다. "건너가지 말고 여기서 같이 자자." "응?" "그러니까 나랑 여기서 손만 잡고 자자고." 윤장미가 변강호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지금 변강호는 왠지 모르게 윤장미에게 당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뭐, 하성애랑도 자는데….' 윤장미는 변강호의 손을 잡고 침실로 들어갔다. 그녀는 걸어가는 동안 이미 바지를 벗어버렸다. 적당한 살집의 둔부가 변강호의 눈앞에 나타났다. 꽉 끼는 바지를 즐겨 입는 터라 그런지 그녀는 'T'자 형 팬티를 입고 있었다. 그녀의 엉덩이가 반들반들 윤이 났다. 윤장미는 서슴지 않고 변강호의 손을 잡은 채 침대 위에 누웠다. "사람이랑 같이 누워보는 거 정말 오랜만이다." 윤장미가 몸을 옆으로 틀며 변강호의 얼굴을 쳐다봤다. 눌린 그녀의 가슴골이 변강호의 눈을 자극했다. '이거 너무 쉬운데.' "강호야, 고마워!" "뭐가?" 변강호가 묻는 사이 윤장미의 다리 하나가 변강호의 아랫도리 위로 올라왔다. 변강호는 잠깐 긴장해서 눈을 감았다 떴다. 그녀에게 입을 맞추기 위해 몸을 틀던 변강호는 그만 어이없어 웃고 말았다. 그녀는 가볍게 코까지 골며 벌써 잠에 빠져버린 것이었다. '내가 아무리 궁해도 잠든 여자와 할 수는 없지.' 변강호는 풍만하고 야성적인 윤장미의 몸 위에 이불을 덮어주고 숙직실을 빠져나왔다. 그 시각, 변장수는 대양 컨설팅의 양동탁 사장을 만나고 있었다. "…그러니까 변 전무님이 우리 대양의 후원인이 되어 주시겠다는 겁니까?" 양동탁은 액션배우처럼 잘 빠진 몸에 야성미 물씬 풍기는 얼굴을 지니고 있었다. 평창동의 긴자. 늦은 밤. 양동탁은 소리 없이 술잔을 들었다. 변장수는 느긋하게 그를 지켜보았다. 건실하고 매너 좋은 기업가 흉내를 내지만 변장수가 파악한 바에 의하면 양동탁은 그저 건달이었다. 나름대로 깔끔하지만 어쨌든 양동탁은 건달이었다. 그런 건달은 도처에 널려 있었다. 다만 양동탁은 센스가 있고 눈치가 빨랐다. 무엇보다도 행동이 빠른 것이 변장수의 마음에 들었다. "안되겠소?" "제가 꼭 필요하겠습니까?" 차갑게 빛나는 양동탁의 눈빛. 변장수를 저울질 하고 있는 폼이었다. "아시겠지만 저는 가능한 불법적인 일은 하지 않습니다. 변 전무님이 이 바닥을 잘 몰라서 그러시겠지만 이젠 주먹으로 해결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그런 건 양아치나 하는 짓이죠." '건달이나 양아치나….' 변장수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근엄한 척 구는 양동탁의 얼굴을 살폈다. "제가 해야 할 일이 뭐죠?" "나도 이 나라 경제 일부분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으로 불법적인 일은 시키지 않소. 나는 다만 대일의 부도로 국가 경제에 엉뚱한 피해를 입히지 않아야 한다는 충심에서 양 사장을 보자고 한 거요." 양동탁의 표정엔 변화가 없었다. "대일이 쓰러진단 말입니까?" "꼭 그렇다는 게 아니라 누군가 미연에 방지를 해야 한다는 말이오." "제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면 좋겠는데요." 변장수는 양동탁 앞에 서류뭉치를 내밀었다. "우리 대일 임원들의 신상명세서요. 일단 그들의 약점을 찾아내는 게 일이요. 약점이 없으면 만들어야겠지. 정보가 곧 생명인 세상이니까." 양동탁의 이마가 잠깐 일그러졌다. "전무님, 기업이든 사회든 국가든 가장 힘든 비즈니스가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가 양 사장을 찾은 게 아니오." "제가 알기로 변 전무님도 따로 정보 라인이 있는 걸로 아는데요?" "그 놈들은 주체성이 없어요. 빨리 판단해서 결정을 해야 하는데 일일이 내가 지시를 해야 하니 일이 제대로 돌아가겠습니까." "저는 대일에서 이미 오 상무님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양동탁은 다시 침착하게 굴었다. "그 신상명세서에 오탁번 상무도 들어 있을 거요."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양동탁의 눈 검은자가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느리게 오갔다. "좀 전에도 말씀 드렸듯이 사람 비즈니스가 가장 어려운 일 아니겠습니까?" 변장수가 테이블 아래 놓여 있던 봉투 하나를 양동탁 앞으로 내밀었다. 화재 전 대일 전자 재고량을 조작해 비축한 비자금 중 일부였다. 봉투 안엔 새로 만들어진 10만원 권 현찰로 1억원이 들어 있었다. 돈을 확인한 양동탁이 조용히 다시 돈 봉투를 변장수에게 돌려주었다. '1억이 작아?' 변장수는 오탁번의 말 중 가슴에 새기고 있는 말이 있었다. '검사든 건달이든 그들을 이용하려면 반드시 칼자루를 쥐고 있어야 해. 발아래에서 벌벌 떨게 만들란 말이야, 돈으로든 약점으로든.' "전무님, 저도 돈은 좀 있습니다." 한낱 건달에게 무시당했다는 생각이 들자 변장수의 눈에서 불길이 솟았다. '네 놈이 언제까지 빳빳하게 구는가 보자.' 변장수는 슬쩍 미소를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양 사장, 혹시 대검 형사부장인데 장기찬이라고 알지? 내 둘도 없는 고향 친군데 그 친구가 안부 좀 전해주라고 하던데. 에 또 누가 안부를 묻던데…." 장기찬이라는 이름이 나오는 순간 양동탁의 얼굴이 미세하게 일그러졌다. "맞아, 국세청에 김동현이. 그 왜 탈세 기동 징수팀에 있는 김동현 부장이라고 알지? 양 사장 잘 알 거야. 무자료 거래를 많이 하니까. 지난번 술자리에서 내가 예전에 대양에 신세를 졌다고 하니까 양 사장 소식을 묻던데." 양동탁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참, 내가 그 놈들 이름 거들먹거릴 필요가 없지. 우리 양 사장님은 불법적인 일을 안 하신다니까." 변장수가 주머니에서 열쇠 하나를 꺼냈다. 열쇠가 불빛 아래 반짝 빛났다. 그때까지도 양동탁의 얼굴에는 그다지 큰 변화가 일지 않았다. "밀월이라고 들어봤지?" "밀월…." "얼마 전일 거야. 거기서 누가 죽었다지. 그런데 살인한 이 양반이 똘마니한테 칼을 없애라고 줬는데 이 멍청한 똘마니가 글쎄 그걸 빌미로 제 보스를 협박 했다나 어쨌다나. 그래서 그 놈도 죽었을 걸. 칼은 못 찾았고." 양동탁의 얼굴이 서서히 파랗게 변하기 시작했다. "이봐, 양 사장. 이 열쇠가 맞는 금고 안에 그 칼이 들어 있어. 우리나라 대검의 특수부 검사들을 호락호락하게 보지 마. 증거를 수집해 놓고도 왜 양 사장을 가만히 내버려 뒀을까? 이상하지? 내가 그 칼을 어마어마한 돈을 주고 샀거든." 반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던 양동탁이 재빠르게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는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 못했다. "이제 누가 위고 누가 아랜지 알겠지?" 변장수는 소리 내서 웃고 싶은 걸 참았다. 그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서렸다. "죄송합니다." "이 열쇠는 자네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주인이 결정돼." 변장수는 돈 봉투를 다시 양동탁에게 내밀었다. "내 일 시키면서 양 사장 돈을 쓰게 할 수 없지. 안 그런가? 내 요구는 어려운 것도 아냐. 그 명단에 있는 사람들 약점을 잡아줄 것. 약점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양 사장에겐 쉬운 일 아닌가?" "죽기를 각오하고 따르겠습니다." "한 가지 더. 강승혜와 변강호라는 놈이 있어. 그 년 놈들에 대해서는 각별히 감시 좀 해주고." |
첫댓글 즐독하였습니다
즐독입니다
즐독합니다,
즐~~~감!
감사합니다.
잘읽었습니다
우와~~~스릴 재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