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들에게 업히신채 웃고 계시는 어머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들을 당신의 등에 업고 둥개둥개 하셨을 젋디 젊은 어머님은
지천명을 넘긴 아들 등에 업혀 천진스럽게 웃으신다.
말간 그 모습이 주홍빛 홍시의 투명함과 같다.
유월 감꽃이 진 자리에 초록감은 떫고 텁텁한 살을 채우며 푸른 잎사귀에 숨어
자신을 지켜낸다.
거친 비바람에도 끄덕 않고 맞서며 가으내 붉은빛으로 고우다가 조금씩 투명해진다.
더이상 투명해질 수 없을 때 홍시는 잎을 다 떨구고 우리들 눈에 띄기 좋은 주홍빛으로
제 살을 기꺼이 가져가라 일러준다. 홍시는 어머님 모습과 같다.
곤하다고 하시며 소파에 누우신 어머님은 나의 기척에 선잠을 깨셔서 매우 놀란 표정으로
여기가 어딘가, 당신이 바라보는 사람이 누구인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으실 때가 있었다.
이 세상 너머를 바라보는 듯한 그 눈빛의 아득함에 나는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을 느끼곤 했다.
어머님은 이제 떠나온 곳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나날이 조그마해지시는지 모른다.
"38kg 밖에 안나간다."
어머님은 적막한 목소리로 당신의 체중을 얘기 하신다.
남편과 남편의 동생들이 차례로 생명을 싹 틔우고 깃들었던 몸. 84년의 행보.
그것은 나의 과거이자 미래이다.
삶의 둥그런 순환의 고리를 완성하기 위해 당신은 점점 조그마해지시는 것일까?
점점 더 말갛게 변하시는 것일까? 얼굴빛이 갈수록 하얗고 투명하다.
요즈음 들어 누우신 어머님 모습이 유난히 어린애 몸피 같아 보여 가슴이 먹먹할 때가 많다.
어머님의 삶은 일제 강점기, 태평양전쟁, 6.25 등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다 겪으신
살아있는 역사교과서다.
상을 물리신 어머님께서는 당신이 겪으신 육이오 살벌한 얘기, 가슴 아픈 역사의
한 페이지를 담담하게 얘기 하신다.
해방 직후 친일한 마을 구장에게 격노한 사람들이 배에 큰 돌을 짓이겨 아직 명줄이 붙어
있는 채로 짚으로 덮어 매장을 했다는, 격동의 시절을 들려 주신다.
이번에 수필문학에 천료된 작품이 '장독대'라는, 친정 엄마와 어머님을 소재로
한 것은 내 나름으로 두 분의 간난했던 삶을 위로 드리고 싶어서였다.
나는 결혼 후 한 번도 어머님에 대한 섭섭한 기억이 없다.
며느리 셋만 모이면 시어머니 험담이라지만, 오죽해서 '시'자가 들어 시금치도 먹지 않는다
했지만 나는 예외였다. 그것은 내가 무던해서가 아닌, 순전히 어머님의 인품 덕분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어머님의 과분한 사랑을 받기만 했다.
여든네 번째 어머님 생신날, 마침 공휴일이라 잘 되었다.
일흔이 넘으면 미역국을 드시지 않는다고 하시며 쇠고기국을 원하셨다.
명이 길어지기 때문에 미역국을 드시지 않는다고......
관절염 수술, 최근의 잇몸 질환과 기력쇠잔, 순환계 이상으로 어느 하루도 편안하신
날이 없으신 가운데 오래 살면 자식들 고생 시킨다 하신다.
그 말씀 들으면 몹시 마음이 아프다.
지난한 세월을 거치신 어머님 모습은 노화가 아닌 '풍화'라고 하고 싶다.
여흥으로 삼모자가 둘러앉아 고스톱을 치며 즐거워 하신다.
경로당에서는 점 10원이라는데 오늘은 도박이다. 점 100원이었으니. ㅎㅎ
몇 년만에 생신상 반주로 약주를 드신 어머님은 곤하다며 누우신다.
무척 평화롭다. 마치 어린애가 잠든 모습 처럼 천진스럽다.
어머님, 만수무강하세요. 당신을 존경합니다.
나훈아/홍시
첫댓글 '반중(盤中) 조홍감(早紅枾)이 고와도 보이나다
유자(柚子) 아니라도 품음직도 하다마는
품어 가 반길 이 없을새 글로 설워하나이다. - 朴仁老
'큰 아들에게 업히신채 웃고 계시는 어머님,'
'말간 그 모습이 주홍빛 홍시의 투명함과 같다'
이런 눈을 가진 며느님 마음도 반쯤은 홍시빛이네요.
일평생 신고간난을 얼마나 삭이고 삭이면 '홍시의 투명함'이 될까요.
'눈에 띄기 좋은 주홍빛으로 제 살을 기꺼이 가져가라 일러준다.'
그렇군요...모든 어머니는 자기살을 기꺼이 자식들에게 내어주는 존재.
큰며느님 댁에서 귀천 길을 홍시처럼 붉고 투명하게 사시는 어머님도,
큰 며느님도, 큰아드님도 행복하십니다.
어머님 건강히 오래 사시기를 빕니다. ^^*
** 괜시리 마음이 애잔해집니다...
살아 계시면 곱게 늙어셨을 울 엄마 생각도 나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