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도 자도 깨도 깨도 마음이 아파 견딜 수가 없구나.
네가 군에 없다면 그냥 기사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나쁜 인간들' 하며 지나갔을 일인데 이렇게 가슴이
저리네. 월드컵을 향한 뜨거운 응원을 이제 우리 69만 군에게 보내야겠어. 우리들 잘 지켜 달라고! 월드컵 얘기 그만 했으면 해. 수장되고 전사한 젊은 군인들 생각하면 흥분을 가라앉히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젊은이들은 가슴에 태극마크 달고
수억을 벌어들였다. 그러면서 유럽무대로의 진출을
꿈 꾼단다. 그런데 어떤 젊은이는 나라 위해 목숨 바쳤다. 이게 뭔가? 세상 이치, 음과 양이 있다지만 이건 너무한 것 아닌가? 햇볕정책의 결실이 이런 것이었어? 둥그런 축구 공 하나로 나라의 위상 드높여준
젊은이들 고맙지. 그러나 이제 그만 좀 조용했으면
좋겠어. 그 어떤 것도 인간의 목숨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었어. 목숨을 잃었다구. 그들도 전역후에 창대한 꿈이 있었던 젊은이들이었어. 내일 축하 카퍼레이드가 있다고 하는군.
취소되어야 마땅하다고 엄마는 생각한다. 국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보답받았으면 충분히 되었다. 젊은 죽은 영혼들의 원한이 바다에 잠겼거늘, 살아 남은 자, 사랑 받은 자들, 조금은 자숙하고 그들이 그렇게 사랑받도록 소리없이 그들을 지켜준, 그러다가 죽어간 또래의 젊은 영혼들을
위해 스스로 고개 떨구고 더 이상의 축하를 사양하는
아름다운 심성이 그 선수들에게 있기를 바란다. 선수들 중의 어떤 어머니 한 사람이 이런 생각을 해주면
그 축하 행사는 취소될 수 있다. 더 아름답지 않겠니? 그 선수들 더 빛나지 않을까? 23명이나 되는 선수들의 어머니 중 한 사람이라도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없을까? 왜 없지? 그들의 아들들은 병역특례를 받아 군에 안 가도 되니까? 마음 아프다. 정말이지 기분 마구 구겨지네. 전사자들의 면면을 보니 효자도 있고 학비 때문에 자원한 젊은이도 있고 대를
이은 군인 가족도 있고 등등 가슴 아픈 기사 투성이구나. 연평도 인근 어부들의 생계도 막혀 버렸다. 4강 진입으로 인해 임시 공휴일로 지정되면서 하루를
쉬게된 것만으로도 우린 행복해. 그것으로 충분해.
오늘 잠시 뉴스를 보다가 은근히 화가 나더군. 빼앗긴 목숨이 4이나 있건만 국민들은 축구 열기에서 아직 헤어나지를 못하고 있었어. 그것이 목숨보다 중요한 것일까? 목숨을 잃었다는 것보다 우리를 더 절박하게 만드는 것이 있단 말인가? 아들아, 힘내라. 아마 국민들의 성원이 우리 69만 대군에게로 곧 옮겨
갈거야. 소리없이 물빛과 함께 장엄하게 죽어간 그리고 부상당한 많은 우리의 든든한 군인들을 위해 지금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렇게 글 쓰는 것 밖에는
없네. 너는 여전히 중서부 전선 철책을 물샐틈없이
잘 지키고 있겠지? 우리 국민들이 자랑스러운 젊은
선수들을 향해 열광하는 함성 소리는 들리지도 않는
그 곳 중부 전선, 잘 부탁해.
-군에 간 아들을 위해 병영일기를 매일 쓰는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