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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열리는 콘서트나 TV 프로그램에 한복을 입고 나오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때문에 일본 극우들의 표적이 되어 많은 협박과 핍박을 받았다. 일본 활동시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차별과 편견을 많이 받았지만, 오로지 실력 하나로 모든 것을 제압한 것이다. 물론, 한복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디너쇼에서 계속 입고 있는데 일본 극우들의 협박에 굴하지 않고 한국의 기개를 널리 알리기 위해 일부러 더 화려하고 큰 자수가 박힌 한복을 입는다고 한다. 참고로, 그녀가 입는 한복은 특수하게 수제 제작되어서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이다. 그래도, 요즘은 예전보다 한류세가 많이 커져서 굳이 본인이 한복을 입으면서 한국을 알리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김연자는 한국의 수많은 명곡들을 일본에 많이 알려준 가수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돌아와요 부산항에, 임진강, 노란 샤쓰의 사나이, 내 나이가 어때서, 이별[15], 강원도 아리랑, 고장난 벽시계, 안동역에서 등등 수많은 한국 노래를 일본어 가사로 번안하여 부르기도 했다.
내 나이가 어때서를 일본어로 커버한 것도 유명하다.
특유의 블루투스 창법은 김연자의 성량이 워낙에 크기에 만들어진 창법으로, 정엽의 맷돌 창법과는 차이가 있다.
환갑이 넘었음에도 성량이 커서 마이크를 멀리 떼고 불러도 소리가 쩌렁쩌렁 울린다. 어느 행사에서 마이크 소리가 너무 컸던지 귀를 막고 있던 관객을 본 뒤로 마이크를 멀리 뒀다가 가까이 뒀다가 자유자재로 다루며 성량을 조절하는 버릇이 생겼다고 한다.
쩌렁쩌렁 울리는 매우 큰 성량과 때로 과격하게까지 느껴지는 강한 감정선 등, 일본의 국민 정서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가수였다.[1 이에 김연자도 자신의 개성을 계속 갈고 닦되 어느 정도는 타협하여 긴 무명이었던 기간을 이겨내고 일본의 국민 가수가 될 수 있었다.
2012년 나는 트로트 가수다에 출연해서 단장의 미아리 고개를 불러서 Staff가 뽑은 1위에 꼽혔다. 다른 가수들이 모두 퓨전적이고 세련된 편곡을 한 것에 반해서 김연자는 그야말로 정통 트로트의 진수를 보여줬다. 김연자 특유의 폭풍 가창력과 뒷부분의 애절한 내레이션까지 최근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나는 가수다의 무대를 관광 보낸다는 평가까지 받았으며, 1위를 기록한 문주란 이상까지 간다는 호평을 얻었다.
"향수병에 시달리던 시절이 있었죠(웃음). 한국가수라는 자부심 하나로 살고 있어요. 한국인임을 잊지 않기 위해 지금도 공연을 할 때마다 한복 한 벌씩을 입어요. 하지만 향수병은 오래전 이야기죠. 저랑 함께 일하는 스태프만 50명이에요. 외로울 틈도 힘들 틈도 없어요. 지금처럼 엔화가 비쌀 때 일본에서 더 열심히 벌어서 한국에 투자도 하고 좋은 일도 많이 해야죠. 예쁘게 봐주세요" 일본에서 음반이 잘 되지 않거나 일이 풀리지 않을 때는 한국에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크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얼굴이 된 만큼 끝까지 멋지게 활동을 하고 싶다는 그녀는 기회가 된다면 꼭 한국 무대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싶다고 밝혔다.
자선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목포에 있는 고아원인 '공생원'[19]에 '사랑의 음악당'을 건설하기 위해서 자선 콘서트를 한일 양국에서 50회를 열었고, 2011년 대지진 당시에는 도전 1000곡의 우승 상금을 모두 기부했다.
1988 서울 올림픽 찬가 '아침의 나라에서' 역시도 그녀의 노래인데, 의외로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본래 '아침의 나라에서'는 국민 투표를 통해서 서울 올림픽 주제가로 선정되었는데, 그 뒤에 '촌스럽다'라던지 '세계인들이 들을 노래인데 너무 뽕짝스럽다'는 부정적인 여론을 수렴해 뒤늦게 곡 교체를 하게 되었는데, 어른의 사정으로 인해서 당시 유럽에서 주로 활동하던 탓에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코리아나가 부른 '손에 손 잡고'로 바뀐 것이었다. 김연자의 곡도 그 자체만 놓고 보면 좋은 곡이기는 하지만, 올림픽 주제가라는 특정한 목적을 염두에 두고 '아침의 나라에서'에서 느낄 수 있는 해당 문제점을 개선한 노래 '손에 손잡고'가 더더욱 넘사벽 수준으로 훌륭하게 되었다. 따라서 '아침의 나라에서'는 자연스럽게 묻히게 되었다.
프로듀스 101 시즌2와 쇼미더머니 6을 봤다고 했으며 김사무엘을 응원했다고 한다.
2002년 당시 왕성한 활동으로 일본에서 인지도가 높은 김연자를 브랜드화하여 김치홍보대사로 활용한 「김연자 김치」가 출시되었다. 일본수출용이었지만 국내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무한도전에 출연해서 유재석의 팬이라서 꼭 만나고 싶었는데 너무 반가웠다고 했으며, 해피투게더에서도 만나서 팬이라고 계속 말했다고 한다. 박명수도 좋아한다고 말하면서 방배동 이웃 주민인 인연과 EDM으로 통하는 게 있었고 박명수가 엄청 챙겼다고 했다.
2018년 부산대학교 축제에 참가 게스트 중 하나로 섭외됐다는 소식에 당시 재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이게 대학 축제인지 어르신 축제인지 모르겠다, 학생회장이 자치회비 빼돌려서 토토했냐? 등의 혹평이 많았지만, 막상 축제에서 여러분으로 클래스를 제대로 보여줬고, 아모르 파티를 부르니까 난리났다. # 이에 따라서 다른 문제와는 별개로 축제 뒤로부터 섭외 가수에 대한 불만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단칼에 일축되었다. 그리고 2018년 부산대 시월제 축제에 우정 출연으로 다시 방문했다. 직캠 영상.
2001년 방북 때 김정일로부터 극진한 환대를 받았으며, 개런티에 대해서 합의 없이 왔기 때문에 그냥 자선 공연인 셈 치려 했다. 하지만 환영 만찬에서 이 이야기를 들은 김정일이 "자선 공연은 절대 하지 마거라. 그게 우리한테는 고마운 일이지만, 다른 외국 가수들도 돈 받고 오는데 왜 자선 공연을 하려 하느냐?"면서 직접 돈이 든 서류봉투를 건넸다고.[20] 한편으로는 김정일과 만난 김에 혈액형이 뭔지 궁금해서 물어봤는데, 주변의 간부들이 그런 민감한 생체 정보는 기밀 사항이라면서 곤혹스러워하는 것을 김정일이 말리고는 "내 혈액형은 A형이다. 그런 질문은 처음 받아본다."는 답변을 흔쾌히 했었다. 또한 20년 넘게 김연자의 팬이었던 김정일은 김연자 앞에 음식을 직접 하나하나 챙겨주는 등 배려심 넘치는 모습을 보였다고. 당시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