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깨어난다."
<카프리 초스 No.43>1798, 고야
스페인 미술의 거장 프란시스코 고야 (Francisco de Goya, 1746-1828)가 제작한 판화 연작 "로스 카프리초스" (Los Caprichos)
어깨에 쌓인 벚꽃을 눈처럼 털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어느 날 갑자기 사랑한다는 말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천박한 말인지를 깨달았다. 그 말에는 책임이 들어 있어야 했다. 젊은 내가 무수히 쏟아 내었던 경박한 싸구려 말들이 지금 무협고수가 날린 트럼프 카드처럼 살을 파고든다. 상처가 몹시 아리다. 저주의 말과 함께 내뱉는 침보다 더 찐득하고 더럽운 말의 화살들이 되돌아 날아온다. 신의 저울 위의 내 몫의 죄 값은 도대체 언제쯤 다 갚는 것일까? 난 코로나 372번이다.
2023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나도 그들과의 싸움을 하는 중이다. 우리 중 어떤 누구도 이 전쟁과의 사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단골국밥집이 1월에 국밥 값을 천 원 올렸을 때 나의 First인 남편이 고맙다는 말을 했다. 이렇게 가격이라도 올려서 식당이 망하지 않고 계속 장사를 할 수 있어서 우리가 편하게 밥을 먹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했다.
4월인 오늘 또 천 원을 올렸다. 이제 재방문 의사가 사라졌다. 이건 좀 아닌 것 같다. 혹시 다시 온다 해도 당분간은 자제할 것 같다. 이 전쟁은 언제 끝날까? 정말 전쟁 때문에 이렇게 경제가 팍팍한 걸까? 누군가가 불행해져야 비로소 행복을 느끼는 건 뭘까? 삶이 너무 힘들다. 주변에 수많은 죽음들이 희화되는 밤! 난 또 다른 죽음을 기다린다. 현대판 바벨탑을 짓고 있는 미국은 언제쯤 무너질까? 하루하루 흥미롭다. 죽죽 망해가기를!! 고대해 본다. 영원한 것은 없다.
러시아가 미국에 핵을 쏘고 미국과 전인류의 멸망이라는 호재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 내 죽음으로 어차피 인류는 끝날 것이고 그렇게 인류를 나 스스로가 멸망시켜도 나쁠 것 같지는 않다. 생각하는 지성, 실천하는 지식이라고 떠드는 자들도 다 가고 없더라. 내 영혼을 원심분리기에 넣어서 갈아버리고 싶다. 노엄 촘스키가 좀비 같은 얼굴로 입만 겨우 살아서 헉헉 거리며 떠들더라. 해골에 입이 달려 떠드는 느낌이었다.
세기의 지성보다는 점쟁이가 더 신뢰가 간다. 어리고 성형빨 잔뜩 새운 어린 보살이 두려움 없이 정치인을 까는 영상이 멋져 보인다. 미래 학자나 정치가 증권 애널리스보다 믿음직하다. 이유는 하나이다. 그들의 예견은 틀려도 그만이지만 어린 보살은 그녀의 예견에 대한 값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욕먹을 각오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안갯속을 헤맨다. 스모그가 인상파 그림처럼 느껴지는 풍경화 속을 걸어간다.
현실의 모든 상황이 싫고 내 맘대로 다 복수하고 부숴버리고 싶다. 내가 믿는 그분이 부처든 우주든 조상이든 길거리 버드나무건 들마루 위 신줏단지이건 상관없다. 난 실험해 보고 싶었다. 단지 위 물그릇에 손가락을 넣고 휘저어도 내 하루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할머니의 경고는 영악한 나에겐 실험 대상일 뿐이었다. 무조건 열어봐야 하는 판도라의 상자였다.
어떤 질문을 던질지에 따라 삶이 달라지는 세상이 오고 있다. 생각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세상! 인공 지능들도 이제 생각하기 시작했다.
막 깎은 손톱처럼 날카로왔던 내 신경은 늘 끌질이 필요했다. 삶이 나를 담금질했다. 바닷가에 버려진 부서진 소주병들도 바닷물의 따스한 손길에 바둑알처럼 부드러워진다. 내 삶이 그러했다. 언제든 부서질 준비를 하라. 거꾸로 잡고 내리친 소주병처럼 산산이 부서져라!
내가 싼 똥은 치우고 가야 한다는 일념에 사로잡혀서 죽기 전 모든 사진을 다 태우라는 유언을 남기고 떠나긴 봄의 시인처럼 시인처럼 나도 내가 쓴 글 다 지워버리진 않을까? 잘 살고 있는 것일까? 침대에서 발을 디디는 순간, 아픔이 밀려온다. 지간 신경종이 왔다. 눈을 뜨는 순간 다시 감고 싶어 진다. 삶이 아프다고 비명을 지른다. 고통스럽다고 소리친다.
내 부러진 손톱들이 옹고집처럼 도플갱어로 탈바꿈하지 않을까!
미쳐서 미쳐서 지맘대로 날뛰는 내 심장이여 어쩌란 말인가? 도대체 미쳐 돌아가는 세상에서 어떻게 정신줄 붙들고 살란 말인지?
아무도 의지하지 않으려고 한다. 내 몫의 모든 고통은 내가 지고 가려고 한다. 누군가에게 받았던 고통에 대한 모든 복수를 내려놓는 날, 진정한 내가 완성되는 것일까? 봄햇살이 창처럼 달려와 꽂히는 오후! 신이 준 고통에 고통을 더해서 살아가고 있다.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솔직할 것! 어떠한 경우에도 추잡하게 동정심을 끌어내지 말자.
코로나 확진당일 세종, 도안 맘카페에 내 이름과 신상정보 공개한 사람을 찾습니다. 난 은혜도 반드시 갚지만 남의 인생 망치는데 열정을 쏟아내었던 그분을 꼭 찾아내 몫의 고통을 삭감하고 싶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공부가 되는 새벽! 난 오늘도 공부를 한다. 진정한 학문이란 삶에 대한 바른 이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