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의암호에 소양강처녀 상이 있다.
짧은 치마와 호리호리한 몸매에 가는 종아리의 처녀다.
소양강 처녀는 뱃사공이 아니다.
군인간 오라버니를 기다리던 큰 애기 사공은
낙동강의 처녀 뱃사공이다.
1953년 유랑극단 단장윤 부길(가수 윤항기,윤복희 남매의 부친)씨가
경남 함안의 악양 나룻터에서 입대한 오빠대신
노를 젓던 두 처녀 뱃사공의 사연을 담은 곡이다.
소양강 처녀는 가수지망생이었다.
아버지는 소양강에서 고기를 잡아 생계를 꾸렸다.
처녀는 열여덟살이던 1968년 서울의 가요작가 동지회사무실에서 일했다.
어느날 처녀가 춘천으로 음악인들을 초청했다.
작은 갈대섬에서 갑자기 비바람이 몰아쳐
처녀가 반야월씨의 품으로 뛰어 들었다.
반씨는 그때의 감정을 떠올려 소양강 처녀의 가사를 썼고작곡가 이 호씨가 곡을 붙였다.
처녀는 열여덟 딸기같은 어린 순정을 뒤로하고밤무대 가수의 길을 걸었다.
이곡은 금년에 타계한 반야월씨의 대표작이다.
불효자는 웁니다,아빠의 청춘,단장의 미마리고개,울고 넘는 박달재 등 5,000여곡을
작사한 반씨는 주변의 시기를 우려해
가수 진방남,추미림,박남포,고향초,옥단춘,백구몽 등여러개의 예명을 썻다.
문화예술의 천국이라는 공산당에 속아 월북과 친일 행적을 공식 사과한 일도 있고
비록 비극적인 시대가 만들어낸 오점이 있지만
한국가요사 기념관에 자신의 소장품 158점을 기증하는 등
대중가요 기틀을 다지는 일에 누구보다 앞장서 왔다.
다시한번 고인의 생애를 회상해 본다.
2012. 7. 15 . 온 당.
자료: 동아일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