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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나팔 소리의 의미 (민 10:1-10)
하나님의 교육방식은 참 진보된 방식입니다. 하나님은 시각도 사용하시고, 청각도 사
용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진해야 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시각을 사용하셨습
니다. 구름기둥이 장막 위에 있다가 올라가면서 움직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구름
기둥을 따라가면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시각을 사용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신 예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에게는 시각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시각
에 장애를 가진 분들도 있기 때문에 청각을 사용하는 것이 유용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께서는 눈으로 볼 수 있도록 하실 뿐만 아니라 귀로도 들을 수 있도록 여러 가지 규례
를 제정해 주신 것입니다. 귀로 들어서 “아하! 떠날 때가 되었구나. 아하! 이제 전쟁
할 때가 되었구나.” 하는 사실을 알도록 하셨습니다. 시각뿐만 아니라 청각도 사용하
신 하나님이십니다. 얼마나 빈틈이 없고 세심하신 하나님이십니까?
1. 은나팔 규례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서 받은 규례 가운데 마지막 규례입니다. 마
지막 규례이면서 아마 가장 작은 규례일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은나팔규례’라
고 부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산에서 머무르면서 십계명과 각종 제사법을 받았
습니다. 성막을 짓는 법, 사회법 같은 큰 법들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 중에 마지막으
로 받은 규례가 바로 이 ‘은나팔규례’입니다. 가장 작은 규례이며, 가장 마지막 규
례입니다. 그러나 이 은나팔 규례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중요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적인 교훈도 풍부한 규례입니다. 물론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행진할 때를 알
리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을 고안해 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200만을 지휘하려
면 어떻게 해야할까? 북소리를 내볼까? 둥둥둥둥. 네 번 두드리면 집합이다. 둥둥둥둥
둥둥. 여섯 번 두드리면 행진이다.’ 이런 식으로 고안해 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니면 옛날 우리나라에서처럼 파발마 같은, 소식을 전하는 일꾼들을 두어서 소식을
증거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자기의 생각대로 행동하지 않았습니
다. 하나님께서 세심한 부분까지 분명한 규례를 주셨기 때문에 인도하신 그대로 따라
갔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민수기 10장 1절부터 10절까지에 기록된 은나팔 규례
의 내용과 그 영적인 의미를 생각하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2. 은나팔 규례에 나타난 하나님의 마음
첫 번째로 우리는 이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의 마음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작은
일도 돌보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의 모든 작은 면까
지도 세심하게 살피시고 치료해주시는 분이시라는 진리를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는 당신의 자녀들을 위해 큰일도 다 예비해 주셨습니다. 천국에 가서 거할 집도 예비
해 주시고, 또 천국에 들어갈 패스포트(passport)도 이미 준비해 주셨으며, 비자도 이
미 발급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천국에 입고 들어갈 의의 예복도 이미 다 준비
해 주셨습니다. 의의 예복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
고 침례를 받는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 나그네와 같은 인생을 마치고 이 땅을 떠나게 되면 거할 집도 마련하시고, 비자도
주시며, 입고 들어갈 예복도 주심으로써 천국에서 우리를 맞아주실 만반의 준비를 다
갖추신 것입니다. 또한 이 땅에서 살아갈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고아처럼 살기
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보혜사 성령을 우리 마음속에 주셨습니다. 보혜사 성령
이 우리에게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되어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고 깨닫게 하시며, 우
리에게 능력을 주시고 격려를 주셔서 이 잠시 잠깐 사는 험한 나그네 세상을 바르게
살도록 축복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우리 성도들을 위해서 큰 일만 돌보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주 작은 일, 아주 세심한 면까지 돌보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과
연 나를 아실까? 하나님께서 과연 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계실까? 내 얼굴에 지금
종기가 났는데 하나님께서 이런 것까지도 아실까? 내가 지금 머리가 아픈데 이런 것
도 아시나? 지금 내 마음에 고민이 있는 것도 하나님께서는 아시는가? 내 자녀에게 문
제가 있어서 내가 기도하고 있는 것도 아시는가?’ 우리는 이런 질문들을 던져 볼 때
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하나님께서 아시겠습니까? 모르시겠습니까? 아십니다. 관
심을 가지고 사랑을 베풀어 주시겠습니까? 아니면 무관심 하시겠습니까? 관심을 가지
고 사랑을 베풀어 주십니다. 마태복음 10장 30절 말씀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희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
라” 우리 몸의 지체 가운데서 가장 작고 소홀히 여기는 것이 있다면 아마 머리카락
일 것입니다. 머리카락이 우리 육신의 큰 부분은 분명히 아닙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
서는 이 머리카락을 다 세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머리카락의 숫자가 얼마나 많습니
까?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의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다고 성경은 증거합
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가장 작고 연약하며 세미한 부분까지 세심하게 신경을 쓰고
계신다는 하나님의 분명하신 선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아주 세심한 부분이라도
하나님께 아뢰어서 하나님께서 기억하신바 되는 귀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
으로 축원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 성도들의 작은 부분까지 돌보실 뿐만 아니라, 우리 성도들
중에서 지극히 작은 자들에게도 큰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25장 40절에서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
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또 45
절 말씀에서도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를 큰 자와 동일하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이 세
상에 큰 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께 큰 자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작은 자라고 여기는 사람들, 스스로를 작은 자라고 여기는 하나
님의 백성들과 당신을 동일하게 여기시고, 사람이 그들에게 행한 것을 곧 당신에게 행
하신 것으로 생각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서 혹시 ‘내가 여기 와서 예배를 드
리지만 목사님께서 나를 알아주실까? 하나님께서 나를 알아주실까?’라고 생각하는 분
이 계시다면, 바로 그런 분을 하나님께서 알아주시고 당신과 동일하게 여기신다는 사
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작은 자를 소중
히 여깁니다. 큰 자를 좆아 다니면서 아첨하지 않고, 작은 자를 소중히 여겨 관심을
가지고 사랑을 베푸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는 작은 자를 살피고, 소자에
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준 사람을 향해서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마 10:42)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결단코’라고 하는 부사는 예수님께
서 많이 사용하시는 단어가 아닙니다. 그러나 소자를 살피고 물 한잔이라도 건네준
그 사랑과 관심에 관해서는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서 작은 사람, 어려운 사람을 살피시기를 바랍니
다. 특별히 12월, 이 크리스마스 시즌에 어려운 사람, 슬픈 사람, 고통 받는 사람들
을 살피고 나누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성도들이 작은 일을 크게 생각하기를 원하십니다. 마태복음 25장 21절
에 다섯 달란트 받은 자에게 주인이 말합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
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
할 지어다” 작은 일에 충성한 사람에게 하나님은 많은 것을 맡기시고, 주인의 즐거움
에 참여케 하십니다. 저는 공군출신인데요. 공군의 군사훈련은 육군의 훈련에 비해서
작은 일을 더욱 중요하게 여깁니다. 왜 그러냐면 수십억이나 하는 펜텀 비행기라고 할
지라도 나사 하나 잘못 풀리면 비행하다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
에 모든 군사 훈련이 작은 것을 중요하게 여기도록 초점을 맞춥니다.
일본 사람들은 작은 일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평론가 이어령씨는 일
본을 가리켜서 ‘축소지향주의 국가’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런데 일본은 축소지향주
의 국가이면서도 세계적인 대국이 되었습니다. 그 이유가 뭡니까? 일본사람들은 작은
일 하나라도 귀중히 여기고 무시하지 않는 삶의 태도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
문에 일본은 하나님을 제대로 믿지 아니하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경제적인 대
국이 된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나의 작은 일에도 지대한 관심과 사랑을 갖고 계시다는 사
실을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작은 일이라도 하나님께 아뢰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가정일이든, 직장일이든, 교회일이
든 큰 일만 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작은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늘 생각하고 작은 일
에도 충성하기를 바랍니다. 사람을 대할 때에도 사람을 무시하면 안됩니다. 식당에 가
서도 종업원들을 무시하지 마시고 함부로 반말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도들은 오
히려 작은 사람들을 대우해 주고, 그들의 인권을 인정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들
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귀한 영혼들이라 생각하고 작은 자에게 우리의 최선을 다
할 때에,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기억해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
원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은나팔 규례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작은 일, 작은 것, 작은
사람을 돌보시는 위대한 마음을 배울 수가 있습니다.
3. 은나팔의 재료
은나팔 자체에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첫째로, 순은으로 만드는 은나팔은 순수성의 상징입니다. 은나팔의 재료는 은이지만
은이라고 해도 똑같은 은이 아닙니다. 은나팔을 만드는 재료는 100% ‘순은’이어야
합니다. 조금도 불순물이 섞여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시편 12편 6절 말씀에 “여호와
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라고 했습니다. 은은
불을 뗀 흙도가니에 넣어서 일곱 번을 단련해 찌꺼기를 제거해야 순은이 된다는 것입
니다. 은나팔은 이 순은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은 주님의 일에 쓰이는 도구는 순
수해야함을 의미합니다. 사람의 마음이 복잡하고 순수하지 못하며 동기가 불순하다면
주님의 일에 쓰일 수가 없습니다. 불순한 사람은 마귀의 도구는 될지언정 하나님의 도
구는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밥상 위에 금그릇이 있어도 더럽고 순수하지 않
다면 그 그릇에 음식을 담아 드시겠습니까? 쓰레기가 있는 금그릇을 가져다가 음식을
먹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에 쓰임받기를 원한다면 순수해야 합니다. 우
리 영혼이 99%가 아니라, 언제나 100% 순수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시는 영혼이 되시기
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쳐서 만드는 은나팔은 온전한 하나님의 은혜를 말합니다. “은나팔 둘을 만들
되 쳐서 만들어서 그것으로 회중을 소집하며 진을 진행케 할 것이라”(2절) 은나팔은
쳐서 만들어야 합니다. 쳐서 만든다는 것은 은덩어리를 가지고 두드려서 만들라는 뜻
입니다. 은나팔 전체는 한 조각으로서 연결부분이 하나도 없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도 마가복음 2장 21-22절에서 섞거나 붙이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생베조각을 낡
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기운 새 것이 낡은 그것을 당기어 헤어
짐이 더하게 되느니라” 헌 옷을 고치는데 새 천 조각을 가져다가 꿰매 놓으면 이것
의 신축성 때문에 도리어 옷을 더 못쓰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또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부대를 버리게 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낡아서 쭈글쭈글한 부대에 포도주를 넣
게 되면 발효현상이 일어나서 결국 부대도 못쓰게 되고 포도주도 쏟아지게 된다는 말
씀입니다. 이 말씀의 영적인 의미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이 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요, 인간의 공로는 0.00001%도 섞이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그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100%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창세전에 택함 받은 것도, 죄악에
서 우리를 불러내신 것도, 회개한 것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게 된 것도, 의롭
다 하심을 받게 된 것도 100%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회개와 믿음은 인간의 자유의지
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 50%와 인간의 자유의지 50%로 구원을 받는다는
교리는 생베 조각을 낡은 조각에 갖다 붙이는 교리입니다. 은과 은을 덧이어서 나팔
을 만드는 것과 같은 교리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100% 하나님
의 은혜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
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말씀을 우리의 마음속에 새기
고 100%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 구원 얻은 것에 감사하며 평생을 살아가시는 성도님
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나팔수는 나팔 규례를 백성들에게 정확히 교육해야 하며, 또 정확하게 나팔
을 불어야 합니다. “그 나팔은 아론의 자손인 제사장들이 불지니 이는 너희 대대에
영원한 율례니라”(8절). 나팔은 아무나 부는 것이 아니라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이 붑
니다. 은나팔은 두 개를 만들어서 제사장들이 번갈아 불게 되어 있습니다. 고린도전
서 14장 8절에 “만일 나팔이 분명치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쟁을 예비하리요”라
고 했습니다.
개역성경 민수기 10장 4절에서 ‘하나만 불 때에는’이라는 동사는 일반적으로 영어성
경에 ‘sound’의 의미로 기록되어 있으며, 이 ‘sound’의 정확한 의미는 ‘long
blast’, 즉 ‘소리를 끊지 않고 계속해서 길게 불다’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반면
에 개역성경 민수기 10장 5절에 기록된 ‘울려 불 때에는’이라는 구절은 일반적으로
영어성경에 ‘sound the blast’의 의미로 기록되어 있으며, 이것은 ‘stacatto
blast’, 즉 ‘딱딱 끊어서 불다’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길게 부는 나팔
(sound/long blast)’은 평온할 때 모임을 갖기 위한 의도로 부는 것이며, ‘딱딱 끊
어서 부는 나팔(sound the blast/stacatto blast)’은 긴급한 상황, 즉 전쟁이 나서
군인을 소집해야 하거나 진을 옮겨서 행진해야 하는 상황에서 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팔수가 나팔을 부는 것처럼 “크게 외치라 아끼지 말라 네 목소리를 나팔
같이 날려 내 백성에게 그 허물을 야곱 집에 그 죄를 고하라”(사58:1)고 말했습니
다. 그러므로 나팔을 분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역자들의 말씀 증거 사역
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4. 은나팔을 부는 세 가지 경우
본문에 따르면 나팔은 세 가지 경우에 붑니다. 첫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 앞
에 모아 함께 예배드리고자 할 때 부는 나팔입니다. 예배드리기 위해 부는 나팔은 그
냥 길게 붑니다. 나팔을 ‘빵~’하고 불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하! 예배할 때가 되
었구나. 회막문 앞으로 나아가자.’하며 모입니다. 4절에 보면 “하나만 불 때에는 이
스라엘 천부장된 족장들이 모여서 네게로 나아올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천부장 된
족장들만 모일 때에는 나팔을 하나만 붑니다. 그런데 3절을 보니까 두 개를 불 때에
는 “온 회중이 회막문 앞에 모여서 네게로 나아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
성들이 회막문 앞에 모여서 무엇을 합니까? 10절을 읽어봅니다. “또 너희 희락의 날
과 너희 정한 절기와 월삭에는 번제물 위에와 화목제물 위에 나팔을 불라 그로 말미암
아 너희 하나님이 너희를 기억하리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나팔이 길게 울
리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회막문 앞에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예배는 오늘날 신약시대의 예배와는 다릅니다.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
제, 속건제 등 5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입니다. 짐승을 잡아서 그 피를 흘리
고 고기를 불태워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것입니다. 그 때에도 나팔수는 번제물과 화목
제물 위에 나팔을 불어야 합니다. 나팔을 불면 그 날은 희락의 날이 됩니다. 나팔이
울릴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음에 즐거움을 갖게 됩니다. 이처럼 예배드릴 때는 즐
거움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여러분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기쁨이 임하시기를 주의 이
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렇게 나팔을 불게 되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게 됩니까? 10절 후반부에 “그로 말미암
아 너희 하나님이 너희를 기억하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억하신다는
말씀은 우리를 축복하시고 형통케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
의 삶에 가장 중요한 원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예배하는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하나
님께서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고 했습니다(요 4:24). 바른 자세
와 바른 마음으로 예배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그의 인생과 가정을 형통케
하시는 것입니다. 바른 예배는 형통한 삶에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예배를 소홀하게
여기고 업신여기며 바르지 못한 자세로 예배를 드린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형통치 못
할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예배 생활입니다. 예배를 바르게 드리는 사람은 형통하고 예
배를 소홀히 드리는 사람은 형통치 못합니다.
둘째로 은나팔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행진할 것을 명령할 때에 붑니다. 5절 말씀에
“너희가 그것을 울려 불 때에는 동(東)편 진들이 진행할 것이요 또 제 2차로 울려
불 때에는 남(南)편 진들이 진행할 것이라. 무릇 진행하려 할 때에는 나팔 소리를 울
려 불 것이라”고 했습니다. 구름기둥이 회막문 위에 있다가 떠올라서 이동하면, 동시
에 제사장들은 나팔을 붑니다. 1차로 나팔을 불면 유다, 잇사갈, 스불론 세 개의 지파
가 있는 동편 집이 진행을 합니다. 그 다음 간격을 두고 2차 나팔소리가 울리면 남쪽
에 있는 르우벤, 시므온, 갓 지파의 남편 진이 행진을 시작합니다. 그 다음에 또 울리
면 서쪽에 있는 에브라임, 므낫세, 베냐민 지파가 행진을 시작합니다. 그 다음에 또
울리면 북쪽에 있는 단, 납달리, 아셀지파가 행진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렇게 각각
세 개의 지파씩, 4그룹을 구성해서 동, 남, 서, 북의 순서로 진행을 하는 것입니다.
맨 앞에는 법궤가 진행합니다. 그리고 동편 진 다음에는 게르손, 므라리 자손들이 수
레에 성막 짓는 기구들을 싣고 진행하며, 그 다음에는 남편 진이, 그 다음으로는 고
핫 자손들이 성물을 어깨에 메고 행진을 하게 됩니다. 이처럼 울려 부는 나팔소리는
행진을 위한 부르심입니다. 이 나팔소리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은 뒤
로 물러서서는 안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경건생활이나, 예배생활이나, 기도
생활이나, 헌신생활이 작년보다 올해가 나아야 하고, 올해보다는 내년이 나아야 합니
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늘 진보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
로 축원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자전거와 비슷합니다. 후진기어가 있어서 뒤로 가는 자전거를 보셨
습니까? 자전거는 앞으로만 갑니다. 자전거는 정지하고 서있을 수도 없습니다. 정지하
면 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앞으로만 나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는 물러설 수 없습니다.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히브리서 10장 38절에 “오직 나의 의
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든 면에서 진보를 보이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
름으로 축원합니다. 위대한 스펄전 목사님은 언젠가 신학교 학생들에게 이런 권면의
말씀을 주셨다고 합니다. “여러분이여 모든 면에서 진보를 보이십시오. 말하는 것에
도 진보를 보이시고, 도덕성에도 진보를 보이시고, 헌신에도 진보를 보이시고, 사역
의 능력에도 진보를 보이십시오.” 여러분의 신앙이 지금 여러 가지 부족한 점이 있을
지라도 내년에는 더욱 진보할 수 있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은나팔 소리는 전쟁을 하라는 명령입니다. “또 너희 땅에서 너희가 자기를 압
박하는 대적을 치러 나갈 때에는 나팔을 울려 불찌니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를 기억하고 너희를 너희 대적에게서 구원하리라”(9절)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에 살고 있었을 때, 아무에게도 침략을 받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러나
이스라엘은 많은 대적들로부터 공격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침략
을 받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본질적인 3대 원수, 악의 3총사가 있습니
다. 마귀와 세상, 그리고 우리 안에 있는 욕심, 즉 죄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악의 3총사와 매일 매일 싸워야 합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본질은 영적인 전쟁입니다.
신앙생활은 전쟁이지 평화가 아닙니다. 우리는 오늘도 마귀와 싸워야 하고, 우리를 유
혹하는 세상과 싸워야 하고, 나를 넘어뜨리려고 하는 죄성과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이 전쟁 나팔소리는 전쟁에 나가라는 참전의 나팔소리일 뿐만 아니라 전쟁에서 여호와
께서 우리를 기억하시고 우리 대적에게서 구원하리라는 승리의 보장이기도 합니다. 얼
마나 감사합니까? 우리 성도들은 안싸워서 지는 것이지 마귀와 싸우면 반드시 이깁니
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인 싸움에서 물러서지 말고 나가서 싸워야 합니다. 싸우면
우리는 반드시 넉넉히 이기는 자가 될 것입니다. 이 은나팔 소리는 지금도 주의 일꾼
들을 통해서 세계만방에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주의 백성들이 일어나 예배하고, 일어
나 행진하며,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하라고 요청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나팔소
리를 들으면서도 장막에서 졸며, 자며, 놀고, 쉴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 귀에는 이 은
나팔 소리가 들리지 않으십니까?
결론
이제 우리는 한 가지 나팔소리를 더 들어야 합니다. 이것은 미래에 들을 나팔소리요,
재림의 나팔소리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리라고 하신 그 약속은 하나님의 나팔소
리와 함께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절에 “주께서 호령과 천사
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라고 했습니다. 그 때
에 살아있는 사람들은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고 그대로 구원의 몸을 입게 될 것입니
다. 그 날은 우리 성도들에게는 완전한 승리의 날이요, 우리의 원수 마귀는 영영히 타
는 불 못에 던져지는 심판의 날이 될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설교자 찰스 피니 목사
님이 재림 설교를 하면서 나팔수 하나를 강대상 뒤에 숨겨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하
나님의 나팔로 예수님께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실 것입니다”라고 설교할 때에 나
팔수가 나팔을 불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어떻게 한 줄 아십니까? “아이고,
예수님 벌써 오십니까?”하면서 다 의자 밑으로 기어 들어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은나팔 소리를 즐거운 소리라고 했습니다. 시편 89편 15절에 “즐
거운 소리를 아는 백성은 유복한 자라”고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주님 재림하시는
그 날에 울리는 나팔소리가 여러분의 귀에는 즐거운 소리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
님께서 여러분을 기억하시고, 대적에게서 구원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예수님의 재림
하시는 그 날이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하며 기다렸던 여러분들 모두가 칭
찬받는 즐거운 날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