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연말에 주일학교 교지(가칭) 제작하고자 합니다. 응원 부탁드립니다.
교지1호
오늘 간식이 뭐예요 구억뜸도란말
사진
합덕성당 주일학교 목 차 Ⅰ. 성당소개 Ⅱ. 성당사진
Ⅲ. 복자 원시장시보 소개
Ⅳ. 본당신부님 축사
Ⅴ. 본당수녀님 축사
Ⅵ. 총회장님 축사
Ⅶ. 추천사
Ⅷ. 주일학교 선생님 말씀
Ⅸ. 주일학교 학생작품
Ⅹ. 나의 주일학교 시절 추억
Ⅺ. 주일학교학생 남기고 싶은 글
Ⅻ. 주일학교 설문조사 결과
오늘 간식이 뭐예요 합덕성당 주일학교 학생들이 가장 즐겨하는 말로 제목으로 정합니다.
구억뜸 창말 남쪽에 위하고 있으며 1929년에 지은 유명한 고딕식 천주교 구합덕 성당이 있다. 구합덕 성당은 원래 합덕본당으로 1890년 성립 되었기에 100년이 넘는다. 성당내에 메스트르(Maistre,孝)신부와 랑드르(Landre,洪)신부의 묘가 있다. 성당은 당진군 최초의 면천군 비방면 소합덕 사립소학교인 매괴학교가 남자부는 1907년에, 여자부는 1921년에 개교하였던 곳이다.(합덕읍지 ,p142) 도란말 현 서야중고등학교 자리를 중심으로 위치한 마을로 현재는 없어지고 1호만 거주한다. 옛날에는 바위너덜이 많고 암두포구가 있어서 암두리(巖頭里)라고 불리기도 하였다.(합덕읍지,pp142-143))
구억뜸도란말 우리성당이 위치한 지역의 옛 지명인 구억뜸, 도란마을을 합성한 언어로 우리주일학교 학생들의 교지를 명명한 것이다. 구억 : 구석진 곳 / 뜸 : 마을 / 도란(濤瀾) 큰 물결 (도란-倒卵 : 달걀을 거꾸로 세운) 돌다 일정한 축을 중심으로 하여 한 방향으로 움직이다 / 말 : 마을
[사진설명] 2016.10.22. 주일학교 복자원시장원시보 탄생지 소풍 Ⅰ.성당소개 1. 내포지역의 중심: 합덕 내포지역은 오래 전부터 한국 천주교의 못자리라고 할 만큼 교세가 강한 곳이었습니다. 1860년대 초 베르뇌 주교님께서 전국을 선교사가 상주하는 8개의 지역으로 나눌 때에 내포지역은 상부내포와 하부내포로 나눌 정도였습니다. 상부내포의 중심지는 홍성이었고, 하부내포의 중심지는 예산의 고덕이었습니다. 고덕면은 합덕읍과 바로 접해 있는 지역으로 메스트르 신부님과 랑드르 신부님께서 돌아가신 황무실이 중심이었습니다. 2. 본당설립 합덕성당의 시작은 1890년에 초대 주임신부님이신 퀴를리에 신부님이 부임하시면서부터 입니다. 퀴를리에 신부님께서는 황무실 아래에 있는 양촌(예산군 고덕면 상궁리)에 자리를 잡으셨습니다. 양촌과 지척에 있는 신리와 거더리 공소는 다블뤼 주교님, 위앵 신부님, 오매트르 신부님께서 거처하셨고, 체포되신 곳입니다. 퀴를리에 신부님께서는 교우들의 숫자보다는 이러한 것에 의미를 두어 양촌에 자리를 잡으셨지만, 1898년에 조그마한 언덕이 있고, 큰길가에 위치해있어 교통이 편리한 지금의 합덕 성당자리로 본당을 옮기셨습니다. 1898년에 본당을 이전하면서 사제관과 성당을 짓기 시작하여 이듬해에 완성을 보았습니다. 3. 성전건립 합덕으로 이주했을 당시 주변에는 2-3호 정도의 교우들만이 살고 있었으나 개종 운동이 일어나고 교우들이 이주하면서 교우촌으로 변모하였습니다. 교세가 증가하자 1929년에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큰 성당을 지으며 또 한 차례의 도약의 계기를 마련하였습니다. 이 성당이 봉헌되던 날의 광경을 경향잡지에서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습니다. “합덕, 가재(주: 서산 상홍리), 예산, 세 지방의 수천 명 교우가 일시에 모여와 70여 호의 교우 집은 모두 만원이 되었으며····· 익일 9일에는 아침 7시에 주교 각하께서 축성식을 거행하신 후 미사를 드리실 때 천여 명에게 성체와 102명에게 견진성사를 주셨더라.···· 이 경사를 미리 들은 관공서 직원과 외교 유력자들은 축하하는 정을 표하기 위하여 다수히 참예하였으며 그 외에 구경삼아 모여든 외교인은 무수하여 8,9 양일 동안의 합덕 동리는 사람바다를 이루었더라.” 4. 합덕성당의 경제와 사회사업 합덕 성당은 넓고 비옥한 평야지대에 위치해 있고, 서울대목구 소유의 농토가 광범위하게 분포해있었기에 여기서 나오는 소작료 수입으로 용산신학교를 운영하였고, 경제적으로 교회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합덕성당은 일찍부터 신교육이 들어온 곳입니다. 합덕성당에 세워진 매괴학교는 한말 애국계몽운동 시기 천주교가 교육계몽와 전교활동의 일환으로 1907년 세운 당진지역 최초의 신교육기관이었습니다. 그리고 합덕성당은 1908년부터는 인근에 부모 잃은 고아들을 거두어 각 교우 가정에 양육비를 지급하며 기르게 하는 사회사업을 시작하였습니다. 성영회(Saint Enface)는 1843년 프랑스에서 창설된 고아 구호 단체로 죽을 위험에 처한 아이들에게 대세를 주고, 버려진 아이들을 거두어 양육함을 목적으로 하였는데, 1852년 입국하신 메스트르 신부님께서 도입하셨습니다. 1939년경에 이르면 고아원 아동 수가 300명을 돌파하였고, 1947년에 백 필립보 신부님께서는 성당 한쪽에 고아원을 설립하였고, 성가소비녀회를 청하여 고아원 운영을 담당시켰습니다. 5. 합덕성당의 문화 ① 성모승천대축일 합덕성당은 성모승천대축일이 되면 성단 계단 밑에서부터 신작로 삼거리까지 합덕장의 상인들과 인근 지역의 보부상들이 몰려와 장터가 개설되어 대축일을 더욱 흥겹게 만들었습니다. 1931년도 성모승천 대축일에는 연 이틀 동안 2천 명의 관중들이 성녀 소화 데레사의 성극을 관람하였다고 합니다. ② 성체와 성혈 대축일의 성체거동 합덕성당의 장관을 이루는 행사는 바로 성체와 성혈대축일에 거행한 성체거동이었습니다. 이 성체거동은 6,25때도 거행되었는데, 본당에서는 청년 성가대와 악단이 구성되어 있었고, 페랭 신부님과 함께 순교하신 윤복수(라이문도) 회장님이 사비를 털어 마련한 북, 나팔, 트럼펫 등 악기도 있어, 한 달 전부터 맹연습에 들어갔고, 일주일 전 마을 순회 연주부터 시작하여 대축일 당일에는 페랭 신부님께서 성체를 모시고 행렬을 하며 그 행렬이 장관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성체거동 행렬을 보려고 마을 길가는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이 성체거동은 신자들에게 대축일을 알리고, 성체신심을 키우며, 지역 주민들과 일치하고 화합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성체거동은 공세리와 합덕이 번갈아 가면서 거행하다가 한동안 사라졌다가 김홍식(이냐시오) 신부님과 손범규(임마누엘) 신부님에 의해서 2007년 6월 12일 다시 복원되었습니다. 그리고 2009년에는 지역화합의 축제였던 것을 복원하기 위하여 전야제로 일치 음악회를 열었고, 또 성체거동 후 오후에는 흥겨운 풍물 한마당을 준비하였습니다. 6. 합덕성당의 인물 ①메스트르 신부님 합덕성당의 가장 큰 자랑은 신앙의 모범으로 삼을 만한 분들의 무덤이 있다는 것입니다. 메스트르(이 요셉) 신부님은 프랑스에서 태어나셔서 파리외방전교회에 입회하셨습니다. 마카오에서 파리외방전교회의 극동 대표부에서 활동하시면서 신학생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님이신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과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의 스승님이 바로 메스트르(이 요셉) 신부님이십니다. 1846년부터 여러 차례 입국을 시도하시다 결국 1852년 해로를 통해 조선에 입국을 하신 신부님께서는 성영회 활동을 시작하셨습니다. 성영회는 고아들을 신자 가정에 위탁하여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굶어가는 어린이들을 보살피기 위한 이 활동은 고아원으로 발전하였습니다. 메스트르 신부님의 영향으로 합덕성당에도 초기부터 성영회 활동이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신부님께서는 1857년 12월 20일 황무실에서 선종하셨고, 신부님의 유해는 1970년 합덕 성당 구내로 이장을 하였다가 2003년 4월 11일 대전신학교의 성직자 묘지로 이장되었습니다. 메스트르 신부님께서는 임종을 맞이하며 다블뤼 주교님으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으셨습니다. “천주께 기꺼이 목숨을 희생으로 바치느냐?” 그러자 메스트르 신부님께서는 얼마 남아있지 않는 힘을 다 모아서 이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주교님, 저는 첫날부터 그렇게 했습니다.” 고향을 떠나 낯선 나라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49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신 메스트르(이 요셉) 신부님. 천주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봉헌하신 메스트르 신부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에 합덕 신자들 또한 천주님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사셨기에 스승의 모범을 따라 김대건 신부님이 천주님을 위해 목숨을 바치실 수 있었고, 최양업 신부님께서도 천주님을 위해 한 생을 바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신앙의 전통은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사신 분이 계셨고, 그분의 가르침이 있었고, 또 그분의 가르침을 지켜왔기에 “천주님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신앙의 전통”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런 전통이 살아 있는 합덕본당이기에 아름다운 것입니다. ② 랑드르(홍 요한) 신부님 랑드르(홍 요한-쟝 마리 피에르 엘리아생 랑드르)신부님은 1828년 1월 5일 프랑스의 오쉬(Auch) 교구의 몽레알(Montréal)에서 출생하셨고, 1853년 12월 17일 사제서품을 받으셨습니다. 사제서품 후 소신학교 교사, 보좌신부를 거쳐1856년 10월 5일에 파리외방전교회에 입회하셨습니다. 베르뇌(Berneux) 주교님께서는 사제의 수 부족과 늘어나는 신자들 때문에 신자들을 위해서 사제를 더 파견해 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렇게 랑드르 신부님께서는 조안노 신부님과 함께 조선에 입국하셔서 서부ㆍ하부 내포지역을 담당하셨습니다. 하지만 조선에서 3년 정도 사목을 하신 신부님께서는 전염병에 걸리셔서 황무실에서 선종하시게 됩니다. 신부님께서는 1863년 9월 15일에 선종하셨고, 황무실에 묻히셨습니다. 신부님의 유해는 1970년 합덕 성당 구내로 이장을 하였다가 2003년 4월 11일 대전신학교의 성직자 묘지로 이장되었습니다. ③ 페랭 백문필(필립보) 신부님 합덕성당의 유명하신 신부님으로는 페랭 백문필(필립보) 신부님이십니다. 페랭 신부님께서는 1921년부터 1950년까지 합덕성당에서 사목하셨는데 신자들은 신부님을 성인으로 존경하였습니다. 신부님께서는 1차 전쟁 때 의무병으로 활동하시면서 약을 만드시는 것을 배우셨고, 안약, 고약 등을 잘 만들어서 사람들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당시 의료시설이 열악한 합덕에서, 또 돈이 없어서 병원에 갈 수 없는 사람들은 다치거나 부러지거나 하면 모두가 다 백 신부님을 찾아 왔다고 합니다. 백 신부님께서는 1950년 8월 14일 성모승천 대축일을 앞두고 성당에서 고해성사를 주고 계셨습니다. 인민군 세 명이 차를 타고 와서 군화를 신은 채 성당으로 들어와 “악질 반동 신부 나와!”하며 신부님을 찾았습니다. 이를 본 신부님께서는 “이놈들! 여기가 어디라고 버릇없이 마구 들어와. 너희들은 방에 들어갈 때 신을 신고 무례하게 들어가니? 여긴 성체를 모셔 둔 거룩한 곳이다.”라고 혼을 내셨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인민군들에게 붙잡혀 가셔서 대전 형무소로 이송되었고, 1950년 9월 26일 대전 목동 수도원에서 피살되셨습니다. ④ 심재덕 마르코 신부님 심재덕 마르코 신부님께서는 1943년부터 돌아가신 1945년까지 합덕본당의 보좌신부님이셨습니다. 장티푸스 환자에게 병자성사를 주신 후 신부님께서도 장티푸스에 감염되시어 돌아가셨습니다. 어느 신자가 어떤 상황에서 종부를 청하더라도 거절하지 않으시는 분, 그분이 바로 착한 목자입니다. 그래서 합덕의 신자들은 사제들을 존경하고, 사제들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도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그런 영향으로 합덕에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성소자가 생겨난 것입니다. ⑤ 윤복수(레이문도)회장님과 송상원(사도요한) 복사님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고, 착한 양들은 목자를 위하여 목숨을 내 놓습니다. 황석두(루카)성인께서 다블뤼 주교님과 신부님들을 모시고 오천 갈매못에 가서 순교를 하신 것처럼 윤복수(레이문도)회장님과 송상원(요한) 복사님께서도 신부님과 함께 순교의 길을 걸으십니다. 페랭 신부님께서 인민군들에게 붙잡혀 가신다는 소식을 듣고 윤복수(레이문도)회장님께서 근처에 있다가 쫓아오셨습니다. 인민군들은 “너는 뭐냐?”그러자 윤회장님은 “나는 신자 대표다.”하시며 신부님과 함께 가야함을 주장해 함께 체포되었습니다. 그리고 송복사님이 이 소식을 듣고 달려와 앞을 막으려 자신은 신부님을 모시는 복사니 같이 가야 한다고 해서 신부님과 함께 순교의 길을 가게 되십니다.
7.연혁 1890 초대 주임 남일량(퀴클리에, Curlier)신부 8월 양촌본당설립(예산군 고덕면 상궁리) 1891 교리학교 3교 설치 1892 성영회 설치 한옥성당 및 사제관 건축 1894 8월 간양골본당 폐지 및 통합 1895 6월 공세리본당 분할 1898 합덕리에 한옥성당 및 사제관 건축시작 1899 양촌본당에서 합덕본당으로 이전 및 개칭 1904 제2대 주임 홍병철(洪秉喆,루까)신부 부임 1906 제3대 주임 경원선(크렘프,Krempff)신부 부임 1908 매괴학교 개교식 수곡(서산)본당 분할 1914 9월 주임 원형근(라리보,Larribeau)신부 부임 1917 10월 제 5대 주임 박우철(朴遇哲,바오로)신부 부임 1920 제6대 주임 경원선(크렘프, Krempff)신부 부임 1921 제7대 주임 백문필(페렝,Perrin)신부 부임 1922 가톨릭 청년회 안나회 설립 1926 제1대 보좌 구천우(具天祐, 요셉)신부 부임 1927 신리 사적지 매입 1928 예산본당 분할 예수성심회 설립 매괴학교 폐교 1929 현 성당 축성 1931 제2대 보좌 범발오(Pierre)신부 부임 1935 백문필 신부 서품 25주년 은경축 1936 제3대 보좌 성재덕(베드로, Singer)싱부 부임 1938 제4대 보좌 김학용(시몬)신부 부임 1939 당진본당 분할 1943 제5대 보좌 심재덕(마르코)신부 부임 1945 심재덕(沈裁德, 마르코)신부 병사 1946 솔뫼에 김대건(안드레아)신부 기념비 제막식 제7대 보좌 백남창(아가피토)신부 부임 1947 소화보육원 설립 제8대 보좌 정진구(마티아)신부 부임 1948 제9대 보좌 박노열(바오로)신부 부임 1949 보육원 설립 인가 1959 8월 제8대 주임 박노열(바오로)신부 부임 8월 백신부·윤복수·송상원 북한군에 피랍 1953 9월 파티마성모 상 봉안식 1954 5월 루르드성모상 봉안식 1958 제10대 보좌 이규남(요셉)신부 부임 1960 운산리본당(신압덕본당)분할 매산리강당 축복식 1961 제9대 주임 유성숙(루도 비꼬)신부 부임 1963 제10대 주임 최세구(로베르토)신부 부임 1968 제11대 주임 윤여홍(바오로)신부 부임 1969 보육원폐쇄 부천소사육아원으로 인계 신리에 병인박해 순교복자 5위 기념비 제막 1971 2월 제12대 주임 이종대(요셉)신부 부임 9월 제13대 주임 김병재(바오로)신부 부임 1974 2월 임시 주임 유영소(블라시오)신부 부임 2월 제14대 주임 조성옥(요한)신부 부임 11월 제15대 주임 여충구(마르코)신부 부임 1977 구 교육관 건평 83명 신축(철거됨) 1980 제16대 주임 백 블랑(요한)신부 부임 1985 9월 사제관 신축(철거됨) 1986 신리사적지 근처 토지 매입 8월 구 사제관·성당 터에 수녀원 신축(철거됨) 제17대 주임 윤종학(벨라도)신부 부임 1990 9월 100년사 자료집 발간 9월 본당설립 100주년 행사 1991 8월 제 18대 주임 권태웅(안셀모)신부 부임 1997 백문필 신부 유해 성당 내 묘지에 모심 1998 7월 충남도 문화재 지정(기념물 제 145호) 2월 제19대 주임 김순호(프란치스코)신부 부임 1999 2월 가옥 매입 및 철거 2000 11월 성당 내·외부 조경공사 5월 성당 내·외부 보수공사 2001 성당 내·외부 보수공사(벽돌, 문, 창문, 지붕교체) 2월 신리 사적지 정비 2002 2월 신리사적지 경당, 수녀원 축성미사 2003 1월 제20대 주임 김홍식(이냐시오)신부 부임 2004 1월 성전 제대 복원공사 4월 성직자묘지 단장 10월 공원묘지 정리 2005 8월 6.25순교자 현양미사 및 평신도 순교자 순교비 제막식 10월 쁘레시디움 주회 2000차 기념 11월 성전복원공사 2007 제21대 주임 손범규(임마누엘)신부 부임 2008 11월 합덕유스호스텔 준공식 2009 제22대 주임 홍광철(세례자요한)신부 부임 성체거동, 백신부님 흉상제막 2010 본당설립120주년 기념비(양촌공소 표지석)제막 2013 10월 2일 구 사제관 복원 공사 기공식 2014 5월 22일 주차장부지 매입 1월 23일 제 23대 주임 김성태(요셉)신부 부임 2015 경당증축, 버스구입, 사제관 신축(복원), 125주년 기념행사
Ⅱ.성당사진(사계)
Ⅲ.복자원시장시보 소개
사진 주소 : 당진시 합덕읍 성동리 340 응정이를 포함한 성동리는 내포의 첫 순교자 원시장 베드로의 고향이다. 원시장은 마을 사람과 친지들에게 복음을 전하였고, 30가구 이상을 입교시켰다고 한다. 그의 사촌 원시보 야고보 역시 이곳 출신이다. 시장은 1793년 1월 홍주에서 모진 형벌 끝에 옥에서 동사하였다. 시보는 1799년 4월 청주에서 순교하였다. 둘은 2014년 8월 16일에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복자로 선포되었다. 한편, 마을 이름 ‘응정(鷹井)’은 ‘매’와 ‘우물’이 합쳐진 지명으로 성동리 주민들은 수백년 동안 이곳 우물을 마셔왔다고 한다. 옛 교우와 순교자들도 이 물을 마시고 활력을 얻고, 열렬히 신앙을 고백했으리라. 같은 마을에 살던 원백돌은 집 안에 천당(天堂)을 차려 놓고 기도하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따라서 이곳은 한국교회 초창기 신앙생활을 하였던 내포지역 초기 교회 공동체 가운데 하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Ⅳ.본당신부님 축사 김성태(요셉)신부님
Ⅴ.본당 수녀님 축사 1.최수현(살레시아)수녀님
2.신희철(마리휘앗)수녀님 (메일) Ⅵ.총회장님 축사 주일학교 교지 발간을 축하하여
엄마를 부르듯 주님을 외쳐 이광모(베드로) 사랑스러운 합덕성당 주일학교 학생여러분! 여러분이 우리 주 예수님 안에서 행복하기를 기도드립니다. 여러분들의 이야기인 합덕성당 주일학교 교지가 발행하게 됨을 축하드립니다. “우리성당 움직임 하나하나는 역사”라는 본당 신부님의 말씀이 떠오른 것은 바로 여러분이 본당의 역사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라고 여겨집니다. 우리성당은 수많은 세월을 이겨내면서 아직도 강건하게 이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은 많은 의미를 내포 하고 있다고 봅니다. 가깝게는 우리성당 주변지역에서 성당의 역할이고 좀 더 넓게는 대전교구의 모 본당으로서의 자리를 지키면서 신앙의 모범이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우리나라 교회사측면에서도 언급을 빼놓을 수 없는 내포의 중심이며 신앙의 증거지라는 말을 아끼지 않아도 된다고 봅니다. 어린아이가 ‘엄마’라는 말을 입에서 자연스럽게 말할 때까지 10만 번의 연습을 거듭한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요. “예수마리아님, 성모마리아님, 오 주 천주여”를 사랑스러운 모국어로 엄마를 부르듯 10만 번을 연습 했나요! 주일학교 학생 여러분은 본연의 학업이 있고 저마다 할 일이 많습니다. 모두가 다 저마다 주님께서 주시는 탈란트가 있습니다. 이 탈란트는 주님의 사랑으로 우리 신앙은 그것을 담는 그릇입니다. 저마다 성소를 받으나 그 그릇을 뒤집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자명한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지만 성소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제 주일학교 학생여분은 각자의 학교에서 진학이나 졸업을 하게 됩니다. 진학과 졸업은 또 다른 배움의 길이 시작됨입니다. 그 시작에서 마무리 까지 소명을 다해주시고 항상 합덕성당을 잊지 말고 우리성당을 지켜주는 반석이 되어 주길 간절히 바랍니다. 항상 여러분의 앞길에 주님께서 주시는 사랑이 가득하길 빕니다. 2016년 늦가을에 베드로....
Ⅶ.추천사 김명선
Ⅷ.주일학교 선생님 말씀 1.이옥순 2.조영미 3.오경미 Ⅸ.주일학교 학생 작품 류세희 (주일학교 고1)-그림? 남아현 (그림)? 신민희 (신부님께 편지)?
Ⅹ.나의 주일학교 시절의 추억 1.윤세병신부님 솔뫼로 가는 길 윤세병신부님(옥계동본당, 본당출신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박해 속에서도 굴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박해자들을 향하여 정의를 말하고, 감옥안에ㅐ 잇는 신자들을 격려하시면서 까지 하느님을 증거할 수 있었던 힘과 용기는 어디에서 생겼을까? 오늘1독서를 보면 “의인들의 영혼은 하느님의 손안에 있어 어떠한 고통도 겪지 않을 것이다. 어리석은 자들의 눈에는 의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그들의 말로가 고난으로 생각되며 우리에게서 떠나는 것이 파멸로 여겨지지만 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지혜3,1-3)라는 말씀에서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신앙인은 순교 성인처럼 성숙한 신앙인이 되기 위해 열심히 기도하며 노력한다. 김대건 신부님이 탄생하신 솔뫼에 성지를 조성을 위해 합덕성당 신자들이 1906년 김대건 신부님 순교 60주년 기념 땅 매입 그리고 100주년 기념으로 1946년 9월에 작은 석고 동상과 기념비석을 건립했다. 필자의 어린 시절 주일학교에서는 매년 9월-10월 소품겸 도보성지 순례를 위해 서들강문 황금물결 출렁이는 합덕평야를 바라보면서 약4㎞나 되는 좁은 논두렁밭두렁에 걸려 넘어져도 때론 지름길인 밤나무밭 사잇길로 뛰어가다 밤송이이로 머리를 맞아 눈물을 글썽이면서도 신이 나서 솔뫼로 달려가 김신부님 동상 앞에서 기도하고, 순교교리를 듣고, 그 자리에서 시험도 보고 상도 받고 한 기억이 난다. 세 살 습관이 여든살까지 간다고... 그런 까닭에 고향마을에선 신부님, 수녀님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필자는 주일학교 3학년 무렵 첫영성체 기념사진을 보면 어릴적 모습에 미소가 저절로 지어진다. 당시에는 주일학교 교리반에 한번이라도 빠지거나, 판공 때320조목 교리 문답서를 암기하지 못해 호랑이 신부님 앞에서 퇴짜를 맞으면 못난 자식 때문에 부모성시길 막힌다고 밥을 주지 않았다. 판공 교리 퇴짜를 맞아서 다시 판공을 받으려고 학교 빠지는 바람에 초등학교 졸업식 때 6년 정근상을 받았다. 성당 가까이 사는 까닭에 365일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부모님 따라 새벽 평일 미사는 물론 복사 당번 빠지면 스페아 복사까지, 아마도 부모님 생각은 어렸을 때부터 성소의 싹을 제대로 키울 마음을 정하신 듯하다. 어려서부터 호랑이 신부님과 부모님의 스파르타식 신앙교육 덕분에 외국생활에서 모든 구두시험을 한 번도 재시험 맞아 본적이 없었다. 2014년 프란시스코 교황님 다녀가신 후, 본당 여름신앙학교에서 중·고등부 학생들을 솔뫼성지 중심으로 인근에 여러 성지를 순례하며 순교정신을 일깨워주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실행하였다. 주일학교 초등부 어린이들이 더 많은 도보순례를 통하여 순교 정신을 배우는 산 교육의 장으로 느끼도록 해 준다면 영원하신 하느님의 은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 독서에서 “영원한 사랑이신 하느님을 믿는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내고도 남습니다.”(로마서 8,37)하신 말씀을 어려서부터 마음속 깊이 새겨 건강하고 훌륭한 순교자적 강인한 신앙인으로 성장해 나간다면 사회에서도 목표를 향해 자신 있게 달려갈 수 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9,24) [출전 대전주보 2015.9.20.] 2.김정환신부님
주일학교는 나를 신학교로 이끌었다 김정환신부님 (내포교회사연구소장, 문학박사, 본당출신사제) 나는 초등학교 때 자주 소풍오던 솔뫼성지에서 지금은 아예 살고 있다. 솔뫼성지를 담당하지는 않지만 우리 연구소가 성지 안에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 얼마나 자주 솔뫼에 왔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지금 생각해보니 7월 5일 김대건 신부님 대축일 즈음에 매번 왔던 것이 아닌가 한다. 소풍이란 것이 밥 먹고, 퀴즈 풀고, 보물찾기하고, 모여서 율동하는 반복된 일상 같은 연중행사이지만 이제는 하고 싶어도 못한다. 솔뫼의 소나무는 그 자리에 묵묵히 자라 그대로 있으나 그 아래에서 놀던 아이들은 시간의 ‘바람과 함께 사라져버렸다.’ 초등학교 때의 주일학교에 대해서는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오히려 첫영성체 교리 때가 생각난다. 교실이 제대로 없던 때라 성당 제의방 마루 바닥에 남녀를 구분하여 모여앉아 수녀님에게 교리를 배우던 시간. 교리 내용 중 다른 것은 생각이 안 나는데 2주일에 한 번은 꼭 고해성사를 보라고 하셨던 말씀은 기억난다. 첫영성체가 소중히 여겨지는 이유는 그때 처음 사진을 찍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내가 가지고 있는 사진 중에는 그게 가장 오래되었으니까. 그리고 첫영성체 기념으로 아버지가 나무 묵주를 선물로 주신 생각도 난다. 이것 역시 내가 기억하는 선물에 대한 첫 기억이다. 중학교 때의 주일학교는 참신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때 프랑스 백요한 신부님이 주임이셨는데 직접 매주 토요일에 교리를 가르치셨다. 신부님이 매번 출석을 부르시고, 결석하면 부모님에게 꼭 확인하시기 때문에 참석률이 높았다. 본당뿐 아니라 공소 아이들까지 강당에 꽉 찼다. 파란색 표지로 된 문답풀이 교리책을 가지고 신부님이 읽으며 설명해주셨다. 한국말은 좀 서투시지만 그분의 열정에 한눈팔지 못하고 들었고, 곧잘 보여주시는 환동기 사진들과 그에 딸린 설명은 참 재미있었다. 어쩌면 그때의 영향이 신학교에 가게 된 직접적인 원인인 듯도 하다. 고등학교 1학년 즈음으로 기억되는데 백 신부님이 본당 몇몇 아이들을 모아서 ‘사랑의 모후’라는 레지오 마리애 쁘레시디움을 결성하셨다. 고등학교에 들어서서는 선생님들이 주관하는 교리보다는 우리끼리 알아서 하는 성격이 강하였다. 물론 우리가 훌륭하게 해냈을리는 만무하지만 뭔가는 해보려고 애를 썼다. 학교에서도 토요일에 레지오 마리애 형식을 딴 모음을 결성했다. 우리 반 친구 중에 개신교 신자인 애가 전도사인 자기 아버지를 모시고 학교에서 매주 모임을 갖는데서 경쟁심리가 발동한 때문이었다. 성당 바로 옆에 있는 학교인데 우리가 가만히 있을 수야 없지 않는가! 주일학교. 그 역사는 대개 본당의 역사와 맥을 같이한다. 합덕본당이 126년이 되었으니 주일학교도 그만큼 되었다. 그 긴 역사 안에 얼마나 많은 선생님들이 수고를 했는지를 떠올려 본다. 평일에는 일하고 주일마다 성당에 와서 봉사한 분들. 그분들이 훌륭했던지, 그렇지 않았던지 간에 그 일을 하신 자체로 감사드린다. 본당에서 활동하고 있지 않아서 평일에 일하고 주말에 쉬는 나이기에 그 감사함이 더 크게 느껴진다. 2016년 9월 29일 솔뫼에서 3. 도주현(아오스딩) 10월까지 원고약속 4.성지순례를 다녀와서 본당사목회임원 신태수(베드로) 그동안 성당의 어려운 일들과 장례미사 행사, 버스운전 등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봉사를 해주시는 고마운 분입니다. 이번에 합덕성당 주일학교의 교지 ‘오늘간식이 뭐예요(구억뜸도란말)’에 신태수(베드로) 형제의 성지순례 이야기를 정리했습니다. ① 올해 벼농사는 어떤가요. 올해는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폭염과 긴 가뭄으로 인해서 병충해 및 수확이 다소 떨어질 것으로 보이나 하느님의 은총 덕분인지 그래도 수확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②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이 있다면. 평소 농사일로 바쁘지만 가슴에 두고 새기는 성경구절은“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마태오복음 7, 7-8절입니다. 이 성결 구절을 생각하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하는데 마음이 평온해 집니다. ③ 가장 좋아하는 성가는 어떤 것 인가요. 성가는 아름다운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성당에서 듣는 장엄하고 고요한 오르간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차분해 집니다. 카톨릭 성가 229번 [죽음에서 생명에로]를 가장 좋아합니다. 어려운 역경에 놓일 때마다 나를 하느님께 인도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질병에 짓눌려서 우는 이들과 근심에 시달리어 죽어가는 이 그들을 당신 품에 받아 주시어 아버지 계신 곳에 살게 하소서] 라는 3절이 제게 감동을 주고 제 신앙을 굳건하게 해줍니다. ④ 올해 해외 성지순례를 다녀오셨는데 그 소감을 간단히 말씀해 주세요. 상상 이상의 모습으로 제게 다가왔고, 매순간 감동과 은총을 받았습니다. 특히 스페인 성지는 다시 한 번 꼭 가보고 싶은 곳입니다. ⑤ 성지순례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어디 인지요. 너무 많습니다. 그중에서 이탈리아의 산타마리아대성당입니다. 1296년에 본사 공사를 시작하여 1371년에 완공했는데 성당의 돔이 웅장하고 아름다웠습니다. 또한 아직도 공사 중인 가우디대성당. 가우디는 이 성당을 짓기 위해 다른 일을 하지 않고 이일 한가지에만 전념했다고 합니다. 가우디 사후 많은 예술가와 건축가들이 참여하고 있는데 완성이 되면 꼭 다시한번가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스페인 성모님 발현지 파티마에서는 성모님을 뵙는 듯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⑥ 순례 중 에피소드가 있다면. 스페인 성모님발현지에서는 마침 진행되고 있던 로사리오 묵주기도 행렬에 우리 본당신자 4명이 꽃가마를 메는 영광을 얻어 모두가 감동하고 성모님께 기도를 올렸습니다. ⑦ 우리성당은 오랜 역사를 보내면서 수많은 족적으로 보였다고 봅니다. 하지만 농촌경제의 하향화 및 이농현상으로 신자 부족 등 어려운 점을 겪고 있는데 앞으로 우리성당을 어떻게 하면 잘 가꾸어 갈 수 있을 지요. 우리성당의 문제를 신자 부족으로만 얘길 할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현재도 얼마든지 봉사할 수 있는 여력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무관심에서 벗어나 좀 더 마음 열고 함께 주님을 바라보면서 성당의 모든 봉사를 일이라 생각하지 말고 함께 참여 해 주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젊은 신자들이 봉사에 참여 해준다면 더 아름다운 성당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리 : 신민희(0000,주일학교 고1)
5.이종석(원고 약속) 6.홍성호(안셀모)주말, 취재로 대체) 본당 부회장이 되신 홍성호님은 그동안 전례분과와 성당의 대소에 많은 봉사를 거듭해 주셨는데 이번에 주일학교 교지발간에 맞춰 인터뷰를 합니다. ① 본당 부회장님이 된 것에 축하드리며 앞으로의 각오나 다짐이 있다면. ② 어린시절 성당에 다닐 때 추억이 있다면. ③ 본당 주일학교 어떤 활동을 했으면 하는 가요. ④ 우리성당은 오랜 역사를 보내면서 수많은 족적으로 보였다고 봅니다. 하지만 농촌경제의 하향화 및 이농현상으로 신자 부족 등 어려운 점을 겪고 있는데 앞으로 우리성당을 어떻게 하면 잘 가꾸어 갈 수 있을 지요. ⑤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이 있다면. ⑥ 가장 좋아하는 성가는 어떤 것 인가요. 7.오상수(10월까지, 메일약속)
(詩) 우리 동네
김윤태(다마소) 황무지 너른 들 어느 날 너구리 노루 사슴 노닐던 자락 백제인도 땅 잃고 방랑한 이도 여수 믿는 이들도 이길 물가에서 남생이처럼 머리 흔들어 손짓하네. 치열하게 부지런한 이 구억뜸에 자리 잡고 먼지와 맞서 옥답 이루는 도란말 사람들 오손도손 꽃동산 수다로우니 삼밧재 사는 이 지나는 거친 들풀 향기 넘쳐 익고 눈처럼 덮은 아침이슬 중군말 돌아 보듬고 소리쳐 달려 창말 스쳐 지나는 구름 성당 종소리 담고 서해를 꿈꾸네. 불그스레 방죽에 핀 흰 꽃들은 시려운 천년을 되살아 내고 우리 동네 지켜내는 성당과 방죽 시뻘건 피와 새하얀 욕망이 비벼내는 슬픔의 찬미라! 빗물을 지켜내던 선조들이 쌓은 석룡이 방죽을 감싸니 대지도 믿음도 어깨 부벼대며 지켜내니 우리 마-알 성당은 방주되어 성모님 품에 안기네. Ⅺ.주일학교학생 남기고 싶은 글 Ⅻ.주일학교 설문조사 결과
합덕성당 주일학교 학생설문조사 결과 1.학생의 성별은? 구분/계 남 여 응답자 10 20 % 33.3 66.7
2.학생의 어느 학교에 소속되어 있나요? 구분/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응답자 5 15 10 % 16.7 50 33.3
3.요즘 가증 큰 고민은? 기타는 글로 써주세요. 구분/계 학교성적 이성친구 취미 기타 응답자 15 5 5 5 % 50 16.7 16.7 16.6
가.요즘 가장 큰 고민은? 구분/계 학교성적 이성친구 취미 기타 남학생 5 3 1 1
나.요즘 가장 큰 고민은? 구분/계 학교성적 이성친구 취미 기타 여학생 15 3 1 1
4.가장 좋아하는 연예인은? 구분/계 소녀시대 아이유 엑소 씨스타 연예인 15 5 5 10
5.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구분/계 김구 이순신 세종대왕 유관순 인물은? 15 5 5 10
6.가장 존경하는 성인은? 구분/계 요셉 베드로 야고버 시몬 성인은? 15 5 5 10 7.장래희망은? 글로 써주세요. 구분/계 신부님 판사 의사 선생님 응답자 15 5 8 2 % 50 16.7 26.7 6.6 8.주일학교 시간에 가장 좋은 프로그램은? 기타는 글로 써주세요. 구분/계 교리시간 간식시간 봉사시간 기타 응답자 15 5 5 5 % 50 16.7 16.7 16.6
9.성지순례를 간다면 어디로 가고 싶은 가요? 구분/계 이태리 프랑스 스폐인 기타 국가 15 5 5 10 구분/계 로마 파리 마드리드 기타 해외성지 10 5 5 10 구분/계 명동 전주 풍수원 기타 국내성지 10 5 5 10
10.주일학교에서 실시했으면 하는 프로그램은? 구분/계 그림 기도 축구 기타 프로그램 15 5 5 10
11.성당에 가장 가고 싶을 때는? 기타는 글로 써주세요. 구분/계 부활절 성탄절 성모승천 본당의날 기타 가고싶을때 15 5 5 8 2 12.성당에 가장 가기 싫을 때는 구분/계 부활절 성탄절 성모승천 본당의날 기타 가고싫을때 15 5 5 8 2
합덕성당 주일학교 교사설문조사 결과 1.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구분/계 김구 이순신 기타 인물은? 2 1 0 2.가장 존경하는 성인은? 구분/계 요셉 베드로 야고버 시몬 성인은? 3
3.주일학교 시간에 가장 좋은 프로그램은? 기타는 글로 써주세요. 구분/계 교리시간 간식시간 기타 응답자 1 2 0
4.성지순례를 간다면 어디로 가고 싶은 가요? 구분/계 이태리 프랑스 기타 국가 3 0 0 구분/계 로마 파리 기타 해외성지 2 1 0 구분/계 명동 전주 기타 국내성지 1 2 0
5.주일학교에서 실시했으면 하는 프로그램은? 구분/계 그림 기도 축구 기타 프로그램 15 5 5 10 6.가장 존경하는 성인은? 구분/계 요셉 베드로 야고버 성인은? 1 1 1
7.주일학교 시간에 가장 좋은 프로그램은? 기타는 글로 써주세요. 구분/계 교리/봉사시간 간식시간 기타 응답자 2 1
7.성당에 가장 가고 싶을 때는? 기타는 글로 써주세요. 구분/계 부활절 성탄절 성모승천 본당의날 기타 가고싶을때 2 1
0
8.성당에 가장 가기 싫을 때는 구분/계 부활절 성탄절 성모승천 본당의날 기타 가기 싫을때 2 1 0
합덕성당 주일학교 학생설문지 *다음 질문에 체크해 주거나 글로 답해 주세요. 1.학생의 성별은? ( ) ①남 ②여 2.학생의 어느 학교에 소속되어 있나요? ( ) ①초등학교 ②중학교 ③고등학교
3.요즘 가증 큰 고민은? 기타는 글로 써주세요. ( ) ①학교성적 ②이성친구 ③취미 ④기타( ) 4.가장 좋아하는 연예인은? 글로 써주세요. ( ) 5.가장 존경하는 인물? 글로 써주세요. ( ) 6.가장 존경하는 성인은? 글로 써주세요. ( ) 7.장래희망은? 글로 써주세요. ( ) 8.주일학교 시간에 가장 좋은 프로그램은? 기타는 글로 써주세요. ( ) ①교리시간 ②간식시간 ③봉사시간 ④기타( ) 9.성지순례를 간다면 어디로 가고 싶은 가요? 가.국내( ) 나.국외(국가 : ), (성지 : ) 10.주일학교에서 실시했으면 하는 프로그램은? 글로 써주세요. ( ) 11.성당에 가장 가고 싶을 때는? 기타는 글로 써주세요. ( ) ①부활절 ②성탄절 ③성모승천축일 ④본당의 날 ⑤기타( ) 12.성당에 가장 가기 싫을 때는? 기타는 글로 써주세요. ( ) ①부활절 ②성탄절 ③성모승천축일 ④본당의 날 ⑤기타( ) *교지에 남기고 싶은 말은?(짧은 글 짓기로 3줄 정도로 답해 주세요.)
합덕성당 주일학교 교사설문지 *다음 질문에 체크해 주거나 글로 답해 주세요. 1.가장 존경하는 인물? 글로 써주세요. ( ) 2.가장 존경하는 성인은? 글로 써주세요. ( ) 3.주일학교 시간에 가장 좋은 프로그램은? 기타는 글로 써주세요. ( ) ①교리시간 ②간식시간 ③봉사시간 ④기타( ) 4.성지순례를 간다면 어디로 가고 싶은 가요? 가.국내( ) 나.국외(국가 : ), (성지 : ) 5.주일학교에서 실시했으면 하는 프로그램은? 글로 써주세요. ( ) 6.주일학교 학생들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기타는 글로 써주세요. ( ) ①교리시간 증가 ②주일학교 간식 ③주일학교 소풍 ④기타( ) 8.주일학교 교사들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기타는 글로 써주세요. ( ) ①교리시간 증가 ②주일학교 간식 ③주일학교 소풍 ④기타( ) 7.성당에 가장 가고 싶을 때는? 기타는 글로 써주세요. ( ) ①부활절 ②성탄절 ③성모승천축일 ④본당의 날 ⑤기타( ) 8.성당에 가장 가기 싫을 때는? 기타는 글로 써주세요. ( ) ①부활절 ②성탄절 ③성모승천축일 ④본당의 날 ⑤기타( ) *교지에 남기고 싶은 말은?(짧은 글 짓기로 3줄 정도로 답해 주세요.)
기획 교지가 발행되는 기간 동안 본당역대신부님이야기를 정리해 보고 신부님들을 기억하기 위해 다가올 본당설립 200년을 앞두고 초대신부님부터 현재 신부님까지가 대상이 되겠습니다.
합덕본당 초대 남 신부님에 대하여 퀴클리에 루이 조세프 레옹 CURLIER Louis Joseph Léon 장 쥘 레옹 Jean Jules Léon 남일량 南一良
1.들어가는 말 우리본당의 역사를 시작하게 하고 오늘 이 자리에 우리를 모이게 하신 분은 초대 남 신부님이다. 내포에 속한 우리 성당 신앙의 역사가 200년을 훌쩍 넘지만 본당설립을 기준으로 올해를 126년으로 삼는다. 이 기준은 남 신부님이 양촌에 머무시면서 이 지역 사목활동을 펼쳤기 때문이다. 본당으로 보면 아버지와 같은 분이시다. 이런 이유로 합덕성당 주일학교 교지를 발간하며 특별히 초대신부님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겠다. 2.남 신부님 일대기 남 신부님은 프랑스 동부 스위스 국경에 가까운 생클로드( St. Claude)교구 쥐라(Jura), 노즈루와(Nozeroy) 지역 질루와(Gillois)에서 1863년 9월 13일 출생했다. 최세구(선교사열전) 이 지역은 오지이나 미생물학자인 루이 파스퇴르의 고향이며 유명한 포도주 ‘뱅존’의 생산지 이다. 아버지 조세프 퀴클리에, 어머니는 필로랭 쇼뱅이었다. 1886년 삭발례를 받은 뒤 파리외방전교회 신학교에 입학하여 1889년 3월 3일 그렇게도 열망하던 사제서품을 받고 조선으로 파견되었다. 그해 6월 21일 프랑스 떠난 지 52일 만에 서울에 도착했을 때 그의 나이 26세였다. 레오 퀴클리에 남 신부님은 도착한 다음 달부터 서울의 인근 이천에 있는 쿠데르 신부님께 보내졌다. 이 시기 퀴클리에 신부님과 파스키에 신부님은 충청도를 관할하던 두세 신부님의 공동후임자로 예산군 간양골에 함께 상주하게 된다. 이후 1890년 27세 때에 신부님은 두세 신부님의 후임으로 충남 양촌으로 파견된다. [구합덕본당100년사자료집] 또한 1892년 초 사제관 겸 성당을 짓고 사목활동을 시작하였으나 1894년 동학농민운동의 영향과 1895년 공세리 본당 분할, 1897년 공주본당 분할이 이어지던 중 남 신부님은 양촌이 장차 본당의 중심지로서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새로운 장소를 물색하게 되어 1898년 대지 150평에 12칸 기와집으로 성당과 사제관을 짓고 다음해 합덕으로 이전하게된다. 최세구 신부님(제10대 본당신부)는 이 장면을 ‘기적’ 최세구(선교사열전) 이라고 선교사 열전에서 적고 있다. 신부님 나이 36세 때인 1899년 9월 14일 주교님께 보낸 서한에는 “저의 유일한 소망은 하느님께서 제게 맡기신 임지에서 죽는 것입니다” 구합덕본당100년사자료집 p214 라고 편지를 남겼다. 과연 우리의 초대 신부님은 이 소원을 순교로 이루지는 못했지만 47년간 조선에서 선교활동을 하시다 황해도 매화동성당에서 병으로 72세에 선종 경향잡지 1935년 5월호 하였다. 이후 1904년 공주성당으로 발령을 받을 때 까지 14년간 교리학교를 3개 세우고 성영회를 설치하여 교육과 사회복지사업 및 각 공소를 쉼 없이 순방하시며 합덕본당을 반석위에 세우시려 사목하였다. 공주성당 3대 신부로 부임하여서도 평소에 하던 그대로 사목활동과 공소를 순방하시고 1906년에는 옥천본당을 분할 공주본당100사 p238 하고 초대 주임신부에 합덕본당 2대 신부님이신 홍병철신부님이 임명되는 것을 보았다. 남 신부님이 합덕본당에 계실 때 신학생으로, 후임신부님로 각별한 아끼시는 후배조선인신부님 공주본당100사 p238 이었나보다. 1906년에는 남신부님은 공주성당 사제관을 건립하고 1097년에는 청주 비룡공소를 설립하시며 사목하셨다. 공주본당100사 p241 한편 뮈텔주교님은 간도에 선교사 파견을 고려하던 중 퀴클리에 신부님을 파견하게 된다. 1909년 남신부님 나이 46세때에 중국의 길림성에서 상주하면서 삼원봉성당과 함께 간도의 첫 본당이 창설되는 초대 주임신부로 남 신부님으로 부임하면서 사제관을 짓고 10개의 공소를 개설했다. 1911년 성당이 화재로 전소 되자 1912년 양옥성당을 건축하고 뮈텔주교님의 축성을 가졌다. 또한 1919년 3.1 운동 때에는 본당회장 김영학이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굿뉴스 검색. 58세 되던 1921년 남 신부님은 황해도 안익군 용문면 매화동본당 4대 신부로 발령받고 14년간 그곳에서 마지막 사제의 길을 걸었다. 1929년에는 진선원 동아일보 1929년1월 26일(한국사테이터서비스) 을 설립하여 아이들을 돌봤다. 또한 남 신부님은 매화동에서도 다른 곳에와 마찬가지고 교육사업과 사회복지사업 조선중앙일보 1935년 4월 11일(한국사테이터서비스) 을 펼쳤다. 이런 남 신부님이 갖고 있던 지병 최세구(선교사열전) 으로 1935년 6월 6일 선종한다. 당신의 소원대로 향년 72세로 하느님께 돌아갔다. 3. 남 신부님의 서한 속 인간적 삶 레오 퀴클리에 남 신부님은 정착기의 선교사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끝이 없을 것 같은 공소 순방이 그 증거다. “선교사는 도공이 사용해서, 그의 손안에서 그의 마음에 드는 온갖 모양을 취하는 점토와도 같이 단순한 도구로 주교의 안에 있어야 합니다.” 구합덕본당 100년사 자료집 p243 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학생들을 위하여 학교를 세우고 가난한 이를 살피며 권력에 의해 피박 받는 이들, 특히 약자인 여성을 위해 적극 나서기도 한다. 이런 일들이 있을 때 신부님은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신 예수그리스도의 계명에 반대되는 것” 구합덕본당 100년사 자료집 p205 이라면서도 이들에게 힘이 되어 주지만 사제로서의 고뇌도 엿보인다. “언문지식이 교우들 사이에서 확대 되어 가고 있습니다” 구합덕본당 100년사 자료집 p222 라고 신자들의 발전된 모습에 기뻐하기도 한다. 그리고 고향을 떠난 선교사가 겪게 되는 여러 가지 풍토병이다. 몹쓸 병이 남 신부님을 괴롭히던 중에 휴양을 권유한 주교님께“저의 유일한 소망은 하느님께서 제게 맡기신 임지에서 죽는 것입니다” 구합덕본당 100년사 자료집 p214 라며 신부님의 선교사로서 사명을 강력하게 피력한다. 매년 합덕(양촌)본당의 신앙적 열매를 주교님께 공손하게 보고하며 회개하는 신자들에 대한 기쁨을 “저는 이 가엾은 탕자를 보고 매우 감동했습니다” 구합덕본당 100년사 자료집 p215 라고 편지에 적고 있다. 조선의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질병으로 고통 받는 이들에 대한 가슴 아픔을 이렇게 적는다. “보기가 딱하게도 이 가엾은 어린 창조물들을 발에서 머리 까지 마마 투성이 없습니다” 구합덕본당 100년사 자료집 p190 라며 가슴아파한다. 남 신부님은 또한 국내 정치상황이나 경제적 변동에도 관심을 갖습니다. 모두 신자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으로 판단된다.“일본의 개화파가 실패하고” 구합덕본당 100년사 자료집 p186 ”(100년사 p194), “이곳에서 노일전쟁 소식이 모호하게 전해져” 구합덕본당 100년사 자료집 p240 ,“소한미리에 200냥에서 250냥 하던 것이 며칠 전에 60냥에서 70냥으로 내렸고, 작은 앎닭들이 6-7전 밖에 않합니다” 구합덕본당 100년사 자료집 p226 라고 당시의 상황 즉 갑신정변, 을미사변, 노일전쟁 등 구한말 급변하는 국내외정세가 살펴보며 그에 대한 걱정도 담고 있다. 다음은 남 신부님의 신자들에 대한 배려이다. “하룻밤동안 성당을 침실로 바꾸었습니다” 구합덕본당 100년사 자료집 p219 (100년사 p219)라고 1900년 8월 15일 성모승천 대축일 신자들이 너무 너무 많아 내린 결정이었고 조선 사람들을 자애롭게 생각하는 마음을 “우리 문전에 밥 한 그릇을 동냥하러 오는 불행한 가능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재산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라며 그들을 도울 해결책 찾기도 한다. 또한 음용수 부족으로 힘들어 하던 사람들을 위해 우물을 두 개 파는 구합덕본당 100년사 자료집 p226 노력도 펼친다. 그리고 가뭄이 심하던 1900년 봄에 “호수의 물 덕분에 농부들은 모내기를 할 수 있었지만 논에 댄 물이 너무 빨리 말라버려 김도 매지 못했습니다” 구합덕본당 100년사 자료집 p225 라고 극심한 가뭄에 합덕제로 인해 모내기는 했으나 장기간의 가뭄을 신자들과 함께 걱정한다. 끝으로 합덕성당을 떠나면서 남긴 글이다. “저는 제가 사랑하는, 제게 애착을 갖고 있는 저의 교우들과 헤어지는 것이 어려울 것입니다”라고 14년 동안 펼친 내포(합덕)에서의 사목을 접으면서 감정을 정리한다. 이색적으로 공주발령지로 배를 타고 이동 구합덕본당 100년사 자료집 p245 하게는데 지금과는 사뭇 다른 교통편이다. 4. 선교사로서 임지에서 죽는 소원을 이루다 남 신부님은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으로 우리나라에 오신 많은 선교사들 중에 한분이다. 그리고 우리본당에 8분의 선교사중 1분이시고 14년간 우리를 보살펴 주신 초대 신부님이다. 청춘을 우리 성당에서 보냈다. 젊었기에 주교님께 어리광을 부리는 듯 해도 신자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점이 두드러진다. 간도 용정촌에서는 3.1운동에도 관심을 기울였을 것으로 보인다. 본당회장이 북간도 지역의 만세운동을 주도한 것으로 보아 신부님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된다. 황해도 매화동 성당에서 사목을 펼치며 교육과 사회복지사업을 전개하시고 선료사로서의 마지막도 이곳에서 14년을 보낸다. 신부님의 마지막은 육체적 고통이 심했나 봅니다. 이는 타국에서 보낸 세월만큼이나 병이 고질적 이었던 것입니다. 만일 통일이 된다면 황해도 매화동성당에 가서 신부님께 감사인사를 드려야 우리초대 신부님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끝으로 경향잡지 1935년 6월호에 남 신부님의 장례식과 신부님대한 글이 실려 있어 소개하는 것으로 글을 맺는다.
동신부의 모범다운 덕성이 여러 가지 있어 애긍을 잘 하심으로 그 신부의 은덕을 입은 자가 허다하며 고신극기하시는 정신이 지극하사 육신을 편히 놀림은 비객으로 알아 석수나 벌목에 유일한 취미를 가지셨으며 마음이 순직하사 체면과 헛된 영광에는 눈을 뜰 줄 모르셨고 측은 자가 있으면 아니 도와주고서는 견디지 못하시는 자비의 성질인 반면 자기의 의식과 생활에는 동정이 너무나 없음으로 뫼시고 있는 자의 권고가 아니면 쇠진한 병구에도 기거 침식에 호불호를 택하심이 전혀 없으셨다.
레오 퀴클리에 신부님 연표 1863 프랑스 쥐라 질루와, 9월 13일 출생 1886 삭발례 1889 사제서품 3월 3일 (26세) 1889 조선 서울 도착 6월 21일 1889 이천에서 선교 1890 초대 주임 남일량(퀴클리에, Curlier)신부(27세) 양촌본당설립(예산군 고덕면 상궁리) 1891 교리학교 3교 설치 1892 성영회 설치 한옥성당 및 사제관 건축 1894 간양골본당 폐지 및 통합 1895 공세리본당 분할(32세) 1897 홍병철 신학생 실습 1898 합덕 한옥성당 및 사제관 건축시작 1899 양촌본당에서 합덕본당으로 이전 및 개칭(36세) 1904 공주본당 제3대 주임신부(41세) 1906 옥천본당 분할(홍병철 초대신부) 1907 청주비룡공소 설립 1909 간도 용정상시본당 초대주임신부(46세) 성당, 사제관신축 공소10개소 운영 1912 벽돌 양옥 성당신축(뮈텔주교님 축성) 1914 은경축(51세) 경향잡지 5월호(서울피정소식:기사) 1919 용정본당 회장 3.1 만세운동 주도 (56세) 1921 황해도 매화동본당 제4대주임신부(58세) 1925 매화동여자청년회 조직(경향잡지 10호 기사) 1926 소화시약소 운영 봉삼유치원 운영 1927 경향잡지 5월호(영육에 애긍 : 기사) 1929 진선원 설립 동아일보(1월6일자 기사) 1935 조선중알일보(조선온지 47년 안익서만 14년 교육제사업 에 전력 : 4월11일자) 1935 매화동에서 6월 6일 선종(72세)(6.9자 조선중알일보기사) (참고: 구합덕본당 100년사 자료집. 선교사 열전, 경향잡지, 한국사데이터베이스, 동알일보, 조선중앙일 편집후기
김 다마소 주일학교 학생 여러분 모두 名垂竹帛(명수죽백)하길 바래요
주님의 기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악에서 구하소서. Pater noster, qui es in cælis, sanctificetur nomen tuum; adveniat regnum tuum; fiat voluntas tua, sicut in caelo et in terra
Panem nostrum cuotidianum da nobis hodie, et dimitte nobis debita nostra, sicutet nos dimittimus debitoribus nostris; et ne nos inducas in tentationem Sed libera nos a malo. (라틴어) Our Father, who art in heaven, hallowed be thy name;Thy kingdom come;Thy will be done on earth as it is in heaven. Give us this day our daily bread;and forgive us our trespassesas we forgive those who trespass against us;and lead us not into temptation,but deliver us from evil. (영어) pater,patris : 아버지 noster,nos,nostra, nostrum,nobis, nostris, nostrae : 우리 qu : 어떤, 무슨 caelis, caelo : 하늘 sanctificetur :거룩히 빛나다 nomen : 이름 adveniat: 오다, 도래하다 regnum : 나라 fiat : ~되다 voluntas : 뜻, 의지 sicut : ~와 같이 tu, tua, tuum : 너 et : 그리고, 또 terra : 땅 panis, panem : 빵, 양식 quotidianum : 매일의 hodie : 오늘 dimitte, dimitimus:용서하다 debita, debitoribus : 죄, 신세 지음 ne :~하지 마라 inducas : 끌어 들이다. tentationem : 유혹 sed : 그러나,다만 libera : 구원하다. 자유롭게 하다 malo : 악 art : 《고어·시어》 BE의 제2인칭·단수·직설법 hallowed : 신성화(神聖化)된, 신성한. thy : 《고어·시어》 너의, 그대의 daily : 매일의, 일상의 bread : 빵 forgive : 용서하다 those : 그것들, 그 사람들, 그 사물들 trespass : 침입하다, 침해하다 against :…에 대해서 temptation : ~ 유혹에 빠지다 deliver : 인도하다 evil : 사악한
믿음의 고향 합덕성당 충남 당진시 합덕읍 00000
TEL. 041) 363-1062 본 당 천주교 대전교구 합덕성당 주일학교 신 부 님 김 성 태(요 셉) 수 녀 님 최 수 현(살레시아) 수 녀 님 신 희 철(마리휘앗) 총회장님 이 광 모(베드로) 청소년성소분과장 김 윤 태(다 마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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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리성당의 첫교지가 발간된다니 감격스럽습니다. 우리 주일학교 교지가 잘 발간될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미완이예요 정작 학생들이 없어서 걱정입니다.
우리성당이 예전과 현재가 이렇게 변했네요. 아이들이 엄청 많았던 과거와 주일학교 학생이 몇명안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