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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어나는 우리 글의 변화에 대한 소고
말은 우리의 생각을 담는 그릇이다. 말을 어떻게 구사하는가를 살펴보면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 또한 사회에서 사용하는 말을 잘 분석하여 보면 사회가 추구하는 방향을 알 수 있다. 말이란 이처럼 우리의 생각을 반영하는 거울이다. 지난 몇 십 년간 우리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러한 변화만큼이나 말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말도 그간 많이 변했다. 변화의 내용을 살펴보면 우리 사회의 변화의 요인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그러한 관점에서 최근 말의 현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요사이는 다양한 매체와 관심분야의 세분화로 각 계층의 말이 매우 풍부해지고 있으며, 표현에 대한 방식이 매우 자유롭다.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도 더욱 심화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이 늘 좋은 방향으로만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요사이 인터넷에서의 언어 폭력이 위험수준에 오른 것이 부정적인 면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점은 어떻게든 정화될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언어변화 현상에 대하여 얼마나 인지하고 있는가 이다. 문제에 대한 핵심을 명확히 알면 해답도 명확하다. 이렇게 말에 대한 문제를 뜬굼없이 꺼내는 것도 같이 말의 중요성에 대하여 같이 생각해보자는 차원이다.
말 변화의 큰 얼개
내가 학교에 다닐 때와 배웠던 말과 지금이 말 사이에 몇 가지 큰 차이점을 본다면 첫 번째는 한자어와 한글고유 글의 감소와 영어단어의 증가이다. 두 번째는 단어와 문장의 축약이다. 세 번째로 뜻글자의 의성어화이다. 이러한 변화의 바탕에는 사회구조의 변화와 우리의 문화의 대미종속성이 깔려있다.
첫 번째의 경우 한자어와 한글 고유 말의 급속한 감소는 우리가 일제의 속국이 된 이래로 계속되어 온 현상이다. 초기에는 일본어의 침투가 심했지만 이제는 많이 회복된 상태이다. 그러나 일본어의 자리를 이제는 영어가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단지 문화의 식민지화 또는 종속성으로 만으로 이것을 바라보는 것은 문제가 있을 것 같다.
얼마 전 한글에서 비에 대한 표현이 몇 가지가 있는가에 대해 퀴즈가 나온 적이 있었다.(별첨자료 참조) 비의 종류에 대한 질문 내용을 보면 비가 내리는 모습에 대한 매우 세밀한 표현이 많았으며 풍부한 정서를 보여주고 있다. 그 질문을 보면서 지금 사람들이 이러한 세심한 정서을 가지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지금은 도시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므로 자연의 세밀한 변화를 감지 못하고 사는 것도 정서를 메마르게 하는 큰 요인일 것이다. 따라서 예전과 같이 자연의 세밀한 표현이 점점 없어져 가는 것이다. 그리고 요사이 발음을 매우 강하게 하면서 격음화되는 추세이다. 이러한 현상은 지금의 사회가 매우 저돌적이고 공격적으로 변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한 정서적 표현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다음으로 말이 변화되는 요인은 행위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나이가 드신 분들은 음치가 노래하는 모습을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낸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돼지 목따는 소리를 낸다."고 알고 있다. 이제는 일상사에서 돼지의 '멱'을 따는 경우가 없기 때문에 '멱'이라는 단어가 점점 사멸되어 가는 것이다. 즉 생활의 변화에 따른 단어의 변화이다. 이러한 예는 많이 있다. 요사이 쌀을 이는 '조리'를 집에서 볼 수 없다. 돌을 골라낸 쌀이 대부분이다 보니 집에서 쌀을 일 필요가 없어져 '조리'를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요사이 십대들에게 '조리'란 슬리퍼처럼 생긴 신발을 의미할 것이다.
한자어의 사멸은 한글 전용이라는 정책에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이다. 한글전용정책으로 교과서에서 한자가 사라졌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다보니 한자와 멀어진 사람들이 사회의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그에 따라 신문과 책에서 한자를 무조건 고집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 때문에 한자어는 자연스럽게 뜻글자의 의미를 상실하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변화는 한자어의 발음변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몇 단어를 사용하는 예를 보면 발음이 나는 대로 표현하고 있다. '묵묵부답(默默不答)'의 경우' 묵묵무답'으로 잘 못 사용하고 있으며, 마작의 '잘 어울리는 패'에서 유래되어 아주 절친한 사이를 뜻하는 '이삼육'도 많은 사람들이 '아삼육'으로 발음하고 있다. 즉 한자어의 경우 뜻글자 모여 단어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두음법칙과 같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원래의 글자를 읽는대로 표현하여야한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이 최근 많이 깨지고 있다. 글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단어가 한자에서 온 것인지를 모르거나, 알아도 그 한자가 어느 것인지 모르고 사용하기 때문이다.
영어의 혼용
영어의 혼용은 해방이후 가장 두드러진 말의 혼탁상황이다. 기왕에 사용해오던 단어를 써도 상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유식함을 강조하기 위하여 굳이 영어를 사용한다. 이미 많은 단어에서 영어가 더 우세하게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오픈'이라는 단어가 개업이라는 단어를 대신하였다. 이외에도 시스템, 와이프, 치킨, 등은 거의 표준말이 되어버린 상태이다. 그리고 요사이는 리스크, 로드맵 등이 새로운 자리를 차지하려고 노력 중이다.
이러한 상황은 삼국시대 이후 기록하는 글로 한자를 사용한 이래 많은 글이 한자로 바뀐 것과 같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영어를 즐겨 사용하는 것은 영어의 사용이 자신의 지적 능력을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문화사대주의의 표본인 셈이다. 새로운 문화가 들어오면서 새로운 단어가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텔레비젼과 컴퓨터는 분명 우리나라에 없었던 것이다. 라디오도 마찬가지이고 요사이 서양에서 들어오는 신학문 대부분이 우리에게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와 같이 들어오는 새로운 단어를 사용되는 것은 어쩔 수 부분이다. 그러나 기존의 단어조차 죽은 말로 만드는 것은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러나 서양에서 들어온 학문이라도 우리의 글로 치환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의 글로의 치환은 단순히 치환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치환이 되기 위해서는 그 학문에 대한 깊은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러한 치환의 과정이 우리에게 결코 나쁠 것이 없다. 도입된 문화를 우리의 글로 표현하는 과정은 우리의 관점에서 새로운 문화를 이해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새로운 문화에 대한 적극적인 자기화 과정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단어인 생물, 화학, 철학, 건축 등과 같은 단어는 일본이 서구의 학문을 받아들이면서 만들어진 단어이다. 이 단어들은 어느 정도 그 학문의 성격을 잘 반영하고 있다. 지금도 이러한 단어는 매우 유용하게 쓰이고 있으며 또한 그 학문에 대하여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바로 이러한 것이 적극적인 문화 수용태도이다. 쉽다고 아무런 대응없이 무조건 타문화를 수용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인터넷과 말
요사이 말의 변화에 가장 영향을 주는 매체는 인터넷이다. 인터넷은 요사이 우리의 글의 표현을 완전히 변화시키고 있다. 인터넷에 의한 언어변화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표현의 간략화이다. 두 번째는 '상형문자로의 회귀'이다. 세 번째는 그룹간 사용하는 언어의 격차확대이다.
첫 번째는 글을 모니터 화면을 통해 보고, 댓글의 양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이러한 '댓글 문화'는 자기의사를 축약시켜 표현하는 것에 익숙해지도록 한다. 화면을 통해서 글을 읽기 때문에 눈이 쉽게 피로해진다. 따라서 많은 글을 쓰는 것은 그리 환영받지 못하기 때문에 글의 양을 축약시키는 지혜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또한 컴퓨터에 익숙한 세대는 그래픽에 익숙하기 때문에 글을 읽는다는 개념보다는 글을 본다는 개념에 더 익숙하다. 그러므로 많은 글 보다는 간략하면서도 읽기에 편하고 화려한 글을 선호하게 된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글이 길어지지 않고 축약되는 경향을 보인다. 또한 댓글은 대개 수 십자 또는 200여자 정도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짧고 간략한 표현을 하려고 노력한다.
다음으로 <채팅문화>가 글의 표현을 극도로 간략하게 한다.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대화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감정의 기복을 읽는 것이 불가능하다. 온라인상에서는 얼굴의 표정과 억양에서 표현되는 감정의 기복을 살피면서 대화하는 것이 아니므로, 대화에 있어 타인에 대한 배려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자신의 순간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것으로 그치는 경향이 농후하다. 결국 그 순간의 느낌에 대한 표현만이 남아 있어 깊은 교감이 이루어질 수 없다. 이러한 상황 아래에서는 시간의 조절에 대한 개념이 없다. 빠른 것이 최고이다.
두 번째의 '상형문자화'는 첫 번째의 상황에서 파생된 결과이다. 기계에 감정을 싣고 싶다는 욕구와 극도의 축약의 결과이다. 즉 그림만큼 모든 것을 축약해서 보여주는 것이 있을까. 미묘한 상황에서 모든 것을 축약해서 표현하면서도 단순화시키는 것이 바로 그림이다. 또한 최근 아이콘의 개발이 이러한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 '울고싶다'고 치는 것보다는 우는 모습(ㅜㅜ)을 보여주는 것이 더 효율적일 수도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자판을 이용한 단순한 수준의 상형화된 표현들이 이제는 다양한 아이콘의 개발로 보다 직설적이고 효율적인 표현으로 변화되고 있다.
상형문자화는 그림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웃는 모습을 표현한 'ㅋㅋㅋ'는 매우 효율적인 표현이다. 극도의 축약된 표현이면서도 효율성이 매우 높은 표현들이다. 짧은 시간 내에 최고의 표현을 이끌어내겠다는 욕구가 바로 이러한 표현을 개발하는 원동력이다.
세 번째로 세대간의 사용언어의 격차가 확대된다는 것이다. 일정세대 이상은 인터넷상에서 대화가 거의 불가능하다. 우선 앞서 말한 축약어와 은어들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단순히 컴퓨터에 익숙하다 아니다가 온라인상에서의 대화에 참여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구분하는 기준이 되지 못한다.
앞으로는 어느 그룹에 속하였는가가 대화할 수 있는 기본 요건이 될 것이다. 앞으로는 소그룹별로 각각의 언어가 특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온라인상의 그룹이 점점 다핵화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나이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그 집단에 동질화되었는가 아닌가가 중요한 핵심이다. 각 그룹의 가입도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개개의 그룹도 극히 편집적 성격을 띠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기 때문이다.
맺음말
말은 변화된다. 우리는 수십년 사이에 너무도 많은 변화를 겪어 왔다. 그러한 변화가 말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말이 격음화되는 것도 우리의 성품이 그렇게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터넷의 발달은 과거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식의 말을 창조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하여 '좋다', '나쁘다'를 논평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과거에 경험했던 것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고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 더 심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앞으로 2, 30년이 지나면 지금 사용하는 언어는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 즉 새로운 세대가 주류를 점하는 순간 표준어의 개념이 바뀐다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의 말이 어떻게 바뀌던 간에 말이 분명 그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라는 점은 변화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보다 우리 글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으며, 우리의 글이 대화의 도구로서 많은 사람의 공감대를 가지고 제대로 우리의 정신을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필요가 있다.
별첨 :
* 다음 설명하는 비에 적절한 단어는
* 비가 시작될때 몇 방울 떨어지는 비
* 실같이 내리는 비
* 가루처럼 뿌옇게 내리는 비
* 안개처람 가는 비
* 안개보다 굵고 이슬비보다 가는 비
* 좍좍내리다가 금새 그치는 비
* 한쪽으로 해가 나면서 내리는 비
* 해가 난 날 잠깐 내리는 비
* 겨우 먼지나 날리지 않을 정도로 오는 비
* 모종하기 알맞을때 내리는 비
* 모를 다 낼만큼 흡족하게 내리는 비
* 꼭 필요할 때 알맞게 내리는 비
답) 비꽃/실비/가루비/안개비/는개/웃비/해비/여우비/먼지잼/모종비/못비/단비
첫댓글 말 한마디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