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나의 고향에 한옥마을로 동네가 형성 되었으며, 정자도 함께 있는 도래홍씨 마을
나주에서 4월 23일과 24일 양 일간에 우리들이 코흘리고 학교를 다닐때 금성산
자락의 다보사로 늘 소풍을 갔던 곳이다 .그러니 6 십 년 전의 추억이 새로운 곳에서
우리는 여장을 풀었다.
나주 초등학교 제48회 친구들의 동창회를 29회째 맞은 날이다. 1958년도에 256명이 졸업을
하여 전국의 곳곳에서 살고 있다. 이번에도 서울에서 ,저먼 부산에서 대구에서 춘천에서
가까운 나주나 광주에서 3십여명이 모여 들었다.
펜션인 곳이며 ,이곳에서 저녁을 먹고 그리고 여흥을 즐기고 ,숙식을 함께하는 곳이며
아침에는 이 곳들을 산책을 하며 ,어린시절로 돌아간다.
그 전에 23일에는 '나주 노인복지회관'에서는 우리가 어린시절을 거쳐 ,학교의 교육,그리고
사회를 나오고 결혼을 하여 자녀들을 기르고 ,때론 자기짝하고 머언 이별을 하고도
인생의 노년기를 마무리를 잘 하였던 친구들의 살아왔던 모습들을 .... .
멋드러진 글과 사진으로 만들어져,우리들의 곁에 다가 온다.
때론 가난을 탈피하고져 서울로 상경하여, 자신을 잘 가구어온 친구들의 인생기를 전남도청에서
공직을 마치고, 전남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천수'친구의 멋드러진 글이 우리들의
가슴을 울려 주기도, 이번의 여러친구들의 삶의 애환을 리얼하게 그려주니 ,다른 친구들의 살아온
삶들의 이야기를 읽어보니 뭉클한 마음이다.
특히 3 여자친구들의 이야기가 나의 가슴을 뭉쿨하게 한다. 이 3 사람의 여자들은 똑같이 남편과
사별의 고통을 가슴에 앉고도, 멋지게 여자의 몸으로 가정을 잘 지키고 자녀들을 잘 기른 훌륭한
여성으로 나의 가슴에 와 닿는다. 경제적으로도 그렇게 어렵지 않는 사람으로 또한 우뚝솟는다.
한 여자는 미용사로 홀로 단신으로 간호사,약사를 두어서 의사인 사위를 얻고,노후에 자녀들한테
존경을 받는 어머니상으로 우리곁에 다가온다 .특히 나에게 겨울철에 2번이나 음식을 만들어
그 추운겨울에 택배로 보내준 친구분이다.
다른 또 하나의 여자친구의 이야기는 글의 제목부터가 " 나주 배꽃 아씨 서효숙이야기 "로 나의 눈길을
끈다, 내가 문학을 공부를 한다고 하여서 그런지 ,이친구의 삶의 이야기를 읽을때에는 나의 눈에서는
눈물이 핑 돌고 있슴을 느꼈다. 나도 나의 짝하고 헤어져서 그랬는가!
.... 서론부분 생략 ....
아, 꽃이 되니
암술과 수술이 피고
암술머리에 꽃가루받이가 되니
비록 배 밭에서 촌부처럼 억세계 일했지만
그때가 가장 행복했어
불혹(不惑)이 되고
지천명이 될 즈음에
그대를 꽃이라 불러주는 그 이가
아들 하나,딸 둘 안겨주고
그리움만 남겨 놓고 먼저 가 버렸네
배 밭에 하얀 배꽃 져 버리니
하얀 배 봉지 꽃이 무수히 피었으니
그 이가 보내준 꽃인지
그대가 하늘로 향해 날려 본내는 꽃 이파리인지
배 봉지 꽃안에 수 많은 사연이 담겼네
.......... 이하 생략 .....
또 다른 여자친구는 나하고 의정부에서 같이 살았던 추억이 있고, 의정부에서 등산도 아니면
남산도 곧 장 같이 다녔고, 때로는 식사도 함께 하면서,쓸슬한 노후를 맞이한 여자친구이기도
한데, 이 여친구도 짝을 잃은 여자친구다.
남자도 하지 못하는 건축업을 하여 ,경제적으로 탄탄한 대로를 걷는다 딸도 서울대 약대를 나와
으젓한 약사로써 한 몫을 하는 자녀를 잘 두었다.
이번 동창회의 하일라이트인 것은 몸도 이미 불편하고 힘들게 살아가는 친구한분이 3십여명에
가까운 친구들을 정성으로 대접한 점심식사와 자기집인 농장의 푸른언덕으로 초청을 하여
고향의 푸른 동산에서 친구들하고 차 한 잔과, 고향의 언덕에서 서울에서 친구가 가지온 나팔로
'고향의 봄'을 울려 퍼질때는 ,모든 친구들은 고향의 언덕에서 어린시절로 돌아가는 추억의 시간으로
다시 돌아간 기분이다,
산골인 고향에서 어머니가 힘들게 마련하 준 '보리밥 도시락'을 짊어메고 학교를 다니던 어린시절의
추억이 , 호남선 야간 열차에 무임승차로 서울을 상경 하였던 옛추억이 어른거린다.
첫댓글 세월은 흘러 몸은 반백이 되었어도 변하지 않는 우정은 옛날의
그 아름다운 모습 그대로 남았네요
오뚝이 억척부인들의 성공기는 아름답다 못해 눈시울이 적셔집니다
간단하게 약사다 미용사다 건축가다 말은 쉽지만 그 하나하나의 과정은
그야말로 인고의 성과이겠지요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모쪼록 좋은시간 가지셨습니다. 변함없이 문우로써 또는
추억의 동반자로써 오래도록 건강하게 정을 나누며 사시길
바랍니다.
이제는 나이를 먹었는지?
고향의 친구들이 내 형제간처럼, 느끼는 것은 무엇일가?
특히 여자친구들의 삶이 더 와닿는다.
어려운 환경에서, 스스로 펼쳐나간 그삶이 덧보인다.
이번 동창회 모임은 더 뜻이 있슴을 ....
동구리님.1박2일 동심으로 돌아가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셨네요‥
오래도록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듯요‥
세명의 여친들‥
정말 대단하십니다‥
장한 어머니들 입니다‥
그런 멋진 친구분들을 자랑하시는 동구리님도 참 멋집니다‥
굿 밤요~^^
이번동창회는 많은 감회가 있습니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여자친구들이 자랑스럽고 ....
가요무대에서 남상규가수 노래 많이 들었던 노래네요 .
동구리선배님은 나름데로 여친들과 즐겁게 사셨던 추억을 아직도 잊지못하고
동구리님 배짱도 있으시고 당당하게 사신모습 보기 좋습니다 .
이른아침 잠시 들렸다 갑니다 .
아내가 떠난뒤에도 ,공부하고 여자친구들하고 가깝게 지내고 시간을 보냈습니다
사실 자존심하면 ....
정말 쎄지요 .이제는 다 떨치고 초야에서 지냅니다
아~좋으신 삶을 살고 계시네요선배님께서 어련히 잘 알아서 하시겟지만 세분중 어느 한분한테라도 치우치신다면 그건좀
나주라면 20여년전 영암의 독천마을 이든가 그쪽으로 일보러 다니든 때가 그립게 떠오르는 군요 건강하신 나날 되시길요
초등친구들은 이성으로 생각을 하지않고,
우정으로 생각하며 ,이제 나이가 들어가고 다들 짝이 없으니, 진정한모습으로 많이 생각한답니다
여자친구들이나, 남자친구들이나 다 들 초등친구들로 진한 우정을 갖고 지냅니다
감사합니다
어릴적 추억이 고스란히 간직 된 고향에서
고향 친구들과 함께 하셨다니~~
국민학교 졸업 하자마자
고향을 떠나와서 고향 친구가
별로 없는
저는무척 부럽습니다.
국민학교 5학년 때 엄마가 돌아가셔서
졸업도 못 하고 객지로 떠난
뺀드부 작은 북 담당했던
영심이란 여자 아이가 가끔
궁금합니다.
오늘은 날씨가 제법 쌀쌀합니다.
건강 유의 하세요.
아이구 초등학교때 어머니가 저세상으로
너무 고생이 많으신 산등성이님...
고생많으,셨겠습니다. 영심이랑 즐거운 시간이 되엇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래요..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 그대로를 이루며 사는 벗님들과의 나들이,
참 보기 좋습니다.
이제 더는 아프지 않으셔야 할 텐데요..
동구리님,
이제 외로워 마시구 친구들이랑 행복 나누며 그렇게 어울렁더울렁 사세요~~^/^
사실 남자가 짝이 없으니 ,많이 외롭습니다
그러나 예전에는 여자친구가 있어서 즐거웠고,지금은 초등친구들이 있어서
그냥 지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