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적 만남 2 / 장석창
상념 중에 차는 어느덧 충주 H병원에 도착했다. 한동안 쉬었던 나는 우연한 기회에 소개를 받고 기분전환도 할 겸해서 일하기로 했다. 원장님은 신경외과 제 5호 전문의인 칠순의 ‘김00’ 박사다. 원장님을 보조하면서 진료를 보던 중 한 환자를 만났다.
환자는 이제 스물을 갓 넘긴 청년이었다. 폐결핵으로 내과에서 항결핵제 치료를 받고 있던 중 의식이 기면상태로 나빠져서 입원하였다. 뇌 CT촬영을 해보니 결핵성 뇌수막염에 의한 수두증이 의심되었다. 상태를 지켜보던 중 환자의 의식이 혼미상태로 더 나빠졌다.
“장 선생, 이 환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뇌압을 감소시키기 위해 뇌실외배액술을 빨리 시행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장비가 있으면 제가 할 수 있습니다.”
“그래? 그럼 자네가 맡아서 해보게.”
순간 작년 말의 환자가 뇌리를 스쳐갔다. ‘아차! 괜히 나섰다.’ 싶었다.
검게 그을린 얼굴에 투박한 손. 환자의 아버지는 한 눈에 봐도 전형적인 60대 농부였다. 막내아들의 악화된 병세에 얼굴의 주름이 더 깊어진 듯했다. 전혀 배우지 못한 그에게 환자 상태에 대한 의학적 설명은 정말 어려웠다. 아니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선생님, 아들을 꼭 살려 주세유.”
막무가내로 애원하는 느릿한 충청도 사투리에는 애틋한 부정이 듬뿍 담겨져 있었다. 그는 연로한 원장님보다 나를 더 신뢰하는 것 같았다.
바로 뇌실외배액술을 실시했다. 바늘로 환자의 뇌를 찌르려는 순간, 서로 눈이 마주쳤다. 그의 눈빛은 흐릿했지만 느낌은 강렬했다. 그것은 삶에 대한 열망이었다. 나는 잠시 기도하는 마음이 되었다. 배액관을 연결하자 결핵균에 오염된 뇌척수액이 흘러나오고 환자의 의식 상태는 몰라보게 좋아졌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인 처치에 불과했다. 빠른 시간 내에 뇌실복강단락술을 실시해야 했다. 원장님은 이 수술 또한 나에게 맡기셨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환자의 상태는 점점 좋아지고 있었다. 환자와 가벼운 담소도 가능해졌고, 보호자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내 마음도 뿌듯했다. 그런데 수술 후 10일 정도 지나니 환자의 의식이 다시 나빠지기 시작했다. 당황스러웠다. 급히 뇌 CT촬영을 해보니 좌 측뇌실에 재수술이 필요한 상태였다. 원장님께 말씀드리고 환자 아버지에게 동의를 구했다.
“처음부터 양쪽에 전부 하시지…”
다소 원망의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았다.
시간은 흐르고 원장님 대신 외래를 보던 중이었다. 한 청년이 환한 미소를 띠며 진료실에 들어왔다. 바로 그 청년이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퇴원 후 두 달째의 내원이었다. 입원 중 힘없이 축 늘어져있던 그가 아니었다. 살이 제법 오른 얼굴에는 생기가 넘쳐흘렀다. 왠지 그가 낯설게 보였다. 나는 그가 웃는 얼굴을 이날 처음 보았다. 그것은 다시 찾은 삶에 대한 기쁨과 감사의 미소였다. 옆에 서 있던 그의 아버지도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기뻐하는 이들 부자의 모습에 가슴속 깊이 응어리로 남아있던 지난 연말의 기억도 차츰 희미해져 갔다.
의업에 종사한 이후 치유를 포기했던 환자가 기적적으로 살아나는 것도, 회복을 확신했던 환자가 불가사의하게 죽어가는 것도 보아왔다. 어쩌면 의사는 신의 섭리에 따라 이미 정해진 길을 가고 있는 한 인간의 인생 드라마에 잠시 등장하는 비중 없는 조연일지도 모른다. 노련한 의사를 만났지만 죽어갔던지, 풋내기 의사를 만났지만 살아났던지, 이 모두 한 개인에게 운명적으로 정해진 드라마의 한 장면이 아니었을까?
생사기로(生死岐路)에 선 시골청년과 실의에 빠진 청년의사의 운명적 만남. 20대 두 청년은 이렇게 만나서 서로의 아픔을 치유해 주었다. 서로에게 주치의였던 셈이다. 현재 나는 비뇨의학과 개원의로 나름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날 진료실에서 본 그의 미소가 이후 내가 방황을 끝내고 의업에 정진하는데 디딤돌이 되었으리라.
충주의 청년이 건강하게 잘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하다. 지금쯤 40대 중반의 중년이 되어 있을 것이다.
<2018년 제14회 보령의사수필문학상 동상>
서울출생
의학박사 비뇨의학과 전문의
2020년 한국산문 등단
제19회 한미수필문학상 대상
제15회 보령의사수필문학상 금상