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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들은 각각 고3, 중2, 초5학년이다. 둘째부터는 육아가 익숙해질 만도 한데, 아이마다 성향이 다르다보니 고민도 달라진다. 게다가 아이는 타고난 기질에 더해 주변환경의 영향을 받으며 또다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문득 요즘의 초등 저학년 부모들은 아이를 키우며 어떤 고민을 할까 궁금해졌다. 그중에서도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전혀 모르는 부모를 만나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용산구 마을도서관 ‘고래이야기’의 숲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만난 두 분의 엄마에게 인터뷰를 청해 보았다.
용은중(이하 은중) : 안녕하세요? 오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분은 아는 사이인가요? 어떻게 만나셨어요?
세연 엄마(이하 세연맘) : 저녁 시간에 효창공원앞역에서 하나둘 모여서 놀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자주 만나서 보니 가까워졌어요.
시아엄마 (이하 시아맘) : 네, 아이들이 함께 잘 놀아요. 아이들이 저학년이어서 더 편하게 어울릴 수 있는 것 같아요.
은중 : 아이들이 함께 놀면 너무 행복하겠어요. 두 분은 아이들 공부와 관련해서 고민이 있으신가요?
세연맘 : 제 아이는 지금 초등학교 1학년인데요. 저는 10대를 미국에서 보냈어요. 다시 한국에 돌아와서 영어 학원에서 아르바이트 하면서 느낀 점이 많았어요. 학원에 대해 들은 것도 있다보니 내 아이는 경쟁교육으로 인한 어려움이 없길 바라고 있어요. 숲에서 돌아다니면서 노는 게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고, 공부는 아이 스스로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 하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해요. 다시 직업을 구할 생각도 있는데, 직장에 다니더라도 학원은 보내기 싫어 우리동네키움센터에 아이를 보내고 있어요. 거기에서 언니 오빠들이랑 같이 놀면 좋겠어요. (*우리동네키움센터 :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어린이 돌봄교실)
아이가 배우고 싶어하는 때를 놓치지 말아야
세연 맘 : 입학 후 얼마 안 돼서 담임 선생님과 면담에서 수학공부 이야기를 나누다 말끝을 흐리며, “(학습에서 좀 뒤처지는 것) 알고 계시죠?” 하시더라구요. 저도 “네.” 그러고 말았어요. 학기 초라 한글을 배워나가면서 이제 읽어가는 재미를 느끼고 있는 중이었거든요. 저는 좀 더 기다렸으면 좋겠는데 담임 선생님까지 그렇게 말씀하시니 쉽지 않더라고요. 주변에서 들리는 말도 있고요. 책 많이 읽어주고, 자기가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게 하고 싶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좀 힘들겠다 싶어요. 그래서 가능하다면 외국의 교육환경을 한 번이라도 경험하게 해주고 싶어요. ‘이게 전부가 아니야. 여기서는 이게 중요하다고 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아니야. 네가 하고 싶은 걸 하면 돼.’라는 사실을 직접 느끼게 해주고 싶어요.
은중 : 원칙적으로 입학 후 한글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시는군요.
세연맘 : 학교에서는 한글을 깨치고 오면 당연히 편하겠죠. 다수가 그런 상황이라면 민폐를 끼치는 것도 싫고, 아이가 소외되는 느낌을 받는 것도 싫잖아요. 남편과 같이 고민 끝에 저녁마다 아이와 한글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됐어요.
은중 : 학교에서 요구되는 속도와 아이의 속도가 달라서 오는 압박이 있으셨네요. 극복하기 위한 노력도 하고 계시고요.
시아맘 : 저는 좀 생각이 달라요. 학교 가기 전이더라도 관심 갖고 배우고 싶어 할 때 배우는 게 좋다는 생각이에요. 저희 아이는 지금 2학년인데 둘째는 첫째를 보고 관심을 많이 갖더라고요. 그래도 가르쳐주지 말아야 하나? 의문이 들어요. 궁금할 때 배우면 빨리 습득 되는데 나중에 다 할 수 있다고 미루는 게 과연 바람직한가 싶어요.
궁금한 것을 배우고, 배우면 재미있으니까 또 궁금해하고, 이게 선순환이 되는 거잖아요. 어려서부터 입시 전쟁에 뛰어들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음악과 체육은 입시와 별개로 중요하고요. 체력도 좋고, 더 많이 놀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맨날 밖에 나가서 놀지만 제가 다 가르쳐줄 수만은 없잖아요. 그런 부분을 해결할 수 있는 학원이 있어 좋다고 생각해요. 좋아하는 것을 하면 제일 좋겠지만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이 있고, 미리 해놓으면 좋은 일도 있고요.
은중 : 아이가 예체능 등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폭 넓어지길 바라시는 거네요. 아이마다 속도가 다를 텐데 그 순간이 언제인지 아는 것이 가장 고민되는 지점이신가요?
시아맘 : 세상은 넓고 다양한 길이 있다는 걸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요. 엄마 말만 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할 만큼 아이를 성장시켜야 하는데 그 방법을 아직 잘 모르는 게 고민이죠. 세연맘은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고 싶어하시는 것에 비해 전 사실 그렇지는 않아요. 제가 생각하는 대로 자랐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은중 : 이렇게 다양한 생각을 가진 부모를 만날 기회가 별로 없는데 매우 흥미로워요. 또 다르게 생각하시는 지점이 있을까요?
세연맘 : 제가 공교육에 원하는 바는 경제나, 인권이나 도덕, 예절, 이렇게 사람이 살아가는 데 실질적인 지식을 알려주면 좋겠어요. 국영수 교과지식이 아닌 사람이 어른으로서 살아가려면 꼭 필요한 내용을 공교육에서 가르치면 좋겠어요.
은중 : 영국에서 아이를 학교에 보낸 분 이야기를 들으니 초등 저학년 때는 가방 속에 책 한 권만 가지고 간다고 하더라고요. 책 한 권이 세상과 연결되는 경험이란 어떤 것일까? 충격적이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죠.
세연맘 : 부러워요. 저학년 때부터 책 읽기와 글쓰기는 필수라고 생각하거든요. 프랑스에서 살다 오신 분들이 쓰신 책을 보면 학교에서 토론하고 내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찾아 자기 생각을 논리적으로 쓰는 교육을 한다고 들었어요. 어른이 되어서도 필요한 삶의 기술이죠.
시아맘 : 아이들이 성장 후 자기 적성에 맞는 밥벌이를 하도록 해야 하는데 공부만이 길인 것처럼 기성세대부터 쭉 그렇게 주입 받으면서 자라 왔잖아요. 그게 우리나라가 공부 집약적인 사회가 된 원인 같아요. 그러다보니 세상의 다양함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자꾸만 하게 되고요. “나의 울타리는 넓으니 그 안에서 마음껏 뛰어 놀아!” 말해주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으니 나름대로 최선을 다할 뿐이죠.
“제 아이 마음은 헤아려 보셨어요?”
시아맘 : 요즘엔 공감육아의 흐름이 지나쳐 생기는 문제도 있는 것 같아요. 저희 아이가 다니는 영어학원 셔틀버스에서 약간의 시비가 붙은 사건이 있었는데, 아이 엄마에게 이야기하니 “저희 아이 마음은 헤아려 보셨어요?”라며 되물었다고 해요. 다른 사람도 엄마처럼 자기 아이 마음을 헤아리길 바라는 거죠.
세연맘 : 초등학교 들어갈 나이가 되면 감정이 점차 분화되면서 세심해지는 거 같아요. 특히 여자아이들 사이에서요. 어느날 반 친구가 색종이를 나눠줬는데 제 아이한테만 “쉬는 시간에 줄게.” 하더래요. 쉬는 시간에 받으러 갔더니 정작 주지 않아서 서운했다고 해요. 그래서 아이와 함께 <나도 상처받지 않고 친구도 상처받지 않는 말하기 연습>이라는 책에서 비슷한 예를 찾아봤어요. 책 내용을 읽어보면서 그 친구가 잊어 버렸을 수도 있고, 서로 오해했을 수도 있다고 얘기했죠.
은중 : 정말 따뜻하고 지혜로운 해결 과정이었네요. 초등학생들의 친구 문제는 거리를 두고 보면 귀엽게만 보이는데 본인들 사이에서는 크고작은 상처를 주고받을 수 있겠어요. 말씀대로 성장해 나가는 증거 같고요.
시아맘 : 성향이 뚜렷하면 마음의 상처가 오히려 덜하다고 해요. 어떤 방향이 되었든 아이들은 소속감에서 안정을 찾는 것 같아요.
세연맘 : 이 모든 과정들이 자기를 찾아 나가는 과정 같아요. 전에 상담하시는 분들로부터 이런저런 사례를 너무 듣다 보니, 초등학교 가기 전부터 겁을 먹었어요. 아이들 사이에 갈등이 생겼을 때 정작 아이들끼리는 사이좋게 푸는데 부모는 뭐라도 하나 오점을 남기려고 끝까지 가기도 하더라고요. 고학년 갈수록 심하고요. 중학생 사례에서는 성폭행도 있어서 이민 가야 하나 고민도 했어요. 막상 학교 보내니 별것 없더라고요. 너무 많은 이야기를 듣는 것도 안 좋은 것 같아요.
은중 : 말씀을 듣다 보니, <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라는 책이 떠올라요. 어떤 일이든 직접 경험하고 맞서는 게 주변의 말만 듣고 지레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니까요.
시아맘 : 교권도 문제라고 생각해요. 교권 보호를 위한 가이드가 있으나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어요. 학부모들도 “왜 그렇게 해야 해?”라고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요. 학교에서 안내를 해도 잘 받아들이지 못해요.
세연맘 : 선생님들 업무도 오히려 늘어난 듯 해요. 알림장도 지금은 앱으로 안내해야 하고 학부모들이 바라는 게 더 많아진 거 같아요. 행정을 위한 일은 줄이고 교사와 학생들 스스로가 학교생활을 꾸려가면 좋겠어요. 저의 학창시절에 학급 문집을 만드는 담임 선생님이 계셨어요. 글 한 편을 써내고 마지막에 책이 한 권 나오는 경험은 정말 특별했어요. 요즘엔 그런 게 점점 없어지고 지친 선생님들은 하루하루 보내기도 벅차 보여요.
시아맘 : 학기 초, 학부모 참관수업에 갔을 때도 선생님이 굉장히 호소를 많이 하시더라고요. 일이 너무 많다, 잘 모르겠지만 정말 많은 업무에 시달리고 있다, 그럼에도 열심히 하고 있으니 이해하고 믿고 소통했으면 좋겠다면서요. 보통 사람들은 ‘교사’라고 하면 방학이 있어서 수월할 거라 생각하지만 엄청나게 시달려요. 저도 공무원이었기 때문에 그 상황을 이해해요. 새로운 정책이 내려오면 취지야 좋지만 모든 사업이 결국 말단으로 내려오고 주민센터에서 일폭탄이 터지거든요. 새로운 사업은 계속 생성되고 민원인들의 요구를 충족해야 하니까 직원들만 죽어 나가요. 사람들은 그런 공무원들이 불친절하니, 놀고 있니 하면서 불만이 많고요. 선생님도 비슷한 처지겠구나 생각해요.
세연맘 : 미국에는 학부모 상담관도 따로 있고, 보안 담당자가 있어서 학생이 문제를 일으키면 그분이 데리고 나가요. 선생님이 딱히 조치할 사항이 없었어요. 보고서도 그분이 알아서 쓰시고요. 선생님은 교육만 하시게끔 되어 있었어요.
©게티이미지뱅크
교육 문제를 고민하기에 너무 바쁜 사회
은중 : 해외 사례에서 해결 방법을 찾아볼 수도 있겠어요. 오늘 두 분과 함께 얘기하다보니 그동안 생각지 못했던 여러 생각을 할 수 있는 자리가 됐어요. 끝으로 남기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신가요?
시아맘 : 학교 교육 이전에 부모 역할도 너무 중요한데, 다들 먹고살기 바빠 신경쓰기 어려운 것 같아요. 이런 고민을 할 수 있는 것도 엄청난 여유예요. 보통 퇴근하고 오면 조금이라도 쉬고 충전하고 다시 회사 가야 해요. 어떻게 살아야 할 지 고민할 여유가 없죠. 그러니 모든 것을 학교에서 해결하고 나오길 바라죠. 내 몸과 마음을 정비할 시간조차 없으니 그 이상은 생각조차 하기 힘들고요. 교육에 대해 더 신경 쓰기가 어렵고, 숙제 봐주기도 힘들고. 그러니 돈 벌어서 또 학원에 보내야 하고. 이제는 놀이터에 나가는 것도 여유와 계획이 있어야 하는 시대 같아요. 전처럼 나가서 놀라고 하지도 못하는 시대이니, 다 부모의 몫이에요.
세연맘 : 맞아요. 주변 엄마들 생각을 들어보면 대부분 숙제 같은 건 전혀 안 했으면 하더라고요. 일단 봐 줄 시간이 없어요. 이것저것 준비물도 필요하고요.
은중 : 두 분 통해 들어본 요즘 부모의 고민을 잘 들었습니다. 좋은 말씀 정말 감사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부모의 역할도 있지만, 달라진 부분도 꽤 많아 보인다. 특히, 아이들의 특성은 저마다 다르니, 부모가 그에 적절한 여건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게 눈에 띈다. 한편으로는 교실에서 교사의 자율권이 확보된 수업을 운영하는 게 여전히 어렵다는 사실이 새삼 아프게 다가온다. 학부모도 교사의 삶을 걱정할 정도이니 말이다. 요즘 부모들은 학교에서 숙제도 안 내주면 좋겠다고 할 만큼 지쳐 보인다. 교육운동을 하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이들의 고단함이 해결될까? 여러 교육 공동체에서 활동하는 나 역시 요즘부모로서 고민이 깊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