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에서부터 이 곡은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입니다. 전주부분의 밝고 발랄한 분위기를 여지없이 깨뜨리면서 시작되는 승환님의 굵고 낮게 깔리는 야릇한 목소리부터가 그렇습니다. 듣다 보면 정말 친구가
착하다는 건지, 아닌지조차 헷갈리게 하는 가사와 참을 수 없는 사운드의 가벼움은 이 곡이 승환님이 추구하는 키치(kitschy)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실감케 합니다.
<착한 내 친구>는 왜 키치이며, 키치이어야만 하는가? 친구라는 단어는 우리들에게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중압감을 주는 것 같습니다. 친구란 무언가 진지하고 진지해야만 하는 것 혹은 편안하고 편안해야만
하는 절대적인 그 무엇인가로 인식되고 있다는 겁니다. 이 강력한 이데올로기는 현대의 각박한 인간관계속에서 더욱 그 성채를 높이 쌓아올려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흐름이 여실히 반영된 것이 바로 대중문화 곧 영화나 연극, 음악일 것입니다. 영화 <친구>에서 저는 많은 장점을 보았습니다만, 영화 전편에 깔려있는 그 친구 이데올로기에는 상당한 반감을 가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대중음악 역시 이러한 흐름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게 저의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제가 아는 한 <착한 내 친구>처럼 이 고귀한 '친구'를, 그것도 '착한 내
친구'를 장난삼아 친구머리 뒤통수를 치는 헐렁한 마음가짐으로 굳건히 불러제낀 가요는 아직 없습니다.
승환님의 앨범을 살펴보아도 그것은 확인됩니다. 1집의 친구에게, 4집의 멋있게 사는 거야, 공일오비의 나의 옛 친구와 <착한 내 친구>는
확연히 구별되는 그 무엇이 있습니다.
하여튼 승환님에게는 못말리는 구석이 있습니다. 뭔가 경직되어 가는
저의 뒷통수에 일격을 가한 승환님..., 이런 일격이라면 이 몸 머리숙여 십이격이라도 강타당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p.s>승환님에게 분명 좋은 친구가 생긴 것 같습니다. 이러한 깨달음을 하신 것을 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