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잔.
영국은 100년전쟁에서의 완승을 통해 북프랑스 일대에 지배력을 확고히 굳혔고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일대에도 탄탄히 지배력을 굳혔습니다. 다만, 프랑스왕위를 상속 후 연합법을 통해 대영제국의 황위와 프랑스 왕위를 합친 영국정부의 정통성을 남프랑스의 귀족들은 인정하지 않았으며 대규모의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교황청의 중재하에 교황은 남프랑스의 왕에게 아키테니아의 왕관을 씌워줬고 대영제국의 황제에게는 프랑스의 왕관을 씌워줌으로서 프랑스에 평화를 불러왔지만, 대영제국의 황제는 런던과 파리의 황제로서 남프랑스 일대 또한 자신의 정당한 땅이라 믿으며, 아키테니아의 왕 또한 파리를 수복하고 프랑스 왕국의 왕관을 쓰는 것이 신이 자신에게 내린 사명이라 믿습니다.
로마제국은 언제나 여러개의 통일되지 않은 부족정부보다는 하나의 통일 된 강인한 정부와의 외교를 즐겼습니다. 100명과 외교하는 것보다는 1명과 외교하는 것이 훨씬 더 쉬우니까요. 마자르족의 카르파티아 제국을 상대하기 위해 동맹이 필요한 상황에서 로마제국은 신성로마제국에서 가장 적합한 귀족 1명을 선택한 후 그를 군사적및 외교적 방법들로 지원해주었습니다. 그 귀족은 로마제국의 지원하에 신성로마제국의 제위와 넓은 직할지를 얻어냈지만 독일황제의 확장을 경계한 제국 나머지 지역의 귀족들이 뭉쳐 4개의 연합왕국들을 형성하는 부작용또한 야기했습니다. 그 결과 신성로마제국은 5개의 왕국들이 제위를 놓고 끊임없이 경쟁하게 되었습니다.
이베리아반도는 백색단과 히스패니아 연합제국 사이의 2파전 상황이 되어있습니다. 과거 남쪽의 이슬람 술탄들을 이베리아반도에서 쫓아내기로 결정한 카스티야의 왕은 용병대를 구하려 했는대, 로마제국하에 안정적으로 변한 이탈리아 반도에서는 더 이상 용병대를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카스티야 왕국은 백년전쟁중 영국편에 서서 맹활약한 영국의 용병단인 백색단을 고용했는대, 이 백색단은 동네에서 칼 좀 쓴다는 애들이 우르르 뭉쳐서 칼질하고 돈받던 과거의 무질서한 용병단이 아니라 백년전쟁이라는 대전쟁을 거치며 철저히 기업화되고 정예화 된 영국최강의 전투조직들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카스티야의 왕은 그렇게 바뀐 상황에 대한 깊은 이해도없이 유럽 최대의 용병단인 백색단을 고용해 열심히 부려먹었습니다. 백색단은 충성스럽고 강력했지만 욕심많은 카스티야의 왕은 백색단의 부를 탐내며 몰래 백색단을 기습했는대, 조직적인 스파이망을 통해 이미 그 정보를 알고있던 백색단은 역으로 카스티야왕의 군대를 섬멸한 후 북부 해안가를 점령했습니다. 다급해진 카스티야왕은 자신의 딸을 후계자로 삼고, 그 딸을 아라곤 - 포르투칼의 왕과 결혼시킨다는 조건하에 아라곤왕과 동맹을 맺어서 재차 백색단을 쳤지만, 백색단은 카스티야-아라곤의 군대를 재차 무찌른 후 바르셀로나와 아라곤 왕국 전역을 점령하기까지 했습니다. 결국 카스티야왕은 코르도바에서 약탈한 보물들을 몽땅 백색단에게 건내준다는 조건하에 겨우겨우 평화협상을 맺었습니다. 그런대 애초에 욕심스러워서 백색단을 배신하려한 자가 보물을 몽땅 넘겨주고나니 제명에 살 수 있을리가 있나요. 카스티야의 왕은 평화협상 1달 후 홧병에 걸려 거꾸러졌고 포르투칼로 도망간 아라곤의 왕과 새롭게 즉위한 카스티야의 여왕이 히스패니아 연합제국을 결성하며 이베리아반도는 히스패니아 연합제국과 백색단의 2파전이 되었습니다. 레콩키스타가 한참 진행되며 풍전등화의 상황에 놓였다가 백색단과 카스티야간의 전쟁덕분에 뜬금없이 목숨을 살린 무키아는 덤입니다.
1071년, 로마누스 4세는 만지케르트 전투라는 시대의 회전을 앞에 둔 채 머리를 식히기위해 밤공기를 맞으며 산책을 하고 있었다. 그런대 정말 우연찮게도 그가 산책을 하다 인적이 뜸한 곳에 도착했을 때, 안드로니쿠스 두카트가 알프 아슬란의 전령과 음모를 꾸미는 모습이 보였고 격노한 로마누스 4세는 안드로니쿠스 두카트를 붙잡아 그의 목을 잘랐다. 그 후 군기를 엄령히 재정비한 로마누스 4세는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알프 아슬란을 무찌른 후 포획하기까지 하였고 알프 아슬란은 투르크족이 제국의 동방국경을 더 이상 침범하지 않으며, 셀주크 투르크 서부의 드넓은 땅의 할양을 승낙하고나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그 후 로마누스 4세는 개선장군이 되어 콘스탄티노플로 돌아갔고 테마제도를 새롭게 정비해 파티마조를 멸망시키며 시리아 속주와 이집트 속주를 탈환하기까지 하였다. 그의 후손들은 승승장구하며 크로아티아와 이집트까지 손에 넣었는대, 동방속주를 안정화시키기 위한 제국의 동방화정책에 반발한 이탈리아 사람들은 1442년 대영제국의 펜드라곤 가문과 카르파티아 제국의 후원하에 대봉기를 일으켰고 백색단의 도움과 함께 1444년 로마 협약을 맺는 것에 성공했다. 로마 협약은 로마 제국이 이탈리아의 독립을 인정하며, 펜드라곤 가문의 이탈리아 왕의 정통성을 인정하며, 이탈리아 반도에 대한 제국의 영토주장을 공식적으로 포기한다는 내용이였다. 로마 협약은 펜드라곤 가문의 빛나는 승리와 로마 제국의 처절한 굴욕을 상징했다. 하지만 여전히 로마 제국은 부유한 동방무역을 독점하고 있었으며 로마제국이 온 유럽에서 가장 강한 군대와 가장 부유한 국고를 가지고 있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였다.
참고로, 온 유럽과 북아프리카는 카톨릭화됬습니다. 로마 제국도요!
교황청은 몰타에 있습니다.
요건 수익창.
요건 군대창입니다.
mod.rar
첫댓글 상당히 흥미롭군요... 특히 신성로마제국이 5개 국가의 연합체가 되었다는 부분... 근데 중간에 이베리아 반도 아래의 아즈텍은?!?! 선셋 인베이젼의 후폭풍인가 ㅋㅋㅋㅋ
넹. 근대 문제는 모로코지역에 아즈텍의 수도가 위치하게 되서, 정작 아즈텍 본토는 수입폭락 크리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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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쳐 로마누스 개객기!
이탈리아에 펜드래건이라니
심지어 영국 본토 왕가도 펜드래건입니다ㄷㄷ 대영제국은 웨일스에 의해 성립된듯...아니 그러면 프랑스 왕위계승권이 애초에 없는데?!
개인적으로 영국이 프랑스 북부 영토를 점령하고 있는 모습이 굉장히 마음에 안드네요. 영국빠도 아니고 무슨 -_- 저런 설정을 해놨냐 . 아 영국빠인듯.. 싫다ㅠㅠ
ㄴㄴ 이거 ck2 세이브파일 컨버팅된거에요. 플레이어가 브리타니아임. 저 설정들은 걍 제가 덧붙인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