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투혼을 불사른다." 1년 6개월 만에 링에 다시 오르는 최요삼은 오는 12월 30일
복귀전을 앞두고 팬들에게 좋은 경기를 보여주기 위해 맹훈련하고 있다. 사진=주성용
"정말 할 말이 많았다." 이달 말 복귀전을 앞둔 최요삼(33,보람프로모션)을 만나기 위해 12월 5일 서울시 동작구 노량진 1동에 있는 삼성체육관을 찾았을 때 그가 던진 첫마디다. 최요삼 전 WBC(세계복싱협의회) 라이트플라이급 챔피언. 챔피언 시절 최요삼을 상징하던 노란색 머리카락은 이제 검은색으로 변했다. 최요삼은 2007년 새해를 이틀 앞둔 오는 12월 30일 파랑차이 추와타나(21,태국)와 논타이틀 10라운드 경기를 치른다. 2005년 6월 17일 경기도 부천에서 열린 추와타나(태국)와 경기에서 5라운드 KO승
거둔 뒤 1년 6개월여 만에 다시 링에 오른다.
챔피언, 화려한 조명 뒤의 그림자
영등포중학교 2학년 때 복싱을 시작한 최요삼은 용산공업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실력있는 아마추어 복싱선수로 인정받았다. 아마추어 전적은 45승5패. 고등학교를 졸업한 최요삼은 곧바로 프로로 진로를 잡았다. 1993년 7월 데뷔전을 치렀고 이듬해 신인왕이 됐다. 최요삼은 다른 세계 챔피언들처럼 한국 타이틀, 동양 타이틀(OPBF)을 차례로 따내면서 세계 챔피언에 도전했다.
순항하던 최요삼의 발목을 잡은 건 국내 프로복싱의 인기 하락이었다. 1997년 3월 동양 챔피언에 오른 최요삼은 그해 세계 타이틀 매치를 추진했다. 그러나 때마침 닥친 외환위기 등 거듭되는 악재는 경기 성사를 어렵게 했다. 2년 동안 5번의 동양 타이틀 방어전을 치른 최요삼은 1999년 10월 17일 세계 챔피언이 됐다. 상대는 사만 소 자투롱(태국). 자투롱은 10차 방어전까지 성공했고, KO율도 74%를 자랑하고 있었다. 최요삼은 영리한 경기운영으로 점수를 쌓아 심판 전원일치 판정승을 거두고 챔피언 벨트를 허리에 찼다. 그러나 챔피언의 영광을 얻기까지 얻은 상처도 컸다. 자투롱과 경기에서 허용한 어퍼컷에 턱에 금이 가는 상처를 입었다. 수술과 재활을 거친 끝에 2000년 6월 17일 1차 방어전을 치렀다. 타이틀 획득 후 8개월의 시간이 지나서였다.
최요삼은 "그때 기억이 생생하다. 스트레이트보다 어퍼컷을 맞을 때 고통이 더 크다"고 말했다. 2차 방어전 상대는 자투롱으로 결정됐지만 스폰서를 구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 프로복싱계의 거물이었던 심양자가 설립한 숭민프로모션이 최요삼의 경기를 후원하기로 했지만 도중에 빠지면서 자금 문제가 불거졌다. 챔피언인 최요삼에게 지불할 대전료도 없었지만 정작 급한 건 도전자에게 줄 파이트 머니였다. 최요삼은 "정오에 계체를 했는데 오후 2시가 돼도 경기가 열리지 않았다. 이유를 물어보니 도전자에게 줄 돈이 없다고 했다. 내 통장에 있던 3천만 원을 급히 인출해 파이트 머니에 보탰다"고 말했다. 그런 상황이었다. 한국프로복싱의 침체기를 고스란히 몸으로 겪어야 했던 챔피언이 바로 최요삼이다.
2001년 1월 30일 최요삼은 우여곡절 끝에 자투롱을 7라운드 1분 17초 만에 KO로 물리치고 타이틀을 방어했다. 3차 방어전도 자투롱과의 경기 때처럼 성사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 북한에서 치르기로 예정됐던 방어전이 스폰서 문제로 취소됐고 일본프로복싱계 이적설도 나돌았지만 성사된 건 없었다. 최요삼은 2002년 2월 23일 도쿄 원정에서 야마구치 신고를 10라운드 TKO로 물리쳤다. 그러나 그해 7월 6일 국내에서 치러진 4차 방어전에서 도전자 호르헤 아르세(멕시코)에게 6라운드 TKO로 져 타이틀을 내놓았다. 최요삼은 "3차와 4차 방어전 기간이 5개월이나 됐다. 3개월 정도 간격으로 규칙적으로 경기를 했다면 좀 더 좋은 내용을 보여줬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스폰서를 구하지 못해 타이틀 매치가 뒤로 밀리며 경기감각을 잃은 게 패배의 원인이 됐다. 최요삼이 타이틀을 잃어 버리면서 지상파 TV는 더 이상 프로복싱 중계를 하지 않았다. 케이블 TV에서도 프로복싱 중계는 드물었다.
마지막 무대, 후회는 없다
세계 타이틀을 내준 2002년 7월 이후 최요삼은 2003년 세 차례, 2004년 한 차례 경기를 가졌다. 오랜만에 링에 오르게 된 이유는 챔피언 시절 내내 자신을 괴롭혔던 스폰서 문제 때문이다. "(스폰서 문제로)경기를 치를 수가 없었다. 이번 복귀전도 원래 지난 9월 예정돼 있었다. 7월부터 두 달 동안 몽골에서 전지훈련을 했지만 결국 9월에 경기를 하지 못했다." 최요삼은 "챔피언 자리에 오르고 나서 복싱을 그만둬야 했다. 챔피언이 된 게 독이 됐다. 그렇게 힘들게 경기를 치를 줄 몰랐다"고 했다. 그러나 최요삼은 복서로 활동한 것에 후회는 없다며 "나처럼 힘들 게 경기를 해야 하는 챔피언은 앞으로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복귀전 계획도 원래는 없었다. 최요삼과 10년째 인연을 맺고 있는 보람프로모션 정광신 사장이 마지막 무대를 가져보라고 격려했다. 최요삼은 "이번 복귀전이 마지막 무대다. 이 경기에서 이긴다 하더라도 타이틀에 대한 미련은 없다"고 밝혔다. 그는 “곧 링을 떠나겠지만 목표는 프로모터다”라고 말했다. 복싱계를 떠나지 않겠다는 의미다. 최요삼은 "시설이 잘 갖춰진 체육관을 만들겠다. 이를 위해 차근차근 준비하겠다. 국내에선 프로복싱의 인기가 바닥이다. 시대적인 흐름은 어쩔 수 없다. 전보다는 못하겠지만 프로복싱 인기가 다시 올라갈 수 있도록 후배 복서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복싱 경기 입장권의 무료 배포에 대해서도 걱정했다. "공짜표를 남발하면 프로복싱은 더 이상 살아날 길이 없게 된다. 한국권투위원회나 복싱 선배들이 나서서 이러한 일을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03년부터 최요삼을 지도하고 있는 삼성체육관 허병훈 관장(45)은 "(최)요삼이는 시대를 잘못 만났다. 주위 여건이 조금만 뒷받침됐더라면 오랜 기간 챔피언 자리를 지켰을 게 분명하다"고 평가했다.
최요삼에게는 또 하나의 꿈이 있다. 아들이 프로복싱 세계 챔피언이 되는 것이다. 아직 미혼인 최요삼은 사귀고 있는 여자친구와 결혼해 아들을 낳으면 꼭 복싱을 시키겠다고 했다. 자신의 마지막 경기가 될 수 있는 이번 복귀전을 앞두고 최요삼은 많은 준비를 했다. 오랜 기간 공백이 있었지만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단지 링에 오르지 못했을 뿐이다. 해외 전지훈련을 포함해 120일 동안 진행된 합숙훈련도 마쳤다. "내가 복싱을 하면서 번 돈은 이제 중요하지 않다. 팬들에게 그리고 내 자신에게 후회없는 경기를 치르고 링에서 내려오고 싶다." 오전에는 러닝으로 가볍게 몸을 풀고 오후에는 스파링을 집중적으로 하며 경기에 대비하고 있다. 취재를 위해 찾아간 날도 최요삼은 후배 선수인 최태규(26)를 상대로 스파링을 했다. "복귀전 꼭 보러 오세요." 스파링이 끝난 뒤 보호장구를 벗으면서 최요삼은 말했다. 그러나 복귀전을 치를 장소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역시 스폰서 문제 때문이다. 허관장은 "강동구청과 협의하고 있다. 다음 주 안으로 경기 장소가 확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허관장은 "최요삼이 이번이 마지막 경기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최요삼이 멋지게 선수생활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