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7.03~04] 산에 든지 한달을 넘겼다. 근래 이렇게 인터벌이 길었던 적이 있던가. 한참을 그저 마음만 두었더니 심사가 그리운 님 그리는 시인과 같다 .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바람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황동규 '즐거운 편지' 中 그렇구나. 마음으로는 금단 현상을 겪는지도 모르겠다. 주말, 비 예보지만 더이상 참을 수 없다. ******* 장마의 즈음이란다. 잦은 빗줄기에 산도 신이 났을까.
아니다. 콸콸 쏟아내는 옥계청수는 그이의 눈물. 국토의 울음주머니라는 슬픈 이름의 산은 그렇게 우는 소리마저 속으로 속으로 삼켜내는 것일테다. 우중, 그 산 들기로 깊고 넓은 계곡이 좋은 이유다. 걷는 내내 우렁찬 물소리일테니 슬픔일랑 그리 묻혀지기를.1일차 : 11km(백무동 - 한신지계곡 - 장터목 - 야영지) 2일차 : 6km(야영지 - 장터목 - 백무동)
한신계곡. 계곡은 이름 그대로 깊고도 넓다. 그 품에서라면 울고 싶은 자 마음껏 울어도 된다. 더욱이 비까지 내리는 바에야.
한신지계곡. 가내소폭포 못미쳐 지계곡을 쫓는다. 주능에 닿기까지 10km가 넘는 거리에 들머리인 백무동서 장터목 거쳐 야영지까지는 고도를 1200m 가량 올려야 하는 거친 등로다. 더하여 마지막 고도 200m는 길을 내어 걸어야 한다. 장맛비에 미끄러운 계곡이라면 긴장도 해야하고 땀도 꽤내 흘려야 할테다.
팔팔폭포. 소강의 장마전선 탓에 해의 기운이 간혹 낮은 구름을 뚫는데 마침 그 온기가 좋은지라 털썩 주저않으니 수렴의 우렁찬 소리가 또한 막힌 귀를 뚫을 태세다.
아무 거칠 것 없는 계곡을 거슬러 오른다. 생기 넘치는 숲과 잘난 체 없는 계류가 앞서거니 뒷서거니 마음에 닿는다. 이만한 걸음 맛이 또 언제였던가. 터벅 터벅 말없는 교감이 참말 좋다.
천령폭포. 풍채가 한신지계곡의 3대 수렴중 한 곳 답다. 느즈막한 출발에 쉬엄쉬엄 걸음이라니 어언 허기도 진다.
갓 내린 빗물이니 물이 그닥 차지 않다. 훌훌 벗어던지고 물에 몸을 담근다. 찌게 하나 밥 한그릇의 성찬에 찰나의 오수도 좋으련만 갈 길이 멀어 밥만 먹고 얼른 일어서자니 아쉬울 뿐.
구불구불 계류가 사뭇 근사하여 시선을 붙든다. 말하자면 이산해가 <달촌기>에서 '푸른 용이 구불구불 꼬리를 휘두르며 내려가는 듯한 개울...' 이라 묘사한 폼새렸다.
내림폭포. 고도 1150m에 흡사 와폭인 양 길게 내린 폭포가 저리 멈추었다.
소소한 즐거움의 오름. 중간 규모의 계곡미가 솔솔하다.
함양폭포. 우회하여 장군대를 오르기 전, 계곡을 수십미터 남짓 더 오르면 만날 수 있으며 재차 찾을 길 쉽지 않을 테니 배낭을 풀어 놓고 부러 다녀갔다.
그리 올라선 장군암과 장군대. 너럭바위에 대자로 누워 세상을 품는다. 사나이 하루, 이만하면 더 무에 부러울까. 서화담의 산거(山居)가 이와 다를까. 구름 낀 바위 옆에 사는 것은 그저 성품이 게으르기 때문. 숲에 앉아 산새로 벗을 삼고 시냇가에서 물과 짝한다네 한가하면 화단에 비질을 하고 때때로 호미 들고 약초밭을 맨다네. 그 밖에 따로 일이 없으니 차 마시고 옛 책을 읽을 뿐이라.
이후론 급하게 고도를 높인다. 그런만큼 계곡도 좁아지고 수척해진다. 된비알에 숨이 턱턱 막히지만 파릇파릇 고운 잔뜩의 이끼가 그마저도 쉬이 잊게 한다.
애초에야 길이 있었을리 만무. 그러니 지금에도 길이 없음은 이유있다. 내가 가는 길이 이윽고 길이 된다면 그것으로 족할 뿐. 힘든 오름짓의 끝, 주능에 닿은 엉망의 모습이 우쭐하다. 문득 가스통 레뷔파의 <별빛과 폭풍설>에 나오는 문구가 떠오른다. 다방면에 조예가 깊었던 산사람의 철학이 근사하다. 산은 하나의 다른 세계다. 그것은 지구의 일부라기 보다는 동떨어져 세워져 있는 신비의 왕국인 것이다. 이 왕국에 들어서기 위한 유일한 무기는 의지와 애정 뿐이다. 아니다. 그것은 어쩌면 허세. 지리산 시인 이원규의 심사가 제격이겠다. 족필(足筆)
이원규
노숙자 아니고선 함부로 저 풀꽃을 넘볼 수 없으리
바람 불면 투명한 바람의 이불을 덮고 꽃이 피면 파르르 꽃잎 위에 무정처의 숙박계를 쓰는
세상 도처의 저 꽃들은 슬픈 나의 여인숙
걸어서 만 리 길을 가본 자만이 겨우 알 수 있으리 발바닥이 곧 날개이자
한 자루 필생의 붓이었다는 것 을
긴 산행 후, 나누는 술 한잔. 이것이야말로 인생.
지금 하늘이 잠들어 있는 인류를 위해 펼쳐놓은 이 숭고한 광경을 보고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드 메스트르의 <나의 침실 야간 탐험>의 한구절이 절절하다. 적어도 그중 한사람이 나라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하늘의 볓빛은 수줍게도 숨었지만 텐트를 적시는 톡톡 여린 빗소리에 책장 넘기는 소리 더하는 이 밤. 아~ 어쩌란 말이냐. 이 미칠것만 같은 애틋함을.
연하봉. 후두둑 후두둑 전형의 장맛비가 오락가락하는 아침, 텐트 창 너머로 잠시 하늘이 트인다. 보지 않고도 본 듯이 말하는 것은 도리 아니지만 이 순간이라면 점필재 선생도 그럭 공감하실 듯 싶다. 금강산은 동쪽에 웅장하고, 묘향산은 북쪽에 웅장하고, 구월산은 서쪽에 웅장하지만, 남쪽의 두류산에 오르게되면 곧 웅장하던 세 산은 눈 아래에 깔려있어 흙무더기와 같이 보인다. 어찌 이뿐이랴. 천하의 항산, 대산, 형산, 화산도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서기에 바쁠 것이다. 점필재 선생이 지리산 유람 나서는 승려 계징에게 준 글 中.
새벽내 타닥타닥 듣던 빗줄기가 가늘어지자 자유롭고도 느긋했던 아침도 차츰 분주하다.
우거진 숲을 지나 산을 내려선다. 배낭에 걸리는 나뭇가지가는 더 머물라 하는 애교인 듯.
백무동으로의 하산길, 전망바위에 주저 앉는다. 보이는 것이라곤 촘촘한 연화. 마음 같아서는 그 너머 너머 촛대봉이며 영신봉이며 다 보인다 하고 싶으나 마음 뿐.
참샘숲. 원형의 숲인 양 묘한 신비다.
산을 내려섰다. 산속과 물속은 닮은 꼴의 느낌이다. 엄마의 자궁 속을 유영하던 본능 같은 것이랄까. 여튼 오랫만의 산행이 주는 피곤이 좋다. 남겨 집으로 가야겠다. ******* 산속과 물속이 닮았다면 그 원형이 엄마의 자궁과 같은 것이라면 아마도 산으로 돌아가고 싶다한 법정과 인생의 산과 같음을 설득한 에르조그의 심사도 닮은 것 아닐까. 우리가 산을 찾는 것은 산이 거기에 그렇게 있기 때문이 아니다. 그 산에 푸른 젊음이 있어 우리에게 손짓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 묻지 않은 사람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며 끝없는 생명의 빛을 발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살고 싶다. 그런 산에 돌아가 살고 싶다. 법정 <잠언집> 中. 우리 모두가 빈손으로 찾아간 안나푸르나는 우리가 평생 간직하고 살아갈 보배인 것이다. 안나푸르나 등정의 실현을 계기로 역사의 한 페이지가 넘어가고 또 다른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인생에는 또 다른 안나푸르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에르조그 <최초의 8000m 안나푸르나> 中 .
첫댓글 이러 저러 사정으로 한달 넘게 산에 들지 못하다 약한 장맛비 예보라 무조건 걸음했습니다. 그리움이 더하고 반가움이 더하더군요. 누구는 산으로 돌아가고 싶다하고 누구는 인생이라는 또 다른 안나푸르나를 이야기 하는 것이니 그 중간 정도에서 인생 살아갔으면 좋겠다 욕심도 났습니다. 모두들 기쁘게 한주 보내세요~~~
ㅇ ㅏ....사랑이도 한달에 적어두 3-4번은 하눈데...
5월부터....지금까정 한달에 한번 산행 ㅡㅡ+
지리산이 넘 그리워....전에부터 계획했던...
성삼재 - 백무동 무박으로 오늘 가려합니당
날씨가 더워 극한 산행 ( 남들은 쉽지 몰라두 ㅡㅡ ) 될뜻....
팬더님의 산행기와 사쥔은
늘....브러움을 냉큼 사랑이에게 넘겨주네여 ^^;;;
마지막 알탕사진이 인상적입니다 운무와 안개로 시야는 안트였지만 마음만은 풍성한 산행기입니다 음악과 함께 잠시 머물다 갑니다 좋은시간되세요
예^^ 조망이 없으니 걸음에 집중하는 맛이 나름 있었네요. 계곡이 제법 긴지라 쉬엄쉬엄 걸었답니다!
팬다님! 잘 계시죠 ? ㅎㅎ 조만간 가볼 곳을 향도 역할해주셨습니다~~ 곧 시원한 물에 빠져있을 시간을 기다리며 후기 잘 봤습니다~~
한번 다녀가세요~~~ 마지막 고도 300m 정도가 만만치 않지만 지리의 계곡미가 보상해줄 것입니다^^
들고싶어도 들지못하는 사람은 더욱 간절하게 그리운 곳입니다 ^^ 배낭매신거만 봐도 다리가 떨리는군요 ㅎㅎ
후우린노오또님이사 더 아름답고 더 멋진 곳을 사랑하는 동행과 늘 다니시니 더 부러울 것이 있을까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만세님~ 별 것 아닌 것을 좋게 보아주어 고맙습니다. 더위 조심하세요^^
참 오랜만에 팬다님 후기를 보게 됩니다. 그간 많이 기다렸는데...^^;
비오는 지리의 산길과 계곡을 보니... 빗소리하며 폭포 낙수 소리까지 귓전에 울립니다.
지금 가슴 절절히... 돌아가고픈 곳입니다... 많은 위로가 된 후기 감사합니다^^
슬픔의 산이라지만 그러므로 건강한 산인 것 같습니다. 위로 해주는 고마운 산이지요!!!
글 하나 하나가 고요한 마음을 일렁일렁하게 만듭니다..지리산 어느 자락을 걷다가 울컥 눈물이 솟을것 같아요..ㅎㅎ
팬다님 BGM은 너무 아름다워요..흑흑
과찬입니다~ 더위 잘 이겨내시고늘 즐거운 캠핑하세요^^
아~ 멋지다는 말로는 부족한..
온 신경을 집중하여 취하고 싶은 글과 음악입니다.
우중산행이 더 좋을때도 있지요.
몽환적인 구름속 유영같은..
무릎 부상중이라 그 그리움 참다못해 함백산에 다녀왔어요.
(차로 정상까지..아시죠? ^^)
거기도 구름속이었답니다..
한여름에도 차갑게 불던 그 바람조차 그리웠는데.. 맞을 수 없더군요... ㅡㅡ.
구름속이어도 바람속이어도 그저 좋은가 봅니다^^ 더위 잘 나세요~
눈과 귀가 그리고 가슴까지... 참 좋습니다 .....
이런 느낌 갖게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
로버님~ 과찬이십니다. 고맙습니다^^
팬다님후기는 늘 산으로 달려가고픈 충동을 부르는군요^^
지지난해 7월 가내소직전 철다리 건너서 좌측으로올라서 지금은 휴식년재로
쉬고있는그길 어디쯤에서 혼자 몸담그고 이틀간의 지리산을 되새김 했었습니다.
너무나 조용했던 정오무렵 다시 오르고싶던 그길 잘보고갑니다
추억 공감하신다니 얼마나 좋은가요^^ 그리움도 더하시겠습니다~~~
좋은 후기에 좋은 책까지 알 수 있어 그 즐거움이 더한 1석2조 팬다님의 후기. 오늘은 퇴근길에 서점을 들려봐야 될거 같아요 ^^
술 담배 안하니 딱히 취미가... 책 읽고 산에 들고 달리기 하고... ^^; 고맙습니다~
지금 하늘이 잠들어 있는 인류를 위해 펼쳐놓은
이 숭고한 광경을 보고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좋은 글인듯 싶네요 육체적 고통속에서 기쁨을찾는 그런 두발의 고생으로 내가슴이 따뜻하고 내 정신이 웃을수 있는 그런 기쁨..... 후기 넘 잘보고 갑니다 더위에 건강하고 즐거운 산행 즐기시길 바래요^^
무당님^^ 잘 계시지요? 요사이도 부지런히 섬걷기 하시는지 궁금해요~
터벅 터벅 말없는 교감...
팬다님 글을 읽는 내내 가슴이 두근 거렸습니다...
가보지도 못한 곳에 대한 그리움이 생기는 건 왜 일까요?...
그러므로 그리움인가 봅니다~~~ 더위에 건강 유의하세요^^
언제나 맘만 먹으면 떠날수있는 팬다님,,,멋집니다,,저두 작년에 비오는 한신지계곡 올랐는데..넘 힘들었어요^^오르면 부러울것이 없지요^^이글을 보니 저두 막려가고푼데요늘 안전한산행건강하세요감하구요
그렇지요? 지리산에선 제법 빡센 코스입니다. 설악으로 치면 설악동서 마등령 지나 공룡능선 넘어 소청에 닿는 것과 비스무리....^^;
계곡을 따라서 올라가면 많이 미끄럽지 않나요? 그림을 보니 무더위가 싹 가시는 기분입니다.^^
예~ 꽤나 미끄럽습니다^^; 해서 가능한 릿지창의 중등산화가 걷기에 적합하겠지요.
빨개벗구 목욕하는 모습 머쩌부러용..ㅋㅋㅋㅋ
날이 무척 더워 조금 무리를 하였습니다 ㅠ.ㅠ
너럭바위 위에서 큰 대짜 젤 부럽습니다
실제 한 숨 자고 싶었지만 입돌아갈까봐 그러진 못했어요^^
님의 글을 보고있으니 마음은 벌써 지리로 가고있습니다 부럽습니다
참 좋은 계절입니다. 늘 건강한 산행하세요^^
항상 다 읽고나면 꼼꼼히 시간들여 읽어내린것 참 잘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좋은 '대화' 언제나 즐겁습니다.
케빈황님도 요사이 쫌 바쁘신 듯~~~ 자주 일상 보여주세요^^
제가 뭘 잘 몰라서 그러는데요... 국립공원에서 야영해도 괜찮나요? 불법아닌가요?
예~ 유누님~ 현행법상 엄연한 블법 맞습니다. 우선 죄송하다는 말씀 드리구요 욕심 미처 내려놓지 못한 탓, 너그러이 양해도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