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광산악회, 내변산(內邊山) 속살을 헤집고 다니다.
(전북 부안군 변산면, 진서면일대)
파란하늘이 보고 싶지만 하늘을 뒤덮은 희뿌연 미세먼지의 공습이 계속되고
있는 요즘 날씨이다.
시내버스를 타고가다 보면 잔기침을 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환절기만 되면 재발되는 비염 때문에 나는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올해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약을 먹어도 아무런 효과가 없다.
특히 올해는 초미세먼지 특보가,
지난해 대비 2배인 85회 가량이 발령되는 등 공기오염도가 심각해 건강을
지키기 위한
생활습관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추세다.
미세먼지에 장기간 노출 시에는,
각종 질병 유발에 위험이 높아 평소 철저한 위생관리가 필수적이란다.
외출 후 옷 털기,
항균 섬유탈취제 사용으로 간단히 미세먼지 및 박테리아를 제거하고,
체내에 쌓이지 않도록 귀가 후 샤워하고,
미세먼지 배출을 위해 수분 섭취를 충분히 늘려야한다고 말한다.
말은 쉽지만
실행하기가 잘 안 돼는 일들이다.
오늘은 4월의 마지막 주이다.
봄꽃이 순서에 따라 피고 지는 호시절(好時節),
봄놀이를 가는 사람들로 광주역 광장은 산행 및 관광버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지난주 달마山산행을 건강 때문에 놓쳐버리고 오늘 참여하는 내변山산행은
약간 긴장이 되기도 했다.
사실 변山은 젊은 직장인들이 일요일에만 산행하는 “산과 희망”을 비롯해서
금광산악회 까지 10여회 이상을 다녀온 곳이기도 하다.
그래도 산은,
산행을 한다는
것은 항상 긴장되고 설레 임이 있는 일이다.
오늘도 금광은 만석에 가까운 회원들이 참여해 활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특히 “방랑자”, “선유도” 부부회원,
“파란하늘”, “가자가자”, “무등산”, “수선화”, “해뜰날”, “카라”, “로즈”, “루비”등
쉼 없이 자리를 지켜 준 고정회원들,
그동안 사정이 있어 장기간 쉬었던 회원들이 오늘은 많이 참여를 해주었고,
모처럼만에 “무늬”회원의 얼굴도 보였다.
나와 산행보조를 잘 맞춰주었던 “운파”가 오래 만에 나와 같은 좌석에 앉았다,
이런 것들이 우리 조 고문님과 나 회장님, 회원관리에 숨은 공로자인 “민들레”
총무의 기분을 업(up)시켜 주었다.
날씨는 맑고 쾌청하고 바람이 불어도 춥지 않고 시원한 그런 날이다.
산행버스는
고인돌휴게소에서 한번 쉰 뒤 변山을 향해 기분 좋게 달려갔다.
변山은 바깥에다가 산을 세우고 안을 비운 형국이다.
그래서 해안선을 따라 98킬로미터에 이르는 코스를 “바깥 변산”이라 부르고,
수많은 사찰과 암자가 있어 한때는 사찰과 암자만을 상대로 여는 중장이 섰다는
산의 안쪽을 “안 변산”으로 부르기도 한다.
의상봉(508m), 주류산성(331m), 南옥녀峰(433m), 옥락峰, 세봉, 관음봉(424m),
신선대(486m), 망포 대(492m), 쌍성峰(459m) 등의 산들이 안 변山을 에워싸고,
그 안에 백川 냇물이 부안 댐에 갇혀 고창, 부안 사람들의 식수원이 되고
남은 물이
해창에서 서해(西海)로 흘러든다.
내 변山에는 높이 20m의 직소폭포(直沼瀑布)를 비롯해,
높이 30m 와 40m의 2개 바위로 된 울금바위하며 울금바위를 중심으로 뻗은
우금산성(禹金山城)외에,
가마소, 분옥담, 봉래구곡, 선녀 당, 가마쏘(釜棲), 용소(龍沼), 옥수 담(玉水潭)
등 명소가 많다.
또 내소사(來蘇寺), 개암사(開岩寺) 등 사찰이 있고,
호랑가시나무, 꽝꽝나무, 후박나무 등 희귀식물이 군락을 이루고 서식하고 있다.
서해를 붉게 물들이는 “월명낙조”로 이름난 낙조 대(落照臺)의 월명암(月明庵)도
유명하다.
외 변山에는 해식단애(海蝕斷崖)의 절경을 이루는 채석강(전북기념물: 제28호),
적벽江(전북기념물: 제29호)이 있고,
그 밑 해안에는 경사가 완만한 변山해수욕장을 비롯해 고사포해수욕장,
격포해수욕장 등 여름철 휴양지가 많다.
1971년 12월에 변산반도 서부의 변산산괴(邊山山塊)를 중심으로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1988년 6월 11일에 국립공원으로 승격되었다.
오늘 우리는 내변산을 산행하기로 했다.
내변산(邊山)은,
전북 부안군에 있는 높이 508m의 산으로 최고봉은 의상봉이다.
예로부터 능가山, 영주산, 봉래산이라 불렸으며 호남의 5대 명산 중 하나로
꼽혀왔다.
서해와 인접해 있고 호남평야를 사이에 두고 호남정맥(湖南正脈) 줄기에서
떨어져 독립된 산군(山群)을 형성하고 있다.
변산반도 내부의 남서부 산악地를 내 변산(內邊山),
그 바깥쪽 바다를 끼고 도는 지역을 외 변산(外邊山) 이라고 할 정도로
안과 밖이 매우
다른 산이다.
최고봉의 높이는 낮으나, 쌍선峰, 옥녀봉, 관음봉, 선인봉 등 400m 높이의
봉우리들이 계속 이어지고 골도 깊다.
울창한 산과 계곡,
모래 해안과 암석 해안 및 사찰 등이 어우러지면서 뛰어난 경관을 이루고 있어
일찍이 한국 8경의 하나로 꼽혀왔으며,
산이면서 바다와
직접 닿아 있는 것이 특징이다.
봉래구곡, 직소폭포, 선제폭포 같은 빼어난 절경이 산재한 변山은,
산이 깊고 숲이 울창하여
예로부터 약초나 버섯을 재배하거나 꿀벌도 많이 쳤다.
특히 내 변山의 훤칠하게 자란 소나무는 곧고 단단해서 고려 때부터 궁궐을
지을 재목과
목선의 재료로 많이 쓰였다.
이규보는
“변山은 나라 재목(材木)의 보고다.
소(沼)를 가릴 만한 큰 나무와 찌를 듯 나무줄기가 언제나 다하지 않았던 것이다.
층층의 산봉우리와 겹겹의 산등성이에 올라가고 쓰러지고 굽고 펴져서
그 머리와 끝의 둔 곳과,
밑뿌리와 옆구리의 닿는 곳이 몇 리나 되는지 알지 못하겠으나 옆으로 큰 바다를
굽어보고 있다”라고 하였다.
그런 연유로 원나라가 일본 원정을 할 때도 변山에 있는 나무들로 전함(戰艦)을
만들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규보는 고려시대의 문신, 문인. 명문장가로 그가 지은 시풍(詩風)은 당대를
풍미했다
오늘 1팀 산행코스는,
남녀치 매표소에서 출발 -쌍선峰 -안부삼거리 -월명암 -낙조대 갈림길
-자연보호碑 -직소폭포 -재백이 고개 -관음봉삼거리 -관음봉 -세봉 -내소사
-관음봉입구 -내소寺매표소로 내려오는 코스였다.
산행은 오전 10시에 시작되었으며 하산시간을 오후 4시로 정했다.
오늘 산행은
산행1, 2팀이 정해지지 않고 자유산행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남녀치매표소 못 미쳐 중간지점에서 “산행고문”과 “가자가자”, 수선화 3명이
차에서 내려 산행거리를 더 길게 잡았다.
산행1팀은 남녀치매표소에서 출발했고,
산행2팀과 특-B팀은 봉래구곡입구에서 출발했다.
산행1, 2팀은 본인들이 지도나 스마트 폰을 보며 산행을 할 수 있고,
특-B팀은 송 국장이 산행대장이 되어 길을 안내해주고 있었다.
실상寺터를 지나, 자연보호塔을 지나니 직소폭포가 나왔다.
우수기 때처럼 수량은 많지 않으나 폭포수는 힘차게 쏟아지고 있었다.
직소폭포 아래로
작은 폭포와 용소, 옥녀潭, 선녀탕이 있었다.
직소폭포를 바라보며
(팡팡: 자작시)
하늘을 지아비로 모셨다는 / 여인의 아주 은밀한 곳.
생명의 근원이요, 삶의 시작인 / 그 곳에서
우리는 불경(不敬)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
여인의 체취가 살아 있는 / 안온하고 평화로운 곳.
숲과 바위가 하늘에 뜻으로 / 하얀 포말 일으키며
힘으로 다가오는 역사의 태동(胎動)을 보라!
함성이 들리는가?
용소를 가득 채워라, 제2, 제3의 폭포를 / 옥녀潭도 만들어라!
직소 천에서 몰려오는 群衆들의 함성을
넘치는 힘으로 / 계류(溪流)로 흘러 흘러가
변山의 젖줄로 다시 태어나려니 / 십승지지요 변산 팔경의 하나
그 이름 앞에
경배(敬拜) 드리고 싶다.
“운파”는 뒷짐을 지고 천천히 걸어가는 것 같아도 보속(步速)이 빠르고 내가
따라가기가 힘들지만 앞서 가다가 나와 거리가 멀어지면 쉬는 척 기다려준다.
직소폭포에서 “운파”와 함께 가다보니 특-B팀이 잔류하고 있는 것을 망각해
버렸다.
그러고 보니 산행1팀인 “해뜰날”, 총무 등 남녀회원 5-6명을 만났다.
같이 따라가다 보니 재백이고개가 나왔다.
이정표에는 직진하면 원암마을, 좌측은 내소사라 되어있었다.
송 국장에게 전화로 위치를 물어보니,
직소폭포에서 출발해 우리를 따라오고 있다고 한다.
거짓말이었다.
(직소폭포에서 때 이른 점심을 먹고 쉬고 있었다 한다.)
우리는 내소사삼거리 바위 위에서 점심을 먹었다.
바람이 몹시 불어도 시원하고 좋았다.
관음봉을 향해 철 계단과 안부 두어 곳을 지나니 관음봉 삼거리가 나왔다.
직진하면 내소사, 좌측으로 올라가면 관음봉이었다.
나는 체력이 딸려 내소사로 내려가기로 했는데 “운파”가 배낭을 벗어 놓고
관음봉만 올라갔다 오겠다면서 함께 내소사로 가자고 한다.
다른 회원들은
관음봉에서 세봉을 거쳐 하산한다고 한다.
봄철 산불방지 기간이라 출입이 제한, 통제되는 곳이 많았다.
혼자 쉬고 있는데,
방랑자부부, 무늬, 모르는 회원 3명이 지나가면서 아는 체를 하고 올라간다.
50분쯤 지났는데 “운파”가 내려왔다.
둘이는 내소사로 내려갔다.
석가탄신일인 초파일이 5일 밖에 남지 않아서인지 절은 연등과 초파일 준비에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내소사(來蘇寺)는
전북 부안군 진서면(鎭西面) 석포里(石浦里)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 선운사(禪雲寺)의 말사이다.
633년(백제, 무왕 34년) 백제의 승려 혜구두타(惠丘頭陀)가 창건하여 처음에는
소래寺(蘇來)라고 하였다.
창건 당시에는 大소래사와 小소래사가 있었는데,
지금 남아 있는
내소사는 小소래사이다.
1633년(조선, 인조 11년) 청민(淸旻)이 대웅전(보물: 제291호)을 지었는데,
그 건축양식이 매우 정교하고 환상적이어서 가히 조선 중기 사찰건축의
대표적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 후 1865년(고종, 2년) 관해(觀海)가 중수하고,
만허(萬虛)가 보수한 뒤,
1983년 혜산(慧山)이 중창하여 현재의 가람을 이루었다.
내소사 대웅전은
전북 부안군 진서면(鎭西面) 내소사에 있는 조선 중기의 불당(보물: 제291호)
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에 단층 팔작지붕의 다포(多包)집이다.
축대 위에 자연석의 초석을 배치하고 기둥을 세웠고,
기둥은 두리기둥 가운데 우주(隅柱)는 배흘림이고 나머지 평기둥[平柱]들은
직선으로 곧다.
전면 중앙 간에는 4분합문(四分閤門)을,
좌우간에는 분합문(分閤門)을 달았는데,
이 문짝들은 초화 문(草花文)을 투각하여 공예 적으로 정교한 장식을 새긴
문짝들이다.
처마 밑에 받친 공포(栱包)는,
외부로 많이 뻗은 외 삼출목(外三出目)으로 길게 뻗어 나온 쇠서들이 겹겹이
중첩되어 한층
더 한국적인 색채를 풍겨주고 있었다.
이 밖에도 고려동종(高麗銅鐘:보물 제277호),
영산회괘불탱(靈山會掛佛幀:보물 제1268호),
3층 석탑(전북유형문화재 제124호),
설선당(說禪堂)과 요사(전북유형문화재 제125호) 등 여러 문화재가 있으며,
정문에는 실상사지(實相寺址)에서 이건(移建)한 연래루(蓮來樓)가 있다.
부속암자로는 청련암(靑蓮庵), 지장암(地藏庵)이 있다.
1986년에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반경 500m 일원이 문화재보호구역(전북기념물,
제78호)으로 지정되었다.
일주문(一柱門)부터 천왕문(天王門)에 걸쳐 약 600m에 이르는 전나무 숲길이
유명하다.
산행은 오후 4시에 완료되었다.
산행버스는 곰소로 이동하여 젓갈가게에서 무료로 제공해주는 식당에서
준비해온 돼지머리고기와 찰밥으로 먹었다.
나는 아내가 좋아하는 토하젓과 파래자반을 샀다.
무늬회원은 젓갈을 종류별로 많은 양을 구입하고 있다.
산행도 빨리 끝났지만 낮이 길어 광주에 도착하고 보니 해가 한참이었다.
퇴근 시간대라 북성中에서 9번 간선버스를 탔는데 사람이 만원이라 집에까지
꼼짝없이
서서왔다.
이달 초 “4월 위기설”이 고개를 들었다.
북한이 6차 핵실험 의지를 내보이고 미국이 선제타격 가능성을 언급하자
전쟁에 대한 불안감이 고개를 든 것이다.
사드(고고도사일방어체계)배치 결정 이후 중국이 자국민의 한국 관광을 막는 등
몽니를 부리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벌어진 일이다.
긴장의 한반도 정세는 한국전쟁 발발이후 지금까지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
북한이 인민군 창건기념일인 25일에 6차 핵실험을 하겠다거나,
미사일 발사를 하겠다는 등 엄포를 했지만 미. 중의 강력한 경고로 결국
원산 앞바다에서 대규모 포사격훈련으로 마감했다고 한다.
“4월 위기설”같은,
위기설이 없는
마음 편한 날이 우리에게는 언제나 오려나?
(2017년 4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