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말슴(2021.9.26.) 말씀: 신명기 8:2-18 마침내 복을 주시는 하나님
16.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추석 명절 잘 보내셨나요? 저도 이번엔 모처럼 엘리까지 내려와서 모두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일로 연꽃방죽 구경도 하고 장터백반도 먹고, 천사대교 지나 모실 길과 퍼플교도 다녀왔습니다. 행복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잘 보내셨지요? 오늘은 신명기 8장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새로운 땅 가나안의 입성을 앞에 두고 이런 말씀을 상기시켰습니다. 2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스라엘은 그동안 사십년 동안 광야 길을 걸었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볼 때 그들의 삶의 길이 얼마나 험난한 길이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말이 사십년이지 광야의 길은 불 뱀과 전갈이 우굴거리고, 목마름과 추위가 있는 곳으로 쉬운 길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살 수 없는 땅입니다. 아무리 트래킹을 좋아하는 사람도 이런 길을 걷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택함 받은 선민임에도 불구하고 출애굽 후 40년을 광야에서 살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배고프고 목마르고 수없이 애굽으로 돌아가고 싶어 모세를 원망하며 거역하기도 하였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앞에 두고 이들은 한 달이면 갈 길을 무려 40년 동안이나 삥삥 돌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왜 하나님은 그 어려운 광야 길을 걷게 하셨을까요?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 주권 신앙입니다. ‘너로 걷게 하셨다(2)’ 우리가 날마다 일어서고 눕고, 걷고 쉬고 하는 주권이 누구에게 있습니까? 우리가 다 알아서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걷게 하셔셔 걸어가는 것입니다. 잠언서 16:9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잠 16:9) 또 잠언 19:21절을 보면 이렇게 말 합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 사람에게는 많은 생각 계획이 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자기의 생각대로 계획대로 되어 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저는 어려서 공부를 잘 해서 의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안 됐습니다. 운동 유도가 좋아서 유도를 하고 싶었지만 안됐습니다. 결혼은 키 크고 멋진 자매와 하고 싶었지만 안 됐습니다. 믿음으로 결혼해서 아이들은 나보다 공잘 해서 잘 되기를 바랬지만 안 됐습니다. 아에 아들 누가는 지적 장애를 갖고 태어나 세상에서 꼴찌가 되었습니다. 다. 목사가 되고 사역을 하면서 조용기 목사처럼 부흥사가 되고 싶었지만 안 됐습니다. 지금까지 작은 개척역사만 섬겨왔습니다. 내 뜻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니 그게 잘 된 것이었습니다. 내가 여기까지 오게 하시고 내 길을 걷게 하신 분이 하나님 이셨습니다. 지금 저는 하나님께서 내 발걸음을 인도 해 오신 것을 아주 크게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은 스펙보다 내 존재를 키워주셨고, 형식과 껍데기가 아닌 신앙의 본질을 붙잡도록 이끌어주셨습니다. 외적 교회 부흥보다도 내면의 인성 영성이 성장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내가 계획대로 되었다면 지금 정치판의 윤석열, 최대집, 원회룡, 이준석 전광훈 이런 분들이 되었을 것입니다. 정말 아찔한 일입니다. 지금 무안 작은 시골 마을에서 작은 교회 목회를 하지만 이렇게 행복한 적은 없습니다. 부족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그렇게 만들어주셨습니다. 아직도 미완성의 문제들이 있지만 염려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더 크고 그분의 뜻이 완전히 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주님 이십니다. 주님께 맡기십시오. 내가 임의로 사는 삶보다 보이지 않는 주님의 손이 우리를 인도하심이 훨씬 더 멋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게 주권 신앙입니다. 우리가 이런 주권신앙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세상 광야의 길이 이성적으로 이해함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상 살다보면 하나님의 자녀이면서도 부딪히며 겪어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이해 안 되는 일이 많고, 당장 안 좋아 보이는 일들도 많이 일어납니다.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은데 그렇게 살아야할 때가 있고, 나는 피하고 싶은데 부딪혀야할 일이 있고, 나는 더 좋은 것을 소유하고 싶은데 더 낮은 것을 택해야하고, 나는 빨리 성공하고 싶은데 실패할 때가 있고, 나는 잘 하고 싶은데 자주 실수 할 때가 있습니다. 광야의 인생길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내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광야이던 사막이던 다 좋습니다. 결과적인 하나님이 선한 역사를 믿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원망 불평하며 살다가 세상 애굽으로 돌아가려합니다. 딤후 4:10절을 보면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내 인생은 근본 하나님이 인도하고 계신다는 것을 믿는다면 우리는 광야 길을 끝까지 통과하여 가나안에 이를 수 있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의의 면류관을 쓸 수 있습니다. 아벤! 하나님은 광야길을 통해 그 주권신앙을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두 번째, 말씀으로 사는 신앙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고의가 아닙니다. 사실, 실패하고, 힘들고, 일이 잘 안되고, 어려움을 겪는 것은 우리 자신에게 원인이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에는 늘 하나님의 말씀을 안 듣고 내 뜻대로 살려하는 속성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일을 그르칩니다. 일이 안 되면 원망, 일을 잘하면 또 교만해집니다. 마치 내가 잘한 것처럼 생각합니다. 은혜를 잊고 감사하기를 잊어버립니다. 자유를 주면 내 마음 대로 방종으로 흐르는 습성이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내 마음에 기준으로 서지 않으면 결국 하나님을 놓치고 죽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적인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말씀을 내 안에 중심으로 바로 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들이 잘못된 상태로 살기를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나안의 입성을 속히 서두루지 않으시고 먼저 광야 길을 걸으면서 신앙의 기본 틀을 만드는 일을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험은 사람을 만드는 과정입니다. 어떻게 보면 인생 수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공의 지름길을 가르쳐주면 뭐합니까? 말씀에서 빗나가고 하나님을 잊어버리면 끝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추방이 오늘날 반복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광야 길을 걷는 동안 말씀대로 사는 훈련을 충실히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다음 젖과 꿀에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 축복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탐욕과 우상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런 훈련을 위해서 광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왜 하나님이 그 힘든 광야 생활 중에 매일 만나를 거두는 훈련을 하셨는가? 광야에서 떡과 물 육신의 양식도 아주 중요하였지만 하나님을 믿는 영적인 백성들은 그 이상으로 영적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먼저 꾸준히 받아먹고 지키는 삶을 훈련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처음 사단의 시험을 받으실 때에 이 말씀으로 사단의 첫 시험을 물리치셨습니다. 사단은 40일 동안 주리신 예수님께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말씀으로 사단을 물리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오늘 신명기 말씀을 근거로 한 것입니다. 세상살이 먹고 마시며 살아가는 경제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세상 뉴스를 보십시오. 주식이 얼마나 올랐는지, 집값이 얼마나 띄었는지? 땅값은? 그러나 막상 소유하고 배불러보면 정작 주리는 것은 우리 영혼입니다. 영적 말씀의 은혜가 없으면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별것 없습니다. 부자들을 위해 차린 상을 보면 술 외에 음식들 별로 손이 안 갑니다. 명절날 사위가 식사를 대접하는 바람에 북항에 가서 맛있는 회를 먹었습니다. 나중에 먹고나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싸기만 하고 먹은 것이나 안 먹은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 육신의 양식은 아무리 좋아도 순간입니다. 돌아서면 끝납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이런 순간의 썩어질 양식을 위해서 평생을 수고하며 일하며 삽니다. 늘 싸우고 다투고... 정신적인 지적 양식도 그렇습니다. 인문고전 책을 읽는 기쁨이 인간의 누릴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즐거움이라 합니다. 그렇지만 말씀이 없는 정신적 지식 역시 한계입니다.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학문에 전심하고 독서하지만 영혼의 만족까지는 누리지 못합니다. 우리가 책을 잃고 독서 모임을하는 것은 거기에 생명의 양식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담을 수 있는 아름답고, 깨끗하고, 큰 그릇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한 손에 성경 한손에 인문고전을 하는 것입니다. 전도서는 지식이 많으면 번뇌도 많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전인적으로 잘되려면 육체 정신 영혼이 다 잘되어야 합니다. 그 첫 번째가 영혼이 잘 되는 것입니다. 정신, 그리고 육체. 요한 3서 1:2절을 보십시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하나님은 광야생활하는 동안 매일 아침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주셨습니다. 그러나 아무 때나 먹고 싶은대로 먹게하지 않으셨습니다. 기본 규칙이 있었습니다. 아침 일찍 해가 뜨기 전에 거두되 한 사람이 한 호멜 씩. 주일에는 거두지 말고 토요일에 두 배를 거두어 안식일을 예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먼저 모든 삶의 시작에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으로 시작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욕심내거나 염려가 돼서 더 거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 남은 만나는 썩었습니다. 덜 거둔 사람도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하신 이유는 나름대로가 아닌 말씀대로 사는 훈련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아침 30초 묵상 아멘 큐티를 하 것이 벌써 19일째 되었습니다. 저는 하루에 꾸준히 성경 10페이지를 읽어왔는데, 그 중에서 마음에 감동으로 들어오는 한 말씀을 묵상하고 저녁에 작성을 하여 새벽 6시 30분에 올립니다. 처음에는 간단히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짧은 말씀이지만 정해진 틀 안에 함축하여 내용 있는 말씀을 기록하려니 보통 정성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날마다 글을 묵상하고 분량을 줄이고 맞추는 씨름을 하다보면 보통 매일 2시간이 넘습니다. 지난 추석 기간에는 하루 종일 밖에 있다가 식사하고 늦게 들어와 말씀을 작성 완성을 못하고 잠이 들어 다음 날 3시 30분에 일어나 말씀을 완성하여 올렸습니다. 일정한 틀에 맞추되 꾸준히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못합니다. 졸음이 쏟아지고 피곤해도 어찌하던지 해야 합니다. 그게 말씀에 기본자세입니다. 그날 올린 말씀이 예레미아 31: 4 입니다. 처녀 이스라엘아 내가 다시 너를 세우리니 네가 세움을 입을 것이요. 네가 다시 소고를 들고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춤추며 나오리라.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내가 다시 너를 세우리라' 약속을 하셨습니다. 너는 다시 노래하고, 춤추게 될 것이다. 오랜 바벨론 포로 생활로 절망과 자 포자기 더 이상 소망이 없는 그들이 과연 다시 노래하며 춤을 출 날이 올수 있를까? 의문이 드는 말씀이지만 저는 사실 이미 체험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슬픔을 기쁨으로 춤으로 바꾸어주셨습니다. 어떻게 믿을 수 있는? 하나님은 내가 이미 애굽에서 저들을 이끌어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이끌어냈고, 그 영영한 사랑이 보증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으로 오늘은 나를 세우시겠다 약속하십니다. 날마다 아침 마다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은혜가 되고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여기저기서 아멘 아멘 소리가 계속 귀를 흔듭니다. 주님! 정말 제가 다시 세움 받을 수 있나요? 다시 노래하고 춤추는 자유한 영혼으로 살 수있나요? 처음 내가 주님 만났을 때 그 감격을 다시 회복 할수 있나요?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렇다. 내가 너를 영영한. 사랑으로 사랑하노라". 말씀으로 산다는 것이 이런 것입니다. 하루 시작을 생각과 고민이 아니라 말씀이 먼저 내 마음에 들어와서 내 생각을 지배하고 이끌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많은 생각을 하고 계획을 하지만 그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말씀에 매일 매여 살지만 대신 책읽는 것이 좀 더디지만 더 자유롭고 행복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장막터를 넗혀가고 있습니다. 어쩌면 오늘 나는 광야의 길을 걷고 있을지 모릅니다. 사실 이 세상에 광야입니다. 우리가 바라고 생각하는 것만큼 평안하고 아름답고 행복을 주는 곳은 아닙니다. 끊임없이 욕설이 난무하고, 싸우고 다투고, 모함하고, 갑질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는 곳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할 일은 두 가지입니다. 불평하고 불만하며 살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영영한 사랑을 믿고 말씀으로 사는 훈련을 잘 받아 계속 영적인 사람으로 성장할 것인가? 우리가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광야의 길을 가면서 우리를 훈련하시는 이유는 결국 마침내 복을 주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 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건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물을 굳은 반석에서 내셨으며” 16.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마침내 복! 아침에 화마로 딸을 잃은 조은미 사모에게 말씀을 보내드리고 카톡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궁국적 축복은 이땅이 끝날 때 알게됩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마침내복입니다. 주안에 모든 것은 선합니다. 모든 것이 사랑입니다. 위축되서는 안 됩니다. 여기서 일어서면 훨씬 더 큰 영향력을 끼지며 하나님께 영광돌릴수 있습니다. 어둠이 짙을수록 빛은 더욱 또렷해지는 법입니다. 감사합니다. 아침마다 잘 받아먹겠습니다. 딸에게도 말씀을 공유하고 싶다고 해서 그렇게 하시라고 하였습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주권신앙, 말씀대로 사는 신앙 훈련을 잘 받아서 이 하나님의 마침내 복을 다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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