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4월 17일 서울모임에 처음 참석했던 사람입니다.
자료실에 Ra-Materil 1-4권과 함께 그 요약본을 올려놓았습니다.
이 책들은 특히 '사명자' 분들께서 가지고 계실 여러 가지 의문에 대해서 비교적 명쾌한 해답을 제시해 주리라 생각됩니다. 중요한 내용의 번역이 이루어져 영어 문장을 쉽게 읽을 수 없는 많은 사람들도 함께 내용을 나눌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1882년, 비교적 오래전에 출간된 이 책은 대중적으로 널리 읽히고 있는 책은 아니며 또한 읽히게 하기 위해서 많은 선전을 해온 책도 아닙니다. Ra 자신도 이 책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지구대변혁의 막바지에 이른 시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자신의 책이 제시해주는 우주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접하고 이해하는 것보다는, 이 시기를 살고 있는 사람들 개개인의 가슴이 다가올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수준에 부응할 만큼 성숙되고 통합되는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곳의 ‘사명자’분들께서 가지고 계실 여러 갈급한 의문을 해소시키는데 크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되어 권하고자 합니다.
제가 Ra-material를 접하게 된 것은 3년이 넘습니다. 하지만 정작 읽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지금 3번째의 책을 읽고 있습니다.) 그것은 글의 서두에서부터 볼 수 있었던 'One Infinite Creator' 'Adonai'와 같은 말에 거부감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저는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성장했고, 성인이 된 이후론 유일신을 말하고 그에 대한 무조건적인 순종을 설파하는 모든 종교에 거부감을 가지게 되었고, 더불어 하나의 창조주 혹은 LOGOS를 비롯하여 그 밑의 여러 대천사들을 언급하는 뉴에이지의 그룹에 대해서도 많은 경계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저에게 One Infinite Creator 라는 말에 대한 신뢰를, 모든 것이 하나이며 모든 이가 하나도 빠짐없이 One Infinite Creator 임에 대한 믿음을 회복시켜주었습니다. 물론 제가 이러한 진리 자체를 ‘살고’ 있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저는 아직도 너무나 부족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이라면 마음 놓고 이 곳을 방문하는 모든 분들께 권할 수 있는 책이라 느꼈습니다.
이 책은 ‘사명자’를 ‘brothers and sisters of sorrow' 혹은 ‘Wanderer'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어디서 왔으며 그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이 책만큼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는 책을 아직 저는 접해보지 못했습니다. 소위 ’지구 대변혁‘의 본질, 목적, 그 과정 그리고 그 이후가 어떠한 모습인지도 비교적 상세히 나와 있습니다. 또한 여러 이견이 분분한 ’차원‘과 ’신체‘ 에 대한 설명도 명료합니다.
이 Ra-material에서는 차원을 dimension 이 아닌 density라 일컫습니다. 또한 각 차원의 세계에 있어서도 space/time 과 time/space를 구분합니다. 이 구분에 의하면 3차원이든 그 이상의 차원이든 간에 그 차원에 대응하는 육체를 입고 있는 존재는 space/time안에 있는 것이며, 죽어서 육체를 벗어 던진 후엔 time/space 에 머물게 됩니다. 즉, 지구에서 육신을 가지고 살고 있는 우리들은 3차원 space/time에 있으며, 죽은 후 머물게 되는 지구의 영계 혹은 astral계, 상념계, 그리고 그 이상의 계는 3차원의 time/space에 해당됩니다. 이러한 time/space는 inner planes 이라고 불리기도 하며, 각각의 space/time에 대응하여 존재합니다. 영계는 time/space로 표현되듯이 시간 선상의 이동이 자유로운 세계입니다. 때문에 죽어서 영계에 진입한 사람들은 자신의 과거를 완벽하게 회상해 낼 수 있으며, 태어나기 전에 자신의 미래를 프로그래밍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반면 물질계에선 그것이 Space/Time 으로 표현되듯이 공간의 이동이 자유롭지만 시간선상의 자유로운 이동은 불가능합니다.
그러기에 현재 육신을 벗고 영계에서 지구 대변혁을 맞이할 사람들도 Astral 계에 있다하여 4차원 존재이거나 혹은 상념계에 있다하여 5차원 존재가 아닌, 육신을 입고 있는 우리와 같은 3차원 존재입니다. 그들도 여건 혹은 ‘자격’이 주어지면 4차원 지구에 태어나게 될 것이라 합니다. 이러한 차원 구분에 의하면 지구는 ’대변혁‘ 후에 5차원이 아닌 4차원 space/time가 활성화된 행성이 되는 것이며 이곳에 살게 될 4차원 존재들은 4차원 지구의 영계인 time/space를 오가는 윤회를 하게 될 것입니다. 실제로 4차원, 5차원, 6차원 등의 고차원의 행성에서도 삶과 죽음 혹은 윤회가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구가 5차원이 될 것이라 말하는 데에는 그들에게 이러한 점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즉 아스트랄계를 4차원으로 간주하다보니까 지구 대변혁을 4차원이 아닌 5차원으로의 이행이라 말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도래할 새로운 세계는 죽은 후에 가는 아스트랄계와는 다른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Powell이라는 사람이 블라바츠키 및 리드베터의 방대한 신지학 자료를 정리한 5권 시리즈의 하나인 ’The Solar System' 에서는 행성들이 3차원 물질행성에서 4차원 아스트랄행성, 그리고 그 이상의 차원의 행성으로 주기성을 가지며 진화해나가는 과정을 자세한 그래픽과 함께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점에 있어서 신지학도 space/time 과 그 inner plane 인 time/space를 구분하지 못하고 혼동하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실제로 Ptah 나 St. Germain 같은 존재의 채널링 정보에서는 5차원이 아닌 4차원으로의 차원변화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4차원 존재라 밝히고 있는 알파 센타우리 외계인들도 채널링을 통해서 지구가 4차원으로 변화될 것이라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들 행성을 아스트랄 행성이라 하지 않습니다.)
Ra-Material에 의하면 예수는 현재 5차원에 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말로 번역이 된 바바라 핸드 클로우의 플레이아데스 비망록에도 그리스도의식을 5차원의식, 붓다의 의식을 6차원 의식으로 얘기하고 있습니다. Ra-Material에 의하면 예수는 4차원의 막바지에 다다른 존재였으며 인류에 대한 사랑과 연민 때문에 ‘사명자’로서 인간으로 태어났으며 지금은 5차원에 거하면서 그의 넘치는 사랑에 ‘지혜’라는 균형자를 더하고 있는 배움을 계속하고 있다고 합니다. (다른 믿을 만한 6차원 채널링 정보에 의하면 지금도 그는 5차원 존재로서 기독교에서 말하는 소위 ‘성령’을 통하여 지구에 가장 큰 영적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고 합니다. 이는 자신의 육신을 일종의 동면상태에 놓고 영혼을 무한히 복제하는 아주 특이한 방식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화신불 혹은 응신불 또한 이러한 과정을 얘기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Ra-material에 의하면 많은 뉴에이지 채널링에서 대천사라 일컬어지는 미카엘과 같은 존재 역시 4차원의 존재로서, 소위 백색성동포단과 같은 'Brotherhood'라는 조직은 'Social Memory Complex' 혹은 ‘Group Soul' 로서의 완전한 의식통합을 이루지 못한 4차원 존재간의 영적 유대를 표현하는 것이라 합니다. 알렉스 콜리어가 자신이 만난 안드로메다들인에게 미카엘과 같은 천사는 어떤 존재인가를 물어보던 구절이 생각납니다. 안드로메다인들은 천사라는 개념은 자신들로서는 처음 듣는다며 조사해보겠다 하고는 후에 그 천사라는 존재들이 과거에 지구를 정찰하던 외계인이었음을 알려줍니다. 이런 점에서 Ra-material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어 보입니다.
현재 지구에 태어나 있는 대다수의 사명자 (Wanderer) 들은 5차원, 더 많게는 6차원 존재라 합니다. (Wanderer 는 방랑자, 나그네라는 뜻입니다. 사명자라는 표현보다는 훨씬 겸손하게 느껴지는데, 이 Wanderer들이 모두 목적을 가지고 혹은 사명감을 가지고 자원하여 3차원 망각의 세계에 들어왔다는 점에 있어서 ‘사명자’라는 표현이 절대 틀린 표현은 아니라 생각됩니다.) Aura에 남청색이 두드러진다 하여 뉴에이지에서 ’indigo child‘라 일컫는, 특별한 재능과 함께 때로는 수저를 구부리는 등의 초능력도 보여주고 있는 이 특별한 아이들 혹은 청소년들은 이미 3차원 신체와 함께 4차원 신체가 활성화 되어서 태어난 특별한 아이들이며, 많은 뉴에이지 채널링에서 말하듯 star-seed로서 인류의 스승벌되는 존재가 아닌, 앞으로 4차원 지구에서 살아가게 될 존재들이라 합니다. (그래서 Ra-material 에서는 그들을 doble-body의 소유자라 설명합니다. 뉴에이지는 이를 astral-body와는 구분하여 light-body 라고 부릅니다.) 대부분의 5차원 6차원 사명자들은 이 4차원 신체(double-body)가 없기 때문에 그들과 같은 특이한 재능을 보이지 않으며 그들이 태생적으로 구사하는 초능력도 가지고 있지 못한, 스스로에게도 또한 남에게도 아주 ’평범하게‘ 보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합니다.
Ra-material의 차원 구분에 의하면 9차원 10차원 11차원 등은 없으며 긍극의 차원이라 할 수 있는 7차원을 졸업하면 6차원 존재들인 그들 자신들에게도 신비로 남아있는 우주적 차원의 새로운 옥타브가 시작되고 그것을 8차원이라 일컬을 수 있으나, 실은 그것은 7단계로 이루어진 새로운 옥타브의 첫 번째 단계라 밝히고 있습니다.
이 Ra-material은 고차원의 존재는 모두 빛과 사랑을 체현한 존재일거라는 일반적인 믿음에 반하는 정보를 제공합니다. 그들은 STO (Service to Others: 타인에게 봉사함) 존재와 STS (Service to Self: 오직 자기 자신에게 봉사함) 존재를 구분 지으며 3차원에서 4차원에 존재로 졸업하는 순간에 모든 존재는 양분되는 2개의 갈림길 앞에 선다고 합니다. 어떤 이의 영혼이 50%이상 타인은 향해 있을 때 그는 4차원 STO행성으로서의 지구에 남아있게 될 것이라 말합니다. 반면 95% 이상 자신을 향해 있을 때 오리온 연합과 같은 4차원 STS행성 태어나게 될 것이라 말합니다. 이러한 경우는 지구에선 아주 드문 일로 징기스칸이나 나치의 SS친위대 총대장이었던 하인리히 힘믈러 같은 극소수의 이들이 이러한 단계에 도달하였다 합니다. 오히려 히틀러 자신은 아직도 이러한 단계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그는 3차원의 다른 행성에 태어나게 될 것이라 하며, 징기스칸은 이미 오리온 연합에서 우주선의 전사로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
앞서 말한 신지학의 'The Solar System'에는 여러 단계의 크고 작은 주기의 Judgement-Day 혹은 졸업식에 대해 도식적으로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Ra에 의하면 실제로 약 2만5천년 전에 지금처럼 지구 자체가 4차원으로 이행하는 규모가 아닌 작은 규모의 졸업식이 있었는데 이때 약 150명 가량의 사람들이 (당시의 총인구는 백만명을 넘지 않았다 합니다.) 4차원 STO행성으로 옮겨갈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3차원 지구에 남아 자신의 지구 형제, 자매들의 영적 성장을 돕겠다고 결심했다 합니다. 그들은 모두 엄청난 사랑의 표현자들로서 테레사 수녀. 성 프란시스 같은 분들이 그러한 분들에 속한다고 합니다.
이처럼 3차원 이상의 고차원 행성은 STO와 STS행성으로 분명히 구분되어 있다고 합니다. 오직 자기 자신밖엔 안중에 없는 슈퍼에고들 (STS)도 영적인 의식과 힘의 근원에 도달할 수 있으며 모든 이들은 그들이 도달한 진화의 정도에 부응해서 고차원 존재계로 이행되어간다고 합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것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우리 은하에선 오리온 연합이 STS의 대표적이 예로서, 주로 인간 모습과 흡사한 파충류 신체를 가지고 있는 그들은 4차원 5차원 6차원에 걸쳐서 완벽한 계급사회를 이루고 있으며, 그들의 힘과 지혜 역시 그들의 차원에 부응한 만큼 대단하다 합니다. 쉽게 말하자면 그 세계는 김정일, 후세인, 히틀러 같은 사람들만 모여 있는 세계인데, 이 STS의 길을 가는 존재들은 4차원에 도달하자마자 서로 간에 힘겨루기를 통하여 단시일 내에 완벽한 서열구조를 형성한다 합니다. 요즘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는 일진회의, 쌈짱을 정점으로 한 완벽한 피라미드 구조가 바로 이러한 그조의 3차원적 반영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오직 자기 자신의 영화와 진화이지만 그들 역시 One Infinite Creator의 일부이며 Service to Self를 통하여 One Infinite Creator 에 봉사하고 있는 존재들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Self 는 One Infinite Creator 자체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반면 STO (Service to Others) 존재들은 타인에 대한 사랑과 봉사를 통하여 One Infinite Creator를 봉사하게 되며, 이로써 결국 One Infinite Creator로서의 자신에게 봉사하는 길을 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창조의 첫 번째 원칙이 ‘자유의지’이기 때문에 (지구가 유일한 자유의지의 행성이라는 주장이나, 그러한 주장에 맞게 제목 자체가 ‘The only planet of choice' 인 책도 있으나 이 자유의지라는 것은 창조의 기반이 되는 원칙의 하나이며, 오직 지구에만 한정된 것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모든 Self에게는 그들이 어떤 길을 가던지 전적인 자유가 주어지지만, 결국은 모든 길에 One Infinite Creator로 회귀하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자유의지’라는 첫 번째 원리 하에서 이 두 영향력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고 있으며 그럼으로써 전 우주는 One Infinite Creator로의 완전한 회귀 혹은 완전한 합일을 향한 진화의 노정을 걸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6차원의 일정 시점에서 STS 존재들은 스스로 영적으로 엔트로피의 상태에 있음을 자각하게 되고 (6차원 STS들은 지극히 지혜롭다고 합니다. 그들은 거의 모든 활동을 접고 자신의 내면을 관찰하고 있다고 합니다.) 결국 그들이 7차원 즉 One onfinite Creator로서의 ‘전체의식’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STO의 길로의 극적인 전향을 택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처럼 6차원의 어느 시점에서 STS, STO 양극으로 갈라진 길이, 타인 속에서 One onfinite Creator를 보고 이에 봉사함으로써 자신에게 봉사하는, 그 자체로 균형 잡힌 길인 STO로 궁극적으로 통합되게 되는데. 이는 STS라는 길 자체가 자신을 전체와의 단절시킴을 의미하며, STS는 자신을 살찌우기 위해 타인이라는 제물과 희생이 필요한 영적 엔트로피의 상태에 있을 수밖에 없게 되고, 결국 STO로 전향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가령 히틀러는 STS 의 길을 걷고 있는 인물이지만 그의 마지막 생을 통한 각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오리온과 같은 4차원 STS 행성으로 졸업하기에는 아직 충분히 성숙되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그는 영계에서 히틀러로서의 삶을 프로그래밍함에 있어서 (3차원 존재들은 진화의 일정 단계에 이르면 영계 혹은 time/space에서 스스로 자신의 삶을 프로그래밍할 능력이 생긴다고 합니다.) 자신의 Service To Self로의 편향을 극대화 시켜서 이번 지구대변혁의 시기에 4차원 에 도달하기 위해, 스스로가 감당해 낼 수 없을 만큼의 체험의 짐을 스스로에게 부과하였고, 그 때문에 그는 아직도 영계에서 그가 그의 삶에서 입은 상처를 치유 받는 과정 중에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그는 4차원 오리온 STS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으며, 그들은 일부 엘리트가 세상을 완전히 지배하는 암흑 사회를 만들어, 지구를 현재 코스대로라면 도달하게 될 4차원 STO행성이 아닌, 자기들 지배 하에 있는 4차원 STS 행성으로 이행시키려는 오리온 STS들의 구상을 실현시키려다가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히틀러의 부하였던 Himmler 는 이번에 4차원 STS 행성으로 졸업을 할수 있을 만큼 Service To Self로의 극한적인 편향을 이루어냈다 합니다.
믿을만한 다른 6차원 존재의 채널링 정보에 의하면 히틀러가 유태인에 대하여 스스로도 정체를 알 수 없는 강한 반감을 가지고 그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학살하려 했던 이유는, 유태인들에게는 그들이 4차원에 진입하였을 때 4차원 STS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어떤 긍정적 요소가 있기 때문이라 합니다. 즉 지구를 그들의 오래된 계획대로 완전한 4차원 STS행성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유태인이라는 존재가 있어선 방해가 된다는 것입니다. 히틀러의 전기에는 그가 말년에, 자신을 이끌어 왔고, 자신에게 명령하는 보이지 않는 세력인 ‘Master’에 대해 극도의 두려움과 히스테리를 가지고 있었음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점차로 그는 그들의 환영을 보게 되고 그 상태에선 완전한 무력감과 절망감에 휩싸이곤 합니다.
RA에 의하면 유태인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야훼란 존재는 원래는 인류의 영적 진화를 도우려한 고차원 STO 존재들이었으며 그들이 자신의 유전자를 유태인 조상들에게 심어놓아 그들이 One Infinite Creator에 이르는 여정에 도움이 되게 하고자 하였으나, 오리온 STS가 개입을 하여 스스로를 야훼라 부르며 그들에게 추악한 선민의식과 폭력적인 종교관을 심어주고 그들 내에서도 ‘선택받은 족속’ 레위지파가 다른 지배하도록 부추켰다는 것입니다. STO로서 지극히 선량한 영혼 모세에게 나타나 십계명을 건네주었던 존재 역시 원래의 야훼가 아닌 야훼를 가장한 오리온 STS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계명들은 선을 가장하고 있으나 그 핵심에 있어서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라는 문구가 대변하듯 STS의 지배철학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많은 채널링 서적을 탐독하고 많은 채널링 모임에 참가했을 뿐 아니라 스스로도 마이트레아 대사를 채널링하는 시늉을 하기도 했던 제가 오랜 시행착오 끝에 내린 결론은, 대다수의 채널링 정보에는 채널러 자신의 영적의식의 한계 뿐 아니라 참된 진리가 전해지는 것을 원치 않는 고차원 STS 존재들의 작용에 기인한 아주 미세하고 교묘한 왜곡과 의도된 거짓정보가 담겨져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체널링 서적 중 Ra-Material 이외에 드물게 왜곡과 거짓이 적다고 느껴지는 바바라 마시니액의 Bringer of the Dawn이라는 이름의 첫 번째 프레이아데스 채널링 서적에서 유머스럽게 ‘Dark T-Shirts'라고 묘사되었던 ‘어둠의 세력’ 즉 STS들은 분명히 존재합니다.(이 책 전문도 자료실에 올려놓았습니다. 이후의 채널링들에선 첫 번째 책의 명쾌함이 많이 줄어들었는데, 그것은 Dark T-Shirts의 작용이 아닐까 느껴집니다.) 한동안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끌었던 람타라는 고차원 존재도 그의 UFO에 관한 책에서 이 세계가 어두운 세력의 영향권에 있음을 얘기했습니다. 사실 저는 ‘너희가 세상의 주인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라고 말하고 있는 람타 자신을 그 어두운 세력의 일부가 아닐까 의심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 책에서 오스터섬의 거석상들이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거라 하면서 자신들이 다시 돌아올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Ra-Material에 의하면 그 거석상들은 오리온 STS들이 상념체의 힘으로 깎아 놓고 그 안에 그들의 상념 에너지를 불어 넣어 지구인의 의식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것이라 합니다. 람타는 수차례 세계의 대 재앙을 예고했다가 빛나갔고 그의 추종자들 중엔 자신의 모든 소유물을 다 팔아서 금으로 바꾸어 놓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람타 자신이 책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 현명하다 했기 때문입니다. 열권이 넘는 그의 책을 모두 ‘수집’했습니만 다 읽게는 안 되더군요. 그의 글에는 꺼림직한 부분이 너무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우리나라에 소개된 책을 통하여 한국독자들에게 자신이 휘황찬란하게 승천한 마스터라는 인상을 강하게 심어주었습니다
어쩌면 세상사람들은 이러한 빛나간 영적 예언들과 그를 따르던 사람들의 광적인 행동을 보면서, 지구의 대변혁을 말하는 사람들 전부를 미친사람으로 취급하게 되기가 쉬울 것입니다. 또한 내면 깊숙한 곳에서 지구대변혁을 예감하고 믿고 있는 ‘사명자’들로서도 혹시 나의 믿음이 환상이며 이것 역시 저번 것처럼 불발로 끝나버리고 결국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적지 않은 두려움과 의구심을 갖도록 만들 것입니다. 한때 우리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휴거파동이나, 셀던 나이들의 행성활성화그룹에서 거의 10년이 다 되어가도록 매일같이 되풀이 해온 ‘대량착륙의 시간이 이젠 정말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라는 영원히 지켜지지 않을 것 같이 보이는 주장 들은 ‘사명자’들로 하여금 지구대변혁에 대해 내가 알고 믿고 있는 모든 것들이, 다만 이상한 사람들이 지어낸, 결코 실현 되지 않을 환상에 불과한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 내지는 자괴감을 갖게 만들 요인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Ra-Material에 의하면 STS는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슈퍼에고의 인간그룹에겐 직접적으로 타인을 정복하고 지배라는 철학을 채널링시키고 주입시키지만, STO 사명자들에게는 ‘기껏해야’ 그러한 상념에너지가 세상의 종말 혹은 심판이란 의미로 전달되고 해석된다고 합니다. 많은 예언들이 지구에 닥쳐올 수많은 자연재해와 전쟁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RA는 그러한 것들이 차원변화에 있어서 꼭 필요한 전제조건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도 그 엄청난 일들이 일어날 가능성을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많은 행성에 있어서 다른 차원으로의 이행은 아주 순조롭고 조화롭게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우리는 지구에 있어서도 다른 차원으로의 이행이 순조롭고 조화롭게 이루어지도록 바라야 할 것입니다. 동남아의 쓰나미 재앙처럼 무슨 큰 일이 일어나야만 지구가 정화되고 지구대변혁이 가능해지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것이 얼마나 순조로운가 하는 것은 지구위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달려 있다고 합니다. 파티마에서 3명의 선한 어린이에게 앞으로 닥쳐올 세상의 종말과 신의 심판과 예언했던 성모마리아는 오리온 STS의 홀로그램 투입 (Holographic insert)이 아니었을까요? 저는 아마도 그것이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정말 성모마리야였다면 신의 신판이나 종말 같은 얘기를 할리 없습니다. 아마겟돈은 일어나지 않아야 하며, 피할 수 있는 한 피해야 합니다.
분명히 해야 할 것은 고차원 STS 존재는 인간들이 만든 소위 ‘지구적 상념체’와는 별개의 존재입니다. 물론 그들은 고차원에서 3차원 인간을 향해서 상념체를 방사합니다. 모세가 만난 것도 실은 그들의 상념체가 만들어낸 홀로그램이라 합니다. 그리고 Man in Black이라 불리우는 존재들도 역시 그들이 방사하여 물현화하는 상념체라 합니다. 바마라 마시니액의 플레이아데스인들은 이를 ‘홀로그램 투입’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편 사람을 UFO로 납치해서 실험용 쥐와 같은 절망감을 느끼게 만드는, 그 큰머리에 큰 눈과 회색빛 피부 때문에 ‘그레이’라 일컬어지는 외계인들은 실은 4차원 STS이 만든 2차원적 생물학적 로봇이라 합니다. 이는 상념체와는 다릅니다.
고차원 STS는 ‘사명자’들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들이 공공연히 UFO 혹은 빛의 신체로 (고차원 존재들은 자신들을 저차원에 보이게 할 수 있다 합니다.) 나타나 사명자들을 죽이거나 지배할 수 없는 것은 부정적인 극의 길을 추구하고 있는 그들이 그 내면에 엄청나게 긍정적인 사랑과 빛을 지니고 있는 사명자들과 직접 막닥뜨리게 되면 그들의 부정적인 극성이 심히 약화되어 그들이 원하는 부정적인 극(negative polarity)의 길을 통한 영적 진화의 길에 커다란 손해를 보게 되기 때문이란 것입니다. 때문에 그들은 그들의 상념의 힘을 이용한 간접적인 방법으로 사랑과 빛을 전하는 ‘사명자’들을 ‘손보고’ 있습니다. 그들에겐 그들의 부정적인 편향를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는 더욱 많은 피지배자와 희생양을 필요로 하는데 사명자들은 그들의 입장에선 방해꾼이기 때문입니다. Ra-Material을 채널링한 여인도 STS의 계속적인 에너지 공격을 당했습니다. Ra 자신도 이 여인이 이러한 공격을 견디어내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Ra-Material에는 이러한 공격을 어떠한 자세로 대처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 잘 설명되어있습니다. 요점을 간단히 말하자면 모든 것이 One Infinite Creator라는 확고한 ‘자각’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하고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 은 분명히 구분지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그들의 노예로 만들기를 원하고 있는데,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실제로 그들의 노예가 됨을 의미합니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 발행된 채널링 서적인 밀레니엄 바이블2를 읽어보았습니다. 그 내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만 마지막 날에 우주에서 창조주를 자처하는 외계인들이 대거 몰려들 것이며 실은 그들은 인간을 노예화 하려는 사악한 외계인라는 내용에 있어서 저는 그 가능성을 인정하는 쪽입니다. 저는 그들이 3차원 지구에 물현화하는 가능성 보다는 지구가 4차원으로 넘어갔을 때 그냥 우리에게 보이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4차원 존재이고 우리가 4차원에 진입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4차원의 세계엔 우리를 인도하고 돕고자 하는 STO존재들도 있습니다. 일반사람들이 갈피를 잡지 못해 당황해 할 때, 사명자들은 그 둘을 분명히 구분할 줄 알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저의 경험을 잠깐 얘기할까 합니다. 한 7년 전쯤의 일입니다. 집에서 명상을 하고 있는데 뒤에 검은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당시 저는 쟈니 킹이 채널링하는 Ptah의 메시지에 심취해 있었으며, 우연한 기회에 쟈니 킹의 공개 채널링을 녹음해서 CD로 제작하는 일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Ptah의 가르침을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세상에는 오직 두 가지의 에너지가 있을 뿐이며 그것은 사랑과 두려움이라는 것입니다. 두려움이란 사랑 없음의 표현인데 오직 사랑을 통하여 사랑인 신에게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길을 선택한 저로서는 두려울 것이 없었습니다. 저는 그 검은 기운에게 사랑으로 말했습니다. ‘너희들이 원한다면 내 몸에 들어와도 좋습니다. 기꺼이 당신들을 초대합니다’ 저는 제가 그것들을 사랑으로 바꾸어놓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서서히 저의 안팎의 일이 너무나 힘들게 돌아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건강이 나빠지고 가슴은 답답하고 머리는 무엇으로 짓눌리는 듯 했습니다. 사람사이의 일에도 많은 마찰이 일어났으며 마음도 중심이 잘 안 잡히고 의식이 흐리멍덩한 상태가 빈번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사랑이라는 마술 ‘무기’만 들고있을 뿐 어쩔 줄 몰라 하는 철부지였습니다.
얼마 후 오랜만에 저의 아내와 함께 명상을 하였습니다. 명상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가 저의 가슴에 LP판과 같은 검은 것이 돌아가고 있는데, 아주 아주 심각한 일이라며 채널링의 상태에 들어갔습니다. 당시 아내는 영안이 많이 열려있어서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잘 볼 수 있었습니다. 조금만 집중을 하면 사람 몸이 훤히 들여다 보였고 그것을 치료할 수 있는 경우도 많았으며 심지어는 상대의 전생도 줄줄이 꽤뚫어 볼 수 있었습니다. 교회를 다니고 있던 아내는 자신의 특이한 감수성 혹은 능력에 스스로 무척 힘들어하였고 가능하면 보통사람들처럼 살기를 원했습니다. 또 나쁜 에너지의 공격을 받아 자주 앓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아내의 채널링은 주로 언어보다는 탤레파시로 이루어졌는데 그 검은 것의 정체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이것을 극복하고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가슴에 어떠한 모양의 조각을 직접 나무로 깎아서 목걸이로 거는 것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아마도 그것을 한 달 이상을 차고 있어야 할 것이라 했습니다.
그런 상황 하에서도 제겐 두려움은 없었습니다. 다만 내가 아내의 통찰력을 믿었기에 그것이 필요하다는 아내의 말은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함께 숲에 가서 나무를 찾았습니다. 나무를 찾는 과정에서도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의 인도가 있는 듯 했습니다. 아내는 베어져 땅에 떨어져 있는 어떤 나뭇가지에 강한 에너지가 임하는 것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나는 그 나무로 손수 조각을 하여 목에 걸고 한 한달정도를 지내다가 몇 번 만나 안면이 있던 음악치료사 겸 채널러와 우연한 기회에 개인 상담기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내가 그녀를 찾아가서 함께 마주 앉았을 때 그녀의 얼굴빛이 파래지더니, 나의 정체를 이제야 파악했는데 내가 곧 어둠의 세력이라 했습니다. 그러더니 눈을 감고 관세음보살, 아미타불, 마이트레아, 붓다, 예수, 미카엘, 가브리앨, 쿠트후미대사, 힐라리온대사, 요가난다 등 가능한 모든 승천한 대사들과 대천사, 불보살들의 이름을 나지막하게 그러나 온힘을 다해 부르고 있었습니다.
얼마 지나서 그녀는 내게 입을 열었습니다. 실은 내가 어둠의 세력인 것은 아니고, 그것은 내 뒤에 있는 두 존재인데 엄청나게 강력하고 어둡고 파괴적인 에너지체로서 중동의 전쟁과 베트남전 등 인류의 재난을 일으킨 장본인이 바로 이 에너지들이며 시지프스 신화에서 나오는 참혹한 형벌은 바로 이 존재의 성질을 대변해주고 있다 했습니다, 비록 자신은 생애 처음 보는 존재들이지만 그들이 누군지 안다고 하면서 그들이 오리온 성좌에서 온 존재들이라 했습니다. 그리고는 내 가슴에서 돌고 있는 검은 판을 묘사했습니다. 아내가 본 것과 정확히 똑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파괴의 에너지로 그것이 돌면서 세상의 사람을 해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곤 내가 그것을 받아들인 것은 내가 나를 통해서 그것을 정화하려고 자청한 것이라며 함께 이 에너지들을 지구에서 떠나보내는 작업을 하자고 하였습니다. 잠시 후 상황은 종료되었고. 그녀는 우리가 지금 한 일이 인류와 지구에게 커다란 짐을 덜어준 중요한 일이였다고 하였습니다.
이점에 있어서는 저는 그리 동의하지 않습니다. 내가 그 에너지를 받아들인 것은 그것을 정화하려는 고차원적 결정이 아니라, ‘두려움’과 ‘사랑’ 중 ‘사랑’을 선택하는 것이 관건이며 사랑을 선택하는 한 모든 문제를 스스로 해결된다는 미숙한 믿음의 결과였다고 보고 있습니다. 사랑은 지혜가 없을 때 맹목적이되며 스스로를 파괴하는 길로 접어들 수도 있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의 영혼이 파괴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Ra 는 예수가 4차원적인 무조건 적이고 무한한 ‘사랑’ 혹은 순교자 의식에 너무 경도되어 더욱 큰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Ra에 의하면 4차원은 사랑과 자비의 차원이라 합니다. 이 차원을 졸업하려면 지혜로 그 사랑을 균형잡힌 사랑으로 만드는 것이 관건이라고 합니다.
여담인데, 위에서 언급한 채널러는 제가 자신을 찾아오기 며칠 전부터 한국의 어떤 스님이 에너지체로 자신을 찾아와서 교류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지금 한국에 있지만 이 일이 일어났을 당시 저는 유럽에 있었습니다.) 그녀는 한국에 혼자 가더라도 지도 없이도 그분이 계시는 절에 찾아갈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혹시 그곳이 한마음선원 아니냐고 물어보니 그 말의 에너지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면서 맞는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의 스님이 자신을 찾아온 것이 그날 저를 만나게 된 것과 관련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에너지 정화의 일을 하는 데에도 그분이 함께 하셨다고 했습니다. 사실 저는 오래 전 대행스님으로부터 수계를 받았었습니다. 수계 받던 날 그분이 하신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여러분은 이일을 간단히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있어는 결코 작은 일이 아닙니다. 저는 여러분을 이제부터 세세토록 무조건적으로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전날의 일을 아내에게 말하지 않았음에도 아내는 이제 그 목걸이를 태워버려도 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사명자들 모임에서 언급되는, 사명자를 일깨우는 역할을 하는 신명들에게 있어서도 가장 존중해야 할 것은 우리의 자유의지로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마도 고차원 세계에 있는 우리의 형제, 자매들일 것입니다. 이 망각의 차원에서도 One infinite Creator의 첫째 원리인 자유의지는 절대적으로 존중받습니다. 우리가 원하지 않는 한 그들은 우리를 임의로 도울 수 없습니다. 때문에 명상이나 기도 등의 방식을 통해 그들의 보호와 도움과 인도를 요청하고 신뢰하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이 One infinite Creator 속에서 하나라는 자각이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확고한 자각이 있으면 그것이 우리의 모든 발걸음을 올바르게 인도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사명자(wanderer)들도 일반인들과 똑같은 위험부담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합니다. 사명자들 중에는 3차원 경험에 휘둘려 완전히 균형을 잃게 되고 지구대변혁 이후 다른 행성에서 3차원의 사이클을 반복해야 되는 경우도 생겨난다고 합니다. 우리들이 태어나기 전에 자신의 일생을 프로그래밍한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우리들이 자동 로봇처럼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우주적 게임자체가 불가능 할 것입니다. 자동로봇끼리 하는 포커게임이나 월드컵게임이 흥미진진할리 만무입니다. 우리가 여행을 함에 있어서 사전에 목적지를 정하고 경로를 정하지만 실제의 여행 경로 중엔 얘기치 못했던 풍광과 사건들이 가득할 것입니다. 그것들에 넋을 잃어 여행이 지체 되던가 심지어는 샛길로 빠질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을 것입니다. 물론 결과적으로 그 샛길로 빠진 것이 더욱 값진 여행 경험을 가져다줄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을 것입니다. 확실히 정해진 것은 없습니다. 만약 그러하다면 이 우주는 이미 죽어있는 우주일 것입니다.
한편 Ra-Material은 상위자아 (Higher-Self)에 대하서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관점을 말합니다. 모든 상위자아는 6차원에 있으며 그것은 하나의 개체가 6차원의 막바지즈음에 전체로서의 7차원에서 부여받는 것이라 합니다. 상위자아는 시간적으로 어떠한 개체의 미래에 있으며 때문에 모든 3차원 개체에게는 모두 6차원 상위자아가 있다고 합니다. 이 개념은 신지학에서는 Monad라 말하는 것과 상당히 유사합니다. 신지학은 전 우주를 창조한 하나인 궁극적 LOGOS의 분신인 이 각각의 Monad들은 2차원 동물들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식물들에게도 어느 단계가 되면 주어진다고 합니다. 때문에 원시적인 풀의 경우는 Monad가 없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상위자아는 미래의 우리인데, 진화의 여정을 밟고 있는 과거의 자기의 모습을 계속적으로 지켜보고 있다고 합니다. 참 미스테리한 개념이지요. 이러한 개념에 따르면 사명자의 상위자아가 5차원에 있다 혹은 6차원에 있다 혹은 9차원에 있다 하는 말은 그 의미를 잃게 됩니다. 물론 어떠한 존재가 5차원에서 내려왔다 혹은 다른 차원에서 내려왔다 라고 말하는 것은 가능할 것입니다. Cassiopea의 관문을 통해서 교신하고 있는 6차원 존재들은 자신들과 교신을 하고 있는 채널러에게 ‘We ar you in the Future'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제공하는 정보 또한 드믈게 신뢰가 가는 정보들입니다. 관심이 있는 분들은 http://www.cassiopaea.org/cass/waveindex.htm 에 있는 wave 시리즈를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아주 방대한 내용이지만 지구 대변혁과 관련되어 아주 신뢰할만한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Ra-Material을 소개하는 간단한 몇 마디 말을 하려다가 이처럼 길어졌습니다. 이 자유게시판에 어떤 분이 제가 이전에 헤피타오 게시판에 올린 글을 퍼서 올려놓았더군요. 이 글은 퍼서 다시 한번 밑에 올려볼까 합니다. 이 글에는 지금의 관점과는 다른 내용도 있습니다. 저 역시 배움의 길에 있고 그 길은 끝이 없어 보입니다. 저는 무엇이 참된 것인지 무엇이 거짓인지에 가려내는데 유난히도 관심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의 수행을 열심히 해온 저와 아주 가까운 한 분은 내게 넓은 가슴, 포용력이 부족하다고 말하곤 합니다. 왜냐하면 저의 관점에선 세상엔 너무 많은 거짓과 위험이 널려있고 소위 정신세계, 수련세계에도 예외가 아니기 때문에 경계를 늦추지 않는 태도가 몸에 배여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는 여러 번의 자각 혹은 깨달음의 순간을 체험하였고 최근에는 장휘용 교수님이 쓰신 ‘어느 깨달음을 지켜보면서’에 묘사되는 것과 아주 유사한 그러한 과정과 상태를 겪었습니다. 그런 과정을 통하여 그는 자신이 어디서 와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분명히 알게 되었고, 고차원 존재들과 대화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어두운 세력의 엄청난 공격이 함께 일어났는데 그것은 그로선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의 사랑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고 이겨낼 수 있으리라 자신했지만 그들은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그토록 엄청난 내면의 힘을 외면으로 보여주던 그가 점점 실성한 사람으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자신을 죽이려는 자신의 몸에 들어온 에너지체와 대화하면서 사랑으로 그를 설득하는 모습이 애절했습니다. 그 존재는 함께 일하자며 그를 회유하였고 그는 단호히 거부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너는 죽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 대답이더군요.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 그는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습니다. 이러한 세계에 대한 깊은 안목이 없는 그의 배우자으로선 그것이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었을 것입니다.
헤피타오를 운영하고 있는 한바다님은 명상요가회라는 대학서클을 함께 했던 저의 선배이기도 합니다.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고 있던 1980년대 말쯤 한바다님에게 커다란 자각이 일어났고 청담동 요가도장에서 그 자각을 많은 선후배에게 나누어 주는 일을 하였습니다. 직장을 다니고 있던 저는 그 곳에 두 세번 정도 참석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모임을 통하여 ‘깨어났다’고 회상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임에 전적으로 긍정적인 모습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곳에서도 어두운 세력의 많은 공격이 있었습니다. 단번에 의식의 고양을 경험했던 한 여성은 갑자기 시력이 망가져 수술을 해야 했으며, 한바다님 자신에도 개인적으로 여러 복잡한 일들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모임은 계속 되었지만, 후엔 그 모임에 참석했던 한 선배의 부인이 자살을 하는 일도 일어났습니다. 여기서 이러한 사실을 밝히는 것을 한바다님과 관련자분들이 양해해 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제가 어떤 맥락에서 이러한 얘기를 하는지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한바다님은 장휘용 교수님처럼 천성적으로 솔직하신 분이라 자신에게 일어나는 애써 숨기려하지 않는 것 갔습니다. 그러기에 그분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그분의 글을 읽으면 숨이 조여와서 죽을 것 같은 경험을 했다는, 오랫동안 몸이 완전히 탈진상태에 있었다는 등의 얘기가 심심치 않게 보입니다. 제가 보건데 그것은 단순히 업을 해소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분이 이러한 고비를 계속 넘겨왔던 것은 순간 순간을 깨어있는 자각속에 살수 있을 만큼 되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Ra-Material이 나오기까지 Ra와 대화를 한 채널러의 남편의 역할이 채널러 자신의 역할 만큼 중요했습니다. 4편이 끝나는 지점에서 그는 자살을 하게 됩니다. 그로써 Ra와의 교신은 끝났습니다. 역시 사명자(Wanderer)였던 그는 Ra 라는 존재의 신호를 수신하는 안테나와 같은 역할을 하였고 그의 아내인 채널러는 그 수신된 신호를 언어로 바꾸는 라디오와 같은 역할을 했다는 해석입니다. 안테나가 없으면 더 이상 라디오가 신호를 발할 수 없습니다. 오리온 STS의 공격이 소기의 성과를 달성한 셈입니다. 예수가 40일 단식기도 중 사탄의 시험을 받고 붓다가 깨달음의 막바지에 Mara의 시험을 받았다는 얘기는 단순히 후세사람들이 지어낸 얘기만은 아니라는게 저의 생각입니다. 저는 love & light 로 시작되고 love & light로 끝나는 많은 채널링 메시지를 보게되면 일단 신경계에 알람신호가 울립니다. 그것은 제가 빛과 사랑을 싫어하고 어둠과 증오를 좋아해서가 아닙니다. 고차원 STS도 빛의 마스터들입니다. 그들도 사랑의 마스터들입니다. 다만 자신만 사랑한다는 점에 있어 우리의 방향과 다를 뿐이겠죠. 또한 자칭 아슈타 코맨더니 사난다니 메타트론 대천사니 세라핌이니 하는 존재들이 등장하는 많은 채널링 앞에서도 알람신호가 울립니다. 이것이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단순히 제게 포용력이 부족해서 뿐은 아니길 바랍니다.
참과 거짓을 밝음과 어두움을 가려내는 것도 우리 ‘사명자’들의 중요한 역할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사명자는 때가 되면 깨어나서 그 순간 우주의 모든 비밀을 알게 되는 그렇게 단순한 것만이 아닐 것이라는 게 저의 소견입니다. 양이 있으면 음이 있고 밝음이 있으면 어두움이 있는 것은 우주의 이치입니다. 그 양쪽이 One infinite Creator의 하나의 얼굴입니다. 그 중 한쪽만 인정하고 바라보며 우주적 존재인 나의 아버지 어머니 하나님을 전적으로 사랑한다는 고백한다면 스스로 모순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피의 마스터들은 신의 얼굴을 메두사의 얼굴처럼 상반된 양쪽을 가진 얼굴로 묘사합니다. 저는 우주의 어두운 면을 세상의 어두운 면을 있는 그대로 직시함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입니다. 예수님이 말한 것처럼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은 진리일진데 그 진리는 꼭 우리가 상상하거나 그러길 바라길 모습과 큰 차이가 날 수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Ra-Material 에서는 우주가 이러한 정과 부의 양 날개를 가지고 어떠한 우주적 춤을 멋지게 추고 있는지 아주 설득력 있게 흥미진진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쓰다보니 많이 길어졌습니다.
평안하십시오.
**********************************************************************************
윗 글에는
"이 자유게시판에 어떤 분이 제가 이전에 헤피타오 게시판에 올린 글을 퍼서 올려놓았더군요. 이 글은 퍼서 다시 한번 밑에 올려볼까 합니다." 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허나 정작 그 글은 게시판을 검색해서야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밑에 덧붙입니다.
***********************************************************************************
이 게시판을 찾는 모든 사람들은 '영적 성장'을 추구하며 영원한 '영적 진리'에 갈급하여 그것을 찾아 나선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영적 진리'를 찾아 나선 여행길에서 우리는 '깨달음' 혹은 깨달음의 현대판 뉴에이지 조류의 표현인 '상승(Ascension) 혹은 승천'이라는 개념을 수없이 맞닥뜨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수백 가지가 넘는 정의와 그것을 이루기 위한 수백 가지의 테크닉 또한 우리의 여행길에 즐비하게 늘어서 있음을 보게 되고, 우리는 마치 백화점에서 구두를 고르듯이, 어딘가에 내 발에 꼭 맞는 편안하면서 외양도 근사한 구두가 있을 것이라는 설레이는 기대감으로 좌우를 기웃거리게 됩니다.
한편 많은 사람들은 이미 자신만의 구두를 발견하였고, 남들이 어떤 구두를 신고 있나 힐끗힐끗 곁눈질하기도 하지만, 결국 나의 이 구두가 나의 발을 목적지까지 무난히 데려다 줄 것이라는 확신 혹은 희망을 가슴에 깊이 간직하며 각자의 여행길을 재촉합니다.
Google 검색엔진에 illumination(깨달음)이란 단어를 Spirit이란 단어와 함께 넣어 검색해 보았더니 0.45초 만에 132,000개나 되는 문서가 검색되어 떠오릅니다. ascension, spirit이라는 단어를 함께 넣어보니 206,000개의 문서가 떠오르고, meditation(명상), spirit이라는 단어에서는 612,000개의 문서가 떠오릅니다. 놀랄만한 수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역사의 시점에서 이러한 개념들이 전 세계적으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일까요? 아마도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이 질문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대답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능한 수많은 대답에 공통적으로 포함되는 얘기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역사적 시점의 특이성’에 대한 얘기일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세속적'이 아닌 순수한 '영적인' 테마에 대한 관심으로 이 사이트의 게시판을 방문하는 사람들께서도, 비록 그들이 이러한 새로운 역사적, 시대적 흐름이 세계를 종국에 어디로 이끌고 갈 것인가에 대한 여러 다양한 기대와 견해를 가지고 계실지라도, 우리가 처해있는 '이 특이한 역사적 시점'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의 모습을, 그 이상이 아닌 현실의 모습을, 간략하게나마 살펴보는 것을 용인해주시리라 믿습니다.
현재 지구상에는 8억 4천만 명의 사람들이 기아로 고통 받고 있습니다. 이는 대한민국 인구의 20배에 달하는 수치입니다. 이 기아는 지속적인 것으로서 매일 2만 4천명의 사람을, 그리고 매년 8백만명의 사람을 죽이고 있습니다. 기아로 죽어 가는 열 사람 중 셋 내지 네 명은 5살 이하의 어린이입니다.
믿을만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 100년 동안 20억의 사람이 전쟁, 정치적 폭압, 인간이 유발한 기아에 의해 죽어갔습니다. 이러한 수치는 자유가 없다는 공산주의나 자유세계임을 자칭하는 자본주의국가에 거의 균등하게 분포되어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효율성과 합리성에 대한 교육을 받아 온 우리들에게, 이 수치가 오히려 비 공산주의 진영에서 약간 높게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은 적잖은 충격일 수도 있습니다. 대부분 이러한 수치가 퍼센테이지로 표시되고 있는 데에는 우리로 하여금 사실을 '사실대로' 직면해야하는 것을 피하게 하려는 미묘한 의도가 숨겨져 있습니다.
세계이차대전에서만 6천5백만 명의 사람이 살육되었으며, 한국전쟁에서는 180만 명이 죽고, 30만 명이 행방불명되어 생사를 알 수 없게 되었으며, 20만 명의 전쟁과부와 10만 명의 전쟁고아가 양산되었습니다.
기아와 질병에 의한 사망은 지금 이 순간에도 꾸준한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으며, 세상의 지나친 '안락함'을 비관하던지, 세상의 지나친 험난함을 비관하던지 간에 자살자의 수 역시 끊임없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자신과 자신의 후손들을 위해 좀더 나은 세상과 좀더 나은 삶을 바라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한 바램을 실현시킬 능력이 자신에게 없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이렇게 되묻게 될 것입니다. '우리 인간에게 이 세상이란 것이 전반적으로 이처럼 처참하며,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상태를 바꾸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생각하고, 일하고, 기도하고, 명상하고 있는데 왜 세상은 이렇게 끈질기게 나아지려 하지 않는 것일까?'
'영적 진리'를 추구하고 있는 우리와 같은 사람들은 이러한 문제에 좀더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이 모든 불행과 고통의 근원은 무엇인가? 신이 사랑이고 전능하고 절대적으로 선한 존재라면, 우리가 경험하는 이 모든 악은 무엇이란 말인가? 정말 이 악의 근본은 오직 인간의 내면에 있고 우리는 오로지 자기 안의 부정적 에너지의 표상을 세계를 통하여 경험하고 있는 것뿐일까? 그렇다면 결국 이 모든 불행과 고통은 신의 영역과는 무관하며 오로지 인간 자신이 스스로에게 혹은 서로에게 유발한 것뿐이란 말인가? 정말 내 '에고'가 떨어져 나가는 것이야말로 이 모든 이원성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일까? 하지만 설령 그러한 일이 내게 일어난다고 해서 이 세상의 모순과 고통이 함께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만약 그러하다면 수많은 보살의 서원은 다 무엇이란 말인가? 도대체 이 세상의 사악한 모습과 인간의 고통의 끝은 어디에 있을까? 진정 신은 무소부재하며, 우주의식은 모든 곳에 현현한단 말인가?'
종교지도자들은 말합니다. '기도의 힘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뉴에이지 구루들은 말합니다. '긍정적 사고(positive thinking)의 힘을 사용하라!' '세상을 내면에서 퍼져 나오는 사랑의 빛(love & light)으로 감싸 동화시키라!' 그런데 문제는 기도나 긍정적 사고나 세계를 감싸고도 남을 만한 내면적 사랑의 빛이 세계의 거의 대다수의 사람이 어떤 특정한 결과를 갈구하며 기도하고 명상하는 경우에도 그다지 사태를 개선시키는 힘을 발휘하는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데 있습니다.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서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마태복음 18장 19절) . 즉 '무엇을 원하는가? 단지 합심하여 구하기만 하라! 그러면 이루어지리라!'라는 아주 명료한 말입니다.
더욱이 이것은 인간의 약속이 아닌 하나님의 아들의 약속입니다. 그러나 일이 약속처럼 그렇게 되지 않음을 우린 확인하고 또 확인하게 됩니다!
신이 당연히 해야 할 것으로 여겨지는 것을 하지 않음으로써 이차대전 때 6천만 명이 넘는 인명이 처참하게 살육되었습니다. 이차대전이 발발하기 전부터 세계의 절대적 다수의 사람들이 예수께, 천부께, 성모마리아께, 알라께, 혹은 지구의 반대편에서는 부처께 이러한 처참한 일이 벌어지지 않게끔 기도하였습니다.
아마도 유사 이래 가장 절정에 달하였을 이 같은 엄청난 절규와 기도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삼분의 일이 황폐화되었고 6천5백만의 사람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두려움이 없으며, 내게 부족함이 없도다. 나를 잔잔한 물가로, 푸른 초원으로 인도하리라' 묵상하고 기도하며 애써 마음을 가다듬어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했던 수많은 유태인들의 비참한 최후에 대해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기도에 대한 신의 응답이었습니다. 이것이 '긍정적 사고의 힘'의 결과였습니다.
콜럼부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했을 때 그의 일행을 열린 가슴으로 환영했던 타이노스(Tainos) 부족에 대해 콜럼부스는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무척이나 온순하고 평화로운 사람들입니다. 감히 폐하께 맹세하며 말씀드리건대 세상에서 이렇게 좋은 나라는 없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이웃을 자기 몸처럼 여기며 사랑하고 그들의 대화는 부드럽고 달콤하며 항상 미소를 짓게 합니다. 비록 그들이 벌거벗은 몸으로 살고 있지만 그들의 태도는 예절 바르고 경탄할만 합니다.'
이처럼 이웃을 자기 몸처럼 여기며 사랑하던 온순하고 평화로운 부족은 결국 자신들이 가슴을 열고 따뜻하게 맞이하였던 그 사람들에 의해서 처참히 살해되어 지금은 지구상에 한 명도 남아있질 않습니다. 이것이 '내면적 사랑과 빛의 힘'의 결과였습니다.
우리는 누구보다도 따뜻하고 소박하고 열린 가슴을 지녔으며 가장 심오하다 할 만한 영적 수행의 전통을 이어가던 티벳인들이 한갓 속세의 권력가에 의해 무참히 짓밟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다시 우리는 이번 이라크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염원하였던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의 기도와 명상과 사랑과 빛에 대한 Visualization (create your own reality!)의 결과를 보고 있습니다.
이런 끝없이 이어지는 불행과 고통은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찢겨진 영혼과 죄없는 죽음의 대가는 무엇입니까? 물리적 현실과 우리의 의지, 욕구와 생각 사이의 알 수 없는 이 신비한 간극과 분열은 무엇이란 말입니까?
우리의 잠재의식에 담겨져 있는 어떠한 어둠의 힘이 이처럼 어둡고 위험한 세상을 창조해 냈을까요? 아니면 어떠한 힘이 있어 우리를 우주의 실상에 대한 참된 지식에서 분리시켜 놓고 불행과 고통 속에 우리를 내던져 놓은 것일까요?
세상을 유심론적인 관점에서 스스로의 마음에서 창조해 낸 것으로 보던지, 외부에서 독자적으로 완성되어 우리에게 제시된 된 것으로 보던지 간에 우리는 애써 외면하지 않는 한 엄청난 불행과 고통을 우리들이 사는 세상 도처에서 보고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기도나 긍정적인 사고나 Visualization 같은 영적인 힘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려 하는 시도나 큰 규모의 사건의 행로를 바꾸려 하는 시도가 먹혀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물론 어떤 개인이나 작은 그룹의 사람들의 노력이 작은 변화나 제한된 범위 내에서의 효과를 얻어내는 것은 인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세상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이유로 인해서 우리가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규칙과 룰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 듯 보입니다. 물질세계의 근본적인 속성은 우리가 적용하려고 하는 '영적 법칙'과는 너무도 어긋나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다면 이 수십만 가지의 웹 페이지들과 그 수많은 웹 페이지들이 대변하고 있는 뉴에이지 구루들, 상승한 마스터들, 외계인 조력자들, 채널러들과 그들의 메시지는 다 무엇이란 말입니까?
지금 저는 우리가 사는 세계의 어두움에 대하여 얘기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쯤에서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 중의 일부는 '이 작자는 지금 이 사랑과 빛으로 가득해야 할 이 게시판에 네거티브한 파장을 퍼트리고 있다'며 불안해하거나 바짝 경계하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글에선 당신이 감추려 할지 모르지만 어두운 증오와 파괴와 아집과 분노의 파장이 느껴집니다. 나의 느낌이 그 모든 것을 말해줍니다. 나를 속일 수는 없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으실런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당신이 좋은 것만 생각하고,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듣고, 좋은 느낌만 가슴속에 유지하려고 노력한다고 해서 당신을 짓누르고 있는 어둠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 않던가요? 저는 당신이 어쩌면 애써 외면하려 하는, 당신을 감싸고 있는 '현실'을 그대로 이야기하고 있을 뿐입니다.
한번 냉철한 이성으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2) 마키아벨리와 이라크전, 대천사 메타트론
성경의 예언을 관심을 가지고 공부해 본 사람이라면 아마도 우리가 성경의 예언이 성취되어가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음에 대해 큰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 아버지 부시 행정부가 이미 1990년 '새로운 세계질서(New World Order)'의 기치를 공공연히 내세우고, 그의 아들 부시 행정부가 힘과 폭력에 의한 세계지배의 야욕을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기고 있는 지금의 현실에서 요한계시록 쓰여 있는 사탄, 짐승이 통치하는 어두운 세계의 모습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우리나라가 파병하겠다는 666이라는 군인의 숫자는 '우연이란 없다'는 '평범'한 '영적 진리'를 상기시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에 대해 말하는 기독교 지도자들의 목소리는 어디에서 없습니다. 수많은 세월동안 기독교 신앙은 '공중권세' 잡은 자들에 대한 영적 싸움이라고 교회에서 거리에서 외쳐대던 그 많던 목소리는 이러한 명백한 징후에 대해선 꿀 먹은 벙어리처럼 고요합니다.
오히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개심'한 기독교 신자를 자처하는 부시의 결연한 의지를 신의 숨은 뜻과 동일시하며 이 전쟁을 통하여 이루려 하는 신의 심오한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길' 기도하기도 합니다.
마키아벨리는 종교에서 설파하는 믿음, 소망, 사랑, 희생, 고통 속에서의 무한한 인내와 같은 덕목들이 사람을 나약하게 만들고 그들이 '세속적'인, 정치적인 사안에 무관심하게 만듦으로써, 그러한 덕목에 '물들지' 않은 사악한 사람들로 하여금 정치적인 권력을 손쉽게 이양 받을 수 있게 만들게 됨을 간파하였습니다.
물론 여기엔 사후세계에 가게 될 천국이 유일한 소망이요, 추구할 만한 유일한 가치라는 속임수를 설득시키는 일도 중요합니다. 마키아벨리의 주된 사상의 하나는 종교는 국가에 기여하며, 국가의 목적에 기여할 때에 한해서 좋다는 것입니다. 종교를 이용하면 법에 '신적 권위'를 부여함으로써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당연히 복종하기를 거부할 만한 법도 복종하도록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마키아벨리에 의하면 종교는 당연히 국가가 지배해야 합니다. 바로 이러한 이치가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국교로 제정하였을 때 확실히 염두에 두고 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메카니즘을 기독교의 적인 이슬람 종교에도 그대로 적용시킬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이 국가라는 말을 '고차원 지배시스템'이란 말로 대체시키고, 종교란 말을 '뉴에이지운동'이란 말로, 천국에의 소망을 '깨달음 혹은 상승'에의 소망으로 대체시킨다면 위의 웹 사이트 숫자가 대변해주듯 전 세계에 열병과도 같이 번지고 있는 동양의 후천개벽사상의 현대판 버전인 뉴에이지 상승(ascension)운동의 정체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다가올 후천개벽 혹은 상승의 시대를 준비시키고 그것에로의 긍정적인 이행을 돕는 데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일어나는 것을 방해하고 한편으론 일어나는 방향을 조정함으로써 종국에는 아득한 과거로부터 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고차원 지배시스템'이 그들과 인간세계간의 먹이사슬의 관계를 소위 후천세계에서도 혹은 상승된 고차원에서 영속화하시키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는 섬뜻한 '진실'에 대해 눈뜨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으로 하여금 더 이상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 아니요 먹이사슬의 정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충격과 공포'의 '현실'에 직면하게 만들 것입니다.
기독교와 이슬람교를 조금이라도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해본 사람이라면 이 두 종교가 하나의 보이지 않는 '지배세력'에 의해서 창시된 것임을 그리 어렵지 않게 유추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두 종교는 공통적으로 아브라함이라는 하나의 조상을 믿음의 조상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인구의 90% 이상이 이슬람을 믿는 나라인 터키인들의 상점에서 가면, 그들의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죽여 여호와께 드리려고 칼을 높이 치켜든 장면을 조각하거나 모자이크한 벽 장식품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또한 마리아에게 예수의 잉태를 알리려 나타난 존재와 마호멧에게 나타나 신의 메시지를 전한 존재는 모두 가브리엘이라는 이름의 같은 '천사'입니다.
뉴에이지 채널링에 등장하는 여러 대천사 중에서 가브리엘은 신의 소식을 전하는 대변인으로서의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습니다.
이슬람교도들은 예수를 알라의 메시지를 전한 뭇 예언자 중의 하나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슬람의 신 '알라'는 이슬람교도들이 섬기는 신의 이름이 아니라 영어의 'GOD'과 같이 신을 일컫는 보통명사에 불과하며, 이슬람교도들은 그들의 알라가 가브리엘이 대변하는 기독교의 하나님과 다른 신이 아님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단지 모세가 옳았는가, 예수를 단순한 예언자를 넘어 신의 아들로 보느냐 하는 점에 있어서 기독교도들과 관점을 달리하고 있을 뿐입니다. 물론 기독교에서는 이러한 엄연한 사실을 애써 무시하고 감추고 외면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같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서로 모세가, 마호멧이 틀렸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형제에 대한 살육전을 하나님이 명령한 혹은 그의 영광을 위한 '성전'이라 일컫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듯 유독 같은 하나님을 섬기고, 같은 조상을 섬기고 있는 두 종교와 족속들 사이에 그칠 줄 모르는 반목과 살육이 이어지고 있는 걸까요?
마키아벨리는 한 군주가 자신의 지배권을 확실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배받고 억압받는 백성들이 분열되어 서로 반목하게 함으로써, 통합된 힘으로 저항을 도모할만한 여력을 남겨두지 못하게 해야 함을 설파하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다른 국가를 정복하기 위해서도 그대로 적용되는데, 공식적인 침략에 앞서 상대국가에 음밀히 행해지는 분열책동 즉, ‘divide & conquer’ 전략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전략이 인간 삶의 구석구석에 적용되어 왔고 또 적용되고 있음을 그리 어렵지 않게 간파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 종교의 창시와 그 종교들 간의 끊임없는 갈등이 이를 통하여 이익을 보려는 어떠한 세력의 의도적 배치의 결과가 아닐까 의심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부시와 후세인과 빈라덴은, 그것이 이 3차원 세계의 어떤 감추어진 세력이던지 혹은 이 보이는 세계를 넘어선 고차원의 존재이던지를 막론하고 결국 하나의 배후세력에 의해서 조정되고 있다고 봐야 하는 것이 됩니다.
다시 말해서 이 전쟁을, 많은 학자들이 묘사하는 것처럼 문명과 문명, 혹은 종교와 종교의 충돌이라고 본다면 그들은 결국 그들이 섬기는 각기 다른 신의 각기 다른 뜻을 실현하기 위해 서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서로 싸우는 것 자체가 '하나의' 신의 뜻 '자체'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피비린내 나는 살육전을 통하여 얻는 것은 무었일까요? 아마 대부분의 사람은 '그들이 원하는 것은 석유와 중동에서의 패권이다. 그런 것쯤은 삼척동자도 알고있다. 어쩌면 그들은 중동을 넘어서 세계를 그들의 군사력으로 지배하려 원하고 있을 것이다.' 라고 말할것입니다.
그러나 이 배후의 지배세력이 이미 모든 것을 장악하고 배후에서 조정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그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또다시 빼앗아야 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그들의 꼭두각시 부시와 그 추종자들이 자신들의 표면의식에서 석유와 패권을 자신들이 노리고 있는 것의 일부로 염두에 두고 있을 몰라도, 그를 조정하고 있는 배후세력은 그 이상의 혹은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의도를 품고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그들은 정녕 인간의 피를 원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들은 고통 속에 갈갈이 찢겨진 영혼을 원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들은 전 세계적으로 발산되고 있는 충격과 공포와 분노와 절규와 고통과 절망이 가져다주는 허리케인보다도 강력한 거대한 에너지의 소용돌이를 원하는 것일까요? 저의 대답은 '그렇다' 입니다.
한편 이 지역은 고대 수메르 문명의 발상지라는 사실이 말해주듯 지구의 중요한 에너지 포탈이 위치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 곳에서 자행되는 무차별 충격과 공포가 그렇지 않아도 불안정하고 닫혀있는 이 지역의 에너지 흐름을 거의 회생불능의 상태로 만들어 버릴 것입니다. 그들이 아프카니스탄을 침공한 것도 똑같은 이유에서입니다. 아프카니스탄도 지구의 에너지 중추의 하나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뉴에이지 명상가들이 미국의 세도나, 샤스타에 주기적으로 모여 소위 'Star Gate' 의식을 거행합니다. 그곳의 에너지 포탈을 활짝 열어 지구를 변형시킬 우주의 빛에너지를 받아들이겠다는 의도라 합니다.
하지만 그곳은 이미 열려있을 만큼 열려있다 하지 않던가요? 그들 중 누구도 아프카니스탄이나 이라크에가서 'Star Gate'의식을 거행할 것을 제안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이론대로라면 정작 그것이 필요한 곳은 바로 이 두 곳인데도 말입니다. 오히려 그들이 세도나에서 하는 일이 자신들의 의도와는 정 반대로 그곳의 에너지 흐름을 막거나 파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저의 대답은 '아마도 그럴 것이다' 입니다.
노아의 방주 사건 때 다시는 인간을 징벌하지 않겠노라는 약속의 징표로 무지개를 펼쳐보이셨던 성경의 하나님은 출애굽기 32장에서 모세로 하여금 금송아지를 만든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자신이 방금 전에 친히 돌에 새겨 넣었다는 '살인하지 말라'라는 계명이 선명히 새겨진 돌판을 내치게 하며, 모세의 입을 통하여 이렇게 명령합니다. '이것은 여호와의 명령이니라. 너희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진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그 친구를, 각 사람이 그 이웃을 도륙하라.'
그들은 이집트에서 그럭저럭 평화롭게 살고 있었던, 그러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겠다는 하나님의 언약에 때문에 시작한,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고달픈 방랑생활에 지치고 지쳐있던 가엾은 백성들이었습니다. 성경은 이때 레위자손이 그대로 행하여 그 자리에서 백성 중에 삼천명 가량이 도륙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나이산에서 모세에게 나타나 십계명을 건네준 후 '자기백성'을 도륙하라 명령한, 한글성경에는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어있는 하나님이, 원어성경에는 '엘 샤다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이 밖의 여러 다른 이름으로도 등장하기도 합니다. 성경주석에는 하나님의 여러 속성을 의인화한 이름들일 뿐이라 강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엘 샤다이'라는 이름은 소위 대천사 '메타트론'의 다른 이름이기도 합니다. 엘 샤다이 혹은 메타트론은 미카엘과 더불어 수많은 뉴에이지그룹의 채널링 메세지에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이름입니다. 쉘던 나이들이 이끄는 행성활성화그룹의 초기 채널링에서 그들 메시지에 좀더 '신적인 권위'를 불어넣었던 이름도 바로 대천사 메타트론입니다.
한편 모세는 그 참혹한 도륙을 치하하며 '각 사람이 그 아들과 그 형제를 쳤으니 오늘날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날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하고 있습니다. 열두지파 중 레위지파는 이렇게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은 것입니다.
이렇듯 그들의 하나님은 자신에게 번제를 바치지 않는 이방민족을 처참하게 살육하라 명령하는가 하면 심지어는 같은 백성 내에서도 편을 갈라 서로 싸우고 죽이게 합니다. 그들의 하나님 엘 샤다이는 자신을 만날 수 있는 제사장을 오직 레위지파 출신에만 한정지을 만큼 그들을 편애한 것으로 보아서, 그가 이 살육을 얼마나 기뻐 '흠향' 하였는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즐겨 입는 리바이스(Revi's) 청바지가 바로 레위지파의 청바지입니다. 어쩌면 이 특별한 이름의 상표는 그 이름에 걸맞게 '나는 이런 고가의 청바지를 입을 만한 특별한 존재'라는 신화적 허영심에 호소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거부감을 가질 만한 '세속적' 세계의 암담한 현실에 대한 얘기하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여러분의 주된 관심의 대상인 종교적이고 '영적인' 세계의 어두운 '진실'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당신이 따뜻한 '열린 가슴'으로 제 글에 공감하길 기대하지 않습니다. 단지 '냉철한 지성'으로 이 어두움을 한번쯤 정면으로 응시해 보길 기대할 뿐입니다. 물론 선택은 전전으로 당신에게 있습니다.
(3) 야훼, 끝없는 학살, 뉴에이지, Key Of Enoch
그렇다면 정녕 하나님이 그들이 형제의 배를 가르고 뿌리는 피를 기뻐하실까요? 적어도 성경과 코란의 하나님을 '신앙의 눈'이 아닌, 이성의 눈으로 보려고 노력해 본 사람이라면 '그렇다'라고 대답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이야기나, 하나님이 전쟁에서 자신의 승리를 도와주면 성에서 제일 먼저 그들의 귀환을 마중 나오는 여자를 그에게 제물로 바칠 것이라 약조하였던 열왕기의 어떤 왕이, 그것이 불행히도 자기 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약속을 이행하였다는 등의 '감동적인' 이야기에서, 하나님은 소나 양 같은 가축의 피와 그 살을 태워 연기로 올리는 번제만을 기뻐 흠향했던 것이 아니라, 사람의 피와 살도 무척이나 즐겼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현대판 레위지파 제사장인 카톨릭 사제들이 중세시대에 마녀사냥이란 명목으로 수십만명의 무고한 사람의 피를 뿌리고, 그들의 살과 뼈를 장작더미 위에서 태울 때, 십자군 전쟁이라는 '성전'의 이름으로 이슬람인들의 삶의 터전을 약탈하고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여 그들에게 기독교에 대한 뼈에 사무치는 원한을 심어놓았을 때, 신 구교간의 수많은 갈등으로 유럽대륙의 역사가 붉은 피로 물들어 갔을 때, 여호와 하나님이 그것을 기뻐 흠향하였음 또한 그리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시 소위 '마녀'라는 사람들은 교회의 허락 없이 영적인 세계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혹은 우연히 열려진 문틈으로 보이는 세계 이면의 보이지 않는 세계를 힐끗 보게 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중에는 교회의 허락 없이 사람들을 치료해주는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스페인 같은 곳에서는 심지어 백과사전을 반입하여 소지하고 있는 사람들도 다 신에게 반역한 자들이었습니다. 독일에서는 사제들만 이해할 수 있는 라틴어 성경이 아니라 '불법적으로' 번역되어 나온, 처음으로 일반인도 이해할 수 있는 독일어 성경을 소지하고 있던 사람에게도 마찬가지 죄목이 적용 되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체포는 곧 삶의 끝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항변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몸에 돌을 메달아 강물에 던져서 입이 동동 뜨면 마녀로 판정받아 처형당하고, 가라앉으면 마녀가 아닌 것으로 사면을 받게 되지만 이미 가라앉은 후이니 죽어서야 사면을 받고 풀려나게 되는 셈입니다. 신의 대리인이었던 그들에게 거슬리는 자는 살아남을 길이 없었습니다.
이처럼 사악하고 타락한 카톨릭 교회에 용감히 반기를 들었던, 그리고 마침내 '종교개혁'을 성공시켜 개신교를 탄생시켰던 마틴 루터는 많은 기독교인에 의해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마녀들은 살려 두어서는 안 된다. 그들을 죽여야 한다는 법은 정당하다. 그들은 엄청난 피해를 주고 있다. (1526년 설교)” “할 수 있는 자는 찌르고 후려 패고 목조여 죽이라. 만약 싸우는 중에 죽는다 해도 그 보다 더 축복된 죽음은 없으리라. (농민 반란에 즈음하여 폭력적 진압을 선동하며...)“ ”유태인은 가장 사악하고 악독한 물건이다. 그들은 1400년 동안 우리에게 흑사병균 자체였으며,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악마인 것이다. 우리는 유태성당과 학교를 모두 불태워야 하며 이것은 우리의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그것을 통하여 우리의 하나님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의 집도 똑같이 부수어 버려야 한다. (유태인과 그들의 기만에 대하여)” “유태인은 모두 잡아 우리에 가두어야 한다. 집시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의 돈과 금은으로 만든 귀금속을 모조리 빼앗아야 한다.” 히틀러의 입에서나 나왔음직한 위의 말들은 모두 마틴 루터의 입에서 나온 말들이며, 독일은 아직도 이 기록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20세기의 뛰어난 신학자이자 교회비평가인 Hubertus Mynarek는 자신의 저서 '새로운 마녀사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현대의 법 상식에 따르면, 루터는 민중선동, 살인교사, 농촌평화파괴, 방화교사죄로 당장 체포 대상이 된다.' 그는 사람을 치료하는 여자들을, 농민들을,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을, 창녀들을, 터어키인들을, 유태인들을, 집시들을 모두 잡아 죽일 것을 선동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에 의하면 그것은 모두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99.9%의 개신교 신자들은 그들 종파의 창시자 격인 루터가 진정 어떠한 신에 속한 사람이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어떤 종교 수업에서도, 설교에서도 그것에 대해 가르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히틀러에게는 자신이 세계를 악의 세력으로부터 구원할 신성한 사명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는 심지어 자신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고 까지 말하였습니다. 그의 주위에는 그의 믿음을 확신시켜주는, 영적 비전의 계승자를 자처하는 여러 비밀결사조직과 오컬티스트가 있었습니다. 그는 영적인 세계에 남다른 관심이 있었고, 고대 켈트족의 Druid종교나 티벳불교에도 조예가 깊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나는 단지 교회가 1500년 동안 해온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다만 근본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 다를 뿐...' 그리고 유태인에 대한 잔혹한 핍박의 정당성의 근거를 루터에게 돌리고 있습니다. '루터는 위대한 사람이다. 실로 거인이다. 그는 단숨에 새벽을 열었다. 그는 우리가 오늘에야 알아차리기 시작한 유태인의 정체를 이미 그때에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나치는 루터의 생일을 기념하였고, 뉴른베르그 전범재판에서는 자신들의 만행의 근거를 루터에게 돌렸습니다.
많은 '성백색동포단(Great-White-Brotherhood)'의 추종자들로부터 현대의 Bible로 추앙 받으며 각종 뉴에이지 서적에서 인용되고 있는 'The Key of Enoch'의 저자 Dr. Hurtak은 서문에서 자신이 대천사 '메타트론'의 인도로 일시적으로 빛으로 영화된 육체를 가지고 빛의 우주선인 메카바(Merkaba)를 타고 오리온 성좌의 Mintaka까지 날라가서 직접 친견할 수 있었다던, 영광스런 보좌 위에 앉으신 야훼라는 존재에 대해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존재를 성경의 여호와와 확실히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온갖 코드와 어려운 수식 그리고 형이상학과 카발라 신비학이 결합되어 있는 이 '심오'하고 난해한 책의 서문에서 Dr. Hurtak는 전 우주의 모든 차원을 창조했다는 야훼가 우리 은하의 어느 구석진 곳에 있는 별무리에 보좌를 틀고 앉아 있는 모습으로 묘사합니다.
그러할 진데 그가 아무리 야훼의 모습을 화려하고 장엄하게 묘사였을지라도 무소부재하다는 근원자의 모습으로서는 왠지 초라해 보이는 느낌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더군다나 오리온성좌의 Mintaka는 사악한 파충류종족의 본거지지로 그 많은 소위 '비판적' 뉴에이지 서적에서 말하고 있지 않던가요?
훗날 Dr. Hurtak은, 온갖 추측과 가설과 유언비어가 난무하는 UFO학계에 만연해 있는 주장과 이론의 허구성을 아주 이지적이고 예리한 논리로 파헤치고 여러 권의 저서를 펴낸 Jacques Vallee라는 저명한 UFO학자와의 인터뷰에서 그의 책이 'The Center For Democratic Studies'라는 기관의 후원을 받은 것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기관은 그 '악명' 높은 록펠러가문에 의해 창립되었으며 작금의 부시행정부에 의해 가시화 되어가고 있는 '새로운 세계질서 (New World Order)' 하에서 현재의 미국 헌법을 대체할, 유사시 국민의 기본권을 무제한 적으로 제한할 수 있는 새로운 헌법 (Constitution Of The Newstates Of America)의 초안을 준비하고 있는 기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그는 그의 저서가 캘리포니아에서 있었던 UFO와의 조우에서 출발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는 귀가길에 정체모를 UFO에 자석처럼 이끌리게 되었고 그로부터 그에게 내리 쬐이는 빛을 통해서 이 책 내용의 영감과 그 안에 담긴 정보를 모두 얻게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Dr. Hurtak과 그의 추종자들이 내세우는 세계관에 의하면, 우주는 야훼 혹은 그의 영어식 발음인 여호와라는 이름의 최고의 존재 혹은 근원자를 중심으로 고도로 조직화된 위계질서(Hierarchy)에 의해 창조되고 유지되고 진화해간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계관을 대표하는 저서인 'The Key of Enoch'이나 유대 신비주의인 카발라에선 야훼의 다른 이름으로 Adonai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생명나무(Tree Of Life)의 맨 정점에는 대천사 메타트론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들에 의하면 야훼가 모든 우주와 그 우주의 모든 차원을 창조한 목적은 '오직' 그 '자신'을 더욱 풍요케 하고 기쁘게 하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야훼는 그 목적을 위해 밑에 엘로힘, 세라핌 체루빔, 또 대천사를 두고 있으며 그 밑으로는 수많은 단계의 고차원 의식인 로고스와 백색성동포단 (great-white-brotherhood)이 있어 이러한 근원자의 창조 목적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지구에 UN에서부터 각 나라의 국회, 시의회, 구의회에 이르는 점점 세분화된 기구가 있듯이 우리의 우주도 40개가 넘는 크고 작은 Great-White-Brotherhood에 의해 다스려진다고 하며, 그 중에서 지구를 담당하고 있는 것이 사나트 쿠마라(Lord of the world, 8번째 입문을 통과한 자)를 수장으로 하는 White-Brotherhood라는 것입니다.
Lord of the world 밑에는 Budda(7번째 입문), Christ(6번째 입문), 그리고 근원에서 오는 7가지 빛(ray)을 대표하는 일곱 Adept라는 관직이 있는데 현재는 각각 예수 대사, 전생에 사도바울이라는 Hilarion 대사, 전생에 짜라투스트라, 성 프란치스였다고 하는 Kut Humi대사, 그리고 전생에 노아, 마리아의 약혼자 요셉, 콜럼부스 등이었다 하는 St. Germain 등, 7명의 대사가 그 관직을 맡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부에서는 현재 그들 중 대부분이 승진을 하였으며, 그 일례로 Maitreya대사(미륵보살)가 이미 Budda의 직을 승계했다는 주장을 펴기도 합니다.
이상의 내용은, 야훼에 관한 내용에선 이견이 있을지라도, 단지 Dr. Hurtak의 추종자뿐만 아니라 블라바츠키, 리드베처의 신지학이나 의 Alice Bailey의 Lucis Trust, 그 밖의 수많은 현대판 어중이떠중이 뉴에이지 그룹에서도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초창기의 노골적인 Lucifer Trust라는 이름은 나중에 Lucis Trust로 바뀌었습니다. 이는 정녕 그들이 믿는 것이 Lucifer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루시퍼는 문자의 의미 그대로 빛을 자져다 주는 자를 의미합니다. 즉 참된 진리의 화신인 것입니다. 그에 반해 야훼는 어둠의 제왕입니다. 재밌는 것은 Alice Bailey 역시 이에 대해 전적으로 그녀와는 의견을 달리하는 많은 뉴에이지 그룹이 교류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샴바라의 Djual Khul대사의 채널이었다는 점입니다. 라엘리언 무브먼트의 로고의 변천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례를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의 초창기 로고에 선명하였던, 방향이 전도된 卍자, 즉 법륜을 꺼꾸로 돌리는 형국인 나치 문양은 후에 두리 뭉실한 바람개비 모양으로 바꾸었지요.)
아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이라면 '스트로블로스의 마법사'라는 책의 주인공인 다스칼로스에 대해서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는 힐라라온대사와 예수의 사도 요한의 메시지를 전하는 채널이자 그들의 제자임을 자처하고 있지요. 다스칼로스는 승천한 대사인 그러나 살과 뼈를 가진 사람의 모습으로 자신에게 나타난 힐라리온 대사와 여러번 식사를 나누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한편 뉴에이지 단체에선 그가 4번째 비전 입문가였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는 아직 우리나라에 번역이 안 된 듯싶은 그에 관한 시리즈 3번째에서 (어쩌면 2번째일 수도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일화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직업적인 화가는 아니지만 그림 그리는 데에도 천부적인 재능이 있어 가끔씩 외부로부터 그림을 그려달라는 주문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의 그림에, 비록 남들이 의식하지 못할 지라도, 아주 강력하고 긍정적인 영적인 에너지를 싣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번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여호와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려고 칼을 뽑아 치켜든 장면을 그려달라는 주문을 받았
첫댓글참 미묘하게 얽혀 있네요. 채널의 글들은 어떤 기대감이나 막연한 기다림을 만들기도 하는것 같습니다. 사랑이 많고 전쟁이나 파괴를 싫어하는 이들이 파괴되는 일들을 보면... 영적인 부분에서 항상 해결이 안되는 것이 강자의 원리 즉 숙명론적인 부분인것 같습니다. 약자는 어떻게 해서든 강한 무엇인가에 의해서 영향을 받게 되어버리는 관계
단지 그 모든것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선택권을 가진 내 자신을 계속 참구해 가는 것일 뿐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항상 강자의 원리 ,물질의 법칙에서 벗어나지 않는것 같습니다. 얼마나 나에게 집중할 수 있나 그리고 그것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 있나... 그래도 윤회권안에 있는 동안에는 원하는 것을 언제라도 할수 있는 자리가 좋을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누군가에게 자비와 사랑을 준다는 것은 그가 줄 수 있을 만큼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풍요롭다는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첫댓글 참 미묘하게 얽혀 있네요. 채널의 글들은 어떤 기대감이나 막연한 기다림을 만들기도 하는것 같습니다. 사랑이 많고 전쟁이나 파괴를 싫어하는 이들이 파괴되는 일들을 보면... 영적인 부분에서 항상 해결이 안되는 것이 강자의 원리 즉 숙명론적인 부분인것 같습니다. 약자는 어떻게 해서든 강한 무엇인가에 의해서 영향을 받게 되어버리는 관계
단지 그 모든것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선택권을 가진 내 자신을 계속 참구해 가는 것일 뿐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항상 강자의 원리 ,물질의 법칙에서 벗어나지 않는것 같습니다. 얼마나 나에게 집중할 수 있나 그리고 그것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 있나... 그래도 윤회권안에 있는 동안에는 원하는 것을 언제라도 할수 있는 자리가 좋을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누군가에게 자비와 사랑을 준다는 것은 그가 줄 수 있을 만큼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풍요롭다는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