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최상덕(32)이 웃다가 울었다. 최상덕에게 이승엽의 일본진출은 즐거운 소식이었다. 그러나 호세가 한국에 돌아온다는 것은 우울한 뉴스다. 이승엽과 호세는 최상덕에게 역사에 길이(?) 남을 뼈아픈 홈런을 안겼다. 최상덕에게는 끔찍한 선수들이었다.
최상덕은 이승엽에게 유달리 약한 모습을 보이며 가장 많은 홈런을 헌납했다. 통산 7개로 이승엽의 홈런퍼레이드에 가장 큰 제물이 됐다. 올시즌은 3경기에서 맞붙어 8타수 3안타 3할7푼5리. 그중 2안타가 투런과 솔로포였다. 삼진도 2개나 빼앗았지만 고비마다 번번이 무릎을 꿇었다. 최상덕은 “홈런은 전부 실투성 투구였다. 그때마다 놓치지 않고 잘 받아쳤다”며 떠나는 이승엽에 대해 훌륭한 타자라고 치켜세웠다. 속으로 ‘이승엽과 그라운드에서 다시 만날 기회가 없을 것’이라 쾌재를 부르며.
그런데 9일 KBO 이사회에서 영구제명된 호세의 구제결정이 떨어지자 웃던 입이 다물어졌다. 기껏 하나 남은 천적을 떠나보냈다고 여겼는데 또 다른 천적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최상덕은 호세와의 기억도 무척 쓰라리다. 지난 99년 5월9일 사직구장에서 프로통산 1만호 홈런부터 라이너로 백스크린을 맞히는 초대형 아치도 세 차례나 있었다. 2년간 호세를 상대할 때마다 한숨부터 나왔다. 호세는 그 당시 최상덕이 던지는 공을 뻔히 알고 쳤다고 밝혔다. 최상덕도 “투구습관과 볼배합 어느 것이 읽혔는지 알 수 없지만 직구든 변화구든 잘 쳤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최상덕은 “그 이후 호세의 약점을 파악해 상당한 효과를 봤다”며 “호세 공략법을 지금 밝힐 수 없지만 다시 만나면 그때처럼 호락호락하게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한 승부욕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