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우연히 연두
김이듬
암흑 한가운데서 눈이 사라진 두개골로 물살을 가르는 심해어에게
물의 흐름과 진동을 감지하는 감각 수용기가 있을 거라 믿는다면
어두운 시간이 준 노래를 들었다면
그러기를 바라는 것이다
너는 연두, 엎드린 아이
그 옆의 물고기는 얼마예요?
나 또한 먹이를 고르는 중이었다
시선으로 들어온 방문객들은 한 순간 나를 조화롭게 만든다
식기장 속 그릇처럼 어색하면서도 다정한
아무렇게나 쌓아놓은 책들처럼
어이, 여기 술 더 줘!
술꾼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한 순간 나는 종업원이 되어 어두운 카페 안 냉장고를 찾아본다
다른 건 없어요?
물건을 고르던 여자가 나한테 묻는다
나는 다른 사람이 되고 다른 사람은 어던 사람일가 생각해 본다
손님들은 손님인 나를 착각한다
나는 주인이 아닌데 주인이 되면 어떤 사람일까 생각해 본다
아마도 사람의 진동을 느끼는 감각기관이 다를 거야
나는 의심스럽게 모호한 인상을 하고 있나 보다
직업을 드러내는 옷차림도 고유한 성격을 보여주는 표정도 없을 것이다
식기장 속 유리병처럼
휘어진 책장처럼
내게 오는 사물을 맞이한다
나는 나든 아니면 또 다른 한 사람 일생으로
그 짧은 한 순간 다르게 불리어 질 때
암흑 한가운데서 내가 두리번거릴 때
너에게로 이행할 감각이 생겨난다
기뻐하며 누가 맡아도 상관없을 배역을 맡자
너는 우연히 연두, 엎드린 아이, 아름다운 검은 나비
뭐든 되거나 아무것도 되지 않을
이 소리 없는 유령들과 함께
<감상>
사물에 대한 사유의 촉이 남다른 시인이다.
그에 따른 시적 발화 양식도 그렇고 ‘너는 연두 ,
엎드린 아이’라는 자기 정체성을 포착하는 과정이
마치 무당이 어떤 망아의 경지에서 접신되어
쫑알거리듯 자신을 타자화한 독백 형식의 시법도 그렇다.
아무튼 남다른 감각으로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불확실성의
미학을 탐구한 여성시의 새로운 장르가 아닌가 한다.
<김동수>
<약력>
. 출생: 1969년 (만 45세), 부산 | 닭띠
. 데뷔: 2001년 시 동인지 '포에지' 등단
. 경상대학교 대학원 국문학 박사
. 국어국문학과 강사
. 2011 제7회 김달진창원문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