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월속에 살다간 송도의 명기,황진이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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햐얀 치마저고리를 입고
비에 흠뻑 젖어 육감적인 곡선이며 터질 듯 한 팽팽한 속살이
훤히 비처보이는 차림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그래도 화담은 꿈쩍하지 않았다.
황진이가 온갖 절기와 비기를 다 펼처 교태를 부려도 빙긋이
웃기만 한 채 요지부동이었다.
마침내 천하의 황진이도 두 손 들 수밖에 없었다.
황진이와 장장 6년간이나 함께 동거한 억세게 재수 좋은
행운의 사나이가 있었다.
바로 선전관을 지낸 이사종이란 사람이었다. 이사종은 당대의
명창이요 풍류객이었다.
두 사람은 처음에는 서로의 노래에 반하고 다음에는 서로의
인물에 반해 더불어 살기로 합의했다.
그런데 그 방법이 매우 기발했다. 그것은 6년간 함께 살되 3년씩
상대방의 집에서 번갈아 가며 살기로 하고
그 동안의 생계 또한 집주인이 책임지는 방식이었다.
그러니까 황진이와 이사종은 이미 500여 년전에 이 땅에서
계약동거를 실행한 선구자였던 것이다.
황진이가 유명한 시조 ‘청산리 벽계수야’를 읊어 유혹에 성공한
종실 벽계수를 만난 것은
황진이의 명성이 나라 안에 널리 퍼진 다음이었다.
<다음이야기는 6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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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 골프매거진1월호에 실려있는 글이며
올리신분은 소설가이며 한국풍류사연구회장 이신 :황원갑 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