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로(寒露)
한로의 의미
한로는 24절기의 열일곱 번째 절기로 추분(秋分)과 상강(霜降) 사이에 들며, 음력으로 9월에 속하고 양력으로는 10월 8일이나 9일이다. 2011년의 경우 10월 8일에 들었다. 이때의 태양은 황경 195˚의 위치에 온다.
한로(寒露)가 의미하는 말뜻 그대로 공기가 점점 차가워지면서 찬이슬이 맺히는 계절이다. 세시명절(歲時名節)인 음력 9월 9일의 중양절(重陽節)과 비슷한 시기에 들지만, 중양에 비교하면 특별한 민속이 없어 그냥 하나의 절기로 칠 따름이다.
아무리 별다른 민속이 없다 해도 가을은 가을이라 차가운 이슬에 단풍이 들기 시작한다. 이는 가을이 무르익었다는 증거다.
한로의 환경
농도(農道)인 전라북도 전주에서 한로로 기준한 10월 8일의 기후를 보면, 1971년부터 2000년까지의 평균기온의 평균은 16.1℃에 달했고, 최고기온의 평균은 23.0℃로 나타나서 추분보다 약 3℃정도 낮았다. 또 최저기온의 평균은 10.6℃로 추분보다 무려 5℃정도나 낮게 나타나 기온이 성큼성큼 낮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강수량은 1.1mm로 추수기에 거의 비가 오지 않았으며, 평균습도도 72.8%로 낮아지고 있다. 바람의 평균속도 역시 1.0m/s로 줄어들었다.
옛사람들은 한로 15일간을 5일씩 끊어서 3후(三候)로 나누고 처음인 초후(初候)에는 기러기가 초대를 받은 듯 모여들고, 중후(中候)에는 참새가 적어지고, 말후(末候)에는 국화(菊花)가 노랗게 핀다고 하였다. 이때가 우리나라의 상공을 놓고 제비와 기러기가 자리바꿈을 하는 시기다. 아울러 여름텃새인 참새도 겨우살이 준비를 하기에 활동이 뜸해진다는 말이다.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은 마지막 영양분을 비축하는 시기다. 따라서 맹독성 동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지혜가 요구된다. 또 가을의 마무리 단계에서 환절기 감기에 주의하여야 한다.
늦는 경우 추석이 들기도 하며, 이제 막 시작되는 수확으로 풍성한 먹을거리가 있다. 그와 더불어 넘치는 영양공급으로 인한 부작용이 생기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한로의 상황
공기 중의 습도가 차가운 공기를 만나 추운 이슬이 맺힌다는 한로(寒露)다. 이 시기를 지나면 찬 이슬이 꽁꽁 얼어 서리로 변하기 시작함으로 계절적인 변화의 기로인 셈이다. 아직 거둬들이지 못한 곡식이 있다면, 한로절기가 가기 전에 서둘러 추수를 마쳐야 한다.
이 시기는 오곡백과(五穀百果)를 수확하는 계절이며, 농촌은 아주 바쁜 시기가 된다. 여름철의 꽃보다도 더 아름다운 가을 단풍이 곱게 물들어가지만, 부지런한 농부들은 이렇다 할 단풍놀이를 하지 못하는 때이기도 하다.
한로의 풍속
여름새가 떠나고 겨울새가 찾아오는 시기다. 조금 더 지나면 독수리와 같은 맹금류도 찾아올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시기에 국화전(菊花煎)을 지지고 국화술을 담는 풍습이 있다.
국화는 둥근 모양을 한 여러 꽃잎이 촘촘히 퍼져있으며, 밝은 빛을 발하는 꽃으로 태양을 상징한다. 또 양(陽)의 숫자 중 가장 큰 수인 9가 겹치는 중양(重陽)이 바로 이즈음이기 때문에, 국화가 가지는 의미는 누가 뭐래도 양(陽)을 꼽을 수밖에 없다.
이 무렵 높은 산에 올라가 산수유열매를 머리에 꽂아 잡귀를 쫓았는데, 이는 수유열매의 붉은색이 귀신을 쫓아내는 벽사력(辟邪力)을 가지고 있다고 믿은 때문이었다.
한로(寒露)의 들녘에서는 이제 막 수확이 시작되며, 이는 대체로 상강(霜降)까지 이어진다. 이런 농촌을 혹시 낯모르는 길손이 지난다 하더라도, 새참을 먹이거나 막걸리 한 사발이라도 돌려 서로 나누는 정(情)을 베풀었던 때이다.
한로의 농사
일찍 심은 밭벼를 수확하고 하지쯤에 정식했던 들깨도 수확하는 시기다. 벼를 비롯한 곡식들을 수확해 갈무리하고 고추와 오이, 호박 등 여름 과채류들도 씨앗을 받아둔다. 고구마도 캐어서 먹을 것은 먹고, 씨 할 것은 잘 갈무리해두어야 하는 계절이다. 콩, 팥, 수수, 옥수수, 들깨 등 파종 후 100일이 지난 작물을 수확하는 철이다.
그런데 내년에 사용할 씨앗을 준비하는데 재래종을 선택하는 농가가 드문게 현실이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수확을 얻고, 어느 특정 기능을 강화한 기능성 작물을 심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토종보다는 개량종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요즘 문제시 되고 있는 유전자 변형 종자까지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몸에는 우리 땅에서 난 토종 작물이 최고라는 점에는 누구나가 공감하고 있다. 비록 소출이 적고 모양은 어설프지만 그래도 우리 몸에 적합한 먹을거리라니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이다.
벼의 경우 극조생종은 7월 하순부터 8월 초에 이삭이 패고, 조생종은 8월 상순, 중생종은 8월 중순, 늦게 심은 벼나 중만생종은 8월 하순에 이삭이 패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므로 극조생종은 이삭이 팬 후 40일, 조생종은 40~45일, 중생종은 45~50일, 늦게 심은 벼나 중만생종은 50~55일이 지난 후에 벼를 베면 적당하다. 이를 계산해보면 극조생종은 9월 중순으로 한로가 오기 직전에 해당한다. 예를 들면 조생종은 9월 중순에서 하순, 중생종은 10월 1일에서 초순, 늦게 심은 벼나 중만생종은 10중순부터 하순까지가 해당된다. 나락도 씨로 쓸 것은 조금 일찍 거두는 편이 좋다. 아직 푸른 기가 남아있는 알곡을 거꾸로 매달아 말렸다가, 상처가 나지 않도록 조심조심 홀태로 훑어준다. 그래서 한로는 내년 농사를 위해 좋은 씨앗을 갈무리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익산시 농업기술센터에서 전하는 우리지역의 벼농사의 수확은 한로가 되면 바로 실시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러나 현지 작물의 상황에 따라, 그리고 현지 논의 여건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나니 물빼기 등에 신경을 써야 한다.
수확한 벼를 건조기가 아닌 햇볕으로 말릴 경우는 미리 깔아놓은 볏짚위에 멍석이나 구멍뚤린 망사를 깔고 말리면 좋다. 요즘 유행하는 망사는 짚멍석에 비해 통풍이 잘 되며 가볍고 부피도 작아 농가의 호응을 얻고 있다. 요즘 기계건조의 경우는 기존의 열풍방식에 추가로 원적외선을 방출하여 말리는 방식이 채택되기도 한다. 이런 방식은 복사에너지를 다시 흡수하여 사용하는 것이므로 열효율이 좋다고 할 것이다. 기계건조는 45~50℃가 적당하며 아무리 높아도 53℃를 넘지 않도록 하고, 수분함유량은 1시간에 1%이상 마르지 않도록 한다. 특히 다음 해에 종자로 쓸 벼는 40℃이하에서 건조하고, 식량용으로 사용할 벼는 50℃이하에서 건조하는 것이 좋다.
조, 수수, 옥수수 같이 양이 적은 것은 이삭 채 거두어 잘 말린 다음 처마 밑이나 벽에 걸어두었다가 이듬해 파종할 무렵 꺼내어 사용하면 된다. 종자로 쓸 고구마는 한로절기가 끝나기 전에 캐는 게 좋다. 서리를 맞으면 잘 썩기 때문에 종자로 사용하기에 부적합하다. 그렇다고 먹는 데까지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보관시 주의하여야 함으로 겨울 간식용 고구마도 상강 전에 캐면 좋을 것이다.
고구마는 썩기 시작하면 자기 몸을 웅크려 혼자서만 썩는데 비해, 감자는 썩으면서 진물을 내어 다른 감자까지 썩게 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이들 밭작물은 다음에 심을 뒷그루 작물을 고려하여 수확이 늦어지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고구마의 정식 보관온도는 12~15℃가, 감자는 3~4 ℃가 적당하다. 고구마는 찬 서리를 한두 번 맞은 후에 거두어도 좋다고 하였는데 이는 조금 늦은 경우를 말하며, 빠른 밭에서는 한로가 되면 벌써 수확을 시작한다.
오이와 가지, 호박의 씨를 거두는 채종(採種)은 아직 따지 않은 채로 좋은 열매를 골라 정성을 들인다. 눈으로 보아 과채류가 무르익으면 수확하여도 된다. 열매가 물러 터져도 상관은 없지만, 그렇게 되면 씨앗을 관리하기가 힘드니 너무 기다리지 말고 적당한 때에 거둔다. 이것은 과육의 영양분이 씨앗으로 옮겨가는 것을 기다리는 것으로, 충실한 씨를 얻는 방법 중의 하나다.
고추는 튼실한 줄기에서 좋은 열매를 골라 씨를 받으면 된다. 그러나 처음부터 고추를 태양초로 말린 다음 씨를 채취한다면, 더욱 야무진 씨앗을 얻을 수 있다. 무와 배추를 비롯한 채소류는 무름병, 무사마귀병, 진딧물, 배추좀벌레, 배추순나방, 노균병, 벼룩잎벌레, 파밤나방, 담배거세미나방 등을 방제하여야 한다. 시설채소도 역병, 잿빛곰팡이, 총채벌레, 아메리카잎굴파리, 담배가루이, 응애, 진딧물 등이 번지기는 마찬가지다. 일부 병충해는 주변에 널린 잡초를 중간숙주로 하여 발생하는 경우가 있음으로 환경을 깨끗하게 하는 것도 필요하다.
과수농가는 열매 수확과 더불어 잎을 따주는데, 이는 다른 열매를 고루 익도록 하는 방법의 하나다. 이에 더하여 햇빛 반사필름을 깔아주면 효과적이다. 열매는 나무에 따라 익는 속도가 다르므로 여무는 정도를 보아 2~3차례 나누어 수확하면 된다. 발생하는 병충해로는 검은별무늬병, 미국선녀벌레, 노린재, 깍지벌레, 꽃매미 등이 있다.
한편 밀과 보리를 심는 계절이기도 하다. 따뜻한 남쪽지방에서는 조금 늦게 심어도 되지만, 중부지방에서는 늦어도 10월 중순 즉 상강(霜降) 입기일(立期日)까지 심는 것이 좋다. 왜냐면 가을에 심은 작물은 추운 겨울을 나야 하는데, 이때 추위가 오기 전에 세 치 정도 즉 5~6매의 잎이 자라있어야 적응력을 갖추어 생명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계절별로 살펴보면 우리 익산의 경우 평야지에서는 10월 중하순이 적당하고, 일부 산간지에서는 10월 상순과 중순이 적당한 파종시기다. 중부지방에서는 이보다 약 10일 정도 빨리 심는 것이 좋다.
축산농가는 조사료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습기를 제거하여 양질의 사료를 얻도록 한다. 내년 초에 먹일 사료작물로는 호밀, 보리, 이탈리안라이그라스 등이 있다. 요즘에는 건초에 암모니아처리를 하거나 곤포담근먹이를 만들기도 한다. 10월 초순 즉 한로가 되면 기온이 5℃이하로 되면서 식물의 성장이 멈추게 되는데, 이때 사료작물을 거두는 것이 좋다. 반면 환절기는 가축에게서도 면역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므로 브루셀라, 설사병, 호흡기병, 돈열, 조류인플루엔자, 결핵, 뉴캐슬병, 가금티푸스 등을 예방하여야 한다.
한로에 먹을 음식
하늘은 더없이 맑고 높은데, 벼가 여물어 들판은 황금물결로 변해가는 시기다. 이때는 농사짓는 사람들은 모든 것을 다 가진 듯하여 듬직하기마저 한다. 오죽하면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는 말을 하였을까.
아직까지도 한낮에는 따가운 햇볕이 남아있어 차가운 음식을 찾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런 날씨는 음식을 빨리 상하게 하므로 보관에 주의하여야 한다. 또 기온의 일교차가 심해지고 건조한 날씨로 바뀌는 이때에는 우리 몸도 빨리 환경변화에 적응하는 것이 좋다. 그래야만 면역력을 길러 추운 겨울철에도 정상적인 몸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니, 음식도 거기에 맞는 음식을 골라먹을 필요가 있다.
추어탕
한로와 상강이 되면 서민들은 시식(時食)으로 추어탕(鰍魚湯)을 즐겼다. ‘본초강목(本草綱目)’에도 미꾸라지는 양기(陽氣)를 돋우는데 좋다고 기록하고 있다. 가을(秋)에 먹어 살찌게 하는 고기(魚)라 하여 미꾸라지를 추어(鰍魚)라고 불렀을 것이다.
삼색나물
삼색 나물은 흰색의 도라지와 검은색 줄기의 고사리, 그리고 녹색인 시금치가 어우러진 대표적인 나물에 속한다. 이때의 세 가지 색상은 마치 뿌리와 줄기 그리고 잎사귀를 연상하는 완전한 음식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뿐만 아니라 세 가지 색상에서 흰색은 백의민족의 조상을 의미하며, 검은 색은 현재의 부모님, 그리고 녹색은 앞으로 이어질 자손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런 원리는 우주를 연상시키기도 하며, 작은 우주에 비유하는 몸을 다스리는 한방의 처방원리에 속하기도 한다. 뿌리가 튼튼해야 몸이 곧추서고 무성한 가지를 달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송편
송편은 멥쌀가루를 반죽하고 풋콩과 깨, 밤 등의 소(巢)를 넣어 반달 모양으로 빚어서 찐 떡을 말한다. 이때 시루에 솔잎을 넣기도 하는데, 이는 좋은 향을 내어 맛을 돋우는 방법의 일종이다. 그런가 하면 음식이 상하기 쉬운 가을 날씨에 오랫동안 보관하기 위한 방편으로, 살균소독성분이 있는 솔가지를 넣는 사전(事前) 약방문(藥方文)의 효과도 있었다.
꽃송편
전라도의 꽃송편은 귀하기도 하지만, 한의학적인 면에서는 훌륭한 ‘약선요리(藥選料理)’로 꼽힌다. 쌀가루에 오색나물로 만든 색을 넣고, 송편의 윗부분을 꽃잎 모양으로 오므리면 아름다운 꽃송편이 된다. 오색(五色)은 동서남북과 중앙의 다섯 방위를 상징하며 이를 오방색(五方色)이라 한다. 중앙에는 황색으로 호박을, 동쪽에는 녹색으로 연잎을, 서쪽에는 백색으로 마를, 남쪽에는 홍색으로 오미자를, 북쪽에는 흑색으로 검은 콩을 사용하였다.
토란탕
토란은 동그란 모양의 뿌리채소로, 알칼리성을 띠는데 기름진 음식으로 생긴 산성화(酸性化)를 중화(中和)시킨다. 혹시 과식을 했을 때에도 뱃속의 불균형을 고쳐주며, 변비치료에도 효과가 있고, 음식이 변질되기 쉬운 계절에 독소를 없애주는 아주 유용한 음식이다.
국화전과 국화주
한로는 국화전을 만들어 먹고 국화주를 담아 마시는 계절이며, 야산에는 산수유(山茱萸)가 풍성하여 산을 찾는 일이 많아지는 때이다. 산수유의 붉은 빛은 벽사(辟邪)의 능력을 가졌다고 믿었던 열매에 속한다. 벽사(辟邪)란 사악한 잡귀를 물리친다는 것이니, 왕성한 생명력으로 활기차면 그것을 물리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빨간색은 생명의 색이며, 젊음의 피를 상징하기도 한다.
국화차
그런가 하면 이때는 들녘에서 자란 야생 꽃들을 모아 좋은 차(茶)의 재료로 만들 수 있다. 그중에서도 가을에는 국화차를 우선으로 꼽는다. 요즘은 가까운 곳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국화라 해도, 공해에 찌든 것이거나 환경에 오염되었을 것은 피하는 것이 좋다.
현대인들은 몸에 좋은 것을 일부러 찾아나서는 경향이 있으므로, 조금 손이 가더라도 좋은 재료를 골라 살짝 데친 후 그늘에서 말려 건조한 곳에 보관하면 좋을 것이다. 잘 말린꽃은 차로 마셔도 좋고, 향낭(香囊)에 넣어 향(香)을 맡아도 좋다.
감
한로에는 울안이나 밭둑 어디에서도 지천으로 널린 감을 볼 수 있다. 감은 그 종류도 많고 생김새도 여러 가지며, 맛 또한 달거나 아삭거리는 감 등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곶감을 만드는 대봉은 서리가 내리는 상강이 지나면서 깎아 매달기 시작한다. 요즘에는 천연감식초를 만드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서 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제철 채소
채소도 많아 울안 채전(菜田)은 먹을거리 천지가 된다. 김장용 배추와 무, 그리고 시금치도 한창이다. 배추와 무는 쌈으로 싸서 먹기도 하며, 된장시래기국을 끓여 먹어도 훌륭한 반찬이 된다. 시래기를 말리면 그냥 푸성귀로 먹을 때보다 더 많은 영양소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이때 버려지는 이파리를 사용하기 보다는 처음부터 싱싱하고 온전한 잎을 살짝 데쳐서 말리면 더욱 부드럽고 맛있는 시래기를 장만할 수 있다.
기타
음식은 어느 한 가지만 많이 먹는 다고 이로울 것이 없다. 양양소를 골고루 섭취하는 것은 물론이며, 기능적으로도 골고루 균형을 맞추어야 정말 몸에 좋은 음식이라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추석음식은 오랜 전통과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진 음식이며, 제철에 나는 재료를 사용한 최고의 보양식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가을에 먹는 토란국, 삼색 나물, 오색 꽃송편 등은 가을 기운을 듬뿍 담고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면역력을 기르는 데 아주 적합한 음식들이다.
토란국이 가르쳐 주는 음양적 기능, 삼색나물의 구조적 사회적 기능, 꽃송편이 보여주는 공간적 총체적 기능은 만물이 한 곳에서 모이는 늦가을의 인간을 의미하기도 한다. 음식 하나를 먹더라도 우주의 원리와 자연의 풍요를 모두 만끽하는 것이니, 우리 몸이 곧 자연의 일부가 되고 우리의 생활 속에 자연이 들어와 있는 그런 삶이었다고 할 것이다.
한로의 별자리
찬 이슬이 내리는 한로에는 은하수가 많이 보이며, 저녁이 되면 큰무덤별 즉 대릉성(大陵星)과 하늘배별 즉 천선성(天船星), 좀생이별 등이 동북쪽 하늘가로 떠오른다.
좀생이별은 묘수(昴宿)로 플레이아데스성단을 말하며, 가을철의 큰 네모인 실수와 벽수에서 동쪽으로 이동하여 규수를 지나면 낚시 바늘 두 개를 등대어 놓은 듯한 천선과 대릉을 만나게 된다. 규수는 안드로메다자리에서 명치에 해당하는 델타(δ), 그리고 좌우에 있는 파이(π)와 엡실론(ε)의 3개의 별을 말한다.
묘수는 늦가을에서 겨울에 뜨는 별로 죽은 사람을 장사지내는 상례(喪禮)와 임금에게 간언하는 일을 맡았다. 대릉은 페르세우스자리에서 마녀 메두사의 머리에 해당하는 베타(β)와 로(ρ)를 포함하여 8개의 별을 가리키며, 천선은 페르세우스자리의 오른쪽 옆구리에 해당하는 감마(γ), 알파(α), 프사이(ψ), 델타(δ)를 포함하여 9개의 별로 되어있다.
묘수의 동쪽으로 필수(畢宿)가 있는데, 이는 오리온자리의 허리띠부터 플레이아데스성단까지 잇는 선에서 황소자리의 알파(α)인 알데바란이 중심이 된다. 또 동쪽으로 이동하여 오리온자리에서 사각형을 이루는 별과 중앙의 별들을 포함하여 삼수(參宿)라 하며, 오리온자리에서 사람의 머리에 해당하는 별 3개를 자수(觜宿)라 한다.
한로회고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때쯤에 논의 물꼬를 보러 갔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추수를 위하여 논바닥을 말리던 일이었음을 알 수 있다. 물은 잘 빠지고 있는지, 어느 정도나 빠졌는지, 혹시 다른 논의 물이 넘쳐나서 수로에 문제는 생기지 않았는지 하는 임무를 띠고 살피던 물꼬였다.
그래서 아침 일찍 남이 물을 빼기 전에 물꼬를 터주고, 한낮이 되어 남들도 한창 물을 뺄 때면 논으로 역류하지 않도록 물꼬를 다시 막아주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러니 나락이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을 수확할 때까지 실감하던 시기였다.
이때에도 발을 걷어 부치고 논에 들어가서 삽질을 해야 제대로 할 수 있었지만, 차가운 물이 싫어서 그냥 논둑에 선채로 물꼬를 트는 일도 있었다. 그런 날이면 으레 오후확인 시간에 아버지께 혼나는 날이기도 하였다. 한로의 물꼬트기는 아직 서리도 앉지 않았고 얼음도 얼지 않았지만, 밤새 곤두박질한 수온(水溫)은 발을 담그는 순간 싸르르한 전율(電汩)로 타고 오른다. 순간 설늙은이들은 동상(凍傷)과 함께 심장마비에 걸리기 십상인 순간이다.
여름부터 맺히기 시작한 이슬이 차가운 물방울로 변하는 한로에 이르러 손도 대기 싫은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지나면 이것조차 차가운 얼음으로 변할 터이니, 어느새 또 1년이 지나가는 것을 느낀다. 그렇다면 이 계절 풍성한 수확에 감사하며, 지나온 한 해를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비록 내가 수고를 하였지만, 그래도 자연의 힘이 없이는 어느 한 가지도 완성할 수 없는 것들이니 역시 자연의 섭리를 고마워하지 않을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