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가지 단상들 6-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
아래는 좀 창피한 아마추어적 소견입니다만 그날 밤의 여진이 남아 있는 듯하여 보냅니다. 어쭙잖은 글을 보내려니 여전히 망설여지는군요.
3월 16일 지인의 초청으로 한 음악회에 갔습니다. 원래 익숙하지 않은 신곡 발표는 듣기 어렵지만 <오버스토리> 서곡은 표제 음악이라 어느 정도 따라갈 수는 있었습니다. 나는 프로그램을 보는 순간 움찔 놀랐습니다.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조곡 d 단조라? ‘어, 이게 뭐람?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은 하나이고 E단조인데?’ ‘프린트가 잘못된 것은 아닐 터이구...’ 하면서 다시 보았으나 틀림없이 d 단조이더군요.
제가 알고 있는 음악 지식이란 대학 때 읽은 ‘명곡해설’, ‘명지휘자 열전’, 개별적으로는 ‘토스카니니 전기’ 정도입니다. 그 뒤 음악회에 가서 받은 해설서를 통해 쬐끔씩 축적되고 레코드판을 살 때 붙어 있는 해설을 읽는 정도이지요. 바그너에 관해서는 해설집 등 책을 여러 권 읽었습니다만. 이런 걸 가지고 여기서 썰을 풀려니 좀 창피스럽기도 하지만 ‘d 단조’의 충격(?)이 워낙 강해 간단한 소감을 남깁니다.
3대 바이올린 협주곡으로는 보통 베토벤, 브람스, 멘델스존을 꼽습니다. 예술의 세계에서 기준이란 게 있을 수 없는데 3대 명곡이니 하면서 카테고리에 넣는 것은 아마추어 호사가들이 하는 짓거리이지요. 차이콥스키의 것도 좋고, 시벨리우스, 막스 브루흐 등의 바이올린 협주곡도 좋습니다. 엄격한 전문가의 잣대가 아니라면 그날 분위기에 따라서, 젊은 여인과 들을 때거나 친구들과 한잔 걸치면서 들을 때 혹은 혼자 조용히 명상하듯 들을 때 등등 다르지요. 또 가슴을 후려 파는 듯한 기분을 느낄 때도 다를거구요.
우야동동.... 그런데 모차르트가 5개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한 후 베토벤부터는 위 작곡가들이 막스 브루흐를 빼고는 하나만 작곡합니다. 피아노 협주곡은 여러 개 있는데 바이올린 협주곡은 왜 하나만 있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추어적 짐작으로는 작곡가들이 보통 기본적으로 피아노를 훈련받고 건반을 치면서 작곡하는데 익숙하지만, 바이올린의 기법을 완전히 마스터하고 이를 오케스트라와 협주하게 하는 건 어려운 작업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입니다. 브람스는 현악 4중주를 여러 개 작곡하여 현악기의 특성에 숙달한 뒤 교향곡 1번을 완성했다는 걸 읽은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 이날 연주곡이 D단조이군요. 베토벤부터, 브람스, 차이콥스키, 시벨리우스 등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모두 D장조이고 멘델스존만 E단조입니다. 파가니니와 같은 바이올린의 명연주가는 스스로 연주를 위해 기교적으로 어렵게 6개를 남겼지요. 그는 자기 바이올린 기교를 과시하기 위해 바이올린이 오케스트라보다 한 음정 높게 하여 바이올린 선율이 기름 위에 둥둥 떠다니는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이것도 옛날 책에서 읽은 겁니다. 막스 브루흐는 친구인 유명한 바이올린 연주자 조셉 요하킴을 위해 3개를 쓰기도 했구요.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웅장하며 남성적인 데 비해 멘델스존의 E단조는 처음부터 여성적인 아름다움이 흠뻑 뿜어져 나오는 선율로 시작되죠. 당연히 그의 협주곡은 E단조 하나뿐인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D‘단조’라? 당연히 처음 들어보는 것이었습니다. 연주회장이 밝지 않고 해설집의 글자도 작아 읽기 어려웠지요. 집에 와서 찾아보니 이건 멘델스존이 13살 때 작곡한 것으로 1950년대에 발굴되었다고 하군요. 어린 시절 쓴 것으로 연습곡 같은 것인가? 무대 배치도 협주곡을 연주할만한 타악기나 관악기 등이 보이질 않더군요.
캐나다 거주 한국 교민 바이올리니스트가 연주했는데 독주자가 눈에 띄게 앞에서 연주하지 않고 또 키가 작아서인지 다른 연주자들 사이에 끼여 잘 보이지 않더군요. 음악 자체는 멘델스존의 특색이 두드러지기보다는 베토벤을 모방한 듯, 멘델스존의 교향곡같이 중후하고 화음이 돋보이더군요.
D ‘단조’의 울림이 워낙 커서 되지도 않는 헛소리를 지껄여 보았습니다.(23.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