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0.02.日. 맑음
꿈꾸는 자의 잠 못 이루는 밤.
한 달에 한 번씩 대장님의 정성어린 준비와 면밀한 주도하에 진행되는 답사이지만 매 번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는 않다. 그러다보면 일 년에 기껏해야 답사에 두세 번 참석하게 되는데, 몸은 그럴지언정 마음은 매 달 답사와 함께 하게 된다. 게시판에 올라온 일정표와 예정지 자료나 사진을 보면서 상상 속에서 일정표를 따라가며 답사 예정지를 돌아본다. 그곳에 얽힌 이야기와 저곳에 펼쳐진 전설을 읽어가노라면 건성으로 답사를 다녀오는 정도는 충분히 된다.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항상 충분하지 않은 것들이 있다. 상상 속의 답사에서 함께 버스를 타고 내리고, 함께 답사지를 걸어 다니는 수많은 얼굴들은 못내 그리워진다. 먼발치로 본 그들의 뒷모습이나 걸음걸이만 보고도 누구인지 알 수 있는 사람들의 향훈香薰은 상상만 가지고는 아무래도 턱없이 부족한 모양이다. 무엇인가에 익숙하다는 말은 보이지 않을 때면 그리워진다는 말에 다름 아니고, 그리워진다는 말은 이미 내 안의 한부분이 되어 있다는 것을 뜻하는 말일 것이다. 가을이 되고 또 계절이 바뀌어져도 직접 코 앞에서 눈을 마주친 채 전해오는 체취를 느끼지 않는 이상 그리움의 크기는 나도 모르게 조금씩 커져가고 있는 듯하다. 사람이 부대끼며 산다는 말은 결국 정情의 크기를 서로 주고받으며 산다는 말은 아닌지 이 가을에 또 한 번 생각을 하게 된다. 남은 가을 동안에 쌓이는 그리움의 하중은 또 얼마나 내 두 어깨를 짓누르게 될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나는 그것들을 삶의 무게라고 부르고 싶다.
삼십 년 가까이 된 탁상시계의 알람을 새벽 5시에 맞춰두었지만 항상 알람이 울리기 5분 전에 눈을 떠버린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좋은 점이라면 딱 이것 한 가지이다. 잠이 줄고 시간에 예민해져서 일어나고 싶은 시간에 잘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인데 이것 한 가지를 제외한다면 다른 것들은 청춘일 때와 달라진 것이 조금도 없어 보인다. 호기심이 많아 사방을 기웃거리며 언제든지 몰두할 대상을 찾아 더듬이를 흔들어대고, 이미지로 만들어 낸 사랑의 환상에 빠져 갈등하고 고통 받는 과정을 거쳐 힘들게나마 평정을 이끌어낸다.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일어난 날에는 잠자리에 누운 채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보는 작은 즐거움을 누린다. 일람소리가 울려온다. 이제 잠자리에서 일어나 씻고 아직 어두운 아침을 향해 집을 나선다.
압구정 공영주차장에 감도는 보랏빛 바람들.
같은 공영주차장일지라도 차를 주차하려고 갈 때와 만남의 장소로 갈 때의 분위기가 전혀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건강한 감각의 발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단지 눈에 비쳐오는 착시현상이 아니라 생각으로 골라내는 풍경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공영주차장에는 구획을 지어놓은 하얀 선 대신에 만남을 기대하는 여러 가지 바람들이 허공을 맴돈다. 10월의 첫날 공영주차장을 누비는 바람은 보랏빛이다. 흰색보다는 부드러우나 초록색보다는 강렬한 그리움이고, 검정색보다는 따스하지만 붉은 색보다는 차가운 은밀한 기다림이다. 역시 답사의 즐거움보다 한 발 앞서 찾아온 것은 만남의 행복감이다.
(- 압구정 공영주차장에 감도는 보랏빛 바람들 -)
첫댓글 바람을 사진에 ..그리고 그림에 담고싶은 마음 가득이지만
아직 바람을 화폭에 어찌 담아내야하는건가...흔들리는갈대에 실어볼까
흩날리는 나뭇잎에 담아낼까...생각만 가득..
보라빛 바람...설레임과 그리움의 바람...
긴울림님 덕분에 모놀식구들 이러다 전부 시인되겠어요~.~초우님은 그림도 잘그리시면서..시도 잘쓰시네요..부럽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긴울림님. 더 멋있어지셨어요. 나이가 주는 여유로움이 살짝 보이더만요. 집에 올 때 말없이 내 가방 들어주던 마음에서 내 가슴속에 살랑 스쳐 간 바람. 감사했습니다. 또 뵈어요.^*^
그리움과 기다림이 담긴 보랏빛 바람... 참 멋진 표현이군요~~~
*** 바람은 보랏빛이다... 그런것 같습니다~^^
대장님 설명이 잘 들리지 않을 때 귀뒤에 손 모아 열심히 듣던 모습...^^*
긴울림님처럼 이번 답사에 모처럼 오시는 분들이 많으신데 뵙지를 못해서 저는 그리움으로 가을을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ㅎ ㅎ ㅎ
제가 참 좋아하는 색이 보라색인데요. 보라빛 감성이 넘치는 가을날의 진첩답사이었을 것 같습니다.
감각적인 긴울림님의 후기 정말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