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지털 미술
▲ 작품1 - 미구엘 슈발리에의 작품 ‘스트레인지 어트랙터’(2023). 관람자가 직접 화면 앞에서 팔을 휘두르고 이쪽저쪽 걸어보며 작품을 체험하고 있어요. /토마스 크라노프스키
올림픽을 개최하는 도시에서는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운동 경기만 보여주는 게 아닙니다. 개최국의 문화적 위상을 드러낼 만한 공연과 전시회들도 선보여야 하죠. 요즘엔 주로 첨단 기술을 활용한 화려한 영상과 음악, 그리고 단체 무용을 개막식 때 공개하는데, 이런 대형 쇼는 작곡가·안무가·디자이너·컴퓨터프로그래머·엔지니어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공동으로 작업해요. 내년에 개최될 파리 올림픽에는 프랑스가 자랑하는 미디어아트 작가인 미구엘 슈발리에(Miguel Chevalier)도 작품으로 참여한다고 해 미술계에서 기대하고 있습니다.
슈발리에는 지난해 프랑스 문화부 장관에게 예술 훈장을 받았는데요. 이 훈장은 문화·예술 분야에서 뛰어난 공로가 있는 사람에게 수여하는 것이랍니다. 컴퓨터의 수준이 지금에 비하면 아주 낮던 1980년대부터 그는 오직 컴퓨터에만 집중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어요. 그가 화면의 픽셀(pixel·화상을 구성하는 기본 단위)로 모니터를 채우는 과정은 그림으로 치면 붓질이라고 할 수 있어요. 40여 년 동안 컴퓨터가 발전해 온 역사와 더불어 미술가로서 경력을 쌓은 셈이죠.
국내에서는 2021년에 제주도에서 전시회를 가진 바 있고, 이어서 지난달 18일부터 서울 종로구에 있는 아라아트센터에서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게 됐지요. 내년 2월 11일까지 진행되는 '디지털 뷰티' 전시회에서 대규모 설치 14개를 포함해 로봇 드로잉 등 슈발리에의 작품 70여 점이 소개됩니다.
사람 몸짓 따라 화면 이미지 생성
미구엘 슈발리에의 전시회에 가면 가만히 구경하지 말고, 〈작품1〉에서 관람자가 하듯이 화면 앞에서 직접 손짓을 해보고 팔을 휘두르거나 이쪽저쪽 걸어 볼 것을 추천해요. 컴퓨터 프로그램이 여러분의 움직임에 반응하며 그때그때 다른 모양을 생성해 낼 겁니다. 이렇듯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이미지를 제작하는 것을 최근엔 폭넓게 '디지털 미술'이라고 하는데, 1970년대에는 '컴퓨터 미술'이라고 하다가 그 이후로는 '미디어아트'라는 용어와 함께 써왔어요.
슈발리에가 제시하는 디지털 미술의 대표적인 특징을 두 개만 뽑는다면, 첫 번째는 관람자와의 상호작용입니다. 관람자와의 상호작용은 여러 방식이 있어요. 슈발리에의 작품처럼 사람의 몸짓을 추적해 화면의 이미지가 바뀌도록 명령이 작동하는 프로그램도 있고, 좀 더 단순한 예도 있습니다. 상호작용을 유도하는 디지털 미술을 일찍이 시도했던 작가 중에 오스트레일리아의 제프리 쇼(Jeffrey Shaw)가 있어요. 일찍이 1989년에 그는 〈작품2〉에서 보듯, 관람자가 화면 앞에 놓인 고정된 자전거 위에 앉아 눈앞에 펼쳐지는 가상 도시의 골목들을 다녀볼 수 있게 했어요. 자전거의 페달과 핸들로 속도와 방향을 조절하면, 관람자의 동작이 화면으로 직접 연결되도록 프로그램이 작동하지요.
눈 속여 움직이는 환영 만들어내
슈발리에 작품에 나타난 디지털 미술의 두 번째 특징은 움직이고 변하는 이미지라는 것입니다. 1960년대는 디지털 미술의 역사에서 중요한데, 옵아트나 플럭서스 같은 미술 운동이 일어났던 시기이기 때문이죠. 옵아트는 옵티컬 아트(optical art)의 줄인 말로 눈을 속여 움직이는 환영을 만들어내는 미술을 뜻해요. 한 예로, 〈작품3〉은 영국의 옵아트 작가인 브리짓 라일리(Bridget Riley)가 그린 것입니다. 가운데 한 점에 초점을 맞추고 바라보면 움직임이 전체로 퍼져나가는 듯 착각하게 돼요.
슈발리에도 옵아트에서 영감을 얻어 〈작품4〉를 만들었어요. 14m나 되는 높은 벽에 설치된 초대형 화면에서 물결치는 선들이 서서히 색이 달라져 가며 음악과 더불어 가볍게 떨려요. 그 밑의 바닥은 아무도 없을 때는 엄격하게 정렬된 패턴을 보여주지만, 관람객이 밟으면 패턴이 찌그러지고 늘어나면서 색다른 분위기로 변합니다. 바닥이 울렁이는 듯한 몽롱한 기분을 느끼게 되죠.
플럭서스(Fluxus)는 '변화와 움직임'이라는 뜻의 라틴어로, 전통 미술에서 벗어나고자 실험적인 작품을 시도하며 유럽과 미국에서 활동했던 단체의 이름입니다. 플럭서스 미술가들이 중시한 것은 누군가 미리 만들어 놓은 완성품을 전시장에 갖다 놓는 것이 아니라, 즉석에서 그때그때 단 한 번뿐인 작품을 탄생시킨다는 발상이었어요.
디지털 미술, 1990년대 후반부터 유행
세계적인 비디오 미술가 백남준도 1960년대에 플럭서스의 창립자들과 함께 활동한 적이 있어요. 〈작품5〉를 보세요. 백남준은 코일에 전류를 통하게 해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의 얼굴을 일그러뜨렸습니다. TV 시청자도 수동적으로 쳐다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직접 이미지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지요. 백남준이 물리적으로 이미지를 움직였다면, 디지털 미술가 슈발리에는 이미지를 움직일 수 있는 디지털 환경을 구상한 것입니다. 즉석에서 작품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점은 비슷하다고 하겠죠.
디지털 미술은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유행했고, 이제는 세계 곳곳에서 전시회가 열리고 있어요. 전통적인 미술품을 거는 미술관이나 갤러리들도 디지털 미술을 위해 가장 큰 공간을 내어주기도 한답니다.
▲ 작품2 - 제프리 쇼, ‘읽을 수 있는 도시: 맨해튼’(1989). /제프리 쇼
▲ 작품3 - 브리짓 라일리, ‘폭포3’(1967). /영국문화원
▲ 작품4 - 미구엘 슈발리에, ‘디지털 무아레와 매직 카펫’(2023). 눈속임 미술인 ‘옵아트’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어요. /이주은
▲ 작품5 - 백남준 ‘닉슨 TV’(1965). TV 앞의 시청자가 코일에 전류를 통하게 해 직접 TV 속 인물의 얼굴을 일그러뜨릴 수 있게 만들었어요. /백남준 아트센터
기획·구성=안영 기자 이주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