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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개의 기획안 중에 밥솥을 빌트인하겠다는 변강호의 엉뚱한 기획안이 최종적으로 확정되어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공장 자동화 기계 설비가 들어왔고 생산직 직원들이 들어왔으며 물류를 담당할 화물차들이 새롭게 단장을 했다. 근 한 달 동안 본사는 물론 이천 지사 역시 정신없이 돌아갔다. 며칠 있으면 '빌트인 밥솥'이 나올 판이었다. 그 동안 새 정부가 들어섰고 새 대통령이 경제를 살리겠다고 호언했다. 건설 경기만이라도 살아나야 그나마 대일 전자의 밥솥이 빛을 볼 수 있을 것이라며 이천 지사 직원들은 입방아처럼 얘기하곤 했다. '밥솥의 빌트인 시대'라는 캐치프레이즈가 이천 공장 정문에 커다랗게 내걸렸다. 직원들 차는 물론 화물차 역시'밥솥도 빌트인'이라는 광고 문구를 붙이고 다녔다. 이제 밥솥을 빌트인할 건설 회사를 섭외하는 일이 남아 있었다. 자회사인 대일 건설에서는 연구해보자는 답변만 온 상태였다.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변강호가 막 서류를 챙겨 사무실을 나가려할 때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여자가 있었다. '으잉? 미스 민?' 변강호는 얼른 고개를 돌리고 딴청을 부렸다. "대리님!" 미스 민이 주저하지 않고 변강호에게 다가왔다. 이소정과 고길수는 정신없이 바빠 그녀를 힐끔 쳐다보고는 말았다. "아, 민성희씨…." 변강호는 서둘러 그녀를 데리고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대구에서 볼 때와 그녀는 좀 달랐다. 더 화사해지고 더 풍성해졌다고나 할까. "아니, 여기까지 어쩐 일이야? 이거 참, 내가 지금 강릉까지 출장을 가야하는데…." 변강호가 두서없이 변명처럼 말을 꺼냈다. "뭐, 같이 가죠." 민성희는 냉큼 변강호의 차에 올라탔다. 어이없었지만 변강호도 어쩔 수 없이 운전석에 탔다. "여, 여긴 어쩐 일이야? 휴가 냈어?" "그만 뒀어요." 변강호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녀가 취직자리를 부탁하러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변강호에게 그럴 힘이 없었다. 그렇다고 본사 발령을 빌미로 그녀를 유혹했다고 고백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변강호는 일단 차를 몰고 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변강호는 강릉에 도착할 때까지 어색한 분위기를 상쇄하느라 이천 지사의 변모에 대해 주절주절 떠들었다. 민성희는 재미있게 들어주었다. "잠깐만, 차에 있어." 변강호는 동해 건설 본사 주차장에 차를 주차했다. "같이 가요. 여자가 곁에 있으면 말하는 데도 부드럽지 않겠어요? 저는 수습사원이라고 하세요." 민성희는 망설이지 않고 변강호를 따라나섰다. 뭐, 나쁠 것도 없었다. 변강호는 그녀와 함께 동해 건설의 아파트 건설 담당 과장을 만났다. 변강호가 빌트인 밥솥을 설명하는 내내 담당 과장의 눈길이 민성희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아름다운 암컷에게 향하는 수컷의 발정은 본능이었다. "과장님, 저녁이라도 같이…." 민성희가 미소를 짓자 담당 과장은 먼 길 오신 분들이니 자신들이 대접하겠다고 나섰다. 어쨌든 민성희 덕에 변강호는 동해 건설 담당자와 첫 미팅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다. 동해 건설의 아파트 담당 대리와 과장, 그리고 변강호와 민성희가 경포대로 향했다. "아무래도 술은 여자가 따라야 맛있겠죠?" "어머머머, 과장님 코가 일품이신데 사모님이 밤마다 행복하시겠어요." "오래하는 것도 좋지만 분위기에 더 약한 여자들도 있어요. 달빛, 바다, 차…. 뭐 그런 색다른 분위기…." 변강호는 가슴이 뜨끔했다. 그녀의 적극적인 변화가 놀라웠다. 민성희는 끊임없이 동해 건설의 두 남자를 즐겁게 해주었다.… 동해 건설 사람들과 헤어진 변강호는 그녀를 차에 태운 후 경포대 끝자락까지 달려갔다. 모래사장이 바로 내려다보이는 곳에 차를 주차했다. 민성희는 얼굴이 발그레해진 채 달콤한 술 냄새를 풍겼다. 변강호가 운전을 해야 하는 바람에 동해 건설 사람들과 민성희가 술 대작을 했던 것이다. 그녀는 카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추어 가볍게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적당히 술기운이 오르는 모양이었다. 밤바다 위에는 오징어를 잡는 집어등 어선이 물결에 따라 넘실대며 춤을 추고 있었다. "미스 민, 정말 미안해, 미스 민도 알겠지만 내가 이천으로 내려 온 건 지난번 원단 사건 때문에 좌천된 거나 다름없어. 그래서 미스 민의 공을 본사에 보고할 겨를이 없었어 정말 미안하게 됐어." 변강호는 몇 차례 미안하다는 말을 늘어놓았다. 민성희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변강호를 쳐다봤다. "저 그렇게 치사한 여자 아니에요.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 보았지만 도무지 민성희의 속마음을 알 수 없었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전 일개 경리 직원이었어요. 제 한계를 잘 알고 있었다고요. 그래서 직장을 그만 둔 거예요. 새로운 삶을 살고 싶어서 유학 가기로 결심했어요. 힘들겠지만 더 이상 나빠질 것도 없거든요." "유학?" "인생은 연습이 없다면서요. 그래서 나도 제대로 공부 한번 해보려고요. 그래야 후회를 안 할 거 같아요. 그런데 막상 떠나려니까 변 대리님 생각이 자꾸 나서 찾아온 거예요. 잊을 수가 없어서…." 창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민성희의 어깨가 가늘게 떨었다. 변강호는 방파제의 차 안에서 그녀와 섹스를 나눌 때 했던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그녀가 처녀일지도 모른다는. "떠나기 전에 한번 보고 싶었어요." 고개를 홱 돌린 민성희가 느닷없이 변강호의 품에 안겼다. 달콤한 사향 냄새가 변강호의 가슴을 찔러댔다 이천 공장으로 가는 동안 변강호는 바짝 긴장한 채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신정하는 시속 160에서 180㎞ 사이를 오가며 액셀을 밟았다. 그녀의 차는 어느새 이천 톨게이트를 지나고 있었다. 신정하가 속력을 낸 덕분에 서울 안국동 본사에서 이천 톨게이트까지 불과 3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엑셀과 보조 발판 사이에 놓인 그녀의 다리가 벌어져 흰 살이 드러났지만 변강호는 긴장하느라 눈길조차 주지 못했다. "나이 먹은 사람들은 여자 꼬드기면서 호구 조사 해요?" 변강호는 그녀가 무슨 뚱딴지같은 말을 하는가 싶었다. "과장님하고 고길수씨 말이에요. 고리타분하게 부모가 뭐 하냐, 형제는 있냐, 무슨 영화 좋아하냐, 여행 좋아하냐 등등…. 아무튼 유치해." "과장님하고 고길수씨가 신정하씨를 꼬드기든가요? 여기서 좌회전!" "그럼 나한테 괜히 잘하겠어요? 근데 방법이 틀렸어요. 요즘 여자들 꼬드기려면 해외 펀드로 뭘 하니? 누구네 블로그 들어갔더니 정말 웃긴 이야기 있더라, 그 UCC 봤어? 명품 동호회 어디 들어가 봤는데…. 등등 많잖아요. 그리고 술만 해도 그래요. 왜 직장인만 되면 다 똑같이 먹나요. 소주 아니면 맥주, 거기다 안주는 돼지고기 아니면 회 같은 거. 그러니까 맨날 대화가 똑같은 거예요. 젊은 여자 꼬드기려면 변화를 줘야 해요. 요즘 세대차는 한 살 차에서도 난다는 건 아시죠?" 변강호는 그녀가 읊은 이야기들을 귀담아 들었다. 그 사이 차는 공장 정문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미리 전화를 해 놓은 터라 이천 공장의 공장장이 입구에서 변강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공장장은 회사 시무식 때 봐서 낯이 익었다. 키는 크지 않지만 골격이 크고 체격이 다부진 사내였다. 어쩐 일인지 그는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백두산입니다." 공장장이 이름을 밝히자 신정하가 쿡 웃음을 터뜨렸다. 변강호도 웃음이 나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변강호는 웃지 않았다. 대신 백두산이 내민 손을 잡고 악수했다. 작은 키와 달리 단단한 근육이 느껴지는 손이었다. "자, 그럼 공장을 좀 둘러볼까요?" "저, 그게, 공장은 나중에 보시고…." 백두산이 쩔쩔매며 공장으로 들어가려는 변강호를 막아섰다. 변강호는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직원들이 데모라도 하는 모양이지요?" 역시 이상한 느낌을 받은 신정하가 날카롭게 물었다. 백두산의 이마에 땀이 비 오듯 흘렀다. 그는 정신이 반쯤 나간 사람 같았다. "그런 게 아니고… 하필이면 오늘 같은 날… 조금만 늦게 도착하셨어도 제가 다 해결했을 텐데… 이거, 정말…" "도대체 무슨 일인지 일단 들어가 봅시다." 변강호는 공장장을 제치고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에 검정색 자가용 대여섯대가 무질서하게 세워져 있었다. 변강호는 예감이 좋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공장안은 썰렁했다. 기계는 모두 멈춰 있었고 직원들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입니까. 공장장님께서 설명을 해 주셔야겠는데요." 신정하 역시 흥미롭다는 듯 백두산을 쳐다봤다 변장수는 오랫동안 들여다보던 사진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사진 속 인물은 새롭게 출범한 청와대의 고 비서관으로 세간에는 청렴한 인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 고 비서관이 사진 속에서 강승혜를 다정하게 포옹하고 있었다. '같은 대학 출신이고 두 살 차이라. 게다가 고 비서관은 독신이다. 오랫동안 만나온 사이인 것 같다고 했지. 그런데 왜 자꾸 고 비서관을 보면 변강호 그 자식이 떠오르지? 이건 틀림없이 뭔가가 있어. 고 비서관이 단순히 강승혜를 연모하는 수많은 사내들 중 한 사람은 아닐거란 말이지.' 밥솥을 빌트인하겠다는 변강호의 기획을 두고 회사 내부에서도 획기적이다, 영업만 잘 되면 대박이 터지겠다는 말들이 돌고 있었다. 본사 기조실로 올라온 수백 개의 기획안 중에 가장 엉뚱하고 비실용적이라고 판단해 변강호를 곤란에 빠뜨리려고 일부러 가결을 시켰지만 반응은 의외로 예상 밖이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게 할 순 없지.' 아버지가 그를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처음부터 경쟁상대로 생각하지 않았을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고 비서관하고 강승혜 관계를 더 알아봐. 대학 시절부터 말이야." 변장수는 양동탁과 통화를 끝낸 후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창밖으로 서울 야경이 담긴 한강이 내다보였다. 변장수가 서 있는 집은 새해 들어 장만한 초호화 오피스텔 안이었다. 그가 대일의 회장으로 진입하기 위해 사들인 아지트였다. 등 뒤에서 욕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창에 알몸인 김세희의 모습이 되비쳤다. 조각 같은 몸이지만 너무도 오래 봐서 더 이상 흥미를 끌지 못하는 몸이었다. 변장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이제 김세희는 더 이상 신비롭지 않았다. 김세희가 알몸으로 다가와 변장수를 등 뒤에서 끌어안았다. 물렁한 김세희의 가슴이 변장수의 등 뒤에 닿았다. 문득 긴자의 양초선이 떠올랐다. 위로 살짝 올라간 유두와 부드럽게 나온 아랫배가 눈에 아른거렸다. "우리 얼마나 됐지?" 변장수는 창밖에 시선을 둔 채 말했다. 변장수의 아랫도리로 향하던 김세희의 손이 멈칫했다. "전무님, 이제 제가 싫증나셨군요?" "역시 눈치하난 빠르군." 변장수가 담담하게 말했다. 김세희가 변장수의 몸을 돌려 세웠다. "전 미련 없어요." "이제 자네도 내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잖아." 김세희가 미소를 지으며 변장수의 옷을 하나 둘 벗겼다. "그렇다고 오랜만에 뵀는데 그냥 가라는 건 아니시죠?" 그녀는 명랑하게 말하며 바지의 혁대를 풀었다. 아무리 익숙한 여자라고 하더라도 알몸인 여자 앞에서 물건은 힘차게 발기하기 마련인 모양이었다. "이젠 이 훌륭한 물건을 볼 수 없어서 어쩌죠." "김 실장도 얼른 좋은 남자 만나 시집 가." 김세희가 무릎을 꿇었다. 변장수는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 그녀의 애무를 음미했다. 그럴수록 양초선의 우유 빛 같은 알몸이 아른거렸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변장수는 그녀를 번쩍 들어 소파로 옮기고 그녀의 위로 올라탔다. 김세희의 몸이 활처럼 휘어졌다. 그녀의 입에서 전에 듣지 못한 교성이 흘러나왔다. 변장수의 몸을 조이는 허벅지의 힘도 남달랐다. 뭔가 색다른 기분이었다. 오랜만에 품어본 김세희는 분명 예전의 김세희가 아니었다. 그녀의 손이 변장수의 등을 조였다. 그녀의 몸속에 들어간 남성이 전기에 감전된 듯 저릿했다. 그녀는 이제 막 남자를 알게 된 몸처럼 부르르 떨기도 하고 중심을 움찔거리기도 했다. '연애를 하나?' 변장수의 생각이 거기에 미쳤을 때 김세희가 흥흥거리며 중심에 힘을 주었다. 강하고 다른 느낌이었다. 그 바람에 그만 한줌의 열정이 빠져나가고 말았다. "우린 아직도 동진가?" 김세희가 피식 웃었다. 막상 그녀와의 관계를 정리하려고 하니 아쉬운 점들이 많았다. 그녀와 관계를 이어간다고 해서 다른 여자와 섹스를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니 굳이 관계를 청산할 이유까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김세희는 대일의 비서실을 총괄하는 여자였다. 아직은 그녀가 필요하기도 했다. "전 언제든 전무님 편이잖아요." 그녀가 변장수의 품을 파고들었다. 그녀의 몸은 여전히 뜨거웠다. "김 실장 달라진 거 알아?" "상사를 모시려면 수하들이 스스로를 제대로 단련해야하지 않을까요?" 김세희가 얼굴을 들어 변장수를 올려다보았다. 계륵 같은 여자. 사랑할 수도 없지만 미워할 수도 없는 여자였다. 김세희와 일을 끝낸 변장수는 집으로 향했다. "당신 집에 들어오면서 샤워했어요?" 변장수의 아내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피곤해서 사우나 좀 다녀왔어." 변장수는 능청을 떨었다. "나도 샤워할까요?" 그녀가 변장수의 팔짱을 끼며 미소를 지었다. "왜?" "당신도 참, 잘 알면서…." 변장수는 눈에 피로가 확 몰려왔다. '평화를 위해….' 적어도 1주일에 한번은 의무방어전을 치러야 가정이 평온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피곤하고 고달펐지만 가정의 평화를 위해 변장수는 옷을 벗었다. "나 뭐 달라진 거 없어요?" 옷을 홀랑 벗어버린 그녀가 가슴을 흔들며 물었다. 축 처져있던 가슴이 단단하게 달라붙은 채 탄력있게 흔들렸다. 변장수는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가슴 괜찮죠? 당신한테 잘 보이려고." 의무방어전에 들어간 변장수는 또 한 차례 놀랐다. 처녀 시절의 중심처럼 그녀의 중심이 단단해진 때문이었다. 절정에 이르자 그녀는 제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탄성을 내질렀다. "당신이 예뻐진 건 좋은데 걱정이야. 남자들 조심해. 나쁜 놈들 천지니까." "어머, 전 당신 밖에 없어요." 변장수는 너무 변한 아내가 은근히 걱정이었다. 변강호는 오랜만에 '궁'을 찾았다. 언제나 그랬듯 후문으로 들어갔다. 밤늦은 시각이라 정문은 술 취해 호기롭게 떠들어대는 손님들로 붐빌 터였다. 차 안에 앉아 있던 이강재가 후문으로 들어가는 변강호의 뒷모습을 보고 급히 차문을 열었다. 그는 양동탁의 지시로 '궁'앞에서 강승혜를 주시하고 있던 중이었다. 차에서 내린 이강재는 변강호가 사라진 후문 가까이 다가갔다. '변강호가 왜 이 곳에 나타난 거지?' 가로등 아래 비친 얼굴은 분명 변강호였다. 이강재는 후문 안쪽을 살폈다. '강승혜와 변강호가 무슨 연관이 있는 건가?' 이강재는 선뜻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후문은 '궁'과 개인적인 인연이나 친분이 있는 사람들만 드나드는 곳이었다. 이강재의 수하와 독고의 수하 하나가 이강재에게 다가왔다. 독고의 수하는 청와대의 고 비서관 뒤를 쫓다가 '궁'에 이른 경우였다. "형님, 무슨 일입니까?" 독고의 수하가 거들먹거리며 다가와 이강재에게 물었다. "아무 것도 아냐." "여기서 일어나는 일 독고 형님께 보고해야 합니다. 누가 들어간 겁니까?" "너희들은 알 필요 없다고 말했잖아." "형님!" 개는 주인을 닮는 법이다. 주인이 사나우면 개 역시 사나워지기 마련이다. 독고의 수하들이 그랬다. 건달이라곤 하지만 양아치들보다 예의가 없고 안하무인이며 거들먹거렸다. "사장님 특별한 지시 때문이니까 알 필요 없다는 거야." "형님, 부사장님께서 뭐든 다 보고하라고 단단히 지시를 하셨습니다. 그러니 누군지 말해주십쇼!" "이 새끼가!"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차에 남아 있던 이강재의 수하 두 명이 뛰어나왔고 독고의 수하 세 명도 달려왔다. "왜 남의 집 뒷문 앞에서 소란스럽게 구시는가. 쌈질을 할 거면 저 넓은 대로로 나가 싸우시지. 남의 영업 방해하지 말고." 이강재 패거리와 독고 수하 패거리를 꾸짖은 사람은 회색 마고자를 입은 땅딸한 체구의 늙은이였다 "흐흐흑… 죄송합니다. 이게 다 제가 못난 탓에…." 공장장이 느닷없이 울음을 터트렸다. 바로 그때 창고 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변강호와 신정하는 그쪽으로 황급히 달려갔다. 백두산이 쩔쩔매며 뒤를 따라왔다. "저건 또 뭐야?" 창고 앞에 서 있던 검정색 옷차림의 사내가 짧게 소리쳤다. 검정색 정장을 차려입고 머리를 짧게 깎은 사내들이 창고 앞에 진을 치고 있었다. 직원들도 모두 창고 앞에 모여 불안한 눈길로 웅성거리고 있었다. "아니, 일들 안 하시고 여기서 뭐 하시는 겁니까?" 변강호는 일부러 직원들을 향해 넉살좋게 웃으며 물었다. 낯선 사내들을 보고 내심 긴장이 되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오늘 이천 공장 운동회 날입니까? 모두들 모여서 공놀이라도 하실 모양이죠?" 변강호는 계속해서 변죽을 울렸다. "씨팔, 저건 또 웬 똥파리냐? 야! 니들은 신경 쓰지 말고 빨리 빨리 물건 옮겨!" 눈이 쭉 찢어진 사내가 소리쳤다. 변강호는 사태가 심각하다는 걸 깨달았다. "공장장님, 이 사람들 누굽니까? 왜 남의 물건을 함부로 옮겨요?" 신정하가 날카롭게 물었다. 그 말에 백두산이 힘없이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죄송합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이게 다 저 때문이에요. 흐흐흑… 이렇게 회사에 피해를 끼치게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자세히 좀 말씀해 보세요." 보다 못한 변강호가 소리쳤다. 그 와중에도 사내들이 창고 안에 있던 물건을 밖으로 꺼내 놓았다. "일이 이렇게 까지 될 줄은… 급한 김에 사채를 얻어 써서…." 백두산이 말을 잇지 못하자 사정을 아는 듯한 여직원 한 명이 나서서 거들었다. "몇 달 전 공장장님 따님이 심장 수술을 받았어요. 그때 공장장님께서 사채를 얻어다 쓰신 모양이에요. 전에도 여러 차례 큰 수술을 받아서 은행 대출은 이미 한도가 꽉 찼다고 하더라구요. 그것 때문에 월급도 이미 차압당하신 상태고…. 다행히 따님은 이번 수술로 많이 건강해졌다고 하는데…. 이제 공장장님이 다 죽게 생겼어요." 변강호는 한숨을 내쉬었다. 평범한 월급쟁이에겐 위급한 상황에 대처할 비용을 저축해 놓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공장장님, 원금은 다 갚았습니까?" "집 담보로 잡혀서 진즉 다 갚았죠. 저 놈들이 달라고 하는 건 이잡니다." "이 물건이 회사 소유라는 거 모릅니까? 게다가 저 사람들은 불법 침입입니다. 왜 경찰을 안 부르십니까?" 변강호는 당장 경찰을 부를 태세였다. "변 대리님, 잠깐만요. 저 사람들 경찰에 신고해봐야 그때뿐입니다. 나중에 제 월급에서 까라며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온 건데…. 죄송합니다. 하필이면 오늘 오셔서…. 잠시만 계시면 제가 알아서 해결하겠습니다." 공장장은 허둥댔다. 변강호와 신정하는 어이없는 풍경을 그저 구경하기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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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즐독입니다
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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