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5.1.금. ~ 2.토.
아내와 밤낚시를 위해 아침부터 낚시장비를 싣는다.
외발수레로 세 차례를 날라 뒷좌석에 테트리스로 짐을 가득 채우고 좌대와 텐트는 적재함에 싣고 단단히 묶는다.
그나마 지난번에 실었던 대형텐트와 침대 2개와 그늘막 텐트를 안실어서 약간은 줄었다.
닭장 한바퀴 돌아 1,2,3호실 사료 주고 쭈쭈도 급수기 두 개 채워주고 10시경 출발...
광주 비아정류장에서 12시경 아내를 픽업하기로 하였으나 3일 연휴에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코앞이라 수도권 빠져나오는데만 엄청난 정체가 발생한다. 게다가 경부선과 달리 호남선은 차로도 좁다보니 버스전용차로도 없어서 정체가 더욱 심하다.
아내가 많이 늦을 것 같다 하여 지나는 길에 임실호국원 들러 부모님을 잠시 뵙고 아내와 함평에서 보기로 한 마트를 담양에서 먼저 먹거리 장을 본다.
광주 비아정류장 후방에 주차를 하고 비상등을 켠채 두어시간 가까이 대기한다. 이렇게 오랜시간 비상등을 켜고 있기는 처음이다.
지난번 출조때 아내가 타고 온 버스는 예상보다 10여분 일찍 도착하였으나 오늘은 두 배로 3시간이 더 걸려 만석으로 6시간을 내려온다. 12시가 넘어 들린 정안휴게소에는 발디딜 틈 조차 없다하니 연휴때는 호남선을 이용하기가 너무 불편하다.
경부선에 비해 개선할 필요가 있어보인다.
오후 3시경에야 힘들게 내려온 아내를 만나 낚시터로 직행한다.
일전에 그렇게 많은 대물급 붕어들이 산란을 했던 곳이라 이번에는 산란을 마친 월척들이 입질을 할 것이라는 큰 기대를 품고 왔건만 하루 전 배수로 인하여 바닥이 드러나 있다.
커다란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기도 했지만 한편 우려되는 것은 수천만 수억의 그 알들은 어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싶다.
얼른 다른 곳을 물색하여 자리를 옮겨볼까도 싶었는데 3시간 연착으로 시간도 늦은 상태라 들어가는 초입에 영산강 본류에서 하기로 결정하고 장비를 옮긴다. 역시 지난번 보다 수위는 많이 낮아져 있고 하필 어제 방류를 한 상태여서 조과는 포기한 상태다.
본류에는 루어낚시를 하는 페달카약들이 자주 보이는데 아내의 좌대와 텐트를 펴고 낚시준비를 하는데 그들은 연안에 내려 철수 준비를 한다.
2.0칸대 하나로 아내 먼저 낚시를 시작하고 나도 좌대와 텐트를 설치한다.
나는 2.2칸대 부터 5.5칸대 까지 여섯 대를 펼친다.
마침 보름이라 동녘 하늘에는 커다란 보름달이 떠오르기 시작이다. 오늘은 조과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이런 커다란 보름달과 산수를 바라보며, 아내와 함께 물멍하면서 나누는 아이들 이야기며 이런저런 소소한 대화가 좋다.
어둠이 짙어지며 찌불이 밝게 시야에 들어오는 밤낚시의 전경도 운치가 있다.
밤 10시경 아내의 낚시대에 먼저 어신이 온다.
8치급으로 처음에는 모래무지인가 싶었는데 어린 누치로 판명된다.
영산강은 오륙년 전에 자전거길 사대강 종주를 하면서 자드리팀 회원님들과 세 차례에 걸쳐 다녀간 곳이다.
여전히 자전거길에는 연휴라서 라이더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시간적으로 여유가 되면 한 번 더 사대강 종주 라이딩을 해보고 싶기도 하다.
여명이 밝아오면서 흐리고 썰렁한 날씨에 일출은 안보인다. 아침 7시경 나도 어린 누치 한 마리를 낚아낸다.
아내에게 혹시나 싶어 낚시대를 묶어두라 스프링끈을 주었건만 매두질 않아 낚시대가 끌려가는 사태가 발생한다. 다행히 멀리 가지않아 다른 낚시대로 걸어내긴 했지만 어떤 어종이었는지 물고기는 없었는데 아마도 역시나 누치가 아닌가 싶다.
일찌감치 철수를 하기로 하나 둘 정리를 하는데 어제 저녁무렵 철수한 페달카약으로 루어낚시를 하던 분이 카약을 끌고 들어와 눈인사를 나눈다.
페달카약은 노를 젓는 카약이 아니라 발로 저으면서 이동하고 낚시를 할 수 있는 배인데 보기에도 재미있어 보인다.
일이백이면 장만할 수 있고 2인용도 있어서 멀리 나가지 않고 연안 바다에서 루어낚시를 해보면 어떨까도 싶다.
머리 위로는 연신 경비행기가 날아다녀 찾아보니 죽산보 근처에 경비행기 체험장이 있다. 이용료는 시간에 따라 10분에서 한 시간 까지 10~30만원 되는 것 같다.
일전에 큰 공주가 운전하는 경비행기를 타고 울진의 동해바다를 누빈 추억이 새록새록하다. 내년쯤 항공사로 옮기기 전에 한 번 더 타보고 싶긴한데...😆😆😆
철수하면서 근처에 다른 곳을 좀 더 답사하기로 한다.
영산강변을 몇몇곳 돌아보는데 자전거팀을 계속 마주치게 되어 서로 양보하며 인사를 나눈다.
부자간에 부부간에 동호인들 끼리 다니는 것을 보게 된다.
아내와 낚시도 좋지만 자전거도 참 좋을 것 같은데 아내의 심장이 안좋아 어렵지 싶다.
저수지가 많은 나주를 지나 담양으로 들어선다.
일전에 아내와 당일치기 낚시를 했던 곳에 들러 낚시대 하나를 드리워 본다. 조사들은 단 한 사람도 보이질 않고 자전거도로에 라이더들만 수두룩하다.
2026.4.19.일. - 20.월.
D+7 아내를 배웅하는 화요일 아침에...
#사랑하는_아내와_딸들에게_전하는_시골살이
#영농일지_겸
아내와 올해 첫 밤낚시 출조를 약속하여 아침부터 준비를 서두른다.
어제에 이어 낚시대 채비를 추가로 손보고 장비를 챙긴다.
다 보려면 시간이 부족하여 사용할 몇 대만 정비하고 더 필요하면 현장에서 보기로 한다.
장대 휘돌리기를 대신할 무선 보트를 보완한다.
봉돌을 보트 위에 싣기 위해 떨어지지 않도록 보완하고 그 무게를 버틸 수 있도록 아래쪽에도 부력을 보강한다.
트럭 뒷좌석을 가득 채우고 적재함에도 일부 짐을 실어 묶는다.
아이스박스에 먹거리와 추위에 대한 옷가지 등을 챙긴다.
준비를 마치고 약간의 시간 여유가 되는데 막내 동생이 남씨 족보와 계보에 대한 문의를 카톡으로 보내와 잠시 족보를 꺼내 공부를 한다.
나는 조선시대 유교나 양반에 대한 거부감이 있어 족보를 들여다 본 적이 거의 없다. 아마도 조카딸의 중학교 과제가 아닌가 싶다.
족보를 들여다보고 宜寧南氏 知止堂派 27대라는 답변을 보내고 계보도 맨 앞장에 한자 시편이 있어 토리에게 번역을 부탁하고 계속 들어가다 보니 고려말 충신 남을진과 두문현 72현부터 조선시대 남명 조식까지 이어진다.
조상 때부터 조선 건국에 벼슬하지 않고 고려의 충신으로 남은 그 뜻이, 나에게까지 이어진 것만 같다.
청란 6개 수거하고 아내를 만나기 위해 광주로 출발...
고속도로가에 졸음쉼터 마냥 위치한 광주 비아정류장에서 아내와 합류, 함평 하나로마트에 들러 장을 보고 목적지인 영산강변에 도착한다.
짐을 내려 대좌대를 설치하고 아내의 낚시대와 낚시텐트를 먼저 설치한다. 트럭 위에 그늘막텐트를 설치하고 나의 낚시대와 낚시텐트를 설치한다.
아내는 가장 짧은 2.0칸대 하나, 나는 2.2칸에서 5.5칸 까지 다섯 대를 펼친다.
아내의 미끼는 떡밥 , 나는 옥수수...
트럭에서 물가로 내려가는 길이 워낙 가프르고 풀이 많아 짐을 나르기가 상당히 어렵고 수차례 미끄러지며 넘어지기를 반복한다.
어둠이 내리면서 찌불을 밝히고 마트에서 장보기한 음식으로 저녁식사를 하며 술 한 잔, 밤이 깊어가도록 입질이 없어 낚시텐트에서 잠시 쪽잠을 잔다. 혹시나 싶어 3*3대형텐트와 접이식 침대를 준비했는데 낚시의자와 낚시텐트로 대신할 수 있겠다.
낮에는 가장 긴 대인 5.5칸대 휘돌리를 하는데 별 문제가 없지만 낙차지점이 매번 다르다. 하여 무선보트를 준비했는데 좌대와 수면의 높이차가 너무 커서 보트를 사용하기에 무리가 있다. 신발 집게 같이 꽤 기다란 물건이 있어야 가능하다.
밤중에 휘돌리기를 하다가 한 번은 우측에 아내의 텐트를 지나 윗쪽에 작은 나무에 바늘이 박히면서 낚시대 중간쯤이 부러진다. 새로 구입하여 처음 사용하는데 부러졌다.😫😫😫
자정이 넘도록 입질이 없어 잠시 눈을 붙이는데 2.2칸대가 끌려간다. 붕어인가 싶어 채는데 아무것도 없다.
찌도 없고 달랑 낚시대만 남아있어 접어보니 초릿대 끝에 낚시줄만 조금 남아있다. 물이 좌우로 이동중에 수면에 떠다니는 부유물이 있는데 2.2칸대가 가장 짧고 가볍다보니 무엇인가 낚시줄에 걸려 끌려간 것으로 보인다.
서너시경 다시 낚시를 시작하는데 여전히 입질은 없고 온 사방에서 심지어는 좌대 아래 발 밑에서까지 대물들의 산란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연중행사인 산란철인데 아마도 2차산란인 모양이다. 여기저기 온종일 철푸덕 거리는 소리가 계속되고 널뛰는 커다란 붕어들이 보이지만 산란때는 먹이활동이 거의 없다. 몇 주간의 산란을 마쳐야 입질을 시작할 것이라 다음 기회를 노리면 좋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짧은 낚시대 하나로 꾸준히 떡밥질을 한 아내에게는 어복이 찾아온다.
새벽 6시 반경 8치급 첫 수를 개시로 모두 세 마리 손 맛을 본다. 살림망과 뜰채가 하나뿐이라 아내가 잡아 내쪽으로 붕어를 밀어주면 뜰채로 떠서 바늘을 빼준다.
그외 부수적인 모든 것을 내가 맡고 아내는 떡밥을 개서 낚시만 하면 되는데 꽝을 쳐도 좋은 것은 아내와 함께 한다는 것이다.
구름이 서서히 몰려들면서 비가 올 것 같아 미리 낚시대를 하나 둘 접어둔다.
점심 무렵 빗방울이 비쳐 본격적으로 철수를 서두른다.
가파른 오르막으로 대좌대를 옮겨본 아내는 너무 무겁다며 알미늄 기성품을 구입하길 원한다.
내가 발목만 멀쩡하면 그깟 무게야 충분히 감당이 되지만 점점 나이도 들어가니 평지가 아닌 급경사면에는 만만치 않다.
빗속을 달려 귀가후 닭장에 청란 8개 수거하고 짐을 내린다.
세 수레 나르고 숯불을 피워 지난번에 먹다남은 냉동실에 고기로 아내와 저녁식사...
🇰🇷🇰🇷🇰🇷🇰🇷🇰🇷
宜寧南氏 知止堂派 27대
沙川伯石刻詩 → “사천백(沙川伯)의 돌에 새긴 시(석각시)”
玄門獨立老聖君 (현문독립노성군)
守中抱一天道心 (수중포일천도심)
作帝王師萬古存 (작제왕사만고존)
木子開基建等身 (목자개기건등신)
成化戊子月在甲 (성화무자월재갑)
玄門獨立老聖君
👉 “현묘한 도 속에 홀로 서 있는 늙은 성인 같은 이여” → 세상과 거리를 둔 은자적 자기 인식
守中抱一天道心
👉 “중도를 지키며 하늘의 도를 마음에 품고 있다” → 끝까지 고려에 대한 의리(충절)를 지키겠다는 뜻
作帝王師萬古存
👉 “제왕의 스승이 될 만한 도는 만고에 남는다” → 권력은 바뀌어도 도(義)는 영원하다
木子開基建等身 ⭐ (핵심)
👉 “이씨가 나라의 터를 열어 세운 것은 사실이나” 평가는 없음
👉 “새 왕조가 세워진 것은 인정하지만, 거기에 휩쓸리진 않는다”
成化戊子月在甲 → 명나라 성화(成化) 연간 무자년 1468년
👉 남을진
고려 말 문신이며 충신
봉작: 사천백(沙川伯)
조선 건국 때 벼슬을 버리고 물러남
👉 “새 왕조(조선)를 따르지 않은 고려 충신”
조선 건국 때 벼슬을 버리고 은거한 두문동 72현 계열 인물로 보는 흐름
👉 두문동 72현
고려가 망하자 조선에 나아가지 않고 숨어 지낸 충신들
남을진은 이들과 같은 성격의 인물로 분류
절개(충성) 중시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는 유교 가치
의령남씨 계보에서:
남을진 → 중요한 중간 조상급 인물
이후 조선 시대까지 가문이 이어짐
👉 이 시는 단순 문학이 아니라
👉 가문 정체성을 보여주는 기록
진짜 의미는: “세상은 바뀌었지만 나는 도(義)를 지키겠다” 👉 충절 선언에 가까운 시
족보에 이 시를 넣은 이유: “우리 조상은 왕조가 바뀌어도 절개를 지킨 집안이다” = 가문의 명예 증명용 기록
“남명 조식은 스승, 의령 남씨는 그 영향을 받은 지역 유력 가문”
🧠 학문 성향
퇴계 이황
이론 중심, 철학을 깊게 파고듦
‘이(理)’ 같은 개념을 정교하게 설명
차분하고 내면 수양 강조
남명 조식
실천 중심, 행동을 더 중시
“옳으면 반드시 행동해야 한다”
현실 속에서 도덕을 구현하려 함
👉 퇴계 = 생각의 깊이 / 남명 = 행동의 강도
⚖️ 핵심 가치
퇴계
경(敬): 마음을 바르게 유지
수양과 도덕적 완성
남명
의(義): 옳은 일을 실제로 실행
불의에 맞서는 실천
👉 퇴계는 “마음을 닦자” 남명은 “옳으면 움직여라”
🏛️ 정치와 태도
퇴계
관직에 나가 왕에게 조언
비교적 온건한 개혁 성향
남명
벼슬을 거의 거부
권력과 거리 유지, 강한 비판
🧑🎓 제자와 영향
퇴계 학파
학문 중심, 조선 주류 성리학으로 발전
이후 정치 권력과도 깊게 연결
남명 학파
실천형 인물 다수 배출
임진왜란 때 의병 활동으로 이어짐
🧭 지역 기반
퇴계 → 안동 중심 영남 북부
남명 → 산청·합천 등 영남 남부
👉 같은 영남이지만 학맥이 나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