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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시키면 그것도 돈을 받을 테지만 산채비빔밥을 주문하니 도토리묵 한 접시가 그냥 나왔다. 국산인지 참기름 냄새가 고소하였다. 거기에 소주 한 병을 깠다.
예상대로 산채비빔밥도 맛이 좋았다. 절 아랫동네 식당이 어찌 한둘일까만 단언컨대 먹을 만한 식당은 열 군데에서 한두 곳에 지나지 않는다.
문선공과는 81년엔가 항도여중에서 만났으니 꽤 오래 된 인연이다. 사람이 부드럽고 온화하고 착실하며 거짓을 모르고 충직하여 아예 소년과 같이 해맑고 순수한 성품이다.
한 가지 흠이 있다면 나와 비슷하게 술 담배를 너무 가까이 한다는 점이다. 아픈 데도 많은데 술 담배에 집착하다 보니 나보다 부인의 걱정이 이만저만 아닐 터였다. 그래서 나만 술자리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한테까지 그와 술자리를 자주 갖지 못하도록 말렸다.
“그 사람 종합병원이라니까. 모르면 몰라도 아마 부인은 문선공하고 술 마시는 사람을 공공의 적이라고 생각할 것이여.”
그가 성문암에 걸려서 수술을 받고 학교를 명예 퇴직했다는 소문이 바람결에 들려왔다. 때마침 퇴직교사들의 모임인 화백회가 만들어졌다. 그에게 가입 의사를 물었다. 가입하겠다고 했다. 그럭저럭 건강이 괜찮아진 모양이었다. 결국 나와 문선공은 퇴직 후 다시 삶의 뒤안길에서 만나 다정하게 여행을 다니게 되었다. 하지만 문선공은 아직도 허리 다리가 불편하여 산책할 때에는 멀리 함께 걷기 어려웠다.
다행히 성문암의 수술 결과는 괜찮다 했다. 이제 그는 술 담배를 멀리한 채 조용하고 깨끗하고 겸손하게 늙어가는 신선이 되었다. 술 마실 때보다야 재미는 좀 덜하겠지만 그만큼 주위의 걱정도 줄어든 셈이다.
사람은 언제까지 행복한가. 그야 물론 건강할 때까지만 행복하다. 시중에는 행복론에 관한 권위 있는 저자들의 책이 많이 나돌아 다니지만 행복론은 시작부터 종결까지, 알파에서 오메가까지, 프롤로그에서 에필로그까지 순전히 건강론으로 메워져야 맞을 것 같다.
어떤 철학자는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고 설파했지만 현대인들은 병마에 시달리지 않으면서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이번 여행에는 서울 아들 집에 가서 건강 검진을 받는 임 박사와 광주 딸 집에 가서 건강 검진을 받는 문 박사가 빠졌다. 졸지에 일곱 명 승용차 두 대로 다니던 여행이 다섯 명 한 대로 졸아들었다. 임 박사 문 박사와 나는 동갑이다. 그러고 보니 나도 곧 건강 검진을 받아야겠다. 남들 다 끊은 술 담배도 못 끊고 여전히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이 무에 그리 잘났다고 건강이니 행복이니를 입에 올리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아내는 십여 년 전에 아반떼 승용차를 장만했지만 나는 평생 동안 차를 몰지 않았다. 물론 90년에 면허증을 땄지만 장롱 속에 고이 모셔 두고 목포에서는 자전거로 출퇴근했고 해남으로 다닐 때에는 남의 차에 카풀했다. 그 일로 아내는 가끔 투덜거린다.
“남들은 피곤하면 남편이 운전한다더구만.”
허리 수술을 하고 나서는 자전거도 거의 타지 않는다. 시원한 새벽에 한 시간 가량 걷는 것이 운동의 전부다. 무슨 일이 생겨도 엔간하면 걸어 다닌다. 걷는 것도 건강에 상당히 도움이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승용차 아니면 무슨 수로 운장산까지 놀러 다닐 수 있겠는가. 나 박사는 여러모로 믿음직스러운 모범 운전사다. 운장산 가는 길에 고마운 나 박사의 애마 앞에서 기념으로 한 장 찰칵했다.
금산사 아래에서 점심으로 산채비빔밥을 먹고 운장산으로 갔다. 조금 이른 시각에 숲속의 집에 도착했다. 우리가 들어간 집 옆집을 찍었다. 우리 집과 비슷하게 생겼다. 왜 옆집 찍으면서 우리가 들어간 집은 찍을 생각을 못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산림청에서 운영하는 국립휴양림! 이런 곳에 올 적마다 한 열흘쯤 묵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숙소에 들어가자마자 류 박사가 비파를 꺼내놓았다. 먹어보고 맛있어서 만 원어치 샀다 한다. 가물어서 열매가 작고 단맛도 덜했다.
예전 우리 집 화단에 열린 비파는 알도 굵고 달고 시원했다. 노란 비파가 폭삭 익으면 가지째 꺾어 이웃집에 나눠주기도 했다.
한 번은 이웃집 아주머니가 무척이나 신기해했다고 한다. 그 아주머니는 하체가 부실하여 오랫동안 바깥 구경을 못 하고 방 안에서만 갇혀 지내던 분인데 우리 집에서 건너간 비파 열매를 보고 이름이 뭐냐고 물어보더란다. 그 남편은 교사였는데 그 뒤로 비파 선물이 고맙다고 밭에서 가꾼 상추며 가지 등속을 푸짐하게 가져다주었다. 비파는 남쪽에서만 사는 나무인가 보았다. 서울 사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나무가 무화과와 비파다. 그 중에서도 비파는 더더욱 신기해한다.
비파는 전주곡이고 병어회가 등장했다. 5월 6월은 병어의 계절이다. 신안 지도 병치가 가장 유명하다. 한 상자씩 사서 한 마리씩 랩으로 싸서 냉동실에 넣었다가 여름에 회가 먹고 싶으면 한 마리씩 썰어 먹는다. 요즘은 스무 마리 상자보다 서른 마리 한 상자가 더 인기란다. 값도 더 싸고 간단히 먹기도 좋다던가. 전 박사가 아이스박스 얼음에 시원하게 채워 와서 꼬소롬하고 기름진 맛이 먹을 만했다.
잠깐 산책을 다녀와서 저녁을 먹기 전에 어란에다 매실주를 한 잔 했다. 어란은 매제가 우리 어머님 자시라고 가져온 건데 어머님이 별로 즐겨 자시지 않아서 조금 가져왔다. 숭어 한 마리에 기다란 알집이 두 개 들어 있는데 그걸 참기름 바르고 말려서 15만 원이라 했다. 세상에나, 아무리 옛날 임금님 진상품이었다고, 명인이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서민들 먹기에는 너무나 착하지 못한 가격이다. 지금은 고급 요릿집에나 가야 얇게 썰려서 조금씩 나올 뿐이다. 류 박사가 오랜만에 먹어본다면서 입맛을 다셔서 순식간에 끝장이 났다.
매실주는 당숙이 담근 술을 조금 덜어왔다. 일흔이 넘은 당숙은 나주 시골에 홀로 지내시면서 매실나무를 수십 그루 심었다. 그 매실에다 독한 소주를 부은 과일주인데 양조장에서 숙성시켜 판매하는 매실주보다 맛이 훨씬 나았다. 역시 순식간에 동이 나고 말았다.
저녁 식사에는 병치와 함께 아나고(붕장어)구이가 나왔다. 산 놈을 사왔다 한다. 역시 물고기는 산 놈을 사야 구워도 훨씬 탄력이 좋고 싱싱해서 감칠맛이 난다.
그럭저럭 술이 알딸딸해졌다. 나 박사는 매실주가 생각보다 독하게 취한다고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결국은 산꼭대기에 군사시설이 들어서는 바람에 철거당하고 말았지만 삼대할머니 작은할아버지 작은할머니가 사시던 금성산 새절은 나 스무 살 때까지 훌륭한 개인 별장 노릇을 해주었다.
개인 별장을 따로 두는 호사를 누리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는 자연휴양림 숲속의 집이 훌륭한 별장 노릇을 해주고 있다. 방학이나 휴일을 틈타 가족이나 친지들끼리 저렴한 비용으로 다녀간다면 개인 별장과 별반 다름이 없다. 게다가 개인 별장은 기껏해야 한 군데이지만 휴양림은 전국에 산재해 있으니 여기저기 번갈아 방문할 수 있어 더욱 다양하고 흥미진진하다고나 해야 할까. 우리 화백회도 작년에는 남해도 휴양림, 올해에는 운장산 휴양림에 왔으니 다음에는 또 어느 휴양림을 구경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우리는 전 박사가 장만해 온 반찬에다가 전 박사가 지어준 밥에다가 전 박사가 끓여준 바지락 국을 맛나게 먹었다.
한비야 씨의 책을 꽤 여러 권 읽었다. 글에는 머리로 쓰는 글하고 발로 쓰는 글이 있다는데 한비야 씨의 책은 발로 쓴 글이요 땀으로 적신 글이다. 그미는 봉사정신이 투철하다. 전쟁터이건 척박한 오지이건 국적을 가리지 않고 기아와 질병과 온갖 고통에 시달리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하여 고군분투한다. 때로는 생명의 위험까지 마다하지 않으면서. 나는 슬금슬금 한비야 씨를 존경하기 시작했다.
전 박사도 크게 보면 한비야 씨 계열이다.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오로지 함께 한 동료들을 위하여 투철한 봉사정신을 발휘한다. 일신의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너무나 수고로운 그를 보면 미안하기도 하지만 고맙기 짝이 없다. 덕을 쌓으면 반드시 좋은 일이 이어지기 마련이다.
저녁 식후 디저트로는 수박이 나왔다. 예전에는 수박이 잘 익었는지 칼로 쑤셔서 삼각형으로 떼어내 조직검사를 했는데 요즘은 칼을 넣어보지 않고도 대강 달다. 수박도 어느 정도 품질 표준화가 이루어진 셈이다.
못 살아서 그랬겠지만 나 어릴 적에는 참외나 수박 먹기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웠다. 수박 사온 날이 잔칫날이었다. 바구니에 담아 줄을 늘어뜨려 우물 안에 시원하게 넣어두었다가 아버지가 집에 오시면 끌어올려 식구대로 나눠 먹었다. 어떤 날은 아버지가 돌아오시기를 애타게 기다려도 감감무소식이었다. 평상에서 기다리다 지쳐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 아침에 일어나면, 오메, 수박!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머니, 수박 어딨소? 할머니, 수박 다 먹어부렀소? 촐랑대기는, 니 것 남겨 놨다. 살강에 가 봐라.
아무리 사람 수가 적게 왔다고 삼천만의 오락을 그만둘 수는 없는 노릇, 기어코 화투판이 벌어졌다. 돈 따먹기도 좀 그렇고, 삼봉 쳐서 점수를 적어 등수를 따져서 내일 커피 내기. 그래도 역시 승부는 승부인지라 긴장감은 돈 따먹기와 마찬가지였다. 함성과 웃음과 탄식이 자정 너머까지 그치지 않았다.
남한 인구가 5천만을 돌파했다고 한다. 이제 삼천만의 오락도 오천만의 오락으로 격상해야 맞을 것 같다.
전 박사, 류 박사는 일찍 잠자리에 들고 셋이서 삼봉 점수를 열심히 종이에 적고 있는데 나방이 날아들었다. 나는 노래방에서 즐겨 부르던 가수 김상국의 ‘불나비 사랑’을 흥얼거렸다.
-얼마나 사무치는 그리움이냐
밤마다 불을 찾아 헤매는 사연
차라리 재가 되어 숨진다 해도
아아아, 너를 안고 가련다 불나비 사랑.
어쩌면 우리는 뻔히 뜨거울 줄 알면서 불로 뛰어드는 어리석은 한 마리 부나비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리움은 인류의 여러 질병 가운데 가장 몹쓸 전염병이다.
저녁 먹기 전, 잠자고 아침 먹고 난 후, 그러니까 두 번에 걸쳐 휴양림 숲길 산책에 나섰다. 목포도 도회지치고는 공기가 괜찮은 편이지만 맑고 시원한 운장산 공기는 그야말로 폐부 깊숙이 새로운 활력소를 부어 넣어 주었다.
운장산은 중국 삼국지에 나오는 관운장과는 별로 관계가 없겠지만 그렇게 보아서 그런지 관운장의 풍모처럼 품이 넓고 깊고 아늑하고 그윽하여 그 끝을 모르겠다.
무성해진 풀잎과 나무이파리들이 생기를 왕성하게 내뿜는 초여름, 우리는 진한 밤꽃 향기를 맡아가며, 쪼로롱 방울 구르듯 골짜기를 날카롭게 들썩이는 예쁜 산새 소리를 들어가며, 버찌를 따먹으며, 지나온 삶의 발자국 가운데 뜬금없이 떠오르는 추억들을 곱씹어가며, 싸묵싸묵 소년들처럼 해찰을 하면서 때로는 헤픈 웃음을 흘리면서, 매인 데 없이 한가롭게 꺼떡꺼떡 걸었다.
숲속은 바야흐로 생기발랄한 초여름이었지만 우리들은 깊어가는 가을날 노랗게 익어서 떨어질 날을 기다리며 울타리에 위태롭게 매달려 대롱거리는 하눌타리 신세였다.
작년 6월에는 경남 남해도에서 밤꽃 구경을 하더니 올 6월에는 운장산에서 밤꽃을 구경한다. 밤꽃은 그 향기가 거늑하고 짙어서 숲길 전체를 아련하게 휘감아 돌며 맡는 이의 정신을 아뜩하게 만든다.
금성산 새절에는 이십여 그루의 잘 자란 밤나무가 완만한 비탈에 서 있었다. 어린 소년의 발길질이 무에 그리 아플까마는 단단한 밑동을 힘 주어 차면 보답이라도 하듯 투두둑 알밤이 쏟아져 내렸다. 한 번은 구멍도 내지 않고 알밤을 굽다가 화롯불에 묻어놓은 알밤이 팡 터지는 바람에 새절 큰방이 온통 재 범벅을 이룬 사고도 있었다.
하루는 아버지와 친구 분들이 금성산 새절로 올라왔다. 밤나무 기둥에 구멍을 파고 사는 애벌레를 나뭇가지로 살살 끄집어냈다. 누에 모양인데 누에보다 더 통통한 애벌레였다. 그 애벌레들을 석쇠 위에 올려놓고 구웠다. 수대로 맛있게 깨물어 먹었다. 나는 얼굴을 찡그렸다. 어른들은 왜 징그러운 벌레를 아무렇지도 않게 먹는지 몰라. 그러나 이제 어른이 되고 늙은이가 된 마당에 나도 어쩌면 그 애벌레를 맛나게 깨물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집은 가난하였지만 한 동네 사는 꾀돌이네 집은 형편이 괜찮았다. 그 집에는 신경초라고 불리기도 하는 미모사 화분이 있었다. 참 신기한 나무였다. 대부분의 식물이 움직일 수 없는데 그 나무는 손가락으로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잎사귀가 금세 풀이 죽어 축축 늘어졌다. 좀 심하게 건드렸다 하면 아예 줄기부터 움츠러들었다가 원기를 회복하면 다시 멀쩡해졌다.
새절에 올라가다 보면 길가에 미모사와 비슷한 나무 잎사귀가 눈에 뜨였다. 그 때마다 나는 살짝살짝 건드려보았지만 끄떡도 하지 않았다. 짝퉁 미모사였다. 그래도 실망하지 않고 나는 또 짝퉁을 만나기만 하면 끈질기게 건드려 보았다. 그 짝퉁 미모사가 선녀가 입는 야회복처럼 하늘거리는 고혹적인 연분홍 꽃을 피우는 자귀나무라는 사실은 어른이 되고서야 알았다. 운장산에서 다시 자귀나무를 만났지만 나는 잎사귀를 건드리지 않았다. 왜냐고? 이제 나는 늙었으니까, 꿈을 잃었으니까, 상상력이 고갈되었으니까.
숲속의 집은 참 행복한 곳이다. 베란다까지 사슴벌레가 가정방문을 하여 노인들을 기쁘게 한다. 사슴벌레도 꽤 늙었는지 어째 기운이 없고 사진으로 찍어보니 번들거리는 검정색 광택도 희미하다.
새절에는 밤나무 밭도 있고 상수리나무 참나무도 많았다. 심심찮게 사슴벌레가 눈에 띄었다. 사슴벌레를 만나기만 하면 가슴이 콩콩 뛰었다. 검정 비로드보다 반짝거리는 광택, 무시무시한 집게발의 위용, 탱크보다 탄탄해 보이는 육중한 몸매, 어쩌면 아무리 아름다운 여인을 품는다 하더라도 버르적거리는 사슴벌레를 조심스레 손가락으로 치켜들었을 때의 흥분과 경이로움에 비길 수는 없었으리라.
디카 성능도 그런데다가 피라미가 놀랄까 봐 멀리서 찍었더니 희미하게 나왔다. 이 사진을 보는 사람은 숨은 그림 찾기를 해야 한다. 사진 중앙에서 위로 1클릭, 오른쪽으로 1클릭을 가면 밝은 돌 위에 피라미의 꼬리가 보인다. 사진 중앙에서 아래로 1클릭, 왼쪽으로 1클릭 이동하면 피라미의 몸통과 꼬리가 보인다.
새절 냇물에는 피라미와 갈겨니가 살았다. 멀리 필리핀 해구까지 갔다가 알에서 깨어 돌아온 뱀장어도 살았다. 징거미 새우, 다슬기, 가재, 모래무지도 살았지만 몸매가 날씬하고 재빠르고 예쁘기로는 피라미가 으뜸이었다.
가뭄이 들어 물줄기가 가늘어진 운장산 계곡에서 피라미를 만나니 반가웠다. 혹시나 해서 돌들을 떠들어 보았지만 가재나 다슬기는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언제까지나 높은 산 시냇물에서 가재와 다슬기와 피라미를 구경할 수 있을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사려 깊지 못한 호모 사피엔스가 아름다운 초록별 지구를 함부로 다루는 바람에 해마다 수많은 생물이 멸종된다고 하지 않던가.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